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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로레 님의 서재입니다.

두 여자의 편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루로레
작품등록일 :
2022.04.11 22:00
최근연재일 :
2022.05.12 18:0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451
추천수 :
3
글자수 :
98,796

작성
22.04.23 18:00
조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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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메건이 갔던 결혼식

DUMMY

세레나에게


당신이 올라간 지 벌써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멋진 시간들이었어요. 가능하다면 투명한 보석 속에 넣어서 평생 간직하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여기 온 지 그래도 조금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데려다 준 곳은 완전히 새롭고 신기한 곳들이었죠.


우리가 갔던 데를 잠깐 정리해 볼게요. 장미와 담쟁이덩굴이 휘감고 있는 회색 벽, 바람이 불면 음악 같은 소리가 나는 작은 터와 고양이들이 가득 모여 있는 담요 가게의 창고.....


회색 벽은 정말 신기했어요. 옛날에 읽었던 동화책 속에나 나올 것 같은 풍경이었답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 나오는 성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색과 피처럼 붉은 장미와 짙은 초록색으로 싱그러움을 뿜어내는 담쟁이덩굴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조합이에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잘 어울리는 순간들은 언제나 있죠. 약을 만들 때도 늘 느낀답니다.


하지만, 당신 말을 빌리자면, ‘상상할 수 있는 것들만 잘 어울린다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사나요?’ 물론 그래요. 당신은 가끔 정말 좋은 말을 한다니까요. 아니, 가끔이 아니라 언제나 좋은 말들을 해 주죠.


바람이 불면 음악 같은 소리가 나는 터도 좋았어요. 바람이 불면서 머리카락은 휘날리고 옷을 펄럭거리고, 속 빈 통나무들에서 피아노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잖아요. 게다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밝게 웃는 당신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고양이들이 가득 모여 있는 담요 가게의 창고는 오늘도 다녀왔어요. 안 쓰는 담요들이 널려 있어서 따뜻하다 보니까 고양이들이 많이 모인 거라고 했죠. 담요 가게 사장님이 창고 밖에 둔 밥그릇은 그릇 가게에서 본 적이 있는 그릇이었어요. 아마 차 마실 때 간식을 담아 두는 용도로 쓰는 그릇이겠죠.


그런 걸 고양이한테 내줄 수 있는 사람은 모르긴 몰라도 친절한 사람이죠. 그릇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자세히 보니 파손 방지 마법이 걸려 있었어요.


담요 가게 사장님이 좋은 분이라고 하셨죠. 그 말대로예요. 당신 이야기를 하자마자 어릴 적 이야기를 해 주시더니 ‘첫 만남 기념’이라고 담요를 선물해 주시더군요. 쌀쌀해지는 요즘 날씨에 정말 필요했어요.


며칠 전에 결혼식이 있었답니다. 아마 이곳 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을지도 몰라요. 주문받은 약을 몇 개 정리한 다음 가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갔답니다. 그래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당신도 함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후작으로부터 급한 주문이 들어왔다니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결혼식에 대해 말해보자면, 정말 아름다웠어요. 둘 다 짙푸른 실크로 만들고 새하얀 레이스로 장식한 로브를 입었답니다. 옷의 끝자락에는 은색 실로 자수가 들어갔더군요.


움직일 때마다 한 겹, 한 겹 날리는 것이 꼭 파도치는 바다 같았어요. 망토 안쪽에는 하늘색 정장을 입었는데, 둘 다 흰 신발로 맞춰 신어서 하늘색 바지와 잘 어울리더군요.


가슴께에는 둘 다 흰색 장미를 한 송이 달아서 로브를 고정했답니다. 머리카락은 귀가 드러나게 잘 정리했고, 오른쪽 귀에는 흰색 보석이 작게 박혀 있는 육각형 검은색 귀걸이를 했고요.


진주에 뒤덮이다시피 한 순백의 드레스나 보석으로 잔뜩 장식한 머리칼보다 화려해 보였어요.

결혼 반지는 정말로 화려했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붉은 꽃 모양 보석이 들어간 푸른 보석이 반지의 중심에서 반짝였고 작게 반짝이는 검은 꽃들이 곁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어요.보석상 사장님이 꽤 만족하신 것처럼 보이더군요.


테이블마다 푸른색과 회색 꽃이 꽂힌 화병이 놓여 있었고, 각자 집에서 음식을 가져와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돌아다니며 먹었어요. 사탕 가게 사장님의 디저트들과 그릇 가게 사장님의 피자와 파스타, 스튜 요리가 제 몫을 톡톡히 했답니다.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잠깐 춤을 추는 시간이 있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춤을 영 못 추니까 보석상 사장님과 한 곡 추고 끝내버렸답니다. 제타와 스란은 세 곡 정도 추고 자리에 앉았는데, 로브 자락이 펼쳐졌다가 다시 가라앉는 모습이 장관이었어요.


혹시 궁금해할까 봐, 빈약한 실력이지만 그림을 같이 보냅니다. 언젠가 그림은 별로 잘 그리지 못한다고 했더니 당신이 약초 그림을 이렇게 잘 그려 놓고 무슨 소리냐고 했던가요.


당신은 언제나 너그러워요. 당신 곁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이유를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나중에 정원에서 결혼식을 하는데 흰색 신발을 걱정한 적 없는지 물어봤답니다. 제타가 본인이 마녀인데 대체 뭐가 문제겠냐고 하더군요. 게다가 스란이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었다는 말도요.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런 게. 나도 소중한 사람이 원하는 걸 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잠깐 생각했는데, 완벽하게 하지는 못해도 당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 할 수 있겠자고 생각했답니다. 그게 무엇이더라도요. 마녀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나름 마력이 있답니다.


역시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두 사람다운 결혼식이라 신선했어요. 결혼식에 많이 가 본 적 없으니 결혼식 진행 절차를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지만요. 두 사람이 입을 맞추고 나서 결혼식이 끝났어요.


다들 그릇이며 사탕을 하나씩 건네고 있길래 아무래도 뭔가는 줘야 할 것 같아서 혹시 몰라 들고 왔던 향수를 꺼냈답니다. 묵직한 향이 나는 것 하나, 라즈베리 향으로 시작해서 화이트 머스크로 향이 끝나는 것 하나씩 줬어요.


감사의 표시로 책을 받았답니다. 거절하려고 하니, 서점 단골손님인데 그냥 좀 받으라고 하더군요. 이 책 디자인이 얼마나 화려한지 당신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민트색 표지의 양장본인데, 책등부터 뒷표지까지 청록색 무늬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요. 표지의 가운데는 멋들어진 글씨체로 책의 제목과 작가 이름이 쓰여 있답니다.


백금색이라 정말 우아해 보여요. 역시 남에게 보일 실력은 안 되는 그림이지만, 조금이나마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책 표지를 그린 그림도 함께 보냅니다.


그나저나 제타와 스란에게 은방울꽃이며 하얀 장미를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보니 제타가 잘 보관해 두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약재를 말릴지언정 꽃을 보관하지는 않으니까 그런 게 신선하게 느껴졌답니다.


약재로 쓸 수 있는 것들은 꽃이 피기 전에 손질해 둬야 하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어딘가에 갈 때마다 꽃들에게 유독 눈길이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겨울이니 꽃을 보기도 힘들겠지요. 숄을 두르고 갔었는데 해가 떨어지자마자 서늘해지더라고요.


며칠만 더 지나면 밖에 나갈 때 숄이 아니라 망토를 입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더군요. 한동안 집 앞의 풀들을 정리하며 살았는데, 코스모스와 국화와 다른 꽃들이 집 앞 가득 피어 있었답니다.


약초만 찾고 다니느라 이런 걸 놓치는 건 역시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언제나 내게 주변에 있어서 놓치기 쉬운 것들에 대해 일깨워 주는 사람이 당신이니 말입니다. 지금쯤 주문받은 옷들을 만드느라 바쁜가요? 눈이 아프면 안 되니까 약을 함께 보냅니다. 한 티스푼씩 물에 타서 먹으면 좋아요. 아침에 잊지 말고 챙겨 먹어 주세요. 당신을 위해 만든 거니까요. 그럼 다음 편지까지 늘 행복하게 지내기를.


메건이

"좋겠다, 나도 보고 싶어!"


세레나가 외쳤다. 스란과 제타의 결혼식을 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진짜 결혼하는 거 맞냐고 할 때는 언제고?"


어지럽게 널린 천 사이에서 모시 실키가 물었다. 언제나처럼 간판도 뭣도 없는 가게는 '천 팝니다'라고 적힌 종이 한 장만 창가에 붙어 있었다.


"그거랑 이건 다르지! 난 남이 만든 화려한 옷을 보는 게 좋단 말이야!"


세레나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바닥에 널린 천 사이에서 용케 누워 있던 상태였다.


"입고 다니지는 않잖아."


세레나의 바로 옆에 있는 천들을 치우면서 모시가 의문을 제기했다. 세레나가 다시 소리쳤다.


"관상용이야!"


"알았어, 알았어. 근데 천 치우는 것 좀 돕지?"


세레나는 모시의 말에 불만 어린 눈으로 바닥을 살펴봤다. 색색의 천이 널려 있는 바닥은 보기에는 예뻤지만 치우는 데 오래 걸릴 게 틀림없었다.


"굳이?"


모시는 슬슬 짜증이 난 것처럼 보였다. 세레나는 말을 덧붙이려고 했지만 모시가 더 빨랐다.


"그럼 이걸 안 치우고 전시해 놓을까?"


그래도 예쁠 것 같기는 했다. 모시가 천이 밟힐 때마다 마음이 밟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세레나는 이 상황에 대해 농담을 한두 마디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내가 다 살 건데 굳이 다시 상자에 넣어야 해?"


"진작 말하지!"


모시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세레나는 천을 전부 포장해서 배달해 주는 대가로 추가금을 지불했다. 세레나의 재료 구입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우선 쉬는 날에 필요한 재료를 산다. 하지만 메건과 한 약속 때문에 쉬는 날 오전에 가게를 전부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했다.


가게를 여는 날에 필요한 재료는 새벽부터 영업하는 가게에서 구했다. 옷 가게는 해가 뜰 때부터 열리므로 가게가 열리기 전에 재료를 모두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새벽에 가는 가게에서는 무조건 대량 구매를 했다. 대부분이 싸고 질 좋은 물건을 팔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가게이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돈을 왕창 쓰지 않으면 곧 망할 것 같았다.


오늘도 천을 대량으로 사러 온 참이었다. 모시는 마침 좋은 천이 들어왔다며 신나 있었고 세레나에게 천을 보여주다가 전부 쏟아 버렸다. 세레나는 모시가 사태를 수습하는 걸 보기만 하면서 메건의 편지를 읽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고객님!"


지갑이 두둑해진 모시가 경쾌하게 외쳤다. 세레나는 모시에게 손을 마주 흔들어 준 다음 달리기 시작했다. 곧 해가 뜰 기세였고, 해가 뜨기 전에 가게 열 준비를 마쳐야 했다.


사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거리에 코트 휘날리는 소리와 누군가 달리는 발소리가 퍼졌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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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메건과 세레나의 결혼식 22.05.12 17 0 10쪽
21 메건의 답 22.05.11 13 0 10쪽
20 세레나의 청혼 22.05.08 17 0 9쪽
19 그리고 메건의 답장 22.05.07 18 0 9쪽
18 세레나의 진짜 답장 22.05.06 27 0 9쪽
17 세레나의 답 22.05.05 19 0 9쪽
16 메건의 고백 22.05.04 15 0 11쪽
15 세레나의 가족 22.05.01 22 0 11쪽
14 메건의 어떤 편지 22.04.30 18 0 10쪽
13 의문 22.04.29 17 0 1쪽
12 세레나의 어떤 편지 22.04.28 19 0 11쪽
11 메건의 손님들 22.04.27 19 0 11쪽
10 세레나의 옷에 대한 이야기 22.04.24 17 0 11쪽
» 메건이 갔던 결혼식 22.04.23 18 0 11쪽
8 세레나의 휴식 22.04.22 18 0 10쪽
7 메건의 일상 22.04.21 18 0 10쪽
6 세레나의 일상 22.04.20 22 0 10쪽
5 메건의 약방 22.04.17 19 0 11쪽
4 세레나의 의상실 22.04.16 19 0 9쪽
3 아르헨의 보석상 22.04.15 20 1 12쪽
2 그리고 답장 22.04.14 21 1 12쪽
1 어느 약초사의 편지 22.04.13 5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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