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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6분

마왕 후보 때려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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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12시6분
작품등록일 :
2021.03.08 15:07
최근연재일 :
2021.03.26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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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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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마을 밖으로 3

DUMMY

답답했다.

대화가 헛돌고 있었다.

한 번 제대로 설명해야 할 모양이었다.

그레이스는 잠시 카를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잡는다 쳐도 장비를 다 가져 오려면···.”

“아저씨, 잠깐만요.”

“왜?”

“방법이 있어요.”

“무슨 방법?”

“오크 마을에 있는 녀석들을 제 마력으로 바꿀 방법이요. 이거 기억하시죠?”


그레이스는 그렇게 말하며 붉은 칼집을 보여줬다.

카를도 익히 기억하는 물건이었다.

아직도 저 칼이 박혀있던 모습이 생생했다.


침대 위에 꽂힌 핏빛의 칼날.

그럼에도 새하얀 시트와 침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카를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래. 기억하지. 그게 왜?”

“피를 빨아들여서 마력을 늘려주더라고요. 오크 마을이면 단숨에 대량의 마력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카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위험한 방법이었다.


“그레이스, 내가 아는 게 많지는 않다만 그런 방법이 좋은 결과를 낳지 못 한다는 건 알고 있다.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구나. 어떤 마검에 관한 이야기다.”


그레이스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말을 들었다.

이런 옛날 이야기에 쓸만한 물건에 관한 정보가 숨어있기도 하는 것이다.

잔소리여도 들어두는 게 좋았다.


“흡혈귀의 왕이 사용했던 강력한 마검이 있었다. 그게 그런 검이었어. 죽인 상대의 피와 영혼을 흡수해 주인을 강하게 만드는 검.”

“좋은 거 아닌가요?”


그레이스는 카를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단숨에 이해했다.

하지만 그걸 드러내진 않았다.

그레이스의 정체로 이어지는 단서가 될 수 있었다.

걱정을 끼치더라도 그것만은 밝혀져선 안 됐다.


카를은 그런 속내를 눈치채지 못 하고 그레이스의 말에 답했다.


“강해지는 거야 좋은 일이지. 하지만 주인들은 하나같이 미쳐버렸다. 그 수준에 도달한 사람치곤 정신이 너무 쉽게 무너져 버렸어.”

“아니···, 어째서요?”

“영혼이지. 무수한 영혼이 뒤섞이면서 정신을 파괴한 거야. 극한까지 스스로를 단련한 사람도 버틸 수 없었다고 하더구나. 나는 네가 그리 되지 않았으면 한다.”

“······.”


그레이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러가지 마법을 섭렵한 그이기에 카를이 말하는 걸 더욱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인간들의 문제였다.

마왕인 그레이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정체를 들키지 않고 카를을 납득시킬 방법이 없을까 생각에 잠긴 것이다.

마검의 힘으로 마력을 늘리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기도 뭣했다.

어차피 나가면 카를이 보지 못 하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이내 포기했다.

카를의 성격 상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알아내려고 할 것이다.

잔소리가 늘어나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알았어요.”


그레이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답했다.


그는 방침을 조금 달리했다.

카를에게 걸리지 않게 조금씩 갉아나가는 방향으로.

걸리는 시간이 늘어날 뿐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약속했다?”


카를은 의심스러워하는 눈초리였다.

그레이스가 제멋대로 사고를 저지르지는 않을지 내심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네.”


그레이스는 퉁명스레 답하고 카를의 방에서 나왔다.

지나치게 빡빡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에서 빠져나간 다음의 일을 생각하면 그에게 맞춰줘야 했다.

언젠가 인간의 사회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카를은 그레이스의 신원 보증인이 되어줘야 했다.


여관 밖으로 나오자 서늘한 공기가 그레이스를 감쌌다.

사람 없는 마을은 고요했다.

그는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낮에 늘어놨던 장비들은 보이지 않았다.

로시크가 치운 모양이었다.


“쿡쿡.”


혼자 낑낑대며 물건들을 옮겼을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언덕 위를 바라보자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게 보였다.

로시크는 한창 장비들을 만지는 중인 듯 했다.


그레이스는 광장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카를이 빡빡한 덕분에 쓸데없는 수고가 늘었다.

제대로 속여 넘기려면 이렇게 마력을 축적하는 티를 내둬야 했다.

그의 몸으로 마력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

*

*


며칠이 지났다.

그레이스는 지난 번에 움직였던 것과 똑같이 움직였다.

같은 능선을 탄 것이다.

하지만 오크는 만날 수 없었다.


“설마 이주했나?”


그는 걸음을 서둘렀다.

아직 한 번도 털지 못한 주둔지였다.

안정적인 마력 공급원을 놓칠 수는 없었다.


서두른 덕에 이번에는 해가 지기 전에 능선에서 내려왔다.

하천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도에는 나와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레이스는 속도를 높였다.

그의 발이 땅을 박찰 때마다 땅가죽이 터져나갔다.

탓! 탓! 탓! 쾅!

한껏 도움닫기를 한 그의 몸이 하천 위를 날았다.


“응?”


챙!

그레이스는 급히 검을 뽑아들어 날아드는 창을 쳐냈다.

땅에 내려앉은 그는 고개를 들어 창을 던진 상대를 확인했다.

오크들이었다.


이번에는 수십 마리가 무리를 이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번 마을을 나간 사냥꾼들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인 듯 했다.

따로 다니는 사냥꾼들이 하루 아침에 전부 사라졌으니 그에 따른 긴급조치를 취한 모양이다.


그레이스에게는 감사한 이야기였다.

마을까지 쳐들어 갈 필요도 없게 마중까지 나와준 것이다.

그는 검을 겨눴다.


“크륵.”

“크륵크륵.”


그레이스를 보고 오크들은 뭔가를 의논하는가 싶더니 무기를 겨눴다.

싸우려는 태세였다.

혼자 있다고 얕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강렬한 마력이 그레이스의 몸을 타고 흘렀다.

그가 달려들었다.

오크들은 무기를 들어 그레이스의 검을 막으려 했다.

썽둥!

새카만 칼날이 오크의 도끼를 베어냈다.

겁에 질린 오크는 무기를 버리고 몸을 돌렸다.

도망치려는 것이다.

그레이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서걱!

붉은 섬광이 베고 지나가자 오크의 몸에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크롸아아아!”


그 순간을 노려 오크 하나가 함성을 지르며 창을 찔러들어왔다.

그레이스는 살짝 머리를 젖혔다.

창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휘두른 검이 창을 쥐고 있던 오크의 팔을 잘라냈다.


“크어어어!”


오크는 고통에 울부짖었다.

그레이스는 팔이 잘린 오크를 내버려 두고 몸을 최대한 낮췄다.

훙!

몽둥이가 그의 몸이 있던 곳을 가르고 지나갔다.

전력으로 몽둥이를 휘두른 오크의 빈틈이 드러났다.

그레이스는 곧바로 양손에 든 검을 찔러넣었다.

푹!

두 자루의 검이 오크의 몸에 박혔다.


“으야아아아!”


그레이스는 오크의 몸을 그대로 내던졌다.

그를 향해 칼을 찔러넣던 오크가 그것에 얻어맞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넘어진 오크의 목에 그레이스의 검이 꽂혔다.


“후우···.”


그레이스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남은 오크들은 주춤거리며 그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크루룩?”

“크루으으···. 크뤄, 억.”

“도망가긴 어딜 도망간다 그래. 마을 지키러 나왔으면 죽을 각오는 하고 나온 거 아냐. 목숨 걸고 싸워야지.”

“크뤅?”


그레이스가 오크들의 속삭임에 끼어들었다.

오크들은 크게 당황했다.

인간이 오크의 말을 알아들을리 없었다.


“크롸아?”

“어떻게 알아듣긴. 알아들으니까 얘기하지. 그래서, 도망갈 거야? 그러면 내가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 거 같아?”

“크루루루···.”

“그치? 도망가면 너희만 살겠지? 여기서 날 쓰러뜨리지 않으면 너희 애들이 너희보다 먼저 죽는 게 보이지?”


그레이스의 말은 오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저열한 협박이지만 몬스터들의 감정을 건드리기는 충분했다.

분노한 오크들에게 그가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새끼들을 해치려는 잔혹한 인간일 뿐이었다.


“크와아아아아아!”


잔뜩 화가 난 그들의 포효에 그레이스는 미소지었다.

오크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덤벼야 신체 강화를 연습할 상대로 적합한 것이다.

그는 마력의 출력을 높였다.

그레이스의 몸에서 희미하게 마력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아이···.”


덩어리 때문에 출력이 일정 이상 끌어올려지질 않았다.

짜증이 난 그는 가장 앞에서 달려드는 오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철퍼덕.

세로로 쪼개진 오크의 몸이 바닥에 늘어졌다.


가볍게 발목을 걷어차자 오크의 다리가 부러졌다.

검을 휘두르면 사지와 이별한 몸들이 땅을 굴렀다.

검의 손잡이로 오크의 머리를 내리치면 부서진 두개골 사이로 내용물이 흘러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서있는 것은 그레이스 혼자가 되었다.

약하다.

마력을 수확할 뿐이라지만 오크들은 너무 약했다.

조금 더 강한 몬스터를 찾아야 하는 건가 고민하며 그는 작업을 시작했다.

사방에 깔린 오크들의 시체를 헤집어 마석을 꺼내야 했다.


첨벙첨벙.

그레이스는 강물에 피를 씻어내며 마석의 수를 셌다.


“32개···.”


카를의 여관에서 쓰는 마석의 양이라고 해봐야 1주일에 1개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마석들을 보니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10개만 남기자.”


마음을 굳힌 그레이스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마을까지는 먼 길이다.

마석을 손에 들고 천천히 흡수하며 걸으면 도착하기 전에 작업이 끝날 듯 했다.


그는 아공간 구석에 10개의 마석을 따로 보관하고 하나를 오른손에 쥐었다.

마력이 부족했다면 시도조차 해보지 못할 일이었다.

머리 둘 달린 오크의 마석을 삼키다 사고가 있긴 했지만 마력량은 확실하게 늘었다.

수치로 표현하자면 20이 될까 말까 하던 것이 100을 넘겼으니.


100은 그레이스가 신체 강화와 기초적인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기준으로 잡아놓은 수치였다.

문제가 되는 건 마력의 운용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체 강화보다 정교한 마력 운용이 필요한 마법은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발동에 실패했다.


“고작 덩어리 못 녹여서 못 쓰는 게 제일 뭣 같은 일이지만···.”


작업은 순조로웠다.

각인이 있는 왼손으로 마력을 흡수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작은 마석이라 마력의 양이 적기 때문인 듯 했다.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한 그레이스는 양손에 마석을 하나씩 쥐고 걸었다.

두 손에서 흘러드는 마력에서 청량감이 느껴졌다.


얼마쯤 걷다보면 마력을 모두 잃은 마석은 투명해져 있었다.

그레이스는 그 자리에 투명한 마석을 버리고 새 마석을 꺼내 쥐었다.

버려둔 마석은 다른 몬스터들이 성장하기 위한 양분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성장한 몬스터를 잡으면 더 많은 마력을 얻을 수 있다.


‘거기 쌓여있던 것도 다 가지고 나와서 뿌릴까?’


괜찮은 생각인 듯 했다.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 중에는 마석에 마력을 채울 사람이 없었다.

카를이 마을에 남아있게 됐지만 그는 일레인을 훈련시켜야 했다.

매일같이 훈련으로 구르는 일레인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로시크는 마을을 지키면서 장비를 손질하는 일도 해야했다.

결국 빈 마석들은 쓸데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카를이 없는 틈을 타 창고로 숨어들었다.

카를에게는 알리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레이스가 해온 일들과 하려는 일들은 인간이 봤을 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마검을 사용하거나 마석의 마력을 직접 흡수하는 건 마물들이나 하는 짓이니.


정체를 알려도 상관 없다면 이렇게 몰래 일을 저지를 필요도 없었다.

힘이 없는 마왕은 이렇게 비참한 존재인 것이다.


지구에서 처음 마계에 떨어졌던 때가 생각났다.

항상 전전긍긍하며 숨어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그가 가진 힘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 정체가 들통나기라도 하면 그레이스는 항상 목숨의 위협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이 마을에 있는 이들이 선하고 믿을만한 이들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정체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정체는 존재만으로도 생명의 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니까.

그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본다면 견디지 못할 거 같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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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5년만에 (완) 21.03.26 55 2 8쪽
19 수도를 향해 4 21.03.25 40 0 11쪽
18 수도를 향해 3 21.03.24 41 0 11쪽
17 수도를 향해 2 21.03.23 45 0 11쪽
16 수도를 향해 1 21.03.22 43 0 12쪽
15 밖으로 2 21.03.21 44 0 11쪽
14 밖으로 1 21.03.20 45 0 11쪽
13 사냥의 시간 2 21.03.19 49 0 11쪽
12 사냥의 시간 1 21.03.18 48 0 11쪽
11 부하? 갑자기? 2 21.03.17 50 0 11쪽
10 부하? 갑자기? 1 21.03.16 52 0 12쪽
9 마을 밖으로 4 21.03.15 44 0 11쪽
» 마을 밖으로 3 21.03.15 78 0 12쪽
7 마을 밖으로 2 21.03.14 55 0 11쪽
6 마을 밖으로 1 21.03.13 53 0 11쪽
5 사람들 틈에서 4 21.03.12 53 0 11쪽
4 사람들 틈에서 3 21.03.11 68 0 12쪽
3 사람들 틈에서 2 21.03.10 69 0 11쪽
2 사람들 틈에서 1 21.03.09 87 0 11쪽
1 내가 후보라고? +2 21.03.08 20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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