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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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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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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1.26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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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서투른 마음(4)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메칼로가 신발을 벗어던지더니 성큼성큼 바다로 걸어갔다.

막상 도발해 놓고도 그 모습에 겁을 집어먹은 다피나가 재빨리 시녀들 사이로 달아났다.

“산디아! 밀라! 나를 보호하라.”

산디아가 웃으며 공주의 앞을 가로막자 밀라도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 옆에 자리 잡았다. 메칼로가 천천히 헤엄쳐 그녀들에게 다가갔다가 돌연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 투명한 물의 벽 너머에서 메칼로의 모습이 어른거렸다가 이윽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피나가 두리번거리며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어디로 간 것이냐?”

“물이 맑으니 가까이 오면 보일 겁니다.”

산디아는 그렇게 대답하고도 밀라에게 눈짓과 손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밀라가 천천히 위치를 옮겼다. 물놀이하다 말고 수신호가 오가는 두 테리아 여전사들을 보자 다피나는 벌집을 건드렸다 싶어졌다.

‘그냥 부탁을 할걸, 내가 공연한 짓을 했도다.’

“밀라는 세라의 신자입니다. 힘으로는 메칼로 님도 이길 수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산디아가 다피나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걱정이 되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는 뜻이 아닌가.

시녀들은 천천히 다피나 주변을 돌며 경계했다. 물결을 거의 일으키지 않으며 원을 그리는 그녀들이 먹이를 노리는 상어처럼 무섭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참을 지나도 메칼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에서 갑자기 불쑥 나와 놀랠까 걱정하던 다피나도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졌다.

“물속에 너무 오래 있지 않았느냐.”

“아직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 마음속으로 3백까지는 헤아린 것 같도다.”

“저라면 이쯤에서 나와야 하겠지만 메칼로 님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4백까지만 헤아린 후에 잠수해서 수색해 보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곳에 위험한 바위나 독을 가진 물고기는 없습니다. 실수로 숨을 잘못 계산했더라도 기절하면 저절로 물 위에 떠오를 겁니다.”

산디아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 말에 안 그래도 불안하던 다피나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푸른 물속을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아까까지는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날까 두려워하며 찾던 거라면 지금은 어째서 보이지 않은가 두려워하며 찾았다. 눈을 굴리면서도 입속으로 열심히 숫자를 헤아렸으나, 백이 넘도록 메칼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큰일이 난 것은 아니냐. 산디아, 네가 찾아 보거라.”

다피나가 창백해진 얼굴로 명령했다. 그때였다.

“저쪽입니다.”

밀라가 손짓했다. 그들로부터 꽤 떨어진 곳에서 푸른 물결 사이로 희끄무레한 것이 불쑥 올라왔다.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등뿐이었다. 머리와 사지는 물에 잠긴 채로 파도에 밀려 흔들리는 메칼로를 보고 다피나가 비명을 질렀다.

“메칼로!”

허둥거리며 헤엄쳐 간 다피나가 물에 잠긴 그의 몸을 뒤집었다. 수영이 서툰 그녀라서 사람을 데리고 헤엄치는 것 까지는 할 수 없었다. 다피나는 잠든 것처럼 보이는 메칼로를 흔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메칼로! 정신 차려라! 메칼로! 메칼로!”

“곤란하잖아. 정신 차리라고 말하면. 기절한 척 하는 건 거짓말이 되어버려서.”

다피나의 손에 흔들리던 메칼로가 투덜거렸다.

“뭐······어?!”

“메칼로의 신자인 것은 여자아이를 놀릴 때 불편하구나.”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눈을 뜨는 메칼로를 보자 그제야 속은 것을 알아차린 다피나가 분노의 주먹을 휘둘렀다.

“이런 못된 놈!”

“이봐, 이봐. 그러다 가라앉는다.”

메칼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발을 움직이는 것조차 잊고서 화를 내던 다피나의 몸이 물속에 잠겼다. 놀란 다피나는 가까스로 메칼로의 몸을 잡고 수면위로 떠올랐다.

메칼로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놀란데다 물속에 빠지기까지 한 다피나가 억울하고 서러운 얼굴로 울먹거렸다. 메칼로가 찔끔해서 산디아의 눈치를 봤다.

“어이, 울지는 마. 산디아에게 혼난다고. 미안. 사과할 테니까. 자, 자. 여기 선물.”

메칼로가 재빨리 다피나의 손안에 뭔가를 쥐어줬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울퉁불퉁한 조개였다. 다피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조개를 내려다보다가 메칼로에게 쏘아붙였다.

“고작 한 개로 배가 찰 것 같으냐. 백 개는 더 잡아오너라.”

“먹으라고 준 게 아니야.”

메칼로가 혀를 차더니 갖고 있던 단검으로 조개를 벌렸다. 그가 조개 안에서 꺼낸 것을 다피나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다피나는 그것을 보자 화내던 것도 잊고 눈을 깜박거렸다.

“이것은 진주가 아니냐.”

“헬리온 클라우스에게는 비밀이다.”

짓궂게 웃으며 메칼로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헬리온의 영지였다. 당연히 진주도 영주의 소유다.

“들키면 어떻게 되는 게냐?”

“글쎄. 몇 배로 배상하라고 할까?”

그의 말에 다피나는 진주와 메칼로를 번갈아보더니 결연히 말했다.

“아르반 국고에 손해를 입힐 수는 없지. 들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

산디아와 밀라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두 절도 공범자는 신뢰에 찬 눈빛을 교환했다.

오후가 되자 안토니오는 그들을 작은 배에 태워 근처의 섬으로 데려갔다. 섬 주변은 물이 얕으면서 산호초가 만발해 있었다. 바닷속에 꽃밭이 펼쳐진 것 같은 광경에 테리아 인들은 시큰둥했지만 아르반 인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사들이 바다 속을 내려다보려고 뱃전으로 우르르 몰려갔다가 배가 뒤집히는 소동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아니 그것을 포함해서 유쾌한 시간을 보낸 뒤에 그들은 마을로 돌아갔다.

격식을 갖춘 점심식사와 달리 저녁은 해안에 불을 피워놓고 해산물을 구워 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밤바다의 풍광도 제법 정취가 있다는 안토니오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식사가 끝나자 기사들은 모닥불 주위에서 술을 나누고 시녀들은 시녀들대로 모처럼의 휴식을 즐겼다. 낮 동안 그야말로 열심히 놀았던 다피나는 결국 지쳤는지 얌전히 천막에 앉아 밤바다를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밤이 되어도 하늘이 맑아 달과 별빛으로 환했다. 바다에서는 끊임없이 파도소리가 들려왔고 이따금 멀리 있는 모닥불 쪽에서 왁자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낮에는 긴장했던 기사들도 이제 꽤나 경계를 푼 모양이었다.

안온한 어둠과 달빛,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파도소리. 멍하니 귀를 기울이던 다피나가 모래 밟히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메칼로였다.

천막으로 들어온 그가 반쯤 찬 술병을 내밀었다.

“포도주다.”

반자인가 하고 잠깐 반색했던 다피나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메칼로가 혀를 찼다.

“겨우 두 번 마시고 벌써 반자의 맛에 빠져 있으니 큰일이군.”

“위험하다는 것은 이제 잘 아노라. 허나 맛이나 향기나 왠지 묘한 매력이 있어서 자꾸만 생각이 나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다피나가 입술을 내밀면서 투덜거렸다.

“그래?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자를 마셨다가 중독된 용병의 이야기를 들려주마. 클레타의 전장에서 만난 한 용병은 어느 날 금단증상이 왔는데 반자를 마시지 못하자 미쳐 날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칼을 들고 막사로 뛰어들어서는 쉬고 있던 동료들······.”

“메칼로! 그만 하라!”

그가 더 이상 끔찍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다피나가 소리쳤다.

“······ 쉬고 있던 동료들에게 술을 내놓으라고 떼쓰다 얼굴에 멍이 들게 얻어맞았다는 이야기다. 교훈이 되는 이야기 아닌가?”

“정말!”

또 속은 것을 알고 다피나가 약 오른 표정을 지었다.

“어찌 하여 너는 그다지도 낭만적이지 못한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메칼로의 각인자면 뭐하느냐. 하나도 쓸모가 없도다. 나는 파도소리나 들을 터이니 너는 입을 다물라.”

앙칼지게 쏘아붙인 다피나가 고개를 홱 돌렸다. 단단히 삐친 그녀를 보고 메칼로가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뭐, 공주께서 바라신다면······.”

메칼로가 일어섰다. 그대로 나가버리는 줄 알았지만, 메칼로는 나가는 대신 다피나의 앞으로 와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눈을 깜박이며 메칼로의 행동을 지켜보던 다피나가 움찔거리며 물었다.

“무, 무엇을 하는 것이냐.”

“보고 있어.”

“무엇을?”

“네 얼굴을 말이다. 잠깐 보고 있었는데도 쉴 새 없이 표정이 변하는구나. 너를 보고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겠다. 귀여운걸.”

메칼로의 말에 다피나가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무, 무, 무, 무슨 소리냐, 메칼로! 보이느냐? 내 팔뚝에 소름 돋았노라. 갑자기 이상한 짓 하지 말거라!”

다피나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메칼로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거 참 낭만적인 반응이군. 모처럼 메칼로의 각인자답게 쓸모 있어 주려고 하는데. 조금 전까지 이런 상상을 하고 있지 않았어?”

“마, 마, 마음대로 남의 마음을 읽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 그, 그리고 네가 그런 말 한들 조금도 어울리지 않느니라!”

“그래? 그럼 다른 것을 해볼까.”

“뭐? 뭘?”

다피나가 이번에는 뭘 하려나 불안한 눈을 깜박거렸다. 메칼로가 문득 웃었다.

“너 말이다, 그렇게 토끼같이 겁먹고 있으면 더 놀려주고 싶어지는 거 아나?”

“토, 토끼라니 무례하다.”

상기된 얼굴로 나무라는 다피나에게 메칼로가 손을 뻗었다. 늘 하던 것처럼 스스럼없는 행동이어서 다피나는 그의 손이 뺨에 닿은 후에도 멍하니 있었다.

손바닥이 뺨 한쪽을 감쌌다가 피부를 쓸면서 천천히 목덜미로 내려갔다. 서늘한 손끝이 지나간 자리마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자국처럼 남았다. 다피나는 붙들린 것처럼 꼼짝도 못하고 눈만 깜박였다.

메칼로의 손이 목 뒤로 돌아갔다.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와 함께 메칼로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또 무슨 장난······.”

그녀가 간신히 입을 연 순간 따뜻한 숨이 뺨에 닿았다. 부드러운 감촉이 간지럽게 스쳤다가 다음에는 좀 더 강하게 입술을 눌렀다.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가볍게 닿았다 핥듯이 떨어지는 키스가 몇 번이나 이어졌다.

그동안 다피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한 채로 굳어 있었다. 메칼로의 팔이 머리와 등을 바치고 있지 않았으면 뒤로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심장이 제자리에 있는지 두려울 정도로 쿵쿵 뛰고 피가 목덜미를 타고 치솟는 기분이 들었다.

메칼로의 얼굴이 다가왔을 때처럼 천천히 물러났다.

“이봐, 키스 정도로 넋 잃지 마. 정말로 위험해진다고.”

그녀의 정수리에 손을 툭 얹으며 메칼로가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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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3부. 테리아의 메칼로 - 에필로그> +12 17.02.13 407 2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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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유일한 진실(3) +10 17.02.04 421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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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유일한 진실(1) +10 17.02.03 410 22 11쪽
132 서투른 마음(6) +10 17.02.02 426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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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투른 마음(4) +16 17.01.26 509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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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서투른 마음(2) +10 17.01.25 472 23 7쪽
127 서투른 마음(1) +16 17.01.24 598 25 11쪽
126 에키드의 외면(3) +11 17.01.22 597 22 13쪽
125 에키드의 외면(2) +10 17.01.21 338 25 11쪽
124 에키드의 외면(1) +10 17.01.20 502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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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의지할 곳(2) +18 17.01.16 776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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