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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6분

마왕 후보 때려칠 거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12시6분
작품등록일 :
2021.03.08 15:07
최근연재일 :
2021.03.26 18:00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1,220
추천수 :
5
글자수 :
101,332

작성
21.03.0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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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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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사람들 틈에서 1

DUMMY

“그런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지위도 있었던 모양인데 저주를 풀 수는 없었나?”


카를의 관심은 저주에 쏠려 있었다.

덕분에 그레이스는 자신의 신분을 위장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한 건가?”

“······.”


그레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씁쓸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카를은 그의 얼굴에서 삶을 포기할 정도로 몰려있던 젊은이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참을 수 없었다.

사람이 쉽게 죽는 시대라지만 목숨이란 게 버려질 만큼 가벼워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어떻게든 살아가게 해주고 싶었다.


“자네, 내게 일 배워볼 생각 없나?”

“일이요?”

“그래. 전사의 일을 가르쳐 주겠네. 몸에 칼이 박혀서 문제라면 박히지 않을 만큼 단단해지면 될 일이야.”

“단단해져요?”

“자, 여기 한 번 때려봐. 그럼 바로 이해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카를은 팔뚝을 내밀었다.

그레이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의 팔을 때렸다.

딱!

바위를 때린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레이스는 손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


“아으···.”

“어때? 굉장하지? 철골이라는 기술인데 몸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방어력은 높이는 거야. 우리 문파의 비전이지만 자네에게 특별히 가르쳐 주지.”

“제자가 되라는 얘긴가요?”

“제자까진 되지 않아도 괜찮아. 다만 살아줬으면 할 뿐이야.”


이상한 소리였다.

제자도 아닌 사람에게 비전을 전하는 것은 어느 문파라도 금기로 여겨지는 일이었다.

비전은 밖으로 전하지 않기에 비전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그레이스는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죠?”

“얘기하자면 길다만···. 뭐, 손님도 없으니 괜찮겠지.”


카를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종말의 평원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아뇨.”

“그렇겠지. 제국에서 금역으로 지정한 곳이니. 이 여관도 옛날에는 모험가들로 붐비던 곳이었어. 아침 해가 뜨면 우르르 몰려나가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저녁이 되면 돌아와 술을 부어 넣는 녀석들로 북적거렸지. 나랑 애 엄마는 요리하고 술 내주느라 바쁘고, 딸내미도 그 조그만 손으로 열심히 도와주고. 행복한 일상이었어. 항상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잘못이었어.”

“무슨 일이 있었나요?”

“있었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중이고. 아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걸까?”


카를의 반응이 격해졌다.

그가 얘기하려는 것과 관련해 뭔가 큰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처음이었어. 사냥을 나간 모험가 파티 하나가 사라졌던 일. 다들 이곳을 떠난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길드에서 그들의 신호가 끊겼으니 찾아보라는 의뢰를 낸 거야. 시체라도 수습해 주겠다며 녀석들과 친하던 파티가 또 평원으로 나갔는데 그 녀석들도 사라졌어.”

“그 다음엔···.”

“그래. 또 신호가 끊겼다. 그때서야 여기 머무르던 녀석들도 이상한 걸 느꼈지. 강한 몬스터도 없는 동네에서 숙련된 모험가 파티가 둘이나 사라진 거야.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 그래서 애 엄마가 나섰어.”

“사모님이요?”

“굉장한 여자였거든. 마력이면 마력. 검술이면 검술. 어느 모로 보나 강력한 기사였어. 그녀는 남은 녀석들을 데리고 평원으로 나갔다. 그런데···.”


카를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돌아오지 않았군요.”

“그래. 나랑 애만 내버려 두고 사라져 버렸어. 저기 평원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거야. 돌아보니 이 큰 여관에 딸과 나뿐이었어. 어떻게든 살아보니 살아지긴 하더라만 지금도 사람이 넘치던 시절이 생각나. 모두가 있던 그때가 말야.”

“······.”


그레이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카를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으나 그 말에 담긴 무게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술을 가르쳐 주려는 거야. 살아달라고. 그들을 구하지 못한 내 자기만족일지도 모르겠네만 죽지 말아주게.”

“알았어요. 배울게요.”


다른 답은 나올 수 없었다.

카를의 말대로면 이곳은 어떠한 이유로 갇힌 공간이었다.

탈출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나가지 못한다.

그때까지 아저씨의 자기만족에 어울리는 정도는 해도 괜찮을 듯 했다.


그의 대답에 카를은 뛸 듯이 기뻐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뭐가 그렇게 고마운지 카를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레이스는 멋쩍은 미소로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외로운 마왕에게 고맙다는 말은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런 날이면 한 잔 해야지!”


카를은 곧바로 뛰어들어가 술병을 꺼내왔다.

그때였다.


“술!”


여관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레이스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마력이 부족하다는 게 이렇게 불편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

공간을 장악할 마력량이 되지 않아 감지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 가까이 와도 알아차릴 수 없다는 불안감이 그의 마음 속에 피어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엘프였다.

불과 철의 냄새가 나는 그는 그레이스를 곁눈질로 훑어보고는 옆자리에 앉았다.

카를은 그를 보며 한 마디했다.


“나 참···. 술 꺼내는 건 어떻게 알고 놓치질 않아.”

“알람 마법 걸어놨지.”

“우리 창고에 네가 왜 마법을 걸어놔!”

“네가 술 관리한다고 안 꺼내 주니까 그러지!”

“한 달에 한 번 물건 들어오는데 냅두면 첫 날부터 다 쳐먹잖아!”

“쯧!”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엘프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레이스를 붙들고 늘어졌다.


“너, 이름이 뭐냐?”

“그레이스.”

“로시크다. 칼집 만들어 놨으니까 와서 챙겨가.”

“칼집?”

“네 배때지에 박혔던 것들. 덜렁덜렁 들고 다닐 수도 없잖냐.”


그레이스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카를에게 물었다.


“저 자는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 그게···. 음. 그랬었지. 문 열고 들어갔더니 칼이 박혀있더라고.”


옆에서 듣고 있던 로시크가 한 마디 거들었다.


“그때 난리도 아니었어. 야, 아무도 안 들어간 방에 있던 환자가 배에 칼을 맞는 게 말이나 되냐? 거기다 보통 칼도 아니고 마검이야. 카를 저 놈은 마법적인 건 영 꽝이라 대처도 못하고. 어우. 고생이었어.”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됐어. 여기 갇히고 오랜만에 일거리 생겨서 잘 놀았다.”


로시크는 재밌다는 듯 낄낄댔다.


몇 순배의 술잔이 돌고 몇 병의 술병이 비워졌다.

카를과 로시크는 새로운 사람이 반가운지 이야기가 멈추지 않았다.

마을에 남은 사람이 두 사람과 카를의 딸뿐이었으니 쓸쓸했던 것이다.

그레이스는 잔을 홀짝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로시크가 저주에 관해 물었다.


“근데 말이다. 너 그거 저주는 어떻게 된 거냐? 어쩌다 그런 저주에 걸렸어?”

“모르겠어요. 어느새 그렇게 되어있더라고요.”

“저 정도 마검 날려보낼 정도면 보통 놈은 아닌 거 같은데 너도 된통 걸렸구나.”

“거 애한테 너무 그러지 마요.”


카를은 로시크의 말을 적당히 가로막았다.

나쁜 엘프는 아니지만 술이 들어가면 말을 좀 막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주 때문에 자다가 칼 맞는 애를 놀리기까지 하는 게 껄끄럽게 느껴진 것이다.


그레이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튼튼한 육체가 그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었다.


“에이, 재미없는 놈들. 마실 만큼 마셨으니 이제 간다.”


로시크는 삐졌는지 자리를 떠났다.

그레이스는 달래주기라도 해야하나 했지만 카를이 막았다.


“저 아저씨 맨날 저러니까 신경 안 써도 돼. 내일 술 깨면 칼이나 찾으러 가라.”

“아···. 네.”


그레이스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여관을 나왔다.

로시크에게 칼을 받으러 가기 위해서였다.

마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레이스의 성만큼이나 쓸쓸했다.


그레이스는 높게 자란 풀을 헤치며 가까운 집에 다가갔다.

문이 부서져 있었다.

그는 고개를 기울여 부서진 문 틈 사이를 들여다 봤다.

생각 외로 세간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카를 아저씨···.’


필요한 물건을 꺼내 가면서도 외관은 정리해 준 모양이었다.

마을 사람들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표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해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소녀가 보였다.

그레이스가 깨어날 때 곁에 있던 그녀였다.


“문이 부서져 있길래 들여다 봤어.”

“그렇구나.”

“카를 아저씨 딸이었지? 이름이 뭐니?”

“일레인. 아저씨는?”

“그레이스.”

“흠···. 그냥 아저씨라고 할게요.”

“그래라. 그럼. 그나저나 나 돌봐 줬다면서? 고마워.”

“뭐 됐어요. 별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녀의 눈 밑에는 짙은 피로감이 남아있었다.

그레이스는 쓰게 웃었다.


“로시크 아저씨네 가요?”

“응. 칼 받으러 가기로 해서.”

“아···. 저주.”

“그래. 그 저주.”


그녀는 그레이스 옆에 따라 붙었다.

로시크의 집까지 말상대라도 해주려는 모양이었다.


“아저씬 어쩌다 여기 왔어요?”

“어쩌다 보니 와있더라.”

“얘기하기 싫구나?”

“아니, 진짜 몰라. 정신차려보니 여기 들어와 있었어.”

“그런가? 하긴 들어오는 방법 알면 우리도 벌써 나갔겠네.”


그레이스는 그녀의 말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들어오지 못한다는 듯한 말.


“못 들어와? 물건 들어온다는 건?”

“그거는 전송 마법으로 보내주는 거예요. 아빠가 매주 여기 상황 조사한 보고서 보내주는 대신이죠.”

“조사는 어떻게 하는 거야?”

“저는 안 데려가니까 잘 모르지만···. 근처까지 가면서 둘레를 따라 도나 봐요. 아저씨도 그거 하러 나가서 찾아왔어요.”

“그렇구나.”

“멀리 나가면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 한대요. 거기가 경계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상한 느낌이라면 어떤 느낌이래?”

“자세하게는 얘기 안 해주셨어요. 근데 그 얘기할 때 아빠 표정이 묘했어요. 그런 표정 알아요? 얼굴에서 모든 게 지워진 듯한 표정?”


짐작도 가지 않았다.

대체 어떤 표정이었길래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모르겠어.”

“아무튼 그런 표정이었어요. 아, 거기 말고 이쪽이요. 거기 불 켜진 건물은 아저씨 작업장이고 집은 좀 더 가야 해요.”

“저기?”

“네. 저어어기요.”


일레인은 손을 뻗어 방향을 가리켰다.

그레이스는 몸을 살짝 숙여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작은 집이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자 그들 뒤로 마을의 전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음침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해가 잘 비치는 마을이라 색이 선명했다.


“그림 같네.”


그레이스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몇 가지 색만으로 그려낸 듯한 그림이 떠오르는 마을이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일레인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머쓱해진 그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일레인은 싱글싱글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언덕을 올라 집 앞에 서자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로시크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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