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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로레 님의 서재입니다.

두 여자의 편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루로레
작품등록일 :
2022.04.11 22:00
최근연재일 :
2022.05.12 18:0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450
추천수 :
3
글자수 :
98,796

작성
22.04.27 18:00
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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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메건의 손님들

DUMMY

세레나에게


편지 잘 받았어요. 당신이 만드는 옷들도 당신이 일을 하며 즐거워하는 것도 모두 좋지만 언제나 당신의 건강이 먼저랍니다. 그나저나 이제 정말 겨울이군요.


며칠 전에는 눈이 내렸어요. 집 앞에 가득 쌓인 눈을 치우려고 빗자루를 들었는데, 어쩐지 눈이 너무 폭신폭신해 보여서 그만 그 위에 잠깐 누웠답니다. 지나치게 차가워서 결국 바로 일어났지만요.


집 근처의 개울로 가 보니 물에 얕게 살얼음이 끼어 있더군요. 지금은 눈을 거의 다 치웠고, 장작을 가득 채워 놓은 뒤에 집 안에 앉아 있어요.


곧 눈보라가 칠 모양인지 하늘이 어둡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약초들을 조금 더 많이 정리해 둬야 했는데. 그래도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약초들 위주로 모았으니 괜찮겠지요. 최근에는 약효를 조금 더 강화할 수 있는 마법도 발견했고요.


우리 가게에는 몇 주 전까지 손님이 여러 명 다녀갔답니다. 당신에게는 그것 말고도 워낙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아직 이야기하지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당신만 손님들 이야기를 하고 나는 손님 이야기를 별로 한 적이 없더군요.


물론 이야기한 적이 있긴 하지만, 당신에 비해서 이야기한 횟수가 훨씬 적잖아요. 아무래도 미안해져서 손님들 이야기를 적습니다.


첫 번째 손님은 며칠 뒤에 신학교 시험이 있다고 하더군요. 마을 사람들에게 건너건너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계속 고민하다가 보석상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굳혀서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보석상에서 일할 때도 느꼈지만, 보석상 사장님은 웬만한 사람들의 신뢰는 다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튼 그 손님은 신학교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내내 책을 읽다 보니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고 했답니다.


하긴 깨알 같은 글씨가 종이에 빼곡이 차 있으니 그럴 만도 하죠. 로즈힙 차 티백과 효과 증폭용 조약돌을 함께 줬어요. 차 포장이 예쁘다며 좋아하시더군요. 숲 근처의 개울에서 반질반질한 조약돌을 골라내며 고민했던 보람이 있어요.


그나저나 신학교에 다니는 사람이나 사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이 와서 조금 놀라고 있답니다. 제 고향에서는 신을 믿는 사람과 마법사가 만나면 싸움이 나고, 신을 믿는 사람과 마녀가 만나도 싸움이 나고, 신을 믿는 사람과 마력이 있는 사람이 만나도 싸움이 나고, 마법사와 마녀는 절대 만나지 않았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네요.


두 번째 손님은 그릇 가게 주인분이셨어요. 월경통 때문에 내내 고생하고 계신다고 하셔서, 효과 증폭 마법과 보존 마법이 걸린 조약돌이 담긴 꾸러미와 함께 따뜻한 생강차 우린 물을 병 가득 담아 드렸답니다.


마실 때는 데워 마시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생강차에 타 먹는 용도로 꿀도 드렸는데, 작은 곰돌이 모양의 그릇이 귀엽다고 좋아하셨답니다. 그 뒤에 생각해 보니 아직 다 못 먹은 꿀이 꽤 남았더군요.


괜히 단 게 먹고 싶어져서 핫밀크를 타 마셨답니다. 몸 가득 따뜻한 기운이 퍼지면서 금세 노곤해지더군요. 마침 해도 지고 있어서, 그날은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리고 말았어요. 안락의자는 굉장히 편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편해서 앉아 있다 보면 자꾸 잠들게 되더군요.


세 번째 손님은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속이 영 불편해서 찾아오셨답니다. 근처 식당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파스타와 해물 샐러드를 정말 잘하는 피자집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피자는 어떻냐고 물어보니 안 먹어봐서 모르겠다고 하셨답니다. 증상을 말해 주시는데 아무래도 소화가 다 안 되신 것 같아서 시원한 매실차를 한 잔 타 드렸답니다.


효과 증폭 마법을 거느라 가볍게 손짓을 하다 보니 은색 가루가 날렸는데, 별가루가 날리는 것 같다고 신기해 하셨어요. 구석진 곳에 있어서 손님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은 동네다 보니 입소문을 금방 타서 사람들이 꽤 찾아오더군요.


동네 사람들도 다들 한 번씩 왔다 가셨고, 동네 사람들의 가족분들과 친구분들도 한 번씩 왔다 가셨어요. 최근에는 신학교에 다니는 분처럼 소문을 듣고 찾아온 다른 마을 분들도 가끔 오신답니다. 게다가 다들 돈과 함께 다른 물품들을 들고 와 주시더군요.


덕분에 부엌 찬장에는 파란 꽃무늬가 예쁜 접시와 컵 세트가 있고, 벽에는 고풍스러운 시계가 걸려 있답니다. 파란색 장식이 멋있게 반짝이는 책갈피와 박하사탕이 가득 담긴 유리병도 얻었어요. 체리 파이, 치즈와 큼직한 빵 세 덩이, 말린 과일을 조금 얻었답니다.


마을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소를 키우시면서 우유와 버터를 만드시는 분께는 히비스커스 차를 한 달치 드리고 우유와 버터를 상당히 많이 받았답니다. 다들 차를 마시고 나서 ‘이렇게 효과가 좋은데 가격이 너무 싸다’며 이런저런 걸 들고 오시더군요.


가장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선물이 먹을 것, 특히 빵이라서 그런지 한 달은 거뜬히 버틸 크기의 빵을 세 덩이나 받았답니다. 지금은 신학교에 다니는 분이 주고 가신 만년필로 편지를 쓰는 중입니다.


사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올지 예상은 못 했답니다. 도시에 있을 때는 번화가에 있었고, 워낙 이 가게 저 가게 다니는 분들이 많은 데다가 내키는 대로 사는 분들이 많으셨지요.


하지만 여기서는 이런 구석진 곳까지 찾아와 주신다는 사실에 굉장히 감사하답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마을에서 별로 가깝지는 않은 집이거든요. 굉장히 아늑한 것과는 별개로요.


학교 이야기를 잠깐 해 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흔히 말하는 ‘아카데미’를 졸업했는데, 다들 일하기는 글렀다고 했죠. 공격 마법은 못 써서 왕실 기사단에 들어갈 수도 없고, 창조 마법도 못 써서 공방에 일할 수도 없고, 정리 마법도 못 써서 도서관에 일하러 갈 수도 없었으니까요.


치료 마법은 애초에 쓸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니 시도도 해 보지 않았답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효과 증폭 마법에 음식에만 걸 수 있는 보존 마법과 온도 조절 마법이었으니, 마력이 있는데 그런 것밖에 못 써서 먹고 살기는 글렀다고 했답니다.


어쨌든 저는 약초학을 전공했고, 다행히 그냥저냥 괜찮은 약제사가 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저만 이런 것도 아닐걸요. 마법사들은 보통 왕실에서 일하지만, 음식점을 하거나 서점을 운영하는 마법사도 도시에서 간간히 보이니까요. 사실 제가 이 정도로 좋은 약제사가 된 것에는 당신 덕도 있는데, 그건 조금 뒤에 말해 주려고 합니다. 다시 볼 때까지 늘 행복하기를.


메건이


세레나는 메건의 편지를 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편지를 읽을 시간이 없었다.


"일이 안 끝나!"


드레스와 자켓과 레이스와 리본에 파묻혀 살았던 데뷔탕트 시즌이 끝났다. 그런데도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내 덕분이지, 뭐."


오르도 바튼이 제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낸 덕분이었다. 세레나는 새벽에 제 가게 영업을 끝내고 옷가게로 쳐들어 온 오르도 바튼을 째려봤다.


"왜 그래, 그만큼 많이 벌잖아."


"그야 그렇지."


"수고비는?"


세레나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돈을 주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거절하고서 옷으로 달라고 했다.


"안 그래도 일이 바쁜데 말이야."


조끼를 내 오면서 세레나가 투덜거렸다. 검은 조끼에 우아한 은색 자수가 들어가 있었다. 은색 단추는 오르도 바튼의 가게에서 사 온 물건이었다.


"고마워, 잘 쓸게."


오르도 바튼이 웃었다. 세레나는 그 모습이 퍽 밉살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엄청 바빠 보이네?"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바빠!"


천을 석석 자르면서 세레나가 대꾸했다. 얼마 전까지는 무도회나 외출용 옷을 만드느라 바빴다면 이제는 실내복을 만드느라 바빴다.


"뭐, 실력이 좋으니까 말이야."


테이블 위에 누운 오르도 바튼이 태평하게 중얼거렸다. 세레나는 이제 신경질적으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유언장 때문에 정신사나운데!"


자수를 한 땀 한 땀 놓던 세레나가 외쳤다. 그런 상태에서 섬세한 작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무슨 유언장?"


오르도 바튼은 이제 테이블에서 일어나 있었다. 드물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있어, 그런 거."


유언장에 대해 생각하다가 괜히 열이 뻗친 세레나가 씩씩거렸다. 오르도 바튼은 세레나의 눈치를 슬슬 보다가 가게 밖으로 나갔다.


세레나는 그 사실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옷을 만들다가 성질을 내다가 다시 옷을 만드는 걸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못 견딜 지경이 되었을 때 세레나는 메건의 편지를 발견했다. 확실히, 그 편지를 읽은 뒤에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세레나는 기운을 차리고 다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 굳이 가야 하나?"


주문받은 옷을 절반 정도 완성했을 때 세레나가 혼잣말을 했다. 지금 당장 가서 만나도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을 불렀는데 안 갈 수도 없었다. 세레나는 옷장을 열고 코트를 꺼냈다.


코트는 세레나의 취향대로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검은 코트를 마찬가지로 검고 털이 달린 단추가 고정하고 있었다.


'이것만 입고 가지는 못 하겠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금은 귀족의 딸 신분으로 외출하는 입장이었다. 세레나는 화려하게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굳이 수수하게 입고 눈에 띄고 싶지는 않았다.


'찾았다!'


세레나는 이어 모자와 핸드백, 양산을 챙겼다. 입은 옷이 수수하니 그런 것들이라도 화려한 걸 들고 갈 생각이었다.


이럴 때 쓰려고 옷장 깊숙한 곳에 뒀던 검은색 모자는 장식이 많았다. 짙은 분홍빛 깃털과 리본이 핀으로 고정된 상태였다.


검은 핸드백은 자잘한 꽃 모양 무늬가 있었고 여는 부분에 나비 모양 장식이 붙어 있었다. 실용성보다는 겉보기를 챙긴 디자인이었다.


검은 양산은 끝단에 레이스가 달려 있었고 그 위에 천으로 만든 작은 꽃 장식이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화려했다.


세레나는 전신거울 앞에서 의상을 점검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이지만 어쨌든 화려했다. 곧 핸드백을 팔에 건 세레나는 양산을 펼치고 밖으로 나섰다. 메건에게 보낼 편지를 우편배달부에게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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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세레나의 답 22.05.05 19 0 9쪽
16 메건의 고백 22.05.04 15 0 11쪽
15 세레나의 가족 22.05.01 22 0 11쪽
14 메건의 어떤 편지 22.04.30 18 0 10쪽
13 의문 22.04.29 17 0 1쪽
12 세레나의 어떤 편지 22.04.28 19 0 11쪽
» 메건의 손님들 22.04.27 19 0 11쪽
10 세레나의 옷에 대한 이야기 22.04.24 17 0 11쪽
9 메건이 갔던 결혼식 22.04.23 17 0 11쪽
8 세레나의 휴식 22.04.22 18 0 10쪽
7 메건의 일상 22.04.21 18 0 10쪽
6 세레나의 일상 22.04.20 22 0 10쪽
5 메건의 약방 22.04.17 19 0 11쪽
4 세레나의 의상실 22.04.16 19 0 9쪽
3 아르헨의 보석상 22.04.15 20 1 12쪽
2 그리고 답장 22.04.14 21 1 12쪽
1 어느 약초사의 편지 22.04.13 5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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