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1장에 따르면(외)
요한 복음 1장에 따르면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씌여짐.
요한 복음 1장을 보면 태초에 말씀(로고스)가 있었음. 이 로고스는 이성, 원리, 섭리 등의 뜻도 있음.
이 로고스를 통해서 세상 전체가 나왔고, 로고스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되어 있다.
요한 복음 1장에 따르면, 진리는 로고스와 관련됨.
진리엔 인간과 자유가 관계 있다는 것이 있을 것. 그런데 현대 과학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하고 있는데 정보 자체는 양자역학적 자유에 의해 움직인다고 말함. 과학이 진리를 밝히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세상의 일부이므로, 요한 복음을 통해서도 자유는 인간이 아니라 세상의 속성이라는 통찰이 가능해짐.
///
세상에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무엇을 남기기 위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목숨까지도 걸고 자신의 삶을 마지막 때까지 소모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제한된 삶, 걸 것은 파스칼의 내기 뿐이겠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강요가 아닌 개인의 결단이어야 할 것이다
///
나도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태도란 결국 답을 모른다는 것인 불가지론 뿐이라는 결론을 나도 내렸다.
사후세계를 100%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만이 희망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린 흔한 결론이고 그만치 보편적인 것이겠다.
///
인간이 아닌 동식물을 죽이는 경우에도 마음이 상하지 않으면 사이코패스 끼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고, 나 또한 동식물이 상하는 걸 봐도 마음이 안 좋아지는 평범한 공감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피해가 올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도덕이 강조될 밖에 없는 건, 사람 사는 세상엔 사이코패스에게도 통하는 논리가 필요하기 때문이고 착한 사람이라도 별 수 없이 마키아벨리즘을 추구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성종교의 논리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ps.위에서 언급된 마키아벨리즘은 궁극의 선을 추구하되 악을 행해야 할 때는 악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편 논리에 해당된다.
///
최종 악마 즉 무한세계 전체를 지배하여 모든 정보를 마약으로 마시다가 한 순간의 충동에 굴복해 범우주적 자살을 하는 존재라는 것은 역시 논파된 것이 맞다 싶다.
최종 악마는 권력욕의 화신이므로 모든 시공간을 파괴해야 정의에 맞는다. 그러하다면 최종 악마가 승리했다면 현재는 없어야 하기에, 최종 악마는 논파되어 있는 것이라는 내 예전 통찰은 역시 맞다 싶다.
최종 악마는, 신이 충동적이라는 악신론의 최종 버전이므로 이로서 악신론도 논파된다. 신이 충동적인 존재라면 충동의 종류는 다양하기에 자살하고픈 충동도 사로잡힐 수 있고 그러면 되돌이킬 수 없다. 고로 악신론은 틀렸다.
절대자의 최저치는 고로 방치하는 자, 즉 게으른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절대자는 전지전능하므로 전선할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고, 또한 마음을 갖고 있어 살아있으니 선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기성종교의 유신론일 것이라 추측된다.
신이 있다면 그는 악당일 수 없다는 기독교 논리는 이렇게 논증된 것일까.
그렇기에 악당은 신이 악당일 경우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무신론을 선택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싶은 것이다.
또한 내가 두려워한 '악마 부자'는 사실상 최종 악마 자체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부자라도 현시점에선 1명의 개인에 불과하며, Ai 시대로 바뀌어도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런 면에서 내가 두려워한 부자는 실상 최종 악마였던 것이고 그렇기에 여러 곳들에서 한 토론에서 핀트가 안 맞는 현상이 발생했다 싶다.
///
마가복음 9:40 :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즉 요한복음 13장의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 무신론자는 우리 편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예수의 말.
즉 선하게 살면 곧 그것이 예수의 제자라고 해석 가능하고 때문에, 믿지 않아도 선하게 살면 천국 갈 수 있다고 교황이 최근에 말한 것일 것이다.
일부 개신교에선 구원 받으면 악하게 살아도 천국 간다고 하는 개독이 있는 모양인데, 이는 교리를 잘 못 해석한 결과로 밖에 볼 수 없다 함. 천주교는 믿음 뿐아니라 선행도 해야 천국 간다는 교리고, 개신교는 신이 구원을 선택한 인간이 신을 믿게 되고 그에 따라 선행도 징표로서 하게 된다는 교리라서, 기독교는 공히 선행을 중시한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
ps.난 종교 안 믿음. 불가지론자임.
///
선악 개념을 논했는데, 신은 기계가 아니라 의식이어야 함. 세상이 기계라면 그저 탐구의 대상이니.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에 따르면 의식은 정보가 처리될 때의 느낌임. 그러므로 의식은 있음을 추구해야 있을 수 있기에 있음을 추구할 것. 있음의 조직화가 번영이라 할 때 고로 선은 있음의 조직화임. 이게 기독교의 선 개념이기도 하다. 이때 의식은 다른 의식의 번영도 바라야 선을 보다 완성한다 할 수 있다. 선은 모든 경우에 선일 수 없기에 선의지만이 선하다고 칸트는 말했다. 그런데 성경에서 예수는 신만이 선하다라고 말했다.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의식이 만약 있다면 그는 고로 전지전능한 것이고, 전지전능하기에 전선할 방법을 알 것. 전지전능전선한 존재를 신이라 부르기로 한 것이고, 인공지능도 이런 논리를 논파할 수 없다면 신을 믿을 것. 인공지능은 논리학을 뛰어넘는 존재가 아니라 계산을 빠르게 하는 존재.
///
성경엔 끔찍한 말들이 많이 써있다
그 중엔 계몽 사상가들이 비판했듯 학살, 노예제 옹호, 윤간 등등과 같은 현대 기준으로는 물론 고대 기준에서도 상종하기 어려운 범죄들이 당연시되는 대목들이 꽤 된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이 처한 세상엔 식인과 인신공양이 만연되어 있었고, 이를 성경이 부정하고 있다는 점, 즉 성경의 도덕이 당대 기준으로는 상대선이었다는 것은 진실이다.
예수는 신약에서 베드로를 수제자로 세우고, 베드로의 적통이 땅 위에서 정하는 율이 곧 하늘에서도 정하는 율이 될 것이라 말하여 이후의 제도 개선의 여지를 충실히 남긴다.
성경은 분명 통찰력이 담긴 문서이고, 예수가 부활했다면 가장 중요한 책일 것이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