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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로레 님의 서재입니다.

두 여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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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루로레
작품등록일 :
2022.04.11 22:00
최근연재일 :
2022.05.12 18:0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463
추천수 :
3
글자수 :
98,796

작성
22.04.21 18:00
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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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메건의 일상

DUMMY

세레나에게


오랜만이에요, 메건입니다. 요즘은 손님도 많아진 데다가 동네 사람들과도 연이 조금 생겨서, 이래저래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오늘은 스란의 서점에 다녀왔답니다. 결혼식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서점에 갈 때마다 제타도 항상 있더군요. 하긴 며칠 뒤가 결혼식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나저나 스란의 서점에는 책 말고도 신기한 것들을 많이 팝니다. 덕분에 저는 오늘 북퍼퓸에 대해서 처음 알았어요. 서점에 웬 향수병이 있어서 물어보니 북퍼퓸이라고 설명해 주더군요.


책에 뿌리는 향수라니, 매력적이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향기로써 기억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죠. 한 번 써 보고 괜찮은 것 같으면 사 달라고 하길래 한 병 받아왔어요.


보통의 향수보다는 디자인이 확실히 깔끔하지만 결코 밋밋하지 않아요. 향수병이 투명해서 안에 들어 있는 액체가 보이는 덕분일까요?


위는 다홍색, 아래는 분홍색으로 층이 나누어져 있는 것이 보여요. 두 색깔이 맞닿는 부분이 자연스러워서 특히 좋습니다. 아직 써 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책에 뿌리든 앞으로 책을 그 향기로 기억하게 되겠죠.


멋진 일 같지 않나요? 향기를 통해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게 말이에요. 아, 옛날 생각이 나네요.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레몬그라스 향을 형상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때 당신이 레몬빛 리본이 달린 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보다는 샌들우드 향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당신은.


설마 그 레몬색 리본이 달린 셔츠가 당신이 가진 가장 밝은 색의 옷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온갖 데뷔탕트 의상들을 만드는 당신 옷장은 완전히 무채색이잖아요? 옷에 장식이 있다고 해도 흰 셔츠에 깔끔한 디자인의 검은 리본, 검은 셔츠에 과하지 않은 검은 프릴, 심지어 머리장식도 진주 핀이나 검은 장미 생화가 끝이니 말이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문득 재밌어지곤 한답니다.


그릇 가게도 오늘 다녀왔답니다. 당신 말처럼 좋은 그릇들이 정말 많았어요. 귀여운 고양이도 있었는데, 당신이 이곳에 있을 때는 없었던 모양이에요. 최근에 데려왔다고 말해주셨거든요.


깨지기 쉬운 그릇들 사이에 있어서 걱정했는데, 그렇게 얌전할 수가 없더군요. 그릇 가게의 작은 테이블에 느긋하게 누워 있다가, 누군가 쓰다듬으면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 전부에요.


보고 있자니 저까지 나른해져서 결국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여유를 부렸답니다. 고양이 털이 그렇게 부드러운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 뭐에요.


그나저나 세레나도 따뜻하게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날씨가 굉장히 서늘해졌잖아요. 스란과 제타의 결혼식도 슬슬 다가오는 중이고요.


전 벌써 벽난로에 불을 때기 시작했답니다. 난롯가의 안락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는 건 물론 좋지만 당신이 함께 있었다면 더 좋았겠더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머무는 곳은 숲속인 데다가 저는 혼자 지내니까요.


요즘 들어 당신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 이유랍니다. 하지만 당신을 더 많이 생각하는 건 언제나 밝은 낮의 일이니 기뻐해 주시겠나요, 세레나. 이건 제가 행복하다는 증거랍니다.


즐겁고 행복하지 않은 곳에 당신을 부르고 싶지 않으니까요. 호수에 비친 여름날의 풍경 같은 당신이, 언제나 샌달우드 향이 풍기는 당신이 세상 모든 즐겁고 행복한 것들을 볼 수 있기를 바라니까요.


이만 편지를 끝내려고 했는데,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밤이고 하늘에 별이 쏟아져 있어요. 제각각 반짝이면서도 함께 있는 것이 마법 같다고 해야 할까요.


언젠가 마법을 쓰는 게 꼭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같다고 이야기를 했죠. 그때 나는 당신이야말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방식대로 생각한다면, 결국 우린 서로에게 마법이군요. 그럼 잘 자요.

당신을 기다리며,

메건이

"편지 왔다!"



세레나가 외쳤다. 꽃집 문을 열고 있던 플로스가 웃었다.


"누구, 저번에 그 친구?"


"응, 저번에 걔!"


"기분 좋아 보이네."


당연한 말이었다. 메건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기분이 나쁠 수는 없었다. 세레나는 편지를 읽다가 순간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파는 상품이 아니라 내 취향대로 만든 건 단순하지."


세레나가 중얼거렸다. 세레나가 입고 다니는 옷은 며칠 안 가서 손님에게 팔렸다. 오로지 세레나의 취향대로만 가득 채운 옷장은 완전히 무채색이었다.


"조금 심했나?"


세레나가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서 제 침실과 옷장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검은 블라우스, 하얀 블라우스, 검은 셔츠, 하얀 셔츠가 줄지어 걸려 있었다. 서랍 안쪽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하얀색 진주 핀과 검은색 꽃 모양 장식으로 꽉 차 있었다.


'모자는 조금 화려할 수도 있겠네.'


세레나가 선반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그래 봤자 중간중간 색이 있는 깃털 장식이 있을 뿐, 모자는 전부 검은색 아니면 흰색이었다. 순전히 호기심으로 사 봤던 중절모도 있었다.


'메건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세레나가 수도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의 화려한 옷을 입고 나다니기 시작한 것은 메건이 시골로 내려간 다음부터였다. 어떻게 하면 가게 홍보를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맞다, 신발 사야 하는데!"


세레나가 외쳤다. 인형 신발이든 사람 신발이든 상관없이 둘 다 사야 했다. 자기가 군화를 신고 다니든가 말든가 상관은 없지만 가게의 신발장은 무조건 화려해야 했다.


"사장님! 사장님? 계세요?"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긴 세레나가 가게의 문을 두드렸다. 구두 가게 사장이 느리게 걸어나왔다. 머리는 부스스했고 외알안경을 낀 상태였다. 프로베 카루스, 이 구두 가게의 주인이었다.


"인형 신발? 사람 신발?"


"둘 다요!"


"벌써 다 떨어졌대?"


프로베가 물었다. 세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잘 왔어. 최근에 만든 게 많거든."


프로베가 세레나를 가게 안쪽으로 이끌었다. 그 말처럼 최신 유행에 맞춘 신발이 가득 늘어서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부츠였다. 남색에 은색 단추로 포인트를 준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그 옆에는 지퍼가 달린 하늘색 부츠가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옷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구두가 왜 이렇게 많대?"


세레나가 물었다. 낮은 굽부터 높은 굽까지 굽의 높이가 다양했다. 큼직한 리본이 달린 단화도 있었고 꽃과 나뭇잎 장식에 굽이 휘감긴 하이힐도 있었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영 팔리지를 않아서 말이야."


프로베가 멋쩍게 웃었다. 가게가 워낙 많다 보니 마법을 쓰지 않고 만드는 것들은 묻히기 십상이었다. 세레나는 주로 그런 물건들을 사 와서 가게에 진열해 뒀다. 당연히 사 올 때보다 조금 더 높은 값에 팔았다.


"이거 깔끔하고 좋네."


검은 군화를 살펴보던 세레나가 말했다. 프로베가 작게 투덜거렸다.


"군화만 몇 개째 사는 거야?"


"에이, 다른 구두도 사잖아. 인형 구두 좀 보여줘."

프로베가 탁자 밑의 서랍을 열고 인형 구두를 꺼냈다. 자동인형의 발에 꼭 맞는 크기였다. 작은 크기인데도 섬세한 무늬와 장식이 있었다.


"이거 예쁘다. 시리즈로 만들 거야?"


세레나가 물었다. 손에는 작은 신발이 들려 있었다. 흰색 신발의 앞코는 하늘색이었고 하늘색 리본과 함께 작은 레이스가 붙어 있었다.


"고민 중이야. 어쩔까?"


"시리즈로 만들어 줘. 내가 다 살게."


세레나가 태평하게 요구했다. 처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기겁하던 프로베는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


"그럼 고맙지. 근데 오늘은 신발 안 사려고?"


"아니? 사야지. 사람 신발."


세레나가 답했다. 손님들과 어울리는 구두를 추천하다 보면 가게의 신발장이 비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왼쪽 위부터 오른쪽 끝까지, 선반 빼고 전부."


"감사합니다, 고객님! 근데 들고 갈 수 있겠어?"


"일도 아니야."


세레나가 느긋하게 답했다. 잘 포장된 신발을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서 나오자 보랏빛 새벽 하늘이 보였다.


"영업 시간만 달랐어도 말이지."


세레나가 혼잣말을 했다. 남의 가게 영업 시간에 간섭할 마음은 물론 없었다. 다만 저녁 늦게 시작해서 새벽에 영업을 끝내는 구두 가게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야!"


뒤편에서 프로베가 항의하는 게 들렸다. 세레나는 프로베의 말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데뷔탕트는 항상 바쁘다니까?"


세레나는 신발을 정리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요 며칠 동안 화려한 장식과 드레스와 자켓과 자수에 눈이 혹사당하고 있었다.


"이러니까 옷장에 화려한 옷이 없는 거야."


세레나가 투덜거렸다. 데뷔탕트 시즌은 지나치게 바빴고 밖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손님으로 오면 더 바빠질 게 뻔했다. 덕분에 요 며칠 세레나의 옷은 검은 리본이 달린 블라우스와 하얀 리본이 달린 블라우스만 오가고 있었다.


'빨리 끝내고 편지 읽어야지.'


세레나가 속으로 외쳤다. 당연히 방금 편지를 통해서 주문을 세 개 더 받은 사람이 실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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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메건과 세레나의 결혼식 22.05.12 17 0 10쪽
21 메건의 답 22.05.11 13 0 10쪽
20 세레나의 청혼 22.05.08 17 0 9쪽
19 그리고 메건의 답장 22.05.07 18 0 9쪽
18 세레나의 진짜 답장 22.05.06 27 0 9쪽
17 세레나의 답 22.05.05 20 0 9쪽
16 메건의 고백 22.05.04 15 0 11쪽
15 세레나의 가족 22.05.01 23 0 11쪽
14 메건의 어떤 편지 22.04.30 18 0 10쪽
13 의문 22.04.29 19 0 1쪽
12 세레나의 어떤 편지 22.04.28 20 0 11쪽
11 메건의 손님들 22.04.27 19 0 11쪽
10 세레나의 옷에 대한 이야기 22.04.24 17 0 11쪽
9 메건이 갔던 결혼식 22.04.23 18 0 11쪽
8 세레나의 휴식 22.04.22 18 0 10쪽
» 메건의 일상 22.04.21 20 0 10쪽
6 세레나의 일상 22.04.20 23 0 10쪽
5 메건의 약방 22.04.17 20 0 11쪽
4 세레나의 의상실 22.04.16 19 0 9쪽
3 아르헨의 보석상 22.04.15 20 1 12쪽
2 그리고 답장 22.04.14 23 1 12쪽
1 어느 약초사의 편지 22.04.13 60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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