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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로레 님의 서재입니다.

두 여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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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루로레
작품등록일 :
2022.04.11 22:00
최근연재일 :
2022.05.12 18:0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453
추천수 :
3
글자수 :
98,796

작성
22.04.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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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세레나의 어떤 편지

DUMMY

메건에게


안녕, 메건! 나예요, 메건의 친애하는 세레나!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나요? 정답이에요, 오늘은 하루 동안 휴가거든요! 하루 만에 다녀올 거리는 아니라서 메건이 있는 곳에는 가지 못했지만 말이에요.


그래도 쉰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죠! 그나저나 그곳도 눈이 왔군요. 여긴 오늘 첫눈이 왔답니다! 메건이랑 같이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집 앞에 눈이 정말 많이 쌓였죠?


어릴 적에는 거기 누워서 눈이 푹 파이게 한 뒤에, ‘눈 사진’이라고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나요. 아니면 누운 상태로 팔다리를 휘저은 다음 넓게 푹 파인 눈을 보고 ‘눈 천사’ 라고 부르기도 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차가운데 어떻게 누울 생각을 했나 몰라요! 따뜻한 집 안에서는 성에가 낀 창문에 글자를 쓰곤 했죠. 주로 제 이름을 썼지만, 가끔 읽던 책의 주인공들 이름을 괜히 써 보기도 하고 가끔 꽃이며 별 모양을 그리면서 놀기도 했어요.


그 해 겨울에는 여름 동안 너무 돌아다니면서 놀았던 탓인지 하루의 거의 절반을 자면서 보냈지만요! 난롯불이 따뜻하게 타오르는 집 안에서 가득 쌓인 눈을 보고 있으면 정말 포근해 보였어요.


손님들 이야기는 정말로 오랜만이네요! 저번에 들었던 손님 이야기 이후로 말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말해줘서 기뻐요. 그 동네 사람들은 항상 그런다니까요? 그 값은 너무 싼 것 같다면서 음식이든 화분이든 그릇이든 들고 오시죠.


아르헨 할머니네 가게에서 놀고 있을 때도 손님들이 젤리랑 아이스크림이며 케이크, 고급스러운 금색 테의 안경과 장작, 고양이 무늬가 귀여운 작은 그릇들을 들고 왔었죠!


가게에서 아이가 놀고 있으니 신경이 쓰이셨던 건지, 저는 고양이 모양의 작은 도자기 인형과 유리병 속에 가득 담긴 색색깔의 사탕, ‘괜찮다면 받아줘’ 라고 하시면서 건네 주신 동화책을 받았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다들 다정하신 분들이에요. 도자기 인형은 메건도 본 적 있죠? 다른 곳은 전부 우아한 검은색이라서 에메랄드색 예쁜 눈이 유난히 돋보이는 작은 인형 말이에요! 차를 마실 때 항상 같이 있었죠.


어쩌면 메건이 신학교를 다니는 사람에게 가지는 그 의문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어요. 마을 사람들은 예전부터 외지인들에게 ‘너희는 항상 그렇게 사냐’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마녀와 신관과 사제와 마법사. 예전에는 네크로맨서까지 있었으니까요!


머리칼 반은 삭발해 버리고, 반쪽은 반짝이는 연보라색 머리칼을 길게 기른 멋진 사람이었는데, 네크로맨서 아니면 흑마법사라는 소문이 돌았어요. 항상 파란색 로브를 입고 다녀서 더 그런 소문이 돌았는지도 모르죠. 깊은 밤바다 같은 파란색 로브였거든요.


저한테는 ‘언니라고 불러’ 하면서 다정하게 대해 주던 사람이었고, 마을 사람 모두에게 친절했어요. 눈은 은색이었는데 가끔 달빛을 받으면 파랗게 빛났고요. 아직까지 머릿속에 생생해요.


어느 날 아르헨 할머니의 가게에서 창밖을 내다봤는데 그 언니가 지나가고 있었죠. 달이 밝은 날이어서 눈은 옅은 파란색으로 빛났고 일렁이는 파도처럼 로브가 움직였어요. 별처럼 반짝이는 가루가 주위에서 흩날렸고 길게 기른 반쪽 머리카락은 퍽 짧은 길이가 되어 있었죠.


그 바로 밑에, 훤히 드러난 귀에는 해골 모양 귀걸이가 걸려 있었어요! 아르헨 할머니께 물어보니 ‘밤 산책’ 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냥 밤에 산책하는 걸 좋아했다나 봐요. 사는 곳을 옮겼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 만난다면 내 이야기 좀 전해주세요!


아,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튀었는데 아무튼 우리 마을은 그런 곳이에요. 이런저런 문제에 휘말린 사람들이 ‘조용히 살기’ 라는 목표 하나만 가지고 세웠던 마을이니까요!


마을 사람들 최대의 목표는 평화고, 사람들한테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이죠. 싸움이 난다 해도 이틀에서 열흘 안에 해결되고요. 종교적인 문제나 마법 관련 문제에 휘말려서 고생하시다 온 분들도 있어서, 종교인이든 마녀든 마법사든 네크로맨서든 흑마법사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대다수고요!


서점 부부만 해도 제타는 마녀고, 스란은 신학교 수석 졸업생이잖아요? 비록 서점을 물려받기로 했지만 말이에요. 스란이 신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 만날 일이 있어서 왜 마을에 있기로 했냐고 물어보니, 다른 곳에 나가기가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마녀니 마법사니 신학교 졸업생이니 하는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는데 다들 죽어라 싸워 대는 게 너무 싫고 무서워서 마을에 있고 싶었대요. 애초에 신학도 할 일을 못 찾아서 배운 거였는데, 배우다 보니 신학보다는 책을 읽고 이것저것 연구하는 게 훨씬 좋대요.


언젠가 책을 쓰면 나한테 꼭 한 권 보내 주기로 했어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십 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니까요! 저한테 한 권, 제타에게 한 권 주고 반응이 좋으면 더 쓸 건데, 안 좋으면 그만둘 거라나요? 헛소리 말라고 했죠! 스란이 쓰는 글은 정말로 재밌거든요. 메건도 읽어 봤어야 했는데!


그리고 메건, 메건이 쓰는 마법은 정말 멋져요! 농담 아니에요. 음식에만 쓸 수 있다고 해도, 시간 고정 마법이잖아요? 게다가 메건은 그 마법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았잖아요! 공격 마법이 아무리 뛰어나도 고용해 줄 귀족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고, 메건은 정말 메건에게 딱 맞는 일을 찾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이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나는 메건의 마법이 좋아요. 조약돌에 마법을 건다는 발상도 멋지고요! 게다가 메건은 이것저것 잘 하니까요. 못 한다고 하더니 차도 잘 끓이고 물건도 잘 고치고 동물도 잘 돌보는 데다가 단검까지 잘 쓰잖아요! 적어 놓고 보니 메건은 정말로 다재다능한 사람이네요.


아르헨 할머니는 물론 신뢰받고 계신 분이죠! 마을에 가장 오래 계셨던 데다 사람들이랑도 두루두루 알고 지내세요. 수도 쪽이랑도 교류를 하시니까 마을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도 자주 사다 주시고요!


뭣보다 아르헨 할머니가 짧게 자른 은백색 머리칼을 정리하시면서 그 눈으로 보고 계시면 거짓말을 못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나요? 다정한 갈색 눈이지만 카리스마가 있잖아요. 나무를 닮은 색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예전에는 아르헨 할머니가 쓰고 계신 모노클이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이 이야기 이미 했던가요?


세 번째 손님이 갔다는 근처의 식당은 저도 자주 갔었어요! 분명히 피자집이지만 어쩐지 샐러

드와 파스타가 더 맛있는 것 같은 곳이죠.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건 따끈한 수프와 함께 나오는 바게트, 디저트로 나오는 허브 잎을 올린 젤리였어요. 허브 잎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항상 작은 이파리를 꼭꼭 씹고 있었죠.


아르헨 할머니는 대체 그 작은 잎에 씹을 게 어디 있냐고 하셨지만, 씹으면 입안 가득 시원한 향이 퍼지는 게 좋았는걸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잎은 페퍼민트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젤리는 정말로 단 맛밖에 안 났지만 색깔이 예뻐서 좋아했죠. 꼭 아르헨 할머니네 보석상에서 파는 보석 같았거든요! 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보석을 먹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가 네가 드래곤이냐는 답을 들었는데, 젤리를 먹으면서 항상 보석을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 아르헨 할머니께 드래곤이 보석을 먹는 건 어떻게 아셨냐고 물어봤는데 가게 사장님이 아르헨 할머니의 먼 친척 중 한 명이 드래곤이랑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죠. 정말 놀랐었는데 아르헨 할머니는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절대로 말해주질 않으시더라고요! 결국 지금까지 모른답니다.


그리고 메건, 미안한 이야기가 있어요. 오늘은 휴가였지만 요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편지는 당분간 못 보낼 것 같아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처리해야 하는 일도 조금 생겨서요.


조금 머리가 아픈 일이지만 감당하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에요. 다시 한 번 미안해요, 최대한 빨리 끝낼게요. 메건에게 편지를 쓰고 메건의 편지를 받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고 꼭 지키고 싶은 일이니까요. 그럼 이만.

당신의 친구, 세레나가



'세레나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메건은 세레나의 편지를 한참 동안 읽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메건은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망토를 여기 뒀었는데?'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는 둘이 고민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메건은 두툼한 망토를 초록색 에메랄드 브로치로 여미고 하얀 깃털이 달린 모자까지 쓴 다음 밖으로 나섰다.


이제 완전히 겨울인 바깥은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캔버스를 들고 나와서 그림이라도 그렸을 텐데.


'아, 이런.'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모자는 곧 날아갈 것 같았다. 메건은 한쪽 손으로 모자를 부여잡고 양산을 챙겨오지 않은 걸 잠깐 후회했다.


다행히 후회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숲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위치에 보석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사장님?“


메건이 보석상의 문을 두드렸다. 세레나의 편지를 다 읽자마자 보석상으로 달려와서 숨이 찼다.


"무슨 일이야, 이 추운 날에?"


가게 안쪽에서 아르헨이 나왔다. 잠이 덜 깬 것 같은 아르헨은 모자며 옷에 온통 흰 눈이 쌓인 메건을 보더니 기겁하며 가게 안쪽으로 데려왔다.


메건은 아르헨이 내 준 차 한 잔에 케이크 한 조각, 쿠키 두 개를 먹어치우고서 겨우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하긴 걱정되긴 하겠네.“


아르헨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건은 눈이 녹아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망토와 모자를 치우느라 바빴다. 아르헨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치만 뭐, 정말 해결 못 할 것 같으면 말을 하는 애니까 말이야."


"그런가요?"


메건이 물었다. 찬 공기를 맞은 얼굴이 발갰다.


"그럼, 해결되고 나면 와서 다 떠들어 줄 텐데."


메건이 잠깐 숨을 들이쉬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이어진 아르헨의 말은 메건을 조금 놀라게 했다.


"뭐, 가장 소중한 친구한테 이야기를 안 하면 누구한테 하겠어?"


메건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아르헨을 봤다. 아르헨은 별다른 말 없이 웃더니 오늘밤은 자고 가라는 말을 했다.


"어, 그래도 되나요?"


"그럼, 내일 일찌감치 일어나서 가게 문 열면 되지. 깨워 줄게."


하긴 아르헨의 집에서 자고 가는 게 나을 것 같기는 했다. 이야기하는 동안 시간이 꽤 지나서 밖은 완전히 어두웠다. 게다가 눈이 다시 내리고 있었다.


"그럼 신세 좀 질게요."


메건이 답했다. 아르헨이 메건을 손님방까지 안내했다. 겨울의 어느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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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세레나의 답 22.05.05 2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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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세레나의 가족 22.05.01 22 0 11쪽
14 메건의 어떤 편지 22.04.30 18 0 10쪽
13 의문 22.04.29 17 0 1쪽
» 세레나의 어떤 편지 22.04.28 20 0 11쪽
11 메건의 손님들 22.04.27 19 0 11쪽
10 세레나의 옷에 대한 이야기 22.04.24 17 0 11쪽
9 메건이 갔던 결혼식 22.04.23 18 0 11쪽
8 세레나의 휴식 22.04.22 18 0 10쪽
7 메건의 일상 22.04.21 18 0 10쪽
6 세레나의 일상 22.04.20 22 0 10쪽
5 메건의 약방 22.04.17 19 0 11쪽
4 세레나의 의상실 22.04.16 19 0 9쪽
3 아르헨의 보석상 22.04.15 20 1 12쪽
2 그리고 답장 22.04.14 21 1 12쪽
1 어느 약초사의 편지 22.04.13 5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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