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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모르는 사람

사랑은 어째서 돌려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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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되는게뭐야
작품등록일 :
2016.07.25 01:45
최근연재일 :
2016.09.11 23:51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7,944
추천수 :
78
글자수 :
132,401

작성
16.08.11 20:44
조회
280
추천
2
글자
8쪽

16%

DUMMY

으리으리한 회색의 돌이 깔린 폭이 넓고 기다란 복도를 걷는다. 엘레베이터 앞에서 연락수단과 돈을 깜빡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집까지 뛰어갔다 온다. 그러고보니 부모님은 왜 안 계셨는지 전화를 해보니 둘이서 여행을 갔다고 한다. 한 마디 말 정도는 하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야반도주도 아닌 주제에. 약속시간에 30분이나 늦을 뻔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무책임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서서히 긴장이 풀리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주린 배를 움켜쥐며 근처에 아침을 해결할 만 한 것이 뭐가 있나 생각해 본다. 보도 한 블럭만 건너면 빵집과 김밥집 편의점 등등 갈 곳은 많았다.

우선은 나를 지각으로부터 구원해주신 지훈님께 감사 인사를 올리자.

"지훈아 고맙다"

"너답지 않게 왜 그러냐 큭큭"

그런데 내가 감사를 하는 것이 어색해 죽겠다는 듯이 배를 움켜잡고 웃는 지훈이를 보고, 나는 좀더 근원적인 문제적 질문에 접근한다.

"그런데 내 집엔 어떻게 들어왔냐?"

1초 전까지 눈이 반월 모양이 되며 신랄하게 웃어재끼던 지훈이가 필사적으로 무표정을 가장하고 고개를 돌린다. 그것과 같이 화제도 신속하게 돌리기 시작했다. 지훈이의 뒤통수가 충분히 따끔할 수 있도록 강렬한 눈빛으로 찔러본다.

"밥 먹으러 가자, 근처에 아는데 있음?"

"엉, 그냥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데로 갈래"

띵 소리와 함께 승강기의 문이 부드럽게 열린다. 다시 복도가 펼쳐지고, 데스크를 지나서 회전문까지 걷는다.

햇볕이 잘 드는 쪽으로 개방된 아파트라 입구부터 눈 부시도록 햇빛이 내린다. 워낙 밝은 탓에 음영구분이 확실할 정도다. 눈을 찡그리며 배고픔을 참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50m 앞 쪽에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세아가 보인다. 먹을 것 생각으로 가득차 있던 내 뇌속에서 긴급 대피령을 내렸다. 어째서 저곳에 세아가 서 있는 걸까? 땅을 박차고 벽 뒤로 숨은 건 지훈이도 마찬가지였다. 급하게 도망친 지훈이가 신음소리를 내며 끙끙 앓는다.

"으아아.. 쟤가 왜 요깄냐?"

그렇게 말하면서 지훈은 자신의 왼쪽 손목과 앞 쪽의 세아를 번갈아 본다. 다행히 세아는 아직 우릴 보지 못 한듯 하다. 적어도 밥은 먹고 만나고 싶은데, 벌써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지훈에게 속삭인다.

"야! 왜 벌써 와 있냐?"

손목 시계가 잘못 됬나 싶어서 손으로 햇빛을 가려서 다시 보던 지훈이가 말을 더듬거리면서 당황한 눈치로 말한다.

"그..그러게? 분명히 9시에 오라고 문자 넣어놨는데?"

"문자? 무우운자?! 폰번호 까지 교환했냐 이 배은망덕한 놈아?"

"소..송구합니다! 딴 마음은 없었어! 가 아니라 어떻게 하지?"

그렇다. 갑작스레 진땀을 뻘뻘 흘리는 지훈이의 말대로, 세아를 기다리게 한 채 밥을 먹으러 가던가. 아니면 지금 즉시 세아를 알현하던가 둘 중 하나. 내 머리속엔 그 두가지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던 지훈이 여느때의 침착함과 교활함을 되찾고, 현란하게 천지인 문자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지훈이가 저렇게 눈빛이 변하며 즉시 행동을 개시 할 때는 항상 위급한 상황을 타개할 만한 해결책이 떠올랐을 때였다. 그런 지훈이를 어느새 기대감 반 구원감 반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

카톡! 소리가 울리고, 지훈의 입꼬리가 입에 걸릴 정도로 씨익 올라갔다. 저 미소는 일이 뜻대로 잘 풀렸을 때 짓는 미소다. 은근슬쩍 마음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지훈에게 묻는다.

"어떻게 된 거야?"

"아하하! 이거 볼래?"

지훈이가 사악하게 냐하하하 웃으면서 폰을 던진다. 반대편 기둥 뒤에 숨어있던 내가 그것을 매끄럽게 받아들고 화면을 본다. 세아와의 카톡 내용.

김지훈-내일 9시까지, 동현이 집 앞 9:00pm

오후9시면 나랑 게임을 한창 하고 있을 때 였다. 내가 감정을 추스리지 못 할 정도로 일부러 게임 방해를 하던(트롤짓)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결과적으론 이 메세지 하나가 내 목숨을 간접적으로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므로 불평불만을 들 생각은 일체 없다. 나는 다음 메세지로 향해 천천히 시선을 쭈욱 내렸다.

다음 날

김지훈-일어남? 8:35am

8시 35분이면 바로 조금 전, 지훈이 천지인을 두들기기 시작할 때였다. 그런데 다음 답장이 조금 의외였다.

이세아-아, 지금 나가는 중 8:36am

아니, 많이 의외였다. 세아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아파트 입구와 불과 50m 밖에 안 떨어진 곳에서 버젓이 서 있는데 이런 거짓말을 송신 것 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 한번 힐끔 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세아를 보고 지훈을 돌아보며 물었다.

"지금 나가는 중? 왜 이런 거짓말을 보낸 거지?"

그러자 지훈이 낄낄 기분나쁘게 웃기 시작하면서 말한다.

"으히히~ 이건 거의 100% 팩트인데, 아마도 9시까지 오라는 문자를 집에서 나오고 나서야 본 것 같아"

"아하~!"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었다. 즉, 세아는 지금 자신이 문자를 못 봤다는 부주의를 숨기기 위해, 저렇게 애매한 거리에서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8시까지 와서 지금가지 서 있을 세아가 약간 불쌍하기도 하지만 안 좋은 상황이 아니라 안심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안 좋은 상황이란, 9시까지 오라는 문자가 세아에게 수신되지 않은 경우다. 물론 현대같이 발달한 문명의 네트워크에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속으로 불안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두가지 선택지가 남아있다. 이대로 세아를 만나러 가느냐, 먹고 가느냐. 그런데 지훈이 마치 후자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맛있는데 암? 빨리 안내좀"

지훈이 그러자고 말하면 그렇게 하는 일이 옳을 때가 대부분이다. 약간 분하지만 그것이 사실인지라 나는 불쌍한 세아를 놔두고 근처 빵집에 지훈이를 끌고 들어간다. 물론 나올 때는 세아 쪽에서 보이지 않을 다른 입구로 나왔다. 먹고나서 이를 안 닦아도 최대한 입 냄새가 나지 않을, 그런 먹거리라면 역시 빵이 최고다. 빵집에서 소부루 빵을 뜯고도 약간 불안해서 껌을 씹는다.

약속장소로 가서 세아랑 만난 나는 그대로 얼어붙는다. 눈 앞의 그녀는 테니스 스커트에 터틀넥의 셔츠와 부드러워 보이는 하얀 재킷을 입고 있다. 옷 하나하나가 세아의 몸을 더욱 부각 시켜주고, 헤어스타일도 저번에 봤을 때 처럼 검은 생머리였다. 그리고 그 위에 약간 삐뚤어지게 올려져 있는 하얀 베레모, 연예인 전문 코디라도 달라 붙은 듯한 숨막히는 아름다움. 선선한 바람도 잠시 멈추고 구경할 듯한 귀여움이였다.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간신히 입을 열고 적당한 아침인사를 건다.

"여..여어? 일찍 왔네? 많이 기다렸지?"

정말 통상적인 대화 였다. 어디 드라마 대사에서나 나올 듯한 평범한 인사.

"아! 나도 여기 온지 얼마 안 됬어, 별로 안 기다렸어"

"푸풉!"

애써서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세아 옆에서 순간적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지훈을 걷어치는 나. 실은 이 곳에 온지 1시간이나 지난 걸 알고 있는 나로써는 세아의 말에 감동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즐거움은 덤이다. 감동과 재미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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