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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좋은놈 님의 서재입니다.

탑스타의 남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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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좋은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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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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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DUMMY

8화



웅성웅성-.


천일 예술고의 운동장이 오늘따라 북적이고 시끄러웠다.

원래 고등학교 운동장은 다 그런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할 수도 있으나,

실내 체육관도 있고 풋살장도 따로 있어서 운동장은 거의 여학생들의 산책로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남학생들도, 여학생들도 운동장으로 모두 쏟아져 나왔다.

특별히 무슨 이벤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이벤트라면 이벤트랄까.


“뭐, 뭐야. 저 둘이 왜 같이 나오는 건데?”

“둘이 사이 엄청 안 좋은 거 아니었어?”

“몰라. 이유성 말로는 이유나 운동을 시켜야 해서 강제로 끌고 나왔다던데?”


이유성이야 종종 풋살이나 농구를 즐겼다고 해도 이유나가 점심 시간에 산책을 위해 나온 건 처음이었다.


화창한 햇살.

그 빛에 반사되는 백옥 같은 피부.


“와······.”


칙칙했던 운동장이 한순간에 파라다이스로 변했다.


“이건 축복이야.”


남학생들이 바라보는 이유나는 어둠 속에 내리쬐는 빛이었다.


“맞아······. 정말 축복이야.”


여학생들에게는 이유성이 그러했다.

하늘이 내려 준 두 미남 미녀가 운동장을 걷고 있으니, 천일 예술고의 격이 한층 더 높이 상승한 것처럼 느껴졌다.


“선생님들 깜짝 놀라겠다. 무슨 운동회라도 하는 줄 알고.”

“아니. 고3 선배들까지 다 튀어 나왔네.”

“저 진귀한 광경을 놓칠 수 없던 거겠지.”


보통 점심 시간에는 자습을 하거나, 별도 동아리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유성과 이유나, 둘 다 모두 운동장에 나와 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너도 나도 그 두 사람을 보고자 몰려온 것이었다.


“이유나는 진짜 무슨 여왕님 같다.”

“걷는 모습도 도도해. 평소에 말도 잘 안 하신다며.”

“맞아. 가끔 우리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시는데, 그때마다 미쳐 버릴 것 같아.”


이유나는 유독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바들바들-.


이유나가 속으로는 잔뜩 떨면서 운동장을 걷고 있다는 것을.


‘왜,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지.’


평소에 운동장을 내려다 보면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냥 여학생 무리 몇몇이 떠들면서 빙빙 도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무슨 시장통처럼 인산인해를 이루며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다니.

차라리 사람은 많고 다들 각자 할 일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모를까.


그들은 모두 이유나와 이유성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유나는 슬슬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위아래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오늘 날씨 참 좋다. 산책하러 오기 잘했지?”

“······.”


그때 남동생을 보았다.

아주 덤덤한 얼굴이다.


본인도 지금 이 수많은 학생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무척 침착하다.

마치 주변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앞으로 자주 나오자. 걸으니까 얼마나 좋아.”


그래서인지 이유나의 빠르게 뛰던 심장도 차츰 안정을 되찾아갔다.

저렇게 태연한 동생을 보고 있다니 본인도 편안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따라 느끼는 거지만, 동생이 어른 같다.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다니.

새삼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근데 너희는 아까 축구 하러 간다더니 왜 왔냐?”

“응? 우, 우리도 오늘은 날씨 좋으니까 격렬하게 뛰는 것보다는 이렇게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하하.”


어느새 유성의 친구들이 옆에 살짝 따라 붙었다.


“어머. 유나야. 난 네가 산책 나오는 줄 몰랐어. 알았으면 같이 나오는 건데. 앞으로 우리랑 같이 나오자.”

“음. 나도 운동겸 누나랑 같이 나올 건데, 괜찮아?”

“헉! 너, 너도? 다, 당연히 되지!”

“무조건 나와 유성아!”

“유성아. 우, 우리도 껴주면 안 되겠니?”


그렇게 산책 크루가 생겼다.

마치 번개처럼 일처리가 파바박 되는 것을 보고 이유나는 정신이 없었지만, 옅은 미소가 나왔다.

친구들과 함께, 그냥 평범하게 운동장을 산책하고 싶다는 소원을 하나 이뤘기 때문이다.


찰칵- 찰칵-.


“꺄! 방금 여길 봤어!”

“아니야. 날 보셨거든!”


물론, ‘평범하게’라는 건 빼야 될 것 같다.



* * *



‘인기인의 삶이란······ 생각보다 빡세구나.’


솔직하게 말하겠다.

나는 내가 소시오패스 끼가 조금, 아니. 좀 많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마이웨이를 걷는 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그건 그저 내 허영심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난 어쩌면 자의식 과잉이 조금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 시선은 절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는데, 오늘은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도 무진장 신경이 쓰였다.

식은땀 나서 죽는 줄 알았네.


‘어느 정도 학생들이 나올 거는 예상했다만.’


나와 이유나가 같이 운동장을 걷고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 거라는 건 예상했던 바이다. 하지만 운동장을 가득 채울만큼의 인원이 몰릴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연예인들도 힘들겠어.’


거기다 주변에서 우리 두 사람 사진을 찍고, 우리 남매에 대해 떠들어대는데, 왜 연예인들이 정신병에 걸리는지 알 것 같달까.


상담할 땐 그리 공감을 잘하진 못했는데, 역지사지로 당해 보니 이게 엄청나게 부담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게 이유나의 병을 더 안 좋게 악화시켰던 것도 있겠지.’


하지만 이건 운명 같은 것이다.

평생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는 한, 이유나에게 눈총이 쏠리고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결국 이건 이유나를 사회와 완전히 단절시키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대중 앞에서 노래를 잘 부르기도 했으니까.’


라이브 영상을 봐도 목소리 한번 떠는 것 없이 정말 그 얼굴답게 천상의 목소리를 보여줬던 탑스타였다.


‘어쩌면 이게 더 나은 방법일지도 몰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이유나가 뒤로 물러나기 보다는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 내 역할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또 같이 산책을 나가자는 모임도 만들었다.


‘근데 이걸 거의 매일 해야 한단 말이지.’


오늘도 표정 관리하기가 꽤 빡셌는데, 이걸 매일 하는 것도 고역이겠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매일 운동장에 복작복작 학생들이 모이진 않을 것이다.

각자 삶이라는 게 있는데, 어떻게 매일 모일 수 있을까.


······근데 진짜 매일 이러면 어떡하지?


* * *



“어? 너희 학원 또 가야되지 않아?”

“응. 오늘 근데 집에 빨리 가야 돼서. 먼저 갈게. 내일 보자.”


원래는 학원을 더 가야 되지만, 오늘은 일찍 나왔다.

땡땡이 치려는 게 아니었다.

오늘은 무척 중요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빠······ 참 오랜만에 보지?”

“······.”


이유나의 표정이 굳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별로 좋은 기억이 없는지, 반기는 기색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불편해했다.


뭔가 학대를 해서가 아니다.

다행히 그런 흔적은 없었다.


그냥 사이가 서먹하기에 이러는 것이다.

워낙 자식들에게 무관심한 아빠이지 않던가.

이유나가 불편해 할만 하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드디어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이천호를 본다는 생각에 조금 들 떠 있었다.

사실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는 모습을 봤을 땐 무척 파워 넘치고 카리스마가 좔좔 흘렀다.

왜 그를 세계 최고의 마에스트로 중 하나로 뽑는지 알 것 같달까.

하지만 과연 그 남자가 자식들 앞에서는 어떨까.


그냥 차갑고 무관심한 아빠일까.

아마도 이게 맞을 것이다.


‘첫 인사를 어떻게 해야 되지?’


나는 촤르르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일단 중요한 건 이천호가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였다.


평소 이천호의 행동을 살펴봤을 때, 그는 성공에 미친 사람이었다.

자기 일에 자부심이 넘치고, 성공욕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내팽겨 치는 전형적인 하드 워커였다.


이게 특정 직업에서 정점에 달한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 중에 소시오 패스가 많다고 하지 않던가.

무조건 맞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틀린 것도 아니었다.


‘마에스트로 이천호는 그런 사람이라면, 아버지 이천호도 비슷하겠지.’


자식을 짐짝 취급할 수도 있고,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그럼 무척 난감하다.

이유나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일단 가족과의 관계부터 개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스타트를 내가 끊어야 한다.

나부터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바로 세운다면 이유나도 저절로 따라오게 될 것이다.

밉든 곱든, 결국 우리는 이제 가족이 아니던가.


‘그러니 이 귀중한 첫 만남은 포근하게 시작하는 것이 좋겠어.’


나는 그리 마음을 먹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가자, 누나.”


머뭇 거리고 있는 이유나를 끌고서 말이다.



* * *



“당신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아, 아니야. 아무것도.”


이천호는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자신의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지 보고 싶은 건 모든 아빠가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보고 싶지 않았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며, 어차피 그 두 사람도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남남처럼, 같은 집에 있어도 말 한 마디 나누지 않는, 그런 차가운 관계였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낮에 아들 이유성이 작곡한 악보를 보고 나서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 충격적인 곡의 구성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대체 그 아이는 어떻게 그런 곡을 쓸 수 있었던 것일까.

무슨 의도를 갖고 곡을 구성했으며, 그 곡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초반에 잔잔했다가 중반부터 격렬해지는 것을 보면 마치 파도 같은 인간의 감정과 정신 상태를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근데 오면 뭐라고 물어 보지?’


흠흠. 아들아. 네가 집에 없을 때 몰래 네 방을 뒤졌단다. 그래서 이 곡은 네가 쓴 게 맞니?

-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


거기다 딸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엄마를 잃고 나서부터 딸 아이는 예전 이천호가 그러했듯 무척 소심하고 말이 없는 아이가 되었다.


어릴 때 정신과에 데려가 보았으나, 의사들도 고치지 못했다.

그래도 PTSD에 발작을 일으키는 건 사라져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땐 이천호 본인도 아내를 잃고 충격에 휩싸여 있던 터라 아이에게 관심을 쏟지 못했다. 그저 일에 미쳐 살며 모든 것을 잊고 살았다.


그래. 이천호는 늘 아이들 앞에서 죄인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어려운 것일지도.


“다녀왔습니다.”


아들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성기가 지나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지, 목소리에서 늠름함이 느껴진다.


이천호는 큰 맘 먹고 현관 근처로 가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


자신을 보자마자 차갑게 고개를 돌리는 이유나였다.


“······.”


이유나도 말이 없고, 이천호도 말이 없었다.

누가 보면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줄 알겠다.


“아.”


그 뒤로 아들 녀석이 들어왔다.

곡에 대한 질문이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반갑다.

오랜만이구나.

별 일 없었니?


이 한 마디가 이토록 어려운 거였나.

그리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


아들이 성큼성큼 자기 앞으로 걸어 오는 것이 아닌가.


뭐지?

아빠라는 작자가 오랜만에 나타나서는 말 한 마디 없어서 화가 나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그냥 옆으로 쌩 지나가려고?

그것도 아니면 자기 혈기를 못 이겨서 반항을······.


와락-!


“!?”


하지만 아들의 행동은 상상도 못하던 것이었다.

갑자기 와서는 와락 안기는 것이 아닌가?


“아빠. 오랜만이네요. 어서 오세요.”


순간 이천호는 아들에게 묻고 싶었더 101가지가 넘는 질문들이 싹 사라졌다.

그냥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장처럼 변했다는 것이 옳으리라.


“······.”


어느새 아빠의 머리까지 키가 큰 아들.

하지만 여전히 느낌은 작고 소중했던 꼬꼬마 아들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감정은······ 충만하게 따뜻했다.

온 집안이 훈훈해질 정도로.


“······그래.”


이천호는 용기를 내어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는 정말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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