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군신 듀라미스 작가, 북풍광입니다.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3.27 19:44
최근연재일 :
2014.04.23 16:4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1,604
추천수 :
586
글자수 :
61,703

작성
14.04.04 12:22
조회
2,481
추천
35
글자
8쪽

누님의 정체(8)

DUMMY

회의가 끝나고 나서 황보숭은 주전과 노식을 거느리고 하진을 만나러 떠났다. 일단 출발은 내일이니 남은 자들은 각자의 임시 군영에서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당부만 남겨놓은 채. 그나마 자신을 불러준 노식의 체면을 생각해 어울려있었던 원소는 당장에 몸을 일으켜 떠났다. 어렸을 때부터 가까웠던 조조와도 간단하게 눈인사 정도만 나눴을 뿐이었고, 척준경이나 손견과는 제대로 말도 섞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자신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지사들이 한, 둘이 아닌데 굳이 이런 치기어린 자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치기어린 자들.


원래부터 다른 자들과 출신이 남달랐던 원소는 노식이 자신을 불렀을 무렵엔 이미 그와 친해지고 싶은 문인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원소와 친해지면 손해 볼 일은 없다. 자신들이 꺾이지 않는 한 좋은 관계는 유지된다. 약자에겐 마주하기 부끄러울 만큼 강하고, 강자에겐 제 나름의 몸에 밴 예절을 완벽하게 드러내는 원소는 머리가 좋은 문인들에겐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이 아니었다. 선물을 가득 실은 마차가 끝도 없이 몰려드니, 아무리 예절이 몸에 밴 원소라도 자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흙탕물을 필사적으로 돌아다니는 미꾸라지와 같은 신세들이구나.’


그런 원소가 보기에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자들은 전부 언제 어부의 손에 끌려 들어갈지 몰라 벌벌 떨고 있는 진흙탕 속의 미꾸라지에 불과했다. 그러니 더 이상 이 자리에 앉아있고 싶을 리가 없었다. 특히 방금 전 부관조차도 못 된 조조가 시뻘건 눈을 하고 들어온 것은 원소에게 있어선 정말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가 그렇게 떠나자, 척준경과 조조, 손견도 말없이 자신의 패거리가 있는 쪽으로 흩어졌다. 잠시 그들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척준경은 이내 낙양성 밖에 임시로 쳐놓은 군막에 들어갔다. 제일 큰 천막에 들어가 앉자, 왕자지가 얼른 입을 열었다.


“그래. 뭐라고들 하십니까?”

“뭐 별 거 있겠느냐. 각자 소개를 좀 하려는데 조조가 갑자기 난입한 것을 빼고는 이전에 장연이 예측했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허. 정말 영천과 광주로 가겠다는 말을 했다고요?”

“그래. 연이 네가 확실히 큰 판을 잘 볼 줄 아는구나.”

“과찬이십니다. 형님.”


척준경은 고개를 숙이는 장연을 보며 씩 웃었다. 장연이 대단한 것은 그나 왕자지처럼 삼국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자란 것이다. 그는 순전히 지금까지의 경험과 황건적들의 대한 정보를 통해 관군이 어디로 나아갈 지를 예측했다. 반 장난삼아 맞춰보라고 했던 척준경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장연은 정확하게 그 방향을 짚어냈다. 흑산적을 토벌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할 뻔 했나. 이런 아까운 인재를 놓치는 것은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한동안 더 따뜻한 눈길을 보내던 척준경은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조조와는 영천에 도착해서 상황을 논의하는 것으로 하지. 아무래도 자존심이 많이 상해있을 테니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것 없어.”

“예. 자칫 잘못하다간 황건적을 무찌르기도 전에 우리끼리 검을 들게 될 겁니다.”

“그래. 영천에 도착하면 아마 장각과 장보는 험한 산세를 끼고 싸우려 들 것이다. 지금 당장 비축해 둔 목재도 없고, 분명 풀을 엮어 진지를 만들 것이니 화공을 쓰면 그들을 전부 무찌를 수 있다.”

“과연 형님이십니다. 아직 가보지도 않은 영천의 지리에 그리 훤하시다니요.”

“후후. 미리 받아둔 정보가 있지.”


척준경은 연이어 감탄하는 장연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그들에 비해, 자신은 이미 모든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중국 땅에 고려의 깃발을 꽂는 것도, 자신이 앞장 서 천하를 통일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이 난 척준경은 어떤 사실은 눈치 채지 못했다. 바로 역사에선 조조가 황보숭의 부관이었으며, 그 사실이 자신 때문에 틀어졌다는 것 말이다. 결국 그가 모르는 사이 삼국지라는 거대한 무대의 틀은 약간씩 깨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


황보숭의 뒤를 따른 척준경은 왕자지, 장연과 더불어 3천의 병력을 거느리고 황건적 토벌에 나섰다.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니, 오히려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관군보다 더 나을 정도였다. 관군이 영천 땅에 진격하자, 장각은 구름같이 많은 병사들을 휘몰아 대응에 나섰다. 비록 제대로 훈련이 되어 있진 않았지만 곡괭이와 낫을 쥐고 일어선 백성들은 수십 만에 가까웠다. 평야를 가득 채운 수만 봐도 학을 뗄 정도다. 황보숭은 주준을 바라보며 검 끝으로 그들을 가리켰다.


“저들이 비록 수는 많으나 진형에 대한 이해도는 전무하다시피 하니, 군사들을 한 점에 모아 중앙을 돌파하는 것이 어떻겠소?”

“좋은 전략입니다. 그것을 막으려면 호리병처럼 몰아넣으면서 뒤로 물러나야 하는데, 저 도적놈들이 그런 수를 알고 있을 리 없습니다.”

“흠흠.”


주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한 황보숭은 즉시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부관들을 불렀다. 이미 손견과 척준경은 출전을 예상하고, 거느린 병사들의 손을 풀어두라 일러둔 상태였다.


“척준경! 손견!”

“예!”

“하문하시지요.”

“자네들은 지금부터 부대의 선봉이 되어 장각의 무리를 한 점으로 돌파하게 될 것이네. 분명 제대로 돌파하게 된다면 저들은 기세를 잃고 자연히 어그러지게 될 게야. 허나 그만큼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역할일세. 병사들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지. 누가 이 역할을 맡아 주겠나?”

“제가 맡겠습니다!!”


황보숭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견과 척준경이 거칠게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섰다. 둘 다 나서려는 의지가 대단해 한 치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처음부터 두 사람을 각각 왼편과 오른편에 선봉으로 세우려 했던 황보숭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됐네. 됐어. 그 의지라면 분명 장각 놈도 꼬리를 말고 도망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각자 왼편과 오른편의 선봉을 맡아서 적의 예기를 꺾어놓게.”

“장군님은 한 명 빼놓은 자가 있지 않으십니까.”

“한 명?”


황보숭은 척준경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명 빼놓았다니.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어차피 부관은 두 명 뿐이다. 노식은 광종으로 달려갔으니 말이다.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척준경을 바라보자, 잠시 숨을 크게 내뱉은 척준경은 저 뒤에 서 있는 조조를 가리키며 말했다.


“왼편과 오른쪽에 강한 날개가 있다면 중앙엔 그보다 세력은 약하지만 받쳐줄 수 있는 자가 필요합니다. 제가 보기에 그에 적격인 자가 바로 조조입니다. 그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범과 견줄 정도로 용맹하고, 조조는 역시 문과 무에 밝으니 장군의 높으신 전략에 흠집을 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손견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흠......”


두 사람이 앞 다투어 조조를 청하자 황보숭은 못 이긴 척 그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낙양에서 떠나올 때부터 계속 그의 문제가 마음에 걸렸던 그에겐 정말 반가운 제안이었다. 황보숭이 조조를 불러 두 사람의 의견을 말하자, 조조는 즉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입술을 꽉 깨물고, 이마엔 힘줄이 몇 개나 툭툭 솟아난 채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누님의 정체(14) +3 14.04.23 2,448 46 12쪽
14 누님의 정체(13) +1 14.04.19 1,994 31 10쪽
13 누님의 정체(12) +2 14.04.16 2,453 28 9쪽
12 누님의 정체(11) +1 14.04.14 1,685 32 9쪽
11 누님의 정체(10) +4 14.04.09 2,530 31 8쪽
10 누님의 정체(9) +6 14.04.08 2,372 31 9쪽
» 누님의 정체(8) +2 14.04.04 2,482 35 8쪽
8 누님의 정체(7) +5 14.04.02 2,733 35 8쪽
7 누님의 정체(6) +2 14.04.02 2,277 35 9쪽
6 누님의 정체(5) +2 14.04.01 2,127 38 8쪽
5 누님의 정체(4) 14.03.31 2,900 43 9쪽
4 누님의 정체(3) +2 14.03.30 3,285 39 11쪽
3 누님의 정체(2) +1 14.03.29 3,257 48 9쪽
2 누님의 정체 +10 14.03.27 3,597 52 7쪽
1 서장 - 유비를 만나다 +4 14.03.27 5,465 6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