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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쎈
작품등록일 :
2024.07.04 06:36
최근연재일 :
2024.07.27 10:0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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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8,662

작성
24.07.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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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부. 밤의 여왕 6

DUMMY

06. 밤의 여왕




철문을 노크하자 쇠창문이 열리고 은발의 다소 이국적인 노인이 빼꼼이 내다보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선 2층 전시실은 그야말로 박물관을 연상시켰다.


정발튼은 이곳에 올 때마다 흥분되었다.

상아로 만든 인도 조각품, 중국 도자기, 페르시아 수공예품 등 주로 16~7세기의 진귀한 골동품과 유물들로 가득했다.

모두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진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진품이었다.


장노인은 인사동에서 20년째 골동품상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신분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가 1층에 차려놓은 매장은 그저 눈가림하기 위한 형식이었고, 2층 전시실이야말로 주요 고객인 VIP를 위해 만든 공간이었다.


몇 년 전 인도의 경국지색이었던 파드미니 왕비의 목걸이가 발견된 후로 주로 외국 공관원이나 기업 총수들이 그의 단골 고객이 되었다.

그가 이 귀한 물건들을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수수께끼 중의 수수께끼였다.


장노인은 스케치를 하고 있었던 듯 손엔 연필이 쥐어져 있었고, 책상 위엔 손바닥만 한 둥근 원형의 공예품과 함께 양가죽으로 된 낡은 케이스가 놓여져 있었다.


노인은 골동품이 새로 들어올 때마다 직접 그려 목록을 만들었다.

한번은 정발튼이 사진을 찍지 그러느냐 묻자 노인은 관찰을 하면서 그리다 보면 사물과의 교감이 이뤄져 사진과는 달리 내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정발튼이 장노인을 알게 된 것은 2년 전 검도관에서였다.


어려서부터 검도를 배웠던 발튼의 검도 실력은 관장 외에는 상대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편이라 내심 자만하고 있었다.

그런 정발튼에게 하루는 낭인검객이 찾아와 대련을 요구했다.

도복에 호구를 눌러썼기에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 풍기는 기도는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었다.


검도는 원래 상대방을 치거나 찔러서 승부를 겨루는 무도다.

그러나 이 검객은 그런 상식마저 초월했다. 단지 가벼운 몸동작만으로 정발튼의 공격을 무력화 시켰다.


그리고 단 한 번의 도약.

그를 뛰어넘은 죽도가 등판을 작열시켰던 것이다. 상상을 초월한 신기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란 것은 대련이 끝나고 호구를 벗은 검객의 얼굴이 반백의 노인이었던 것이다.



“어르신 어쩐 일로 부르셨는지요.”


정발튼은 어제 이 신비의 노인으로부터 갑작스럽게 호출을 받았다.


“젊은 사람이 급하기는... 자네도 이리와 앉게.”


노인은 작업대에 앉으며 따로 마련된 의자를 가리켰다.

정발튼이 자리에 앉자 노인은 조금 전까지 그리고 있던 공예품을 내밀었다.


“이게 무엇인지 알겠나?”


정발튼이 조심스레 살펴보니 눈이 새겨진 짙은 암녹색 바탕의 부조물이었다.

부조물은 오랜 세월 풍파에 광택을 잃고 검게 부식되어 있었다.

정발튼에겐 오히려 그 모양이 더욱 고풍스럽게 느껴졌다.


부조물의 표면은 매끄럽고 단단했다.

크기가 손바닥만 한 부조물은 장식품이라기엔 너무 컸다. 아마 의식에 쓰이던 아티팩트일 것이다.


“석영을 녹여 만든 테라코타 같군요.”


“석영이 아니라 페리도트일세.”


“아, 페리도트...”


정발튼은 시큰둥해졌다.

스스로 빛을 내는 보석인 페리도트는 근래에 이르러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광물이었다.

그렇다면 이 아티팩트는 생각만큼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정발튼의 마음을 알았는지 노인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건 자바라가트에서 채굴된 페리도트라네.”



고대 이집트에서 페리도트는 자바라가트라 불리는 홍해의 자그마한 화산섬에서 수많은 노예들에 의해 채굴되었다.

섬 자체가 작아 보석을 채굴하기 위해선 땅속으로 수 킬로를 파고 들어가야만 했다.

페리도트는 이렇게 3,500년 동안 오직 자바라가트에서만 생산되었다.


장노인은 일어나더니 전시실의 불을 껐다.

전시실이 어둠에 묻히자 부조물에서 녹색 광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헉!”


정발튼은 헛바람을 일으켰다.

아티팩트에 새겨진 문양이 눈을 뜨더니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은 보는 사람의 심령을 뒤흔들 듯 옥죄어왔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건 페리도트로 가공된 고대 이집트의 아물렛이라네. 페리도트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낸다네. 그런 페리도트를 녹여 굳힌 아물렛이지만, 눈에 박힌 파라오의 보석은 페리도트 원석을 가공한 것이라네.”


정발튼은 놀라운 표정으로 부적을 자세히 살펴봤다.

눈 주위로 희미하게 남아 반짝이고 있는 금도금의 흔적, 그것은 틀림없는 이집트 파라오의 눈 전시안이었다.


이 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픽토그램이자 미스터리로 정발튼은 이 상징이 왜 1달러짜리 지폐의 뒷면에 새겨져 있는지 항시 의문이었다.

더구나 상징과 함께 쓰여진 문장이 ‘신세계 질서를 이룩함에 성공한다. (Annuit Coeptis Nuvus Ordo Seclorum)’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심란했었다.


부적에 새겨진 파라오의 눈은 주위로 뻗어있는 돌기로 인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정발튼은 그 신비함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


“이, 이렇게 귀한 것을 어떻게...”


정발튼은 차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창고를 정리하다 나온 것이라네. 이번에도 자네가 이것의 내력을 조사해 주었으면 하는데...”


노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하하! 어르신이 모르시는 것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겸손이 아니었다.

정발튼은 이 노인의 안목이 전문가 이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늙은이야 감정만 할 줄 알지 어떤 물건인지 아나. 거 요즘말로 스토리라는 것 말이야 그게 흥행 보증수표와도 같거든.”


노인은 아마도 왕비의 목걸이처럼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특종을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정발튼으로서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최선을 다해 조사해 보겠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대단한 내력이 느껴집니다.”


정발튼은 의욕이 일었다.

노인이 내미는 물건은 결코 범상치 않았다.

몇 년 전에 의뢰받은 목걸이도 대단한 내력을 지니고 있었다.

정발튼은 운 좋게도 쉽게 해결해낼 수 있었고, 또한 자신에게 커다란 행운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사실 이 신비한 유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뒤집어질 일이었지만, 내력이 밝혀진다면 그 가치는 천문학적일 것임에 틀림없었다.



****



어둠에 묻힌 거친 바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 위태롭게 배가 떠있다.

거대한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배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곤두박질 쳤다.


파도를 뒤집어쓰고 내동댕이쳐진 배 위에서 한 사내가 울부짖는다.

삼각뿔 모자에 낡아빠진 벨벳 코트를 입은 사내는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배 안을 오가며 어둠 속 바다를 향해 외쳤다.


“Captain!”


그러나 사내의 절규에 찬 목소리는 이내 폭풍우에 묻히고, 주위는 부서진 배의 파편들이 널려 있었다.

다시 파도가 밀려오며 물을 흠뻑 뒤집어 쓴 사내가 난간에 부딪쳐 쓰러졌다.


놀란 정발튼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자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뱃전에 새겨진 영상은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Adventure Gally’



다음 날 정발튼은 꿈속에서 그 사내를 다시 만났다.

사내는 난파된 배를 뒤적이고 있었다.

죽은 해적들의 시체로 가득한 배에서 무언가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러다 한 권의 책을 발견하고는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때 시체에서 악귀들이 떠오르며 사내를 덮쳐갔다.


정발튼은 자신이 지르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밤새 가위에 시달려 어깻죽지가 뻐근하고 식은땀이 흥건했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정발튼은 다시 악몽에 시달렸다.


강가에 교수대가 세워지고 교도관에 의해 세 명의 사내가 끌려 나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봐 해적들이 처형될 모양이었다.


그때 군중들 틈을 뚫고 예의 그 사내가 캡틴을 애타게 부르며 뛰쳐나왔다.

교수대의 해적이 그 사내를 향해 뭐라 외칠 때 밧줄이 내려와 해적을 덮치고 사내는 절규하며 외쳤다.


“안 돼~!”


순간 밧줄은 사내를 향해 쏘아오고, 정발튼은 목을 심하게 조여 오는 통증에 놀라 깨어났다.



계속되는 악몽.


‘아물렛 때문인가?’


정발튼은 식은땀을 흘리며 밖으로 나와 베란다 선반을 뒤져 보았다.

담배를 끊으면서 버려둔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구겨진 담배갑 안에 몇 가치가 남아있었다.

그중 한 개를 빼 피워 물었다. 한동안 끊었던 담배라 몇 모금 빨자 밭은기침이 나왔다.

담배를 비벼 끈 정발튼은 재킷을 걸치고 학교로 향했다.



****



<마술피리> 공연이 비극으로 끝나자 정발튼은 마음의 상처를 딛고 다시 강의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건 조안나도 마찬가지였다.


강의를 마친 발튼이 논문과 각종 서류들로 어수선한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잠시 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며 조안나가 데이빗과 함께 들어왔다.


데이빗은 옥스퍼드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카이로 대학 고고학부장인 모하메드 살라 밑에서 일하기도 했던 이집트학의 대가였다.


데이빗이 모하메드를 만난 것은 실로 행운이었다.

카이로 대학 고고학 발굴팀을 이끌고 있던 모하메드는 이집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고고학자였다.

그가 앙페레와 함께 발굴한 파로스의 등대 유적은 90년대 고고학 최대의 쾌거였다.

그 후 모하메드는 이 해저유적을 자주 찾았는데 그때마다 데이빗을 동반할 정도로 그의 신임은 두터웠다.


데이빗은 역시 옥스퍼드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조안나의 추천으로 한국대학에 교환교수로 와있는 중이었다.

정발튼은 오후에 이들을 초청했던 것이다.



정발튼이 아물렛을 내놓자 호기심에 찬 눈빛의 데이빗과 달리 조안나는 불현듯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 부조물은 할아버지가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것이었다.


조안나는 어렸을 때 이 부조물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 16살 때로 기억되는 어느 날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할아버지의 몰골은 끔찍했다.

온몸이 피투성이인데다 옷은 예리한 것으로 무수히 베어진 듯 찢겨지고 상처에서 흐른 피로 인해 검붉게 딱지져 있었다.


놀란 조안나가 병원으로 모시려했지만, 할아버지는 한사코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소독만 하고 약을 바른 채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아 드리는데 할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부조물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부조물이 작은 것도 아니고 어른 손바닥만 한 것이었기에 자연히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조안나가 궁금해 하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것은 할애비의 생명과 같은 것이란다.”


그리고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몇 달을 고생할 줄 알았던 할아버지가 놀랍게도 며칠 후 털고 일어선 것이다.

조안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부조물의 신비한 힘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을 할아버지는 공간 아트홀 사건이 벌어진 후 내놓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조안나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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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부. 밤의 여왕 4 24.07.18 1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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