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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 듀라미스 작가, 북풍광입니다.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3.27 19:44
최근연재일 :
2014.04.23 16:4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1,618
추천수 :
586
글자수 :
61,703

작성
14.04.09 21:29
조회
2,530
추천
31
글자
8쪽

누님의 정체(10)

DUMMY

노란색 바탕에 하늘색 띠를 두른 의복을 입고, 머리엔 중앙에 홍옥이 박힌 띠를 두른 자. 여기저기 주렁주렁 매달린 번쩍이는 황금 팔찌까지. 언뜻 보기엔 좀 과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껏 중국 대륙을 거침없이 호령해 온 영웅들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필부의 모습과 가까운 장각의 투박한 얼굴은 그 정도 치장을 해야 겨우 빛을 받았다. 한 손에 새하얀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든 장각은 안 그래도 작은 눈을 가늘게 떠 이쪽으로 치달아오는 병사들을 살폈다. 천자만이 쓸 수 있다는 관冠을 억지로 우겨 쓴 것이 우스꽝스러웠지만,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비뚤어진 관을 몇 번 다듬어 고쳐 쓴 장각이 장보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째서들 저렇게 일렬로 서서 달려오는 것이냐. 병사가 적음을 감추기 위함인가?”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수십만의 대군을 이끌고 옆으로 늘어서 있는데, 저들도 거기에 맞춘다고 옆으로 늘어섰다간 우스갯거리만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네 말이 옳다. 네 말이 옳아.”

“분명 우리의 병력이 몇 걸음만 내딛어도 꼬리를 말고 도망칠 것입니다.”


장보의 자신 있는 말에 장각은 기꺼워했다. 그의 눈엔 이미 달려오고 있는 관군을 넘어 황제와 궁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선 것은 바로 자신, 필부의 아들로 태어나 태평경이라는 요사스러운 책 한 권으로 천하를 쥔 장각의 미래가 밝은 빛에 휩싸여 떠오르고 있었다. 한동안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장각이 장보를 보며 말했다.


“놈들만 뚫으면 단숨에 낙양이다. 어디 한 번 천자의 자리라는 것을 구경이나 해보자꾸나.”

“예. 형님.”

“하하하.”


본래 한 명이 무식하면 무안을 당할 뿐이지만, 모두가 무식하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고 했던가. 장각과 장보는 저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채, 병사들을 일렬로 죽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그저 옆으로 늘어놓기엔 병력이 적어 다른 수를 썼다고 여겼다. 만약 병법에 밝은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이런 식의 병력 운용은 하지 않았으리라. 그것은 대부분이 농민과 천민으로 구성된 황건적의 근본적인 한계였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단순한 수 계산을 할 줄 아는 장각이 보기에 이번 전투는 도저히 지려고 해야 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후후. 적당한 거리가 된 것 같군.”


장각은 자신감에 찬 얼굴로 한 걸음 내딛었다. 왼편을 봐도, 오른편을 봐도 늘어선 군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게 바로 황제의 군대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군세였다. 어깨 끝까지 힘이 부쩍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저들은 많아봐야 4만도 되지 않는 관군에 불과했다. 이길 수 있다. 당장에 피떡으로 만들어 진출할 수 있다. 장각의 머릿속에는 황제의 가마에 올라 머리를 조아리는 백성들에게 손을 흔드는 자신의 모습이 쨍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잠시 믿음직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장각이 부채를 높이 쳐들었다.


“저들만 물리치면 낙양이다! 가서 황제의 음식이라는 것을 맛보자!”

“우와아아!”

“천공장군 만세!”

“천공장군 만세!”


함성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지금까지 변변히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달아나는 관군들만 봐 와서인지 백성들은 매서운 기세로 돌격하는 영웅들의 모습에도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패인인지 이때만 해도 장각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휘두르며 외쳤다.


“전군 돌격하라! 황건적의 매서움을 보여줘라!”

“우와아!!”

“전군 돌격!”


장보의 말과 함께 관군을 상대하기 위한 황건적들이 뛰어내려오기 시작했다. 도무지 군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집단이었다. 중간마다 백인장, 천인장들이 정해져 있긴 했지만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애초에 그들도 일반 백성보다 무예가 조금 더 뛰어나거나, 체력이 커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지 병법을 알기론 일자무식인 건 남들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껏 옆으로 늘어선 병력들은 한 군데로 어그러져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골목에서 우르르 몰려나오는 어린 아이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한참 말을 달리던 조조가 검을 빼들며 외쳤다.


“이대로 부대를 뚫은 뒤에 각기 갈라져 뒤를 치겠소.”

“맹덕공은 중앙 돌파인데 어느 쪽으로 가실 것이오?”

“이미 지시를 내려놓았으니 손 장군께선 신경을 쓰지 않으셔도 될 거요.”

“그렇게 하지.”


손견은 다소 무례하게 들리는 조조의 말에도 토를 달지 않았다. 본래 자신의 쪽으로 오면 막을 생각이었지만, 까마득히 몰려오는 황건적들 앞에서 사사로운 감정에 심력을 소모할 틈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 지 아는 그의 빠른 판단은 과연 손견이라 할 만 했다. 금세 자리를 잡는 두 사람을 흘끗 바라보던 척준경은 이내 검을 높이 들었다. 이젠 자신의 차례였다. 지금까지 발을 맞춰 걷느라 연기를 했으나 이젠 때가 되었다. 황보숭과 주준의 눈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박혀야 한다.


“전군 돌격!”

“돌격!”

“별무반의 위용을 보여라!”


말을 잘 달리고 곡예를 부리는 여진족 놈들과 한 치도 밀리지 않았던 별무반이다. 당연히 지금 달리는 것보다 곱절은 더 빠르게 달리는 것이 가능했다. 지루한 듯 하품까지 하고 있던 이들은 척준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말을 박차고 달려 점점 앞으로 치고 나왔다.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고려의 세력을 바라보았다. 그는 먼저 가겠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검집으로 말의 엉덩이를 후려치고는 빠른 속도로 황건적의 선봉을 꿰뚫었다. 날카로운 검, 그 선봉중의 최선봉에 척준경이 나서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사방으로 피가 튀기고, 농부들의 목이 허공에 떠올랐다.


“으아악!”

“항복하는 자는 받아주되, 끝까지 저항하는 자는 씨를 말려라!”

“예! 장군!”


선수를 빼앗긴 것을 깨달은 손견과 조조가 급히 뒤를 따랐지만 이미 저만치 앞질러 간 척준경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그야말로 낙양성 야차의 위엄을 오늘 이 자리에서 남김없이 드러낸 셈이었다. 척준경은 빠른 속도로 장각과 장보의 병력을 반으로 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이미 왼편과 오른편으로 각각 말머리를 틀은 손견과 조조도 어그러진 적들을 학살하니,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황건적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본대를 이끌고 뒤를 따르던 황보숭과 주전은 척준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대단한 자로군요. 앞으로 잘만 키우면 한 왕실의 큰 힘이 되겠습니다.”

“흠. 비록 도적떼이긴 하지만 그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고 군사들을 지휘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으니, 확실히 인재는 인재요.”

“한 나라의 국경을 20년 이상 지킨 노련한 장수 같이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게나 말이오.”


실제로 그들의 추측이 맞았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도 아는 자가 없는 것을. 그런 두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함인지, 척준경은 적의 피를 잔뜩 뒤집어 쓴 채로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를 죽이기 위해 달려든 장수 셋이 단 1합도 받아내지 못하고 머리가 쪼개졌고, 날렵하게 척준경의 말 위로 뛰어오른 자는 그의 겨드랑이에 낀 채로 목이 부러져야 했다. 그러면서도 황보숭의 전략에 따라 일껏 돌파한 후에 왼편으로 돌아섰으니, 그 역시 황보숭의 마음에 쏙 들었다. 다른 두 사람, 손견과 조조는 이미 전략 따위는 잊고 저들의 무위를 뽐내고 있던 것이 더 큰 대비 효과를 불러온 셈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그리고 멀리서 둥그렇게 에워싸고도 저들의 시체보다 자신들의 시체가 더 많은 것을 눈치 챈 장각은 귀가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작가의말

2~3일 주기로 연재될 것 같습니다.

재밌게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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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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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누님의 정체(5) +2 14.04.01 2,128 38 8쪽
5 누님의 정체(4) 14.03.31 2,901 43 9쪽
4 누님의 정체(3) +2 14.03.30 3,286 3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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