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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로레 님의 서재입니다.

두 여자의 편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루로레
작품등록일 :
2022.04.11 22:00
최근연재일 :
2022.05.12 18:0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443
추천수 :
3
글자수 :
98,796

작성
22.04.14 18:00
조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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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그리고 답장

DUMMY

메건에게


편지 잘 받았어요!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뻐요. 아르헨 할머니는 정말 좋으신 분이랍니다! 제가 어릴 때 놀러 가면 항상 반갑게 맞아 주셨어요.


아르헨 할머니의 보석상에서 하루를 다 보내는 날도 정말 많았고, 가끔 자고 가기도 했답니다? 그다음 날에 항상 어머니께 꾸중을 들었지만 말이에요. 아르헨 할머니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하신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아, 그 동네는 아직 변하지 않았군요! 어쩌면 영영 변하지 않는 게 아닐까요? 그곳에 있는 내 추억들도 여전한 것 같아서 기뻐요.


가끔 지나고 나서야 아름다워지는 기억들이 있다고 하던데, 내 기억은 기억 속 순간에도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거든요.


사탕 가게가 아직 남아 있군요! 어릴 적에는 그곳의 사탕을 정말 많이 먹었어요. 사 주시는 분은 주로 아르헨 할머니였고, 제가 받은 용돈을 모아서 사탕을 사 먹기도 했죠. 크림이 들어 있는 빨간 사탕을 가장 많이 먹었어요. 처음 사 먹은 사탕이 그 사탕이었거든요!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버터 향이 진하게 나는 사탕과 설탕에 조린 딸기 알갱이가 씹히는 초콜릿이었답니다?


버터 향이 나는 사탕은 다 먹은 후에도 버터 향이 감돌아서 맛있었고, 초콜릿은 영 안 어울릴 것 같은 딸기와 초콜릿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완전히 반했어요. 사탕한테 반했다니 좀 우스운가요? 하지만 정말 그런걸요!


누구나 홀딱 빠져버릴 만큼 좋아하는 게 있고, 그건 사람일 수도, 책일 수도, 장소일 수도 있잖아요? 제가 어릴 때는 그게 그 초콜릿이었던 거죠!


비싸서 많이 먹지는 못했고, 이제는 사탕이나 초콜릿보다 옷을 만드는 일을 더 좋아하지만요. 지금 제가 반해 있는 건 재봉 일이겠네요. 사탕 가게에 들러 보고 싶다면, 저는 감초 사탕을 추천해요! 그게 아마 메건의 입맛에 잘 맞을 거에요.


갈색 나무 간판에 금색으로 글씨가 쓰여 있는 사탕 가게를 찾아가세요. 그곳의 사탕 가게들은 이름이 다 비슷비슷해서 이름을 알려 주는 게 의미가 없거든요.


재미있지 않나요? 그래서 어릴 적에는 오늘 하루의 운을 시험해 보는 일을 사탕 가게에 들어가는 일로 했어요. 머릿속에 사탕 가게의 이름을 생각한 다음, 제가 들어간 곳이 제가 생각한 사탕 가게와 같은 곳이면 운이 좋은 거죠!


맞다, 집에 있을 때는 조심하세요. 어릴 적의 내가 망가뜨린 게 워낙 많아서요. 다 고쳤던 것 같긴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안락의자가 멀쩡하다니 반가운 이야기네요. 어릴 적에는 거의 언제나 그 안락의자에서 잠이 들어서, 누군가가 저를 침대로 옮겨 줘야 했죠.


그때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안락의자에서 자는 게 가장 편해요. 일을 하다기 시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의자에서 자는 게 절대 아니라고요! 의자 이름도 ‘안락’ 의자잖아요?


아르헨 할머니의 보석상도 아르헨 할머니만큼 유명했죠! 어릴 적에는 그곳에 있다 보면 신기한 보석들을 정말 많이 봤어요.


열 살 생일 때는 내 탄생석을 박아넣은 단검을 선물 받기도 했어요! 당신은 가끔 내가 만든 옷들에 달린 보석들을 보면서 이런 걸 어디서 구하냐고 했죠?


전부 아르헨 할머니의 보석상에서 받는 거랍니다! 거리가 멀다 보니 가끔 마차가 길을 잃거나,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좀 생기지만 그곳만큼 질 좋은 보석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아르헨 할머니는 젊을 때부터 보석상 일을 하셨거든요.


서점을 갈 거라면 아침에 가는 게 좋아요! 작은 마을이지만 서점이 가장 인기가 좋아서, 저녁에 가 보면 책이 거의 다 팔리고 없거든요. 그 서점은 하루에 한 번씩 도시에서 책을 들여오는데 절대로 스무 권 이상 들여오질 않는답니다.


어릴 적에는 그 서점에서 팔던 소설들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특히 동화를 말이에요. 까마귀의 도움으로 황제가 된 공주님 이야기랑 마녀와 약혼한 공주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죠. 거기 그려진 그림들이 특히 화려했거든요.


어릴 적부터 그런 그림들을 따라 그리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의상점을 차리고 재봉사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어릴 적의 기억에 영향을 많이 받았나 봐요.


내 소식을 전해달라고 했죠? 오늘은 귀여운 손님들을 봤어요. 자작이 아이 둘이랑 같이 오더라고요. 최근에 아이 둘을 거뒀다던 소문이 사실인가 봐요. 한 명은 은색 머리고, 한 명은 금색 머리인 여자아이 둘이었는데, 쌍둥이였어요.


동그란 머리랑 자작을 꼭 붙잡은 작은 손이 정말 귀여운 거 있죠! 자작이 둘을 정말 아끼는 것 같더라고요. 추천하는 의상을 그림으로 대충 그려서 세 개 정도 말했더니 돈은 상관없고, 최대한 따뜻하고 편하게 만들어서 최대한 빨리 세 개 전부 달래요. 자작은 소문대로 위압감이 엄청난 여자였는데, 자작한테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무조건 ‘네’ 하고 답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밤도 결국 못 잘 것 같아요! 메건,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요. 자작이 ‘최대한 빨리’라고 말하는 순간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메건도 봤어야 한다니까요?


지금은 의상을 고민 중이랍니다. 자작이 디자인은 별로 상관 없고, 일단 편하고 따뜻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쌍둥이니까 역시 비슷한 옷이 좋을까요?


소매와 코트 끝자락에 흰 털이 붙은, 금색 단추가 붙은 파란색 코트가 첫 번째로 떠오른 의상이에요. 아이보리색 옷 위에 마찬가지로 아이보리색의 두꺼운 케이프를 입어도 괜찮을 것 같고, 집에 있을 때는 긴 팔에 긴바지인 멜빵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일단 케이프를 만들기로 했는데, 디자인이 고민되네요. 검은색에 검은 리본을 붙이고 흰 털을 달지, 빨간색에 흰색으로 무늬를 넣고 끝에 흰 털을 달지, 아니면 겨울이니까 하늘색에 하얀 눈송이 무늬를 넣고 흰 털을 달지 생각 중이에요.


코트는 파란색에 금색 단추가 괜찮을까요? 최근에 꽃 모양 단추가 들어왔는데, 반짝이는 재질이라서 흰색에 꽃 모양 단추를 단 코트도 괜찮을 것 같지 않나요?


어차피 저희 의상실의 겨울용 천들은 전부 따뜻한 재질이고 아이들 옷에 쓰이는 건 무조건 움직이기 편한 천으로 분류해 놓았거든요.


디자인은 상관없다고 하지만 자작이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잖아요? 의상점을 나가면서 자작이 ‘그래도 다른 귀족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디자인’으로 부탁한다고 했거든요. 메건의 의견이 듣고 싶어요!


같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못 본 지 이틀째인데 벌써 얼굴이 보고 싶네요. 당신이 돌아오면 온종일이라도 같이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러고 싶고요. 그러고 보니 메건이 쓰는 글자에서는 메건 특유의 분위기가 녹아 있어서, 글자만 봐도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덕분에 편지가 더욱 반갑고요.


새벽에 계곡에 있었다고 했죠? 얇게 입고 앉아 있던 건 아니죠? 나도 어릴 적에 그러다 감기에 몇 번 걸렸거든요!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아 줘요.


내가 준 숄 가져갔죠? 가뜩이나 추워지는 중인 데다가 새벽 공기는 쌀쌀하니까 꼭 두르고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건강은 언제나 잘 챙겨야 하잖아요?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까 걱정이 더 많이 되네요! 예전부터 걱정이 많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건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라니까요. 그리고 당신도 나만큼 걱정이 많지 않나요?


아, 맞아요. 노을이 예쁘죠! 어릴 적, ‘하이디’를 읽고 노을이 지는 장면의 묘사를 보면서 오두막에서 보이는 노을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나요?


내 눈이 별을 닮았다고 말해 줘서 기뻐요! 지금은 이곳도 해가 졌고, 내가 여기서 보는 별을 메건도 지금 보고 있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별보다도 달이 멋지게 떴네요.


메건은 달을 닮은 걸 아나요? 언제나 단정하게 묶여 있는 머리카락이나, 당신이 차분히 말할 때의 모습이 멋지거든요. 반짝이는 말을 하면서도 결코 자만하지 않는 게 꼭 달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부끄러워 하던데, 메건은 이미 내 눈을 별 같다고 했으니까 괜찮을 테죠! 메건이랑 있으면 평소에 마음속에만 넣어 놓는 말들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메건이 내게 메건의 머릿속에만 있는 이야기를 해 주는 것도 좋고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른 아침을 우리 둘만 좋아해서, 같이 산책을 다니던 것처럼요!


이만 줄일게요. 아르헨 할머니께 안부 전해 주세요. 당신 편지를 읽으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말로 하는 이야기와 글로 하는 이야기는 또 다르니까요! 당신도 내 편지를 읽으면서 즐거웠나요? 대답은 다음 편지에서 들려줬으면 좋겠어요.


세레나가


"편지가 왔었네."


메건이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냈다. 그리고 이런 숲 속까지 찾아와 준 우편배달부의 노고에 잠깐 감사를 표했다. 세레나의 편지는 편지지가 사람과 꼭 닮아 있었다.


"이런 건 어디서 구했대?"


메건이 편지지를 들고 중얼거렸다. 은색 고양이 그림이 뒤편에 그려진 크림색 종이였다. 메건은 집에 들어가서 촛불부터 하나 더 켠 다음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읽히는데."


다정한 문장들로 꽉 찬 편지는 편지가 쓰였을 시간에 비해 너무 읽기 쉬웠다. 조금 더 빨리 세레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과 편지를 아껴 두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다.


"여기까지만 읽고 조금 뒤에 읽지, 뭐."


나중의 행복을 위해 세레나의 편지를 조금 뒤로 밀어 둔 메건이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바깥은 아직 새벽이었다. 지금 준비해서 나가면 해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도에서처럼 바리바리 안 입고 다녀도 되니까 좋네."


메건은 입고 있던 옷에 적당히 두꺼운 숄만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새벽의 서늘한 공기를 즐기기에 딱 좋은 차림이었다.


밖으로 나가면 우선 시냇물이 보였다. 바닥에 뭐가 있는지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한 물이었다. 근처에는 좋은 약초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그보다 조금 더 가면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덤불이 보였다. 겨울이 되어서 눈이 쌓인다고 해도 예쁠 게 분명했다.


조금 더 가면 숲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느긋하게 걸어와서 그런지 막 해가 뜨는 중이었다.

메건은 멈춰 서서 그 광경을 봤다. 검푸른 빛과 보랏빛이 섞여 있었던 하늘은 이제 주황빛과 노란빛이 섞여 있었다.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떠올랐다.


메건은 해가 완전히 떠오를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내 숲으로 돌아가면서 메건은 변하지 않을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변하지 않을 하늘. 변하지 않을 공간. 변하지 않을 사람.


세레나는 변할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세레나가 어떤 사람으로 변하더라도, 메건은 세레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맞아, 약초 정리해야 하는데."


느긋하게 걷던 메건이 달리기 시작했다. 가게를 본격적으로 열기 전에 말리고 썰고 정리해야 할 약초가 많았다. 게다가 숲 속에는 좋은 약초가 왜 이렇게 많은지.


'돈이 좀 필요하겠어.'


메건은 약초를 통에 담으면서 생각했다. 약방이야 이 오두막에 쉽게 열 수 있겠지만 약방을 열 때 필요한 준비물은 무조건 이 마을에서 사야 했다.


'앞에 있는 약초도 좀 캐야 하고.'


메건은 약초를 썰면서 다시 생각했다. 머릿속이 돈 계산으로 복잡한 와중에도 손을 알아서 움직였고, 입도 알아서 움직였다. 덕분에 약초 손질과 보존 마법 걸기는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마을에 잠깐 나가 봐야지.'


약초 손질을 끝낸 메건이 생각했다. 마침 아르헨으로부터 티타임 초대를 받은 참이었다. 그걸 빌미 삼아서 마을에 나간 다음 일자리를 좀 알아 볼 생각이었다. 창가에서 나무가 미처 막지 못한 햇살이 쏟아들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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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메건의 고백 22.05.04 15 0 11쪽
15 세레나의 가족 22.05.01 21 0 11쪽
14 메건의 어떤 편지 22.04.30 17 0 10쪽
13 의문 22.04.29 17 0 1쪽
12 세레나의 어떤 편지 22.04.28 19 0 11쪽
11 메건의 손님들 22.04.27 18 0 11쪽
10 세레나의 옷에 대한 이야기 22.04.24 17 0 11쪽
9 메건이 갔던 결혼식 22.04.23 17 0 11쪽
8 세레나의 휴식 22.04.22 18 0 10쪽
7 메건의 일상 22.04.21 18 0 10쪽
6 세레나의 일상 22.04.20 21 0 10쪽
5 메건의 약방 22.04.17 18 0 11쪽
4 세레나의 의상실 22.04.16 19 0 9쪽
3 아르헨의 보석상 22.04.15 20 1 12쪽
» 그리고 답장 22.04.14 21 1 12쪽
1 어느 약초사의 편지 22.04.13 5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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