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터즈 제14화
"............."
[세아] "............."
예상했던 대로..
침묵의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젠 뭐 익숙해져서 그런가 낯설고 초조한 그런 것도 없다.
아니 생각해 보면..
얘랑은 그냥 이게 더 편한 거 같기도 하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오길 기다리며..
옆에 있던 담배를 꺼내 들어 불을 붙였다.
[세아] "피지 마세요.."
.............
아.. 애들 오늘 왜 이래..
빨리들 좀 얘기하던가..
꼭 불 다 붙여 놓으면 이렇게 난리들이네..
"너도 담배 연기 싫으냐?"
[세아] "네.."
그러면서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연기를 날려 버리는 그녀였다.
"............."
다시 한번.. 피지도 않은 담배를 버려야 하는 나는..
아까 지연이의 충고대로..
얌전히 꽁초를 쓰레기통에 넣고 자리로 돌아왔다.
[세아] "선배님"
한참을 아무 말 없던 세아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어.."
[세아] "아까 동현이가 뭐라고 했어요?"
이.. 이런..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을 해버리는 그녀..
"어? 뭘?"
[세아] "재철이한테 들었어요. 저 때문에 동현이한테 그러셨다면서요.."
"그.. 그래? 아..아닌데.."
동현이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간..
꽤나 깊은 상처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난 세아가 믿든 안 믿든 일단 거짓말로 우겨보기로 했다.
[세아] "그냥 말씀해 주세요. 괜찮으니까요.."
"하하.. 아냐 그런 거.. 재철이가 뭔 헛소리를 한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동현이 그놈이 하도 말을 재수 없게 해서.."
[세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 이었냐구요.."
"어? 어.. 그.. 그게.. 뭐라더라? 나보고 성질이 더럽다느니.. 선배로서 별 볼일 없다느니.. 뭐.. 그런 거.. 하하"
.............
나 지금 뭐하는 거냐..
세아 얘기 감추려고..
내 이미지들을 갉아먹고 있잖아.. 젠장..
[세아] "............."
"야.. 그리고 생각을 해봐. 내가 왜 니 얘기 땜에 그런 미친 짓을 하겠냐.. 애인 같은 것도 아닌데 말야.. 하하.."
[세아] ".............."
아무런 대꾸 없이 듣고만 있는 그녀..
어째.. 안 믿는다는 표정이네..
"아마.. 재철이 그놈이.. 내가 술 마시면서 잠깐 니 얘기.. 그.. 그러니까 낮에 고스톱 치고 뭐 그런 얘기 했던 것 땜에.. 그런 소리 한 모양이야.. 하하"
[세아] "알았어요.."
"어?"
[세아] "알았다구요. 그만해요 이제..."
".............."
믿는단 거야 안 믿는단 거야..
[세아] "그나저나 수습 좀 해봐요.."
"어? 뭘?"
[세아] "애들이.. 저랑 선배님이랑 사귀는 줄 알아요.."
"뭐? 지.. 진짜?"
[세아] "네.. 아까 누워있는데 애들끼리 수근덕 대는 거 들었어요."
"에이.. 설마.. 우리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세아] "솔직히.. 어제 오늘 붙어 있었던 데다가 재철이까지 그렇게 얘기해 버렸으니 애들 입장에선 오해 할 만도 하죠 뭐.."
...............
"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런 것들 가지고 사귄다 만다 오해 하는 건 좀 오버 같은데.."
[세아] "글쎄요.. 저 뒤에 애들도 그렇게 생각 할런지 모르겠네요.."
잉? 그녀의 뜬금없는 얘기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헉.. 뭐..뭐야 쟤들..
멀리 여자애들 방문 앞쪽엔..
분명 세 명의 여자애들이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러던 중에 내가 고개 돌린 걸 눈치챈 것인지..
후다닥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
[세아] "저 이런 문제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까.. 선배님이 알아서 해결하세요."
.............
이.. 이런 무책임한..
"야.. 이걸 왜 나 혼자 해결해? 당사자는 너랑 나 둘인데.."
[세아] "선배님이 괜한 소리 하셔 가지고 이렇게 된 거잖아요.."
"뭔 소리야.. 난 그런 소리 한 적 없다니까.. 어우.. 재철이 그놈을 그냥.."
[세아] "아.. 몰라요. 선배님이 재철이 불러서 얘기를 하시던가 애들 모아서 얘기해 보시던가.. 알아서 하세요.."
"우씨.. 나도 몰라. 귀찮아.."
[세아] "그래요 그럼.. 그냥 다들 오해하게 놔두던 가요.."
"그래뭐.. 그냥 놔두자. 어차피 너랑 나랑 이제 얼굴 볼 일도 없을 테니까.. 시간 지나면 알아서 해결 될 테지.."
...........
잠깐.. 이거 뭔가 말 실수 한 거 같은데..
[세아] ".............."
"아.. 그건 아닌가?"
어설프게 나마 수습을 해보려는 나..
[세아] "됐어요. 저 들어 갈래요.."
하지만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버린 그녀였다.
...........
"야.."
방으로 향하려 등을 돌린 그녀를.. 급히 불러 세웠다.
[세아] ".............."
걸음을 옮기려다 멈칫한 그녀..
하지만 다시 방 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야.. 한세아.."
[세아] "왜요?"
다시 멈추곤 쏘아 붙이듯 차가운 말투로 대답을 해오는 그녀..
...........
"너랑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세아] "무슨 뜻이에요?"
"아니 뭐.. 앞으로 안볼 사이도 아니고.. 이왕이면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말야.."
[세아] "방금 얼굴 볼 일 없을 거라면서요?"
..............
역시 삐졌던 거였군.. 이런..
"에이.. 그거야 그냥 나 혼자 수습하기 귀찮아서 나온 헛소리였던 거고.."
[세아] "..........."
"암튼 방법 좀 없는 거냐? 너랑 친해질 수 있는.."
[세아] "저 그런 거 잘 몰라요.."
"..........."
[세아] "근데 우리 이 정도면.. 친해진 거 아니에요?"
"어?"
[세아] "전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 했는데.."
".........."
[세아] "참고로.. 저 이렇게 남자랑 많이 얘기한 것도.. 선배님이 처음이에요.."
...........
"그.. 그래?"
그녀의 뜻하지 않은 이야기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나..
[세아] "네.. 이 정도면 만족하세요?"
"어? 어..."
결국.. 어정쩡한 대답 만으로 대화를 마쳐야만 했다.
[세아] "그럼 들어 갈께요. 피곤해요.."
"어.. 그.. 그래라.."
전혀 예상도 못한 얘기들만 쭉 늘어놓고는..
등을 돌려 방으로 향하는 그녀..
그리고 난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어안이 벙벙한 채로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승철] "자.. 각자 앞에 있는 종이에 자기 이름 크게 써주시고.. 좌측으로 돌려주시면 됩니다."
엠티 마지막 날 오전..
모든 인원이 방에 모여 앉아..
롤링 페이퍼 (각자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지나갈 때마다 그 사람에 대해 평소에 하고 싶었던 한마디를 적어주는 놀이) 라는걸 하고 있다.
1학년 시절 엠티 때도 이런거 한번 하긴 했었던 거 같은데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
별로 좋은 말들이 없어서였나?
.............
그나저나 이번엔 1학년 때 보다 더 안 좋은 이야기들로만 적혀 있을 거 같은데..
벌써부터 걱정되네 이거..
[승철] "자.. 이제 종이를 좌측으로 넘기세요.."
승철이형의 시작을 알리는 멘트와 함께..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롤링 페이퍼..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녀석들의 이름이 적힌 페이퍼들이 내 앞에 놓여질 때마다.. 한숨으로만 일관할 수 밖에 없는 나였다.
뭘 알아야 쓰던가 할 꺼 아냐..
솔직히 몇 명은 이름도 잘 모르겠구만.. 이런..
그냥
*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나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야 -HS- *
라고 통일을 시켜버렸다.
그래도 너무 성의 없는 멘트만 써서는 안 될 거 같아서
문구 아래에 "Good Luck" 이라는 격려의 멘트까지 덧붙여 주었다.
헛.. 미란이의 페이퍼가 내 앞에 놓여졌다.
그렇다는 건.. 다음은 은주.. 그 다음 건 세아란 얘기군..
일단 미란이에겐
* 밝은 모습이 보기 좋다. 항상 그 미소 잃지 마렴.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해! -HS- *
이렇게 무난하게 적었다.
다 쓰고 나니 시간이 좀 남아.. 페이퍼에 적힌 그녀에 대한 평들을 몇개 훑어보는 나..
* 미란이는 성격이 진짜 쿨 한 거 같아. 최강 마인드 이미란.. 화이팅!! *
* 이쁘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너 맘에 든다 *
* So Cool~ Look So Beautiful~ *
.............
헐.. 이건 뭐 온통 칭찬들 뿐이네?
미란이의 동아리 내 반응이 이 정도였어?
누가 보면 동아리 탑 인기인 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잖아 이건..
그건 그렇고.. 얘는 이렇게 인기도 많은데..
뭐 하러 나한테 까지 그렇게 사귀잔 말을 한 거야?
가만히 있어도 남자들이 알아서 대쉬해 댈 거 같구만..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었나?
...............
아닌데.. 그땐 분명 진지한 표정이었는데..
뭘까 도대체...
[승철] "자 시간 됐습니다. 옆으로 돌리세요.."
종이들이 옆으로 건내지고..
드디어 은주의 페이퍼가 내 앞에 놓여졌다.
후아.. 뭐라고 써야 되나..
뭔가 좀 인상적이고 강렬하게 써줘야 될 텐데..
그나저나 그녀의 페이퍼에 적힌 내용들을 살짝 훑어보는 나..
* 고령대 대표 얼짱 신은주 화이팅!! *
* 미소 천사 은주.. 넌 언제나 나에게 삶의 활력소인 존재야.."
* 은주야.. 선배가 너 아끼는 거 알지? 언제나 그 미소 잃지마.."
등등.. 역시나 좋은 얘기들로만 가득 써져 있다.
후아.. 미란이도 미란이지만..
은주 얘의 인기는 정말이지.. 에휴..
하늘을 찌를듯한 그녀의 인기에 왠지 모를 한숨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나였다.
* 사랑해! *
뭐냐 이건..
페이퍼 한가운데에 떡 하니 쓰여져 있는 한 문구가 내 신경을 자극해 버린다.
우씨.. 고백을 하려면 좀 안 보이는 데서 하지..
치졸하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누군 뭐 못써서 안 쓰는 줄 알아?
............
* 난 더 사랑해! *
그 글귀 아래 에다가 더 굵고 큼지막하게 써버리는 나였다.
.........
흠.. 설마 내가 쓴 거 눈치 채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이미 써버린 거..
돌이킬 수도 없었기에 그냥 옆으로 넘겨버렸다.
세아의 페이퍼가 앞에 놓였다.
잠깐.. 대충 훑어보는 나..
* 얼굴 좀 피고 살자. 무섭다.. *
*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왠지 좀 불편하네. 우리 친해 질 수 있을까? *
* 너 웃는 거 한번도 못 본 거 같아. 혹시 웃는 법을 모르는 거니? *
등등.. 거의 대부분이 웃으란 얘기. 친해지지 어렵다는 얘기들 뿐이다.
에휴.. 방금 전 미란이나 은주 꺼 하고 어쩜 이렇게 극과극이냐..
* 현수 선배랑 사귀는 거 진짜니? *
............
근데 이 눈치 없는 인간은 대체 누구야?
이런 공개적인 페이퍼 에다가 이런 걸 써 놓으면 어쩌라고.. 아우.. 짜증나..
* 그런 거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
라고.. 글 바로 아래 에다가 답변 식으로 적어 놓는 나..
..............
이거.. 괜한 짓 하는 건가?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이는 거 같네..
결국 박박 선을 그어 안 보이게 지워버렸다.
그리곤 구석 쯤에.. 간단히.. 몇 줄 적어주는 나였다.
* 야.. 나중에 다시 쳐.. 어젠 컨디션이 안 좋았음! - HS - *
1시간여 정도 진행된 롤링페이퍼가 드디어 끝났다.
[승철] "자.. 모두 수고 했구요.. 잠시 쉬는 동안 자기 페이퍼들 읽어보시고 20분 후에 다시 이곳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승철이형의 멘트가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 자신의 평가가 적힌 페이퍼들을 집어 들고는 웅성거리며 확인해 나가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나 역시도 걱정스런 맘으로 슬며시 페이퍼를 집어 들었고..
첫 줄부터 눈에 확 들어오는 강렬한 멘트에 허탈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 선배님 좀 무서워요.. *
* 형.. 성질 조금만 죽여주시면 좋을텐데.. *
* 무서워요 흑흑.. *
* 야.. 너 임마 애들한테 어떻게 했길래 반응이 이러냐? *
...........
죄다 무섭단 얘기들이다.. 이.. 이런..
그.. 그래도 나한텐 우리 은주.미란이.세아가 있으니까 뭐..
설마.. 얘들까지 악담 써 놓은 건 아니겠지?
그녀들의 글귀가 보일 때까지 차근히 읽어 내려가는 나였다.
* 애들이 다 선배님이 무서운가 봐요 호홍.. 전 안 무서운데.. 그나저나 앞으로 잘해봐요 우리.. *
오호.. 드디어 나왔군..
익명으로 써 놓긴 했지만.. 이건 은주라는게 너무 뻔하잖아.. 하하
귀여운 것.. 글씨도 어쩜 이렇게 잘 쓰는 거야...
나를 생각하며 이런 이쁜 문구를 써 내려갔을 은주를 생각하니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고 만다.
* 와 선배님 롤페 (롤링페이퍼)는 하나같이 똑같은 말이네요 호홍.. 어제 밤에 했던 말 기억하시죠? 언제든지 얘기하세요^^ *
그나저나 이.. 이건 분명 미란이인데..
뭐야..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무.. 무슨 말이야 이게?
내가 사귀고 싶으면 언제든지 사겨 주겠다는 건가?
헐.. 이거 너무 당당하게 얘기하니까
오히려 믿어 지지가 않네.. 이런..
.................
미란이의 이해 할 수 없는 멘트에 잠시 당황을 하던 나..
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들고 있던 페이퍼를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근데 세아가 쓴 건 대체 뭐야..
얘도 뭔가 쓰긴 썼을 텐데.. 왜 구분이 안되지?
혹시 안 썼나?
슬쩍 그녀 쪽을 쳐다보았다.
자신들의 롤링 페이퍼를 읽느라 정신없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별다른 표정 없이 창밖 만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
뭐야.. 쟤는 왜 안 읽어?
아니면 못 본 사이에 벌써 다 읽은 건가?
................
아무튼 다시 롤링 페이퍼를 훑어보며
세아가 썼을 만한 글귀를 찾기 위해 정신을 집중 시키는 나였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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