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터즈 제5화
"..........."
[세아] "..........."
출발 이후 단 한번의 마주침도..
단 한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않은 채 10여분을 걸어오고 있는 그녀와 나..
정말.. 가시 방석이 따로 없다.
차라리 다른 후배였다면 뭔가 재밌는 얘기라도 해주면서
내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나 했었을 텐데..
이건 뭐 시작부터 나란 존재를 쳐다도 안보고 있으니..
어색한 건 둘째 치고 내 소중한 자존심 마저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
그나저나 세아 얘는 대체 나의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들까..
다른 애들이야 내가 무섭다고 생각하니까 피한다 치지만..
얘는 은주나 미란이처럼 내 진짜 모습 잘 알고 있으면서도..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건지..
내 머리론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화를 내길 했나..
그렇다고 대놓고 무시하길 했나..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야 그녀의 이런 태도가 이해가 될 텐데..
아무리 떠올리려고 노력을 해봐도.. 당최 생각이 나질 않는다.
혹시.. 이유 없이 사람 싫어하고 그런 경우도 있나?
..............
"야.. 너 근데 나한테 뭐 불만 같은 거 있냐?"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어보고 말았다.
[세아] ".........."
"불만 있으면 얘기해봐. 선배로서 고칠 건 고치도록 해 볼 테니까.."
에휴.. 진짜 은주 봐서 딱 한번 자존심 접어주마..
[세아] ".........."
대꾸라도 좀 해 이것아..
"야.. 너 아무리 내가 맘에 안 들어도 이렇게 말까지 씹는 건 너무하잖아.."
[세아] "..........."
헐.. 얘 정말.. 너무하네..
"이게 진짜.. 야.. 너.."
승질에 못 이겨.. 결국 고개를 돌려 그녀를 향해 고함을 질러버리고 말았다.
[세아] "네?"
.............
그제서야 말문이 트인 그녀..
헛.. 근데 뭐야 저건?
이.. 이어폰?
그녀가 귀에 꼽혀있던 이어폰 한쪽을 빼는 게 내 눈에 들어와 버렸다.
헐.. 얘 지금까지 계속 음악 들으면서 걷고 있었던 거야?
"............."
너무 어이없는 그녀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세아]"뭐라고 하셨어요?"
"하하.. 너.. 너 정말.."
[세아]"............"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헛웃음만 짓자..
다시금 이어폰을 귀에 꼽으려는 그녀..
"이게 진짜.."
그런 그녀의 팔을 낚아 채며.. 결국 성질을 드러내 버리는 나였다.
그녀도 이런 내 모습에 당황을 한 건지..
잠시 자리에 멈춰 이어폰들을 빼곤 주머니에 집어넣어 버린다.
"야.. 너 좀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하냐?"
[세아] "뭐가요?"
"아무리 내가 맘에 안 들고 얘기하기 싫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대놓고 무시할 수가 있냐."
[세아] "무시한 거 아니에요. 싫어한 적도 없고.."
"우씨.. 이어폰 꼽고 혼자 음악 듣는 게 무시 하는 거지 뭐야..."
[세아] "그.. 그거야.. 선배님이 출발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아무 말도 안 하시니까 저랑 얘기하기 싫어서 그러는 건 줄 알았죠.."
"그.. 그거야.."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당황해 버리는 나..
게다가 그녀가 했던 얘기가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성질 좀 내며 한마디 하려던 내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세아] "이어폰 꼽은 건 죄송해요. 주의 할께요.."
"............."
왜 이래.. 부담스럽게..
"야.. 너 내가 그렇게 싫으냐?"
[세아]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그런 적 없다고.."
"근데 왜 맨날 나만 보면 그렇게 인상을 쓰고 있냐?"
[세아] "원래 표정이 이래요.."
............
"말투도 그래.. 너 맨날 뭔가 기분 나쁘다는 듯한 말투로 얘기하잖아.."
[세아] "아.. 제 말투가 어떻든 선배님이 무슨 상관이에요.."
결국 짜증을 내기 시작하는 그녀..
".............."
역시 또 말문이 막혀버리는 나였다.
[세아] "죄송해요 짜증 내서.."
..............
이게.. 병 주고 약주나..
"아냐.. 내가 짜증 나게 하기도 했지 뭐.."
애써 화를 참으며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해 주었다.
[세아] "그냥 선배님이 이해해 주세요. 딱히 나쁜 뜻은.. 꺄아아아악~"
헉.. 뭐야?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비명을 지르는 그녀..
그러더니 급기야 나에게 거의 반쯤 안겨와 버렸다.
이.. 이런..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산뜻한 향기가 내 코끝을 자극해 온다.
..............
[성태] "하하하.. 이거 너무 세게 잡았나?"
풀숲 사이로. 성태형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 형이었군요.."
[세아] "..............."
아직도 놀랜 가슴을 진정 시키지 못한 것인지..
나에게서 떨어져야 한다는 걸 망각하고 있는 그녀..
내내.. 내 몸에 바짝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성태] "세아야.. 많이 놀랬냐?"
[세아] "네.. 좀.. 놀랬어요.."
[성태] "아이구.. 앞으로 더 무서운 것들만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냐.."
"그래요? 오.. 재밌겠네.. 하하"
[세아] "............."
[성태] "그럼 수고들 해라. 언능 가봐"
"네.."
성태형을 지나.. 또다시 앞으로 전진하는 나와 그녀였다.
"너.. 겁 왜 이렇게 많냐? 성태형보다 니가 더 무섭드라.."
[세아] ".............."
"뭐해? 빨리 안 오고.."
잠시 멈춰 서선 뭔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내 앞으로 다가오는 그녀..
[세아] "자리 좀 바꿔요.. 선배님이 이쪽에 서세요.."
그러더니 내 팔을 잡아 자신의 우측으로 끌어당긴다.
"뭐하냐?"
[세아] "............."
내가 묻는 말에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앞을 향해 걷고 있는 그녀..
하지만 분명 처음과는 다르게..
내 몸에 바짝 붙어 걷고 있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무섭긴 무섭나 보군..
뭐야.. 안 그렇게 생겨 가지고 겁은 왜 이렇게 많아?
.............
툭~
얼굴에 차가운 액체가 스쳤다...
뭐지?
후두둑~
갑자기 또다시 내 얼굴을 강타해 오기 시작하는..
빗방울?
헉.. 뭐야..
뜬금없이 웬 비?
[세아] "아 짜증나.. 뭐야 정말.."
"야.. 너 우산 안 들고 왔냐?"
[세아] "그걸 왜 들고 와요.. 아.. 근데 비 안 온다고 했는데.. 뭐야 진짜.."
"............"
후두두두두두둑~ 쏴아~~
서너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이내 거세지기 시작했다..
"야.. 뛰어.."
일단 비를 피할만한 곳이라도 찾아야 했기에 그녀를 향해 외쳤고..
그녀도 급한 마음에 정신없이 내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철퍼덕..
헉.. 뭔 소리야?
[세아] "아아..."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넘어져 있었다.
돌 뿌리에 걸린 건지 아니면 혼자 접질려 넘어진 건지..
발목을 잡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그녀..
"왜 그래? 괜찮아?"
[세아] "아.. 아.."
아무 대답도 못한 채 신음 소리 만을 내고 있는 게..
왠지 상당히 심각한 부상인 듯 보였다.
"어디 봐봐.."
그녀가 손으로 감싸고 있던 발목에 손을 가져다 대보는 나..
[세아] "아아아~~ 아파요.."
내 손길에 더 큰 신음을 내며 고통스러워 하는 그녀였고..
난 미안한 마음에 후다닥 손을 떼었다.
"뭐야.. 완전 퉁퉁 부었네.. 돌에 걸린 거냐?"
[세아] "몰라요.. 뭐에 걸린 거 같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아.. 아.."
...............
아.. 세아야..
이렇게 비 오는 와중에.. 다리까지 다치면 어쩌잔 거니..
미치겠네 정말..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빗방울이 멈추고 맑은 밤하늘이 나타났다.
.............
오래 온 것도 아니다.
불과 그녀와 내가 뛰었던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
다시 말해.. 그녀가 다리를 접질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준..
대략 2분 남짓 한 시간에만 비가 쏟아진 것이다.
뭐야.. 멜로 영화라도 찍으라는 건가?
..............
"걸을 수 있겠냐?"
바위 위에 앉아 머리에서 물기를 짜내고 있는 그녀를 향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세아] "............"
"안되겠냐?"
[세아] "네.."
"어쩌지?"
[세아] "............"
"아.. 잠깐 기다려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지연이에게 통화를 시도하려는 나였다.
[세아] "뭐하세요?"
"어.. 사람들 좀 부르게.. 너 부축 좀 해야 되잖아.."
[세아] "............"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신호음이 울리고..
* 네 선배.. *
* 아 지연아.. 여기 좀 일이 생겼는데.. *
* 네 무슨 일이신데요? *
* 어 그게.. 세아가 갑자기 좀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어.. *
* 그래요? 괜찮아요? *
* 어.. 좀 삐끗한 거 같긴 한데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거 같아. 근데 걷기가 좀 힘들어 보여서.."
* 아.. 다행이네요. 그런데 왜 전화하신 거에요? *
* 아.. 애들 좀 보내 달라고.. *
* 애들요? 애들은 왜요? *
* 왜긴.. 세아 좀 부축해서 내려가게.. *
* 선배님은 뭐하시고요? *
* 어? *
* 에이.. 그런 건 선배님이 알아서 해결해야죠.. *
* 야.. 그.. 그래도 그건.. *
* 선배님 저 지금 바쁘거든요. 나중에 내려와서 얘기해요.. *
* 야.. 지연아.. 야.. *
딸깍~
.............
뭐야.. 지금 선배의 간절한 조난 신호를 무시한 거야?
지연이 요게 그렇게 안 봤더니 은근히 매정한 구석이 있네..
............
[세아] "뭐래요?"
"어.. 그냥 알아서 내려 오라는데?"
[세아] "............"
"야.. 너 일어나서 다시 걸어봐.. 이제 좀 나아 졌을 수도 있으니까.."
[세아] "............."
사실 내가 직접 부축을 하던 업고 가던.. 할 수 있었다.
뭐 그게 별거라고 이렇게 난리를 치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그 대상이 바로 세아라는 것이다.
나란 놈 자체를 그렇게 달갑게 여기지 않는..
그렇기에 내 신사 다운 호의 조차도 칼같이 거절해 버릴 거 같은 그녀였기에..
난 이렇게 남자 답지 못하고 매너 없어 보이는 태도들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
[세아] "아아..."
그녀가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다가.. 결국 신음 소리를 내며 주저 앉아버린다
"..............."
[세아] "아 정말.. 짜증나 죽겠네.."
꼬여가는 상황들에 지친 것인지..
결국 말투에서 짜증이 섞여 나오기 시작한 그녀..
이젠 솔직히 그녀가 좀 불쌍해 보이는 단계까지 접어 들었다.
"야.."
[세아] "왜요?"
퉁명스럽게 반응해 오는 그녀..
"아.. 아니다"
잠시 불쌍해 보여서 업어줄까 했는데.. 맘이 바뀌어 버린다.
이건 뭐 업어 준다고 해도 대놓고 거절할 말투잖아..
다시 한 번 일어나는 그녀..
[세아] "아아아.."
힘겹게 일어나긴 했지만..
한발 내딛는 순간 또다시 고통의 비명 소리를 뿜어내고 만다.
............
아.. 안되겠다.
이러다가 내가 지치겠어..
괜히 도와 준다고 했다가 거절 당하면 쪽 팔릴 거 같아서..
그녀가 도와 달라고 먼저 부탁해올 때까지 기다리려 했는데..
세아 얘 하는 꼬라지 보니까..
죽어도 그런 말을 먼저 해올 거 같진 않다.
"야.. 너.. 이리 와봐.."
나무를 기댄 채 서있던 그녀에게 다가가..
재빨리 그녀를 업어 버렸다.
괜히 어정쩡하게 시간 끌며 업다가는
오히려 더 민망한 상황이 연출 될 거 같아서..
그녀가 그 어떤 말과 행동도 취하기 전에 신속히 업어버린 것이다.
[세아] "뭐..뭐하시는 거에요?"
나의 돌발 행동에 놀라 당황을 한 건지.. 말을 더듬는 그녀..
"시끄러워. 그냥 얌전히 있어.."
강하게 나가야 된다는 생각에.. 목소리를 내려 깔고 엄포를 놓았다.
[세아] "싫어요.. 내려줘요.."
젠장할.. 역시 괜히 업었어.
아.. 뭐야 이게.. 흑..
"까불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
여기서 내려놓으면 더 웃긴 놈이 될 거란 생각에..
그녀의 말을 완강히 무시해 버리는 나..
[세아] "아 진짜.. 내려 달라구요.."
급기야 신경질을 내버리는 그녀였다..
..............
이거 왠지.. 망한 거 같은데?
결국 5미터도 못 가서.. 난 그녀를 내려줘야만 했다.
................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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