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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로레 님의 서재입니다.

두 여자의 편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루로레
작품등록일 :
2022.04.11 22:00
최근연재일 :
2022.05.12 18:0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447
추천수 :
3
글자수 :
98,796

작성
22.04.30 18:00
조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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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메건의 어떤 편지

DUMMY

세레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죠? 나는 언제나 당신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어요. 기억해 줘요. 당신의 편지는 받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진 말아 줘요. 언제나 당신이 우선이에요. 부디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내 이야기를 조금 해 보자면 얼마 전에 그 피자집에 갔다 왔답니다. 사실 식당 이름이 있을 텐데 왜 다들 피자집이라고 하는지 의아했는데, 얼핏 보면 식당인지도 모를 것 같더군요. 간판이 없는 나무 오두막이고, 바로 앞에는 허브가 무성한 정원이 있다는 설명을 손님한테 들은 게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거예요.


이런저런 꽃이 피어 있는 허브 정원을 지나서 식당에 들어가니 부엌에서 사장님이 인사해 주시더군요. 메뉴판을 보는데 정말로 피자와 파스타와 샐러드가 메뉴판에 쓰인 메뉴의 끝이더라고요.


조금 있다가 디저트 메뉴판이 따로 있다는 걸 알았어요. 말하자면 멍청이 짓을 했답니다. 그래도 메뉴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으니까요. 가끔 이런답니다. 파스타는 금방 나왔는데 음료는 조금 오래 걸렸어요. 음료가 나오기 전에 파스타를 다 먹어 버리고 앉아서 당신이 보내 준 편지 생각을 했답니다.


어제는 걱정하느라 편지를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아침에 제대로 읽어보니 놀라운 사실이 정말 많더군요. 세상에, 스란이 신학교 수석 졸업생이었다니. 어쩐지 신어랑 고어로 적힌 책 제목을 물 흐르듯 읽더라고요. 막연히 다른 곳에서 배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요.


어쩌면 아직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나고 자란 곳에서는 신학교 졸업생은 물론이고 신학교 시험을 쳤다가 탈락한 학생까지도 마녀랑 철천지원수였거든요. 다시 생각해 보면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불 밝히기’ 같은 기초 중의 기초 마법을 겨우 몇 초 동안 시전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도 마녀와 신관들을 피해 다니느라 애를 먹었거든여. 완전히 바닥을 칠락 말락한 마력량이었는데 그걸 솜씨 좋게 잡아내는 사람들이 꼭 있었죠.


덕분에 어릴 적에는 내내 뛰기만 했답니다. 말 타는 법을 배운 순간부터 항상 떠나고 싶었고, 기숙사가 있는 아카데미는 좋은 장소였죠. 마을에 있던 신학교는 기숙사가 없어서 집에서 다녀야 했으니까요.


아카데미에서 누군가를 피해 다니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정말 오랜만에 보냈어요. 그러다가 졸업하고, 그리고 당신을 만났죠. 당신은 정말 좋은 친구예요.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당신이 옷을 만들 때 정말 멋지답니다. 하얀 종이 위에 당신이 무심코 긋는 것처럼 보이는 선들이 모여서 그림이 그려지는 걸 보고 감탄했었어요.


평소와 다른 보라색 보석이 달린 루프 타이를 맨 하얀 셔츠와 평소와는 다른 검은 조끼, 검은색 장갑을 낀 손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보면서 그게 정말 세련된 동작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조금 부끄러워서 말한 적은 없지만요. 아무튼 당신이 적어 준 편지의 절반쯤 떠올렸을 때 젤리가 나왔답니다. 말한 대로 보석을 닮은 색이었어요. 선명하게 색이 살아 있으면서 불빛이 닿으면 반짝이는 데다가, 깔끔한 다이아 모양이잖아요.


블루베리 크림 맛 젤리라서 그런지 색깔은 제비꽃을 닮았더군요. 특이한 모양이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웠어요.


가게 사장님은 내가 식사를 하는 내내 이야기를 하셨는데, 하루종일 가게에서 혼자 일하다 보니 심심해서 손님이 오기만 하면 붙들고 떠든다는 이야기와 지금까지 왔던 손님들 이야기를 해 주시더니 다음에 왔을 때는 민트 젤리를 먹어보라고 권하시더군요. 옅은 에메랄드색이 예쁘다고 하시면서요.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야 식사를 시작할 때 시켰던 음료가 나왔어요. 라즈베리 에이드를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라즈베리 파르페를 잘못 시켰더군요. 사장님이 중간에 물을 한 잔 주셔서 그렇게 목이 마른 게 아니었으니 다행이지요.


라즈베리 파르페는 색이 정말 화려했답니다. 라즈베리 잼 위에는 하얀 크림, 그 위에 파삭파삭하게 부서지는 쿠키가 깔려 있고, 그 위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방금 따 온 것처럼 신선한 라즈베리가 올라가 있었죠.


차를 마실 때 파이나 타르트, 쿠키 같은 디저트를 먹는 건 물론 좋아하지만 파르페는 단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데다가 조금 과하게 달 것 같더라고요.


결국 옆 테이블에 있던 여자아이 둘이랑 나눠 먹었답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앉아 있더니 파르페를 먹고 나서 고맙다고 인사하며 가더군요. 사장님께 물어봤더니 가끔 둘이 와서 디저트만 꼭 한 개씩 먹고 가는 아이들이라고 설명해 주셨답니다.


보석상 사장님은 신뢰를 받을 만한 이유가 있으셨군요. 굳이 이유가 없더라도 믿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지만요.


조금 전에도 보석상에 들렀는데 아르헨 할머니가 손님들에게 물건을 전해 주고 계셨답니다. 수도 쪽에서 조금 전에 온 물건이라고 해 주시더군요. 다정하지만 얕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기는 참 어렵죠. 보석상 사장님은 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분이시지만요.


그나저나 당신에게 설명을 들으니 이제 이 마을의 분위기가 이해됩니다. 느긋하고, 부드럽고 다정한 마을이죠. 뭣보다 자기가 마녀 혹은 마법사라서 고민할 필요도 없고요. 이런 마을을 소개해 줘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얼마 전에는 스란과 제타의 집에 허브티를 들고 찾아갔었어요. 작은 꽃 모양 자수가 있는 천으로 티백을 싸서 하얀 상자에 넣은 다음 금색 리본으로 포장했죠. 평소처럼 독특하게 포장하려고 해도 재료가 없었거든요.


허브티를 들고 찾아갔더니 환영해 주면서 차를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하더군요. 집에서 같이 차를 마시다가 스란의 서재에 신학교 졸업장이 있는 걸 봤어요. 제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더군요.


두 사람이 사는 집은 한눈에 봐도 아늑하고 사랑스럽답니다. 누군가와 평생을 같이 살기로 결심한다는 것 멋진 일이고,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죠. 스란과 제타는 지금 생활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고 말해 줬답니다.


그리고 세레나, 나에 대해서는 항상 좋은 말만 해 주는군요. 하지만 당신도 만만치 않은걸요. 당신은 검을 엄청나게 잘 휘두르는 데다가 멋들어진 필기체를 적고, 말도 나보다 훨씬 잘 다루는 데다가 심지어 사냥총을 관리하는 법까지 잘 알잖아요.


왕실 기사단에서 일하는 아는 언니한테 배웠다고 했던가요? 당신이 말을 타는 모습과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탄한답니다. 처음에는 당신이 왕실 기사단에 있다가 일을 그만두고 옷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기도 했고요.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좋은 일이죠. 내가 멋진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바쁜 상황 속에서도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 당신이 훨씬 멋진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럼 세레나, 다음에 만날 때까지 늘 평안하기를.


메건이


세레나는 메건의 편지를 아예 확인도 하지 못했다. 집에 있는 게 아니었던 탓이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말에 막 오르는 순간 메건이 생각났다.


"맞다, 편지!"


세레나가 외쳤다. 말은 세레나가 뭐라고 외치건 신경도 쓰지 않고 달렸다. 마차를 타고 가라고 했지만 세레나는 말이 더 편했다.


"무거운 거 아니지?"


문득 걱정이 된 세레나가 말에게 속삭였다. 알아들을 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예의상 해 보는 질문이었다.


그런 질문을 할 만도 했다. 당장 모자만 해도 검은 장미와 진주 장식이 달려 있었고, 두툼한 망토는 큼직한 사파이어 브로치로 여민 상태였다. 게다가 망토 안쪽에는 핸드백이 들어 있었다.


승마복이라도 입고 왔으면 좋았겠지만, 그럼 전부 난리를 칠 테니 어쩔 수 없었다. 세레나는 괜히 은색 달 모양 장식이 있는 제 구두를 한 번 봤다가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말은 세레나가 무겁든지 말든지 잘 달렸다. 세레나는 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상에, 벌써 밤이네!"


적당한 데 말을 세운 세레나가 외쳤다. 하늘에 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고마워, 수고했어!"


말은 각설탕을 먹이고 마굿간으로 돌려보냈다. 세레나는 거리의 입구에 서서 허리춤을 확인했다.


"빼먹은 거 없겠지?"


세레나가 중얼거렸다. 정말 혹시 몰라 챙겼던 단검과 양산 막대 안에 든 얇은 검까지 전부 제자리에 있었다.


이번에 갔을 때는 뭘 그렇게 바리바리 챙겨 다니냐고 한 소리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세레나는 챙겨 다니는 물건을 도통 줄일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었으니.


"맞다! 편지, 편지!"


다시 메건의 편지를 생각해 낸 세레나가 허둥지둥 뛰기 시작했다. 구두가 땅과 맞닿으면서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정작 세레나는 뛰는 데 영 쓸모가 없는 구두에 짜증을 낼 뿐이었다.


'굽이 낮은 거라서 얼마나 다행이야!'


다행히 가게는 금방 도착했다. 그러나 세레나는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메건의 편지를 읽고 당황하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배달하는 과정에서 편지가 섞인 나머지 순서가 조금 이상해진 메건의 편지를 읽고 당황하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이어 사랑한다는 구절을 발견하고 시간이 멈춘 듯한 경험을 하는 것은 더 뒤의 일이었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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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메건과 세레나의 결혼식 22.05.12 17 0 10쪽
21 메건의 답 22.05.11 13 0 10쪽
20 세레나의 청혼 22.05.08 17 0 9쪽
19 그리고 메건의 답장 22.05.07 18 0 9쪽
18 세레나의 진짜 답장 22.05.06 27 0 9쪽
17 세레나의 답 22.05.05 19 0 9쪽
16 메건의 고백 22.05.04 15 0 11쪽
15 세레나의 가족 22.05.01 21 0 11쪽
» 메건의 어떤 편지 22.04.30 18 0 10쪽
13 의문 22.04.29 17 0 1쪽
12 세레나의 어떤 편지 22.04.28 19 0 11쪽
11 메건의 손님들 22.04.27 18 0 11쪽
10 세레나의 옷에 대한 이야기 22.04.24 17 0 11쪽
9 메건이 갔던 결혼식 22.04.23 17 0 11쪽
8 세레나의 휴식 22.04.22 18 0 10쪽
7 메건의 일상 22.04.21 18 0 10쪽
6 세레나의 일상 22.04.20 21 0 10쪽
5 메건의 약방 22.04.17 19 0 11쪽
4 세레나의 의상실 22.04.16 19 0 9쪽
3 아르헨의 보석상 22.04.15 20 1 12쪽
2 그리고 답장 22.04.14 21 1 12쪽
1 어느 약초사의 편지 22.04.13 5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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