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12시 6분

마왕 후보 때려칠 거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12시6분
작품등록일 :
2021.03.08 15:07
최근연재일 :
2021.03.26 18:00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1,216
추천수 :
5
글자수 :
101,332

작성
21.03.10 16:22
조회
68
추천
0
글자
11쪽

사람들 틈에서 2

DUMMY

두 사람을 본 로시크는 퉁명스레 말했다.


“왔냐? 귀찮은 꼬맹이도 같이 왔어.”


그런 반응에도 일레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저씨, 안녕!”

“안녕 못 해.”


짜증스레 답한 그는 집으로 들어갔다.


“문 열어놓고 들어갔으니까 따라 들어오란 소리예요.”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한 사이다.

일레인은 어렵지 않게 로시크의 의도를 읽어냈다.

두 사람은 엘프의 집으로 들어갔다.


“와아···.”


그레이스의 입에서 미묘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전사의 무덤 같은 집이었다.

온갖 갑옷과 활, 창, 검, 도끼 등의 무기가 늘어서 있어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은 방 한 구석에 불과했다.


“이게 다 뭐예요?”


로시크는 그레이스의 질문에 한숨을 푹 내쉬고 답했다.


“없어진 놈들 물건이야. 카를의 여관에 쌓여 있던 걸 여기로 옮겨왔지.”

“유품이군요.”

“유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난 그냥 이 재료들이 버려지는 게 아까웠을 뿐이야. 네 칼집도 이것들 써서 만들었어.”


그렇게 말하며 로시크는 구석에 있던 검 두 자루를 집어 들었다.

붉은 칼집에 든 롱소드와 검은 칼집에 든 롱소드.

선혈의 달과 밤의 형식이었다.


“자, 받아. 일단 빨간 놈이 처음에 너한테 박힌 녀석. 피를 흡수하는 모양이더라. 까만 녀석은 무슨 힘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


그레이스는 로시크가 건넨 검들을 받아 들었다.


“뽑아봐.”


그 말과 함께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처럼 붉은 칼날과 밤처럼 새카만 칼날이었다.

그레이스는 검을 가볍게 쥐었다.


“잘 만든 검이네요. 길이도 적당하고 무게도 적당하고.”

“그래. 균형도 잘 맞지. 좋은 검이야. 저주나 걸자고 쓰기에는 과한 물건이지.”


그렇게 말하는 로시크의 눈이 그레이스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고 묻는 듯한 눈빛에 그레이스는 눈을 피했다.

로시크는 캐물을 생각까진 없었던 모양이었는지 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휘둘러 볼 테냐?”

“네.”


그레이스는 밖으로 나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검날이 바람을 가르며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묘한 놈이야···.”


로시크는 그레이스를 바라보다 혼잣말을 내뱉었다.

검을 잡은 자세부터 휘두르는 동작까지.

그레이스는 완성된 검사였다.


“그런데 마력은 지나치게 적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요 며칠 지켜본 걸로는 딱히 짚이는 것이 없었다.

그가 보기에 그레이스는 오러를 다뤄낼 정도로 완성된 검사로 보였다.

규칙적인 걸음걸이와 절제된 움직임, 호흡까지도 틈이 없었다.

하지만 마력만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가지고 있던 마력을 잃었다고 봐야할 정도로.


“저주 때문인가?”


짐작 가는 건 그 정도 밖에 없었다.

마력을 잃고 저주에 목숨을 위협받는다면 삶을 포기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괜찮네요. 저주라도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괜찮은 모양이에요.”

“저주 걸려있었으면 내가 봉인하고 안 내줬을 거다. 쓸 거냐?”

“써야죠. 이거 때문에 죽을 뻔 했는데 그 값은 해줘야 화가 풀릴 거 같아요.”


되바라진 말에 로시크는 낄낄 웃었다.

수상하지만 재밌는 녀석이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일레인도 함께 낄낄거렸다.


“낄낄낄낄.”


따콩!


“어른 흉내내면서 놀리는 거 아니야.”


일레인은 머리를 감싸 쥐고 로시크를 째려봤다.


*

*

*


세 사람은 언덕을 내려와 여관으로 향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연기가 보였다.


“로시크 님도 같이 드시게요?”

“원래 밥은 다 같이 먹었어. 난 요리 못하거든.”

“전에 로시크 아저씨 요리 먹어보고 그 다음부터 시키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시끄러, 꼬맹이.”

“저도 이제 다 컸는데?”

“맞먹으려면 몇백 년은 더 살고 와라.”

“칫, 맨날 나이로 찍어 눌러.”


일레인과 로시크는 항상 이렇게 투닥거린 모양이었다.

말을 툭툭 주고 받는데도 정이 흘러 넘쳤다.


“빨리 와서 밥들 먹어.”


어느새 세 사람은 여관 앞에 와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카를이 재촉했다.

그 와중에 그의 시선은 그레이스가 허리에 찬 검에 꽂혀있었다.


식사를 끝내자마자 카를은 그레이스와 일레인을 끌고 나왔다.


“바로 가르쳐 주시게요?”

“그래. 빨리 가르쳐야 나갈 때 같이 나가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건 네 상태다.”

“마력 없는 거요?”

“그래. 모자라도 너무 모자라. 신체를 강화하는 거조차 힘든 수준이잖아.”

“그렇죠.”

“그러니 마력 축적부터 시작할 거다. 마력 축적법 배운 적 있지?”

“있죠.”

“우선 일레인과 함께 마력을 모아라. 얘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해서 아직 마력을 모아야 하는 단계야. 오전 시간은 전부 마력을 축적하는데 쓰고 점심 이후에는 대련. 저녁은 자유 시간이다.”


그레이스는 일레인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항상 하던 일이어서 그런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시작들 해라.”


카를은 두 사람이 집중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웠다.

일레인은 곧바로 자리에 앉아 마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레이스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마력을 모으는 것은 지루한 작업이었다.

전신으로 마력을 끌어들여 체내를 마력으로 가득 채우려면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었다.


‘효율이 나빠.’


마계의 방식은 마력을 가진 생물을 쓰러뜨리고 잡아먹어 마력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 방법을 쓸 수도 없으니 평범하게 쌓아나가야 했다.


‘그거라도 써볼까.’


먼 옛날 마계에 흘러 들어왔던 무인에게 얻어낸 축적법.

마력을 쌓는 속도는 느리지만 쌓다 보면 마력을 느끼는 힘이 강해지는 특이한 축적법이었다.


마음을 정한 그레이스는 자리에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대기를 흐르는 마력이 느껴졌다.

그레이스의 의지가 마력에 닿았다.

텅 빈 몸으로 마력이 흘러 들기 시작했다.

거세게 흘러 들어온 마력이 전신을 내달렸다.

그레이스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은 그가 알고 있던 몸이 아니었다.

키나 근골을 그대로일텐데 마력을 처음 받아들이는 듯한 상태였다.


‘진짜 내 몸 맞나? 이런 게?’


그레이스는 인상을 한껏 찌푸려 가며 마력을 흡수했다.

그저 지루한 작업이라 생각했던 것이 고되기까지 한 일이 되어버렸다.

하루 이틀 만에 끝내 버리려는 계획이 파탄나 버렸다.


눈을 떠보니 해가 머리 꼭대기에 떠있었다.

점심 때였다.


쌓인 마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동안은 자유 시간도 없이 마력을 쌓아야 할 모양이었다.

마계에는 먹은 식량도 마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녀석이 있었지만 그레이스에게 그런 재주는 없었다.

평범하게 먹은 걸로 신체를 유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뭐냐?”


그레이스는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일레인에게 퉁명스레 물었다.


“밥 안 먹어요?”

“아···. 먹어야지.”


배 속이 텅 빈 느낌이 들고 있었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식사를 해야 하는 불편함.

마력이 충분했다면 겪지 않아도 될 불편이었다.

고위 마족이면 마력으로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싶은 것이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얼굴은 웃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그를 이렇게 만든 놈들에 대한 분노가 한층 더 불타오르고 있었다.


식사를 전부 마치자 카를은 일레인과 그레이스를 광장으로 데리고 나왔다.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한 널찍한 광장은 발자국들로 빼곡했다.

큰 발자국이 한 쌍.

작은 발자국이 한 쌍.

부녀가 대련을 해온 흔적들이었다.


카를은 목검을 들고 광장 중앙에 섰다.


“자, 덤비거라!”


그레이스는 검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걸로요?”

“아니, 그거 말고. 목검.”


그레이스가 옆을 보자 일레인이 목검을 내민 채 서있었다.

그는 목검을 받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일레인도 목검을 살짝 눕혀 카를을 겨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카를이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그는 일레인을 향해 목검을 내리쳤다.

팍!

그녀는 잽싸게 몸을 피해 검을 피했다.

카를의 목검이 땅을 찍었다.

그 틈을 타 그레이스가 검을 찔러 넣었다.

딱!

카를은 왼팔을 들어 그의 검을 막아냈다.

철골이었다.

단단해진 신체는 그레이스의 힘을 담은 일격을 받아내고도 남았다.


“전력으로 찔렀는데···.”

“강철로도 베이지 않는 육체다. 목검 정도로는 어떻게 하지 못해!”


일레인은 호기롭게 외치는 카를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허벅지를 노리는 공격이었다.

카칵!

카를은 다리를 집게처럼 사용해 그녀의 검을 잡았다.

한 순간에 그녀는 검을 빼았겼다.


“큭!”


그렇게 당한 게 많이 분했는지 일레인은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레이스는 카를의 다리가 검을 잡느라 묶인 틈을 노렸다.

디딤발을 향해 베어 들어가는 공격에 카를은 급히 검을 휘둘렀다.

빡!

검을 쳐내자 마자 카를은 그레이스의 머리를 향해 왼손을 휘둘렀다.

훅!

고개를 살짝 젖힌 그레이스의 코 앞으로 카를의 주먹이 지나갔다.

카를은 거세게 그레이스를 몰아 붙였다.

훅! 훅! 휙!

연이은 공세에 그레이스는 검을 휘두를 기회도 잡지 못하고 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하앗!”


어느새 검을 주워 든 일레인이 카를의 뒤를 노렸다.

카를은 급하게 몸을 빼 피해냈다.


“딸, 공격이 날이 섰어.”

“오늘 한 번 이겨보려고.”

“할 수 있을까?”

“될 걸요? 한 번에 한 곳이죠?”

“어?”


그레이스의 말에 카를은 깜짝 놀라 얼굴을 굳혔다.

카를의 철골은 수준이 높지 않아 한 번에 한 곳을 강화하는 정도였다.

몇 번 부딪힌 것만으로 간파 당할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일레인, 몰아붙이자. 속도를 높이면 유효타를 넣을 수 있을 거야.”

“네!”


두 사람은 다시 달려들었다.

카를도 기합성을 내지르며 두 사람에게 맞섰다.

부딪히고 깨졌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났다.


“응?”


카를의 움직임이 빨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훅!

그레이스가 예측한 것보다 빠른 공격이 들어왔다.


“아니, 아저씨. 은근 슬쩍 신체 강화하기 있어요?”

“야, 난 혼자잖냐. 이 정도는 봐줘라.”

“아니.”

“불만이면 너희도 마력 쌓아서 신체 강화 하면 되잖아.”

“아빠!”


훙!

일레인이 칼을 휘둘렀을 때 카를은 이미 한참을 벗어난 뒤였다.

그레이스는 그를 쫓았다.

거리가 줄지 않았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한 카를은 그레이스와 비슷한 속도를 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광장을 빙빙 돌았다.

이대로 쫓기만 해서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카를을 일레인 쪽으로 유도했다.

눈치가 좋은 그녀는 그레이스의 의도를 읽고 카를의 앞을 가로막았다.


“핫!”


일레인의 검이 카를을 노렸다.

완벽한 일격이었다.

그레이스도 뒤에서 검을 휘둘렀다.

카를이 어떻게 하더라도 피할 수 없어 보이는 완벽한 합격이었다.

쾅!


“아니!”

“어?!”


곰이 날아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거구의 사내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검이 카를을 노리는 그 짧은 사이에 그는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것이다.


“어떠냐?”


땅에 내려앉은 카를은 의기양양하게 두 사람을 돌아보며 물었다.


“······.”

“······.”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머쓱해진 카를은 말을 돌렸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아빠는 저녁 준비하러 갈게.”


그는 두 사람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일레인은 카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한 번을 안 져주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왕 후보 때려칠 거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 5년만에 (완) 21.03.26 55 2 8쪽
19 수도를 향해 4 21.03.25 40 0 11쪽
18 수도를 향해 3 21.03.24 41 0 11쪽
17 수도를 향해 2 21.03.23 45 0 11쪽
16 수도를 향해 1 21.03.22 43 0 12쪽
15 밖으로 2 21.03.21 44 0 11쪽
14 밖으로 1 21.03.20 45 0 11쪽
13 사냥의 시간 2 21.03.19 49 0 11쪽
12 사냥의 시간 1 21.03.18 48 0 11쪽
11 부하? 갑자기? 2 21.03.17 50 0 11쪽
10 부하? 갑자기? 1 21.03.16 52 0 12쪽
9 마을 밖으로 4 21.03.15 44 0 11쪽
8 마을 밖으로 3 21.03.15 77 0 12쪽
7 마을 밖으로 2 21.03.14 55 0 11쪽
6 마을 밖으로 1 21.03.13 53 0 11쪽
5 사람들 틈에서 4 21.03.12 53 0 11쪽
4 사람들 틈에서 3 21.03.11 67 0 12쪽
» 사람들 틈에서 2 21.03.10 69 0 11쪽
2 사람들 틈에서 1 21.03.09 87 0 11쪽
1 내가 후보라고? +2 21.03.08 200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