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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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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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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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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329화 - 황제와 제왕의 차이, 그 어긋남의 본질(4)

DUMMY

“대체 제왕이 뭐기에, 뭐기에 그런단 말이냐.”


그렇게 이레가 지났다.


그런 관우가 유비의 품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유비의 주변을 지키는 병력에 손실이 제법 커져 있었다.


제아무리 장비가 남아있었다고 한들, 연달아 이어지는 협공과 같이 또 방비할 틈도 없이 지속되는 습격에는 조금씩이나마 피해가 생겨났고, 그것이 쌓여온 작금에 이르러서야 거진 일천에 가까운 이들이 도륙을 당한 뒤였다.


“그게 뭐가 중요하오? 지금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그러나 그럼에도 그리 돌아온 관우와 제왕을 운운하는 유비 앞에 장비가 떳떳한 것은 그 또한 가히 주변을 놀라게 할 실력으로 추격하는 단양병들을 거진 도륙하듯 막아냈기 때문이다.


이를 반증하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춤엔 이미 여러 개의 수급이 달려있었다.


조금 전까지 전투를 치르고 온 그가 당당히 제 형인 관우를 위로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으니, 관우 또한 그쪽으로 시선이 가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나저나 고생 많으셨수? 용케 협상까지 하시고.”


“어디 너만 하겠더냐? 허리춤이 무거웠을 텐데 수고했다.”


“수고는 무슨, 되려 골치요. 아주 내가 없다 하면 들이치고 있다 하면 꽁지를 빼니, 원. 무슨 승냥이 새끼들도 아니고. 그것도 쎈 놈들이 그리 교활하니, 죽어 나가는 놈들 다 챙길 수도 없고, 쯧.”


일찍이 관우가 날뛸 적에 몸이 달았던 이들이 그 격정된 사기를 통해 복수를 운운하며 유비군을 습격할 당시 눈이 뒤집힌 장비가 뛰어들어 일대를 정리하면서 구원했는데, 그 때문에 이제는 추격하는 저들의 기습 또한 거진 장비가 없는 쪽만을 집요하게 노리는 형국으로 변모했다.


“제왕이라? 제왕. 황제도 아닌, 제왕이라.......”


그러나 정작 천하를 향한 자신의 시선이, 동한의 황제를 저버린 변절자와 같은 이들이 그리 최선을 다해 자신들을 추격한 끝내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는 유비는 정작 고뇌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심마에 빠저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 연신 이를 놓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제왕이라는 게 뭐 그리 중하오? 아닌 말로, 한조에 반한 변절자 놈들은 바로 그 놈들이 아니오? 설사 작금의 동한이 그래, 조금, 아니지. 어, 아주 심하게 많이 썩었을지언정 이를 바로잡아보자고, 고쳐보자고 세상에 나온 게 우리 삼형제 아니었소?”


그 곁에서 이를 답답히 여기는 장비의 떳떳한 한소리가 이어졌지만, 이는 말 그대로 구린 구석이 덜한 장비이기에 가능할 법한 소리였으니 그저 말없이 관우와 눈을 마주친 유비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함께 황제가 기거한다는 막사를 향해 천천히 그 걸음을 내딛었다.


그 끝에 그나마 몇 되지 않는 나인과 내관을 비롯한 환관과 위사가 자리한 것을 알았을 때, 관우는 어째 그 숫자가 이전과는 제법 차이가 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 호종하는 이들의 수가 줄어든 것처럼 보입니다만.......”


“쓸데없는 군입이라 많이 줄이고 죽였지. 거추장스러워서, 일부러 추격 중에 떨어트리기도 하고, 따로 죽이기도 하고, 세작을 비롯한 척후와 간세까지 엮고 더 나아가 도적들까지 불러들여 야밤에 교전까지 벌였어.”


“하긴 그렇기에 전장에서 그리 원 없이 소리칠 수 있었겠지요. 일찍이 계획을 세워두셨으니 말입니다.”


“대신 이쪽도 많이 죽었다고. 애먼 병사들서부터 원군으로 출병하는 와중에 얻어낸 귀한 임협들까지 제법 많은 이들의 노골적인 희생 속에 강제적으로 입을 다물어야 했음이야.”


일찍이 관우가 유비의 명에 의해 수십 기의 호위와 더불어 희생을 자처하며 뛰쳐나갔을 적에도 전장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친 유비와 자신의 대화는 실로 불충한 것에 가까웠다.


아닌 말로 소제의 눈이요, 귀가 되는 이들이 남아있는 마당에 스스럼없이 하늘에 오른다느니 용이니 구름이니 계승이니 하는 진심 어린 헛소리를 심상치 않게 했으니, 이것이 소제의 귀에 들어가면 과연 그가 가만히 있기는 할까?


유비 또한 이를 알기에 관우를 남겨두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제법 많이 살아남은 소제 유변의 심복들을 정리해 온 것이다.


진류왕의 세력이 자리한 개봉을 비롯한 연주 인근에 다다를수록 아직 정리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시대상이, 치안이 무너진 사회상이 만들어낸 적당들이요, 잔당들이 바로 산적, 홍건적, 황건적 등을 비롯한 오만 무리의 도적이다.


기존의 지배계층에 대한 반발과 반란을 비롯한 민란을 통해 일어난 이들을 활용해서 황제를 미끼 삼아, 자신의 몸값을 미끼 삼아, 희생시킬 수 있는 휘하의 수하들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습격을 해온 도적들을 정리하고 위치 발각과 정보 유출을 핑계로 관련된 내부자들을, 특히 소제의 눈이 되고 귀가 될 충성스러운 이들을 거진 모조리 정리하였으니, 그 대담한 일 처리에 안도하면서도 걱정스러운 우려를 표하는 관우였다.


“익덕이 이를 알고 있소?”


“놈이라고 바보는 아닌데, 과연 이를 알까? 모를까?”


“언제까지 아우도 이를 모르고 있을 순 없지 않소?”


“글쎄? 내가 보기엔 알면서도 이를 방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러나 그러한 관우의 우려와 별개로 이제야 마음에 드는 일이 하나 생겼다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히죽이며 웃는 유비였다.


“한데 왜 조금 전에는 익덕의 대답을 피한 채, 자리를 옮겼소?”


“아우를 어찌 다뤄야 하는지 알았으니까.”


“..........”


“저놈이라고 아예 현실을 모르는 놈은 아니야. 그렇다고 온전히 나를 못 바꾸는 것도 알지. 그 와중에 나는 내가 저지르는 일을 뻔뻔하게 즐기지만 않으면 돼. 무슨 일을 저지르건 주변과 타인의 반발이 되도록 없는 측면에서 무언가를 하면 돼. 반성하는 척, 대의를 지키는 척하면 돼. 어떻게든 옳은 쪽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면 설사 그 방법이 구려도, 결과가 좋다면, 그 방향성이 좋다면 상관이 없다는 거지.”


“대형.”


“그래,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다. 한조가 썩었고 현 황제가 문제가 있으며 그 행보가 그릇되었으니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내가 우리 형제들이 삐딱한 쪽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어떻게든 제어하고 있다. 그들도 닥친 현실에 아예 눈을 돌린 채, 이전처럼 풀어진 채 살아가지 않는다고 하는 어리숙하면서도 그럴듯한 판단 하나 정도면 충분해. 그게 설령 우리의 대의, 그 자체가 상징하는 황제의 주변을 정리하고 그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이라고 해도, 끝내 그 모든 것을 정리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래도 이는......”


“그러면 뭐? 아닌 말로 이전처럼 뻔뻔하고 낯짝 두껍게 다닐까? 한조의 충신이요, 유씨 한실의 피를 잇는 황족이라 해놓고, 대놓고 그 유씨 한실의 상징이요, 한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황상의 눈과 귀를 가리겠다고 그 수족들 불러다가 대놓고 죽여대면 과연 우리 익덕. 아니, 우리 장 아우가 가만히 있을까?”


“........”


“분명 아까의 상황에서 장 아우는 자신이 격퇴한 습격 외에 밤이고 낮이고 달려드는 도적들도 모자라 관련자, 간세 등을 참살하는 내부정리에 대한 일들마저 아우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어. 애초에 마음에 안 들면 나뿐만 아니라 아우에게도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 게 바로 장 아우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걸고 넘어져서 나 홀로 또 부끄럽게 상황을 모르는 아우의 앞에서 큰형이자 대형인 내 욕을 해댔겠지. 내 문제를 꼬집으면서 이건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말이야.”


“형님.......”


“흐흐흐, 근데 안 했어. 내부에서 간세라고 몰아세워 급작스레 처형할 당시에도 그랬어. 되려 병사들 규율 잡는다면서 더 엄하게 훈련을 시킬 뿐, 이쪽이 내린 판단에 대해 방관하며 이를 철저히 외면했지.”


장비가 변했다.


이는 이를 듣고 있는 관우에게도 또 이를 직접 이야기하는 유비에게도 실로 복잡한 심사와 여러 감정이 혼재되는 동요를 선사했다.


하지만 그래서였을까?


“이제 조금 있으면 아우가 우리의 품으로 안겨 올 거야. 우리 형제들과 같이 우리의 더러움을 공유할 거야. 그래, 이제 진정한 형제가 되는 거야. 죽을 때까지 그 비밀을 함구해야 하며 하늘과 땅을 또 이 땅에 백성을 속여야 하니, 필경 한날한시에 살고 죽어야 그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음을 알게 되겠지. 그 맹세가 우리를 향한 의구심을 허락지 않은 빛의 장막이 됨을, 저들의 우리의 실체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우리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게 만드는 광명(光明)임을 알게 되겠지. 일평생을 그 거짓된 위선자요, 위군자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늘 그리 불편함 속에 살아 숨 쉬며 거북함을 느끼다 못해, 이내 자기 자신마저 속여 철저히 속이다 못해, 그 자아마저 무너트려 완전한 이 시대의 충신으로, 변모하게 될 거야. 그 모든 것은 충의와 의기를 통한 유씨 한조의 부활이라는 우리의 숭고한 대업으로, 일생일대의 증명으로. 근데....., 하아. 왜 이렇게 슬프지?”


제 입으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니, 되려 허망하긴 하지만 그만큼 기쁘다는 듯 어떻게든 즐겁다는 듯 그 목소리를 애써 높여 보이는 유비였으나 정작 그러한 그의 얼굴 위로 흐르는 것은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줄기의 눈물이었다.


“크으......, 먼 미래에 세월이 흘러도, 우리를 똑바로 바라본 이들은 세간에 지탄을 받게 될 거야.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될 거야. 그 누구도 우리를 오롯이, 올곧이, 제대로 보지 못해. 우리가 만들어낸 껍데기와 위선의 가면에 눈이 부셔서라도 그 속에 뭐가 자리하고 있는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가면을 벗기고 손을 뻗을 생각조차 하지도 못해. 설령 그러한 이들이 생긴다면 우리의 추종자들이 이를 막을 거야. 그 의구심과 그에 따른 불순한 행동을 허락지 않겠지. 우리는 거짓된 이들의 상징이요, 배덕자들의 추앙할 수 있는 믿음의 증표이며 우매한 이들의 위에 군림하는 질서요, 규범이야. 먼 후대의 군신(君臣)은 그 충정과 의기에 취해 우리를 놓지 못하고, 그 순응의 가르침은 유학의 교화와 맞물려 상명하복의 기조와 풍토를 낳는다. 우리가 싸지른 똥은 그 무엇보다 찬란하게 빛나며 그 똥이 만들어낼 똥내는 널리 퍼지면 퍼질수록 향기로운 향취를 가지겠지.”


“그건 과한 믿음이 아니시오?”


“이봐, 관 아우. 신이 된다며? 하늘의 의지마저 베어낼 천신이 된다며? 군신이 된다며?”


“그건.......”


“내가 어디서 확신을 가졌을까? 돗자리 팔던 저잣거리에서? 아니면 집안 등골 빨아먹으며 비싼 가르침 받았던 스승의 문하에서? 그도 아니면 천하에 의기를 바로 세운다고 의용병들을 모아 일장 연설을 펼쳤던 연단에서? 그조차도 아니면 광신자도 변해버린 황건적 놈들 도륙하면서? 그래, 그것도 아니면 나를 왕이라 떠받드는 저 하동에서 기적을 행하면서? 그조차도 아니면 원소에게 깨진 뒤, 청주 인근의 바닷가에 정착했을 때? 그도 아니면, 합종군에 합류해서 그것도 스승님이 돌아가신 자리에서 그분이 남긴 유산을 뒤로 한 채, 수십만의 백성이 보는 앞에서 그분과 내가 사제(師弟)지간이었음을 밝히며 이 유 현덕의 이름과 의기로 포장한 야망을 팔아먹었을 때?”


거진 그 눈이 벌게진 채 광증이 돋아난 듯 보이는 유비는 아직 물기를 닦아내지 않는 눈물 젖은 눈빛으로 관우를 노려보다 웃었다.


“히. 스승님 밑에서 가르침을 받을 때, 나는 강태공의 실체를 알고 놀랐지. 이뿐이랴? 다른 성현들의 실체를 알고 놀라워했지. 족혈을 품은 집안의 장지(葬地)에 찾아가 죽은 이의 친족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의외로 그 평이 갈리는 게 많은데, 사적인 원한뿐 아니라 사람답지 못한 풍모를 내비친 이들이 많은데 막상 또 그와 직접적으로 얽히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좋은 사람이다 유야무야 넘기고 추앙하기 바쁘지. 그 사람이 뭘 했는지조차 모르면서 그 속에 담긴 실체와 일화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저 일말의 유명세에 찾아와서는 사소한 것 하나 찾아 칭찬하고 추억하며 기억하기 좋은 사람, 죽어서도 좋은 사람 하나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내기에 바빠. 그런 것들이 죽어 세월이 지나 숭배받는 것이 세상이야. 설사 그에 직접적으로 얽혀 악감정이 있는 이들조차 당장에 집안 망신일까, 주변에 그 명성에 의해 모여든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을까 제 입으로 제대로 된 진실 하나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이들 투성이야. 뭐, 생전 고인과 얽힌 이들 중에 매양 나쁜 기억만 있기도 힘드니 소수의 관련자들의 증언과 일화 정도면 아주 완전한 선인 하나 만들어지는 게지. 그 정신을 기억한다는 핑계로.”


그 웃음은 실로 쓸쓸하면서도 기쁜 양면적인 감정을 포용하고 있었으니, 그래. 자신의 의형인 유비는 필경 본질을 찾지 않고 제 필요하고 편한 것만을 좇는 현실의 허상을 깨달은 것은 아니었을까?


“아우, 세상은 유명해지면 아무리 결손과 과오를 품은 인간이어도 품어주는 괴이한 습속이 있고 끝내 죽음으로 그 명을 다하면 추앙하다 못해 숭배하는 경향이 있지. 그 본질이, 실체가 중요한 게 아니야. 유명세가 껍데기가, 최소한도 현실을 비롯해 후대가 필요해 가져다 쓸 가치가, 선례가 그에 따른 유명세의 포장만 있다면야 좋은 사람 되는 거야 아무런 문제도 아니라고. 세상에 나와 활약할수록 이를 확신했지. 딴에 우리에 반하거나 객관적으로 본다, 그 평을 미루겠다 하는 이들은 상관없어. 그저 우리를 좋게 기억하는 소수의 광인, 그에 따른 다수의 동의와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만 있다면, 죽은 뒤의 포장과 그에 따른 기억이야 아주 아름다운 포장이 되는 게지. 그것이 설령 나 홀로 오롯이 빛나며,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다 못해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는 일이 될지언정, 해서 나라가 무너지고 백성이 피폐해질지언정, 그 올바름의 의기를 실천한 나는, 모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나는 만대의 성군이자 성신이 된다.”


“해서 어디까지 가실 생각이요?


“내 본질이 이러한 위선 덩어리라는 사실을 내 스스로 잊을 때까지. 제가 뱉은 말 한마디가 제 구린 본질을 가리키고 들쑤시는 비수가 되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말하며 행동하고 설치겠지. 그럼에도 상관없음이야. 우리의 실체와 본질을 아는 이들이 대저 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나? 그리고 그들이 이를 깨닫기까지 대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나? 우리조차도 그때쯤이면 당시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떠한 상태로, 나를 어찌 자각했는지 크게 생각이 나지 않겠지. 세상은 필요에 의해 사람을 올리고 내세우며 내리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빙자한 내적 충족을 위해 살겠지. 그릇되고 허황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이뤄냈을 뿐. 그 쓰임과 하등 관련이 없는 본질과 진실은 저 멀리 버려두고,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이 설령 멸세가 된다고 한들, 그조차도 먼 훗날의 이들에겐 자신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세상의 이야기일 뿐. 고로 우리가 조심할 것은 우리 대의 이들이자 그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올 이야기야. 그놈들이 깨이지만 않으면, 그걸로 끝이고 그걸로 족해. 그리고 뭐, 어디 이 세상에 구린 놈이 나 하나여야지? 어? 하하하하!”


“우리가 만들어갈 이야기는 결국 허자(虛字)요.”


“그래, 허나 이를 믿고 품으며 동경하는 이들 앞에 우리는 실재하겠지. 설령 우리의 선업에 의해 갈려 나간 죽음조차 대의를 위한 희생이요, 인의를 비롯한 옳음의 실천을 위한 결과물이 될 테니까.”


저벅저벅-


그럼에도 유비는 앞으로 나아갔다. 이에 관우 또한 그러한 제 의형을 쫓아 황제가 기거하는 막사의 코앞까지 당도했다.


“오, 오셨습니까?”


“황상께서는?”


“탕제를 드시고 잠에 드셨습니다.”


“........”


펄럭-


“흐음, 확실히.”


그리고 그 끝에서 자신의 앞에 벌벌 떠는 나인의 보고조차 믿지 않는 유비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소제 유변이 기거하는 막사의 천막을 열었고, 그 속에서 죽은 듯 누워있는 유변을 확인한 뒤에야 몸을 돌렸으니 그 뒤를 따르는 관우가 의문을 표한 것은 바로 그다음의 일이었다.


“탕제라, 이제는 아예 그 정신이 온전하게 두지 않을 생각이요?”


“기혈을 늘어뜨려 잠이 오게 만드는 약이야, 약간의 앵속을 섞었으니 되려 움직이지 않을 때 피로와 더불어 계속 잠에 집착하겠지.”


“..........”


“왜?”


“적장의 얼굴이 떠올라서. 놈이 했던 말이 떠올라서 말이요.”


“빌어먹을, 또 제왕 어쩌고 그 소리 하려고?”


“송구하게 되었소. 형님을 살리기 위해 은연중에 이를 밝혔으니.”


“됐어, 대신이라곤 뭣하지만 직접적으로 이쪽의 목을 노리지 않는다는 보증은 받았으니, 뭐. 나쁠 일은 아니지. 그리고 우리가 뭐, 선은 아니잖아?”


결국 이제와 유비와 관우 또한 얼추 장패의 입에서 나온 실망감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 또한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야기가 되어야 할 터였다.


“우리는 위선이요.”


“그래, 우리는 위선이지. 그래도, 이 짓도 그리 멀지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이요?”


“조금 있으면 진류왕의 영역이다.”


“...........!”


“백성들은 한조를 비롯한 지배계급에 반기를 들었고, 그 와중에 노예를 해방 중인 맹주는 돈을 뿌려 악명을 지워주는 대가로 사, 호족을 비롯한 지방관들, 위정자에 속하는 지배계급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 와중에 아직도 홍건적들의 잔당은 잘 나가고 있지. 황건적은 일찍이 조조가 토벌하다 못해 그 수하로 삼고 병력을 불렸으니 이제 곧 수십 만의 병력과 함께 놈이 돌아온다.”


“형님.......”


“동한은 망했고, 얼추 수습은 해야겠는데, 머리에 두건 두른 도적들을 포함한 백성들은 한조를 반기지 않아. 그 와중에 빠르게 그 악명을 정리해나가는 위정자들은 이미 벌써 한조와 거리를 두고 그 한조가 만들어낸 악습과 손을 씻고 있지. 그러면 여기선 위정자들을 앞세운 맹주 장막이 유리할까? 아니면 군부와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조조가 유리할까? 아, 그전에 우리의 진류왕께서는 과연 자신의 형님을 자신이 다스리는 세력 안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나? 황명에 의해 내려앉은 인사이자, 이 땅에서 유일무이하게 한조와 동한을 직접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적통을 지닌 그 진류왕의 권력과 입지는 과연 우리를 받아줄 정도로 공고하긴 한가?”


각기 서로 다른 것을 쥐고 있는 권력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앞에 두고 유비는 연신 떨리는 목소리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연주의 현실은 연달아 읊었다.


그 셋은 섞여 하나가 될 수도, 셋이 연립할 수도, 둘이 하나를 잡아먹거나 둘 중 하나가 남은 하나를 잡아먹고 서로 간에 자웅을 겨루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 하지만 그래서 택한 연주행이지. 고로 그 소용돌이 속 틈바구니에 우리는 시체를 밀어 넣을지 아니면 살아있는 채로 넘겨줄지를 잘 선택해야지. 그리고 어쩌면 그간 우리가 궁금했던 황제와 제왕의 차이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래서였을까?


“가서 돗자리나 팔자. 작금의 이 관동천하에 용이 새겨진 유일무이한 돗자리. 그게 저 서역에 전설 같은 살아있는 양탄자일지 아니면 우리 관 운장과 같이 나를 하늘 높이 올려줄 구름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것이 이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군두(群頭)의 자리를 선사할 것은 확실해. 하긴 그래도 용이 남긴 유산이니 그래,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지.”


유비는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옛날 옛적 그 모습으로 돌아갔다.


“좋아, 이제부터 내가 팔 돗자리의 이름은 군두운(群頭雲)이다. 집단이자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게 만들어주는 구름. 저 하늘 가장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구름. 나는 운장이 있으니까, 그 조각은 내가 품되 온전한 내 것은 아니니까, 너도 나도 하늘에 오를 수 있게, 조각내고 또 조각내서 가장 비싼 값을 받고 팔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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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339화 - 두 번째, 세 번째 세력의 결집 22.01.12 318 6 16쪽
339 338화 - 첫 번째 세력의 결집 +2 22.01.07 342 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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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335화 – 민초는, 백성은 어떠한 이를 거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갖는다 21.12.31 374 12 24쪽
335 334화 – 연주에서 불어닥친 바람은 다시금 예주의 화마를, 풍랑을 낳는다 +2 21.12.30 336 8 29쪽
334 333화 – 유비가 펼친 거대한 돗자리의 펄럭임은 연주 땅에 동요의 바람을 일으켰다(3) 21.12.28 349 10 19쪽
333 332화 – 봉선(封禪), 욱(昱) 그리고 의천(倚天) +2 21.12.23 369 11 16쪽
332 331화 – 유비가 펼친 거대한 돗자리의 펄럭임은 연주 땅에 동요의 바람을 일으켰다(2) 21.12.22 352 10 32쪽
331 330화 – 유비가 펼친 거대한 돗자리의 펄럭임은 연주 땅에 동요의 바람을 일으켰다(1) +2 21.12.21 360 11 21쪽
» 329화 - 황제와 제왕의 차이, 그 어긋남의 본질(4) +2 21.12.18 430 13 20쪽
329 328화 – 황제와 제왕의 차이, 그 어긋남의 본질(3) +4 21.12.17 432 14 18쪽
328 327화 – 그러나 그 관대함에도 필수적인 것이 바로 마케팅이다 +2 21.12.03 475 10 21쪽
327 326화 – 그래서 세상을 놀라게 할 정도로 관대해지기로 했다 +2 21.12.03 383 11 20쪽
326 325화 – 진왕 포홍은 관대한 제국을 꿈꾼다 +4 21.12.01 465 16 18쪽
325 324화 – 진왕 포홍은 소패왕을 앞세운 손오의 건국을 허락했다 21.11.30 417 9 19쪽
324 323화 – 황제와 제왕의 차이, 그 어긋남의 본질(2) +2 21.11.28 389 11 16쪽
323 322화 - 대나무가 연꽃을 싫어하는 이유(2) 21.11.17 379 9 26쪽
322 321화 – 대나무가 연꽃을 싫어하는 이유(1) +2 21.11.17 363 10 30쪽
321 320화 – 그가 대나무를 싫어하는 이유 +2 21.11.12 392 13 14쪽
320 319화 - 황제와 제왕의 차이, 그 어긋남의 본질(1) 21.11.11 367 10 15쪽
319 318화 – 붉은 황제가 도망치자 검은 제왕이 자리했다 21.11.09 387 9 15쪽
318 317화 – 천하대전의 종장, 난세의 효융 저리 가라 할 전국의 영웅이 싸지른 똥 +2 21.11.06 398 12 18쪽
317 316화 – 천하대전의 종장, 각자도생의 끝 21.11.03 366 11 17쪽
316 315화 – 천하대전의 종장, 용의 퇴장과 기린아의 도래 +8 21.10.30 432 11 16쪽
315 314화 – 붉은 용을 죽여라(2) +2 21.10.30 349 1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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