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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6분

마왕 후보 때려칠 거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12시6분
작품등록일 :
2021.03.08 15:07
최근연재일 :
2021.03.26 18:00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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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5
글자수 :
101,332

작성
21.03.1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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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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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사람들 틈에서 3

DUMMY

“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그레이스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카를의 모습에서 모종의 이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레인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강렬한 결의가 그에게서 비쳐 보였다.


“음···. 약속한 게 있긴 해요.”

“무슨 약속?”

“제가 아빠한테 이기면 마을 밖으로 나갈 때 같이 데려가 주기로 했어요.”

“아···.”


그레이스는 그녀의 말에서 이유를 찾아냈다.

아이를 지키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마을 밖은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위험한 곳이다.

거기다 잘못 나가면 돌아올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니 가능한 내보내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에휴···. 아빠 혼자 보내면 남아서 기다리는 딸 마음은 생각도 안 해줘요.”


일레인은 그레이스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말도 틀린 건 없었다.

카를은 홀로 마을 밖을 돌아다녀야 했다.

가족이 위험에 빠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그녀도 괴로웠을 것이다.


“강해져야겠다.”

“그래요. 강해져야 돼요. 걱정도 안 될만큼 강해져야 아빠를 도울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레이스를 바라봤다.

똑바로 올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결연한 의지가 비쳐 보였다.


“아저씨, 저녁 먹기 전까지 시간 남는데 대련해주세요.”

“내가?”

“아침에 로시크 아저씨가 그랬어요. 검술이 뛰어나다고.”

“그거야 그렇지.”

“가르쳐 줘요.”

“음···.”


그레이스는 고민했다.

부모를 돕고 싶은 아이의 마음도 알고 있지만 아이를 지키고 싶은 부모의 마음 또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는 이 문제를 단순하게 돌파하기로 했다.

일레인을 강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카를이 걱정하는 일이 생길 수 없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압도적인 힘을 가지면 대부분의 문제가 사라지곤 했다.


“가르쳐주마. 대신 울면 안 된다.”

“예! 근데 뭐부터 해요?”

“대련으로 하는 쪽이 익숙하지?”

“그렇죠. 맨날 치고 받았으니까.”

“그럼 검술은 대련으로 하고 자유 시간에 마력 축적법을 배우는 걸로 하자.”

“축적법도 배워요?”

“지금 익히고 있는 방법은 마력을 쌓는 게 느려. 더 효율적으로 쌓는 방법을 가르쳐 줄게.”

“가, 감사합니다.”


일레인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것은 기회였다.

놓쳐선 안 될 기회.

효율 좋은 마력 축적법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도 배울 수 있을까 말까 한 기술이었다.

지금 그레이스는 그런 기술을 돈도 받지 않고 가르쳐 주겠다는 얘기였다.

그녀는 이 기회를 잡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카를이 가르쳐준 축적법은 문파의 비전이지만 효율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수련한 카를도 신체를 강화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아버지를 넘어설 기회였다.


그레이스는 열의에 불타는 일레인을 보고 슬쩍 미소를 지었다.


“바로 시작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저녁을 준비하던 카를과 로시크는 문을 열고 들어온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흙바닥에서 머리채를 잡고 싸운 듯한 몰골에 로시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카를은 곧바로 달려와 일레인을 붙들고 물었다.


“뭐야? 너희 싸웠어? 아니, 왜?”

“아냐, 아빠. 시간 남아서 우리끼리 대련했어.”

“검술 가르쳐 달라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카를의 눈이 일레인과 그레이스를 오갔다.


“아빠가 가르쳐 주는 걸로 안 될까?”

“아빠는 힘으로 찍어 누르기만 하잖아. 그레이스가 가르쳐 주는 검술이 더 잘 맞아.”


카를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았다.

저녁 식사가 끝나도록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식기를 놀릴 뿐이었다.


다음 날부터 카를은 노골적으로 그레이스를 거세게 몰아쳤다.

대련이 시작되자마자 일레인은 본체만체 한 채 그에게만 공세를 집중한 것이다.


‘삐졌네.’


누가 봐도 딸도둑에게 화풀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일레인이 적당히 하라며 카를에게 화를 낼 정도였다.


그의 심술이 그친 것은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일레인이 카를의 고집을 꺾을 만한 성과를 낸 덕분이었다.


“오, 오러?”


카를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일레인의 목검에서 일렁이는 마력은 분명 오러였다.

마력의 제어를 숙달하고 기술이 경지에 올랐을 때 다루게 된다는 오러가 그의 앞에 있었다.


“아빠, 이제 같이 가도 되는 거지?”

“어? 어, 어···.”


카를이 아무리 몸을 강화해도 아직 오러를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제는 그도 어쩔 수 없었다.

딸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아싸!”


일레인은 뛸 듯이 기뻐했다.

드디어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 그레이스, 넌 어쩔 테냐?”


카를은 그레이스의 의향을 물었다.

내심 같이 가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가죠.”


그는 순순히 답했다.

마을에서 수련만 하는 생활은 답답했다.

이제 밖을 보고 싶었다.


“좋아. 내일 나간다. 각자 준비들 해놔.”


카를은 기뻐하며 답했다.


*

*

*


저녁 식사가 끝나고 자신의 방에 들어온 그레이스는 상황을 점검했다.

무장은 마검 두 자루면 충분했다.

정확한 성능은 모르지만 그거야 써보면 될 일이니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여전히 마력이었다.

마법이나 오러를 사용할 여유가 없었다.

인간의 육신과는 다르게 마족의 육체는 마력의 친화도가 극단적으로 높다.

육체에 붙들린 마력을 움직이는 데는 엄청난 수고가 든다.

그래서 하급 마족들은 마력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고 육체가 강해지는 걸 목표로 삼는다.


지금 그레이스의 상태가 그러했다.

그레이스가 열심히 쌓은 마력은 육체에 붙들려서 신체 능력을 높이는데 사용된 것이다.

덕분에 카를은 그레이스가 신체 강화에 특출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살짝 자존심을 건드리는 오해였다.

마력이 강해지며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올라간 것이지 강화는 하지도 못했다.


그게 원인이 되어 로시크는 그를 더욱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마력에 예민한 그에게는 그레이스의 상태가 느껴지고 있었다.

마력량은 확실히 늘어났다.

그런데 일레인도 오러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신체 강화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로시크가 그를 주시할 뿐 뭔가를 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시선이 느껴지는 걸 빼면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그레이스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미미한 마력으로 효율적인 전투를 하기 위해 감지 능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적은 양의 마력을 넓게 퍼뜨려 그 영역 내의 움직임을 감지해내는 방법이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공격을 피할 수 있다면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마력을 쓸 필요가 없었다.


“식량은 카를 아저씨가 준비한다 했고···, 이제 자면 되겠다.”


침대에 누워서도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

마왕 후보란 건 뭔지.

미션을 달성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달성 보상은 어디서 나오는 지도.

이 마을이 어째서 갇혀 있는지도 누가 그를 여기 던져 놨는지도.

그의 의문에 답은 찾을 수 없었다.


*

*

*


똑똑.

살풋 잠이 들었던 그레이스는 눈을 떴다.

창 밖 저 멀리 동이 터오고 있었다.


“아직 출발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똑똑.

밖에 있는 사람은 재촉하듯 다시 문을 두드렸다.


“나가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답하고 문을 열었다.

꾸러미를 짊어진 엘프가 문 앞에 서있었다.


“깨웠냐?”

“네···.”

“들어가도 되냐?”

“예···.”


그레이스는 로시크를 안으로 들였다.

새벽부터 어쩐 일로 찾아온 건지 짚이는 데가 없었다.


방을 둘러본 로시크는 아무 말도 하지않고 테이블에 꾸러미를 풀어놓았다.

철그럭.

쇳소리가 울렸다.


“이거 주려고. 간신히 시간에 맞췄다.”


팔 보호대와 흉갑, 단단하게 덧댄 부츠였다.

새로 만들었는지 흠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그레이스는 감동한 표정으로 엘프를 바라봤다.

수상하게만 여긴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걸 준비해줄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다만 애도 가르치면서 훈련한다고 그렇게 노력했잖냐. 나도 할 수 있는 건 해줘야지. 이번엔 다치지 마라.”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는 장비를 갖춰 입었다.

치수를 재지도 않았는데 방어구는 몸에 딱 맞았다.

그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걸리는 부위도 없고 움직이기도 편했다.


“좋아. 괜찮네. 아침에 카를 일어나면 나 깨우지 말라 그래라. 이제 잘 거야.”

“예.”

“그래. 다녀와라.”


말을 마친 로시크는 방에서 나갔다.

그의 뒷모습이 어쩐지 크게 느껴졌다.


해가 조금 더 떠오르자 카를과 일레인이 일어났다.

그는 장비를 갖춘 그레이스를 보고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깨우지 말라고 했어?”

“네. 주무신대요.”

“너는 어떠냐? 제대로 잤어?”

“예. 잘 잤어요.”

“그래. 아침 먹고 출발하자.”


일레인은 긴장했는지 말이 없었다.

어제는 밖에 나간다며 신나 했지만 정작 앞에 닥치자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세 사람은 마을 입구에서 섰다.

이제 문을 열고 나가면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초원이 그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레이스는 살짝 고개를 돌려 일레인을 살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칼을 뽑을 듯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긴장이라도 풀어줄 겸 말을 걸었다.


“긴장했어?”

“네, 네?!? 아니, 어, 음···. 긴장했어요.”

“괜찮아. 밖에 별 거 없어.”

“그건 언덕에서 보이니까 아는데···. 뭐라 해야 할까요. 아저씨 업혀왔을 때 피범벅이었던 게 너무 충격이라···.”

“아···.”


그레이스도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다.

멍청하게 당한 그의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럴 일 없을 거야.”

“진짜죠? 약속해요.”

“약속할게.”


끼기기긱.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문이 열렸다.

굳건한 문 틈으로 푸른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원의 색이었다.


“자, 가자.”


목책에 올라 문을 연 카를이 내려왔다.

그의 뒤를 따라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고작 몇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공기가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레이스는 뒤를 돌아봤다.

뭔가가 마을 입구에서 그들에게 손짓하는 듯 했다.

카를은 그레이스의 반응을 보고 솔직하게 칭찬했다.


“야···. 감이 좋네. 로시크의 정령이야. 마을에 결계를 쳐서 몬스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어. 대신 로시크도 나올 수 없지만.”


그레이스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건넸다.

정령이 미소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왕인데도 친절하게 대해주네?’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마족과 정령은 사이가 나빠 얼굴을 마주치면 싸우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이상한 일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걷다가 카를이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 감이 좋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아빠, 그거?”

“그래, 그거.”

“그게 그건가요?”


그레이스는 두 사람이 말하는 것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짐작은 가능했다.


“뭔지 알겠어?”

“짐작이지만요. 나가는 길을 찾으려는 거 아닌가요?”


카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레이스는 짐작이라고 했지만 거의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그래. 경계에 가까워지면 특유의 감각이 느껴지거든. 지난 몇 년간 그걸 이용해 나가는 길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찾지 못했어. 내 감지 능력은 그렇게 예민하질 못 하거든. 로시크의 정령도 느끼지 못해. 그가 얘기해준 다음에야 알았지.”

“아빠, 그래서?”

“그레이스라면 경계의 형태를 명확하게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나라면 전부 막혀 있다고 느끼는 곳도 저 친구라면 혹시나 있을지 모를 틈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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