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군신 듀라미스 작가, 북풍광입니다.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3.27 19:44
최근연재일 :
2014.04.23 16:4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1,597
추천수 :
586
글자수 :
61,703

작성
14.04.14 22:23
조회
1,684
추천
32
글자
9쪽

누님의 정체(11)

DUMMY

척준경은 크게 왼쪽으로 휘돈 후에 병사들을 정비했다. 그의 주변에는 몸의 일부가 없는 황건적들의 시체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고, 살아남은 자들 또한 창과 검을 머리 위로 든 채로 벌벌 떨기만 했다. 그동안 겪었던 관군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성난 범과 같고, 휘두르는 검엔 날카로운 기세가 서려 있으니 겨우 쟁기나 곡괭이를 든 농부들은 혼비백산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꽤 많은 수훈을 올린 셈이었지만, 척준경의 눈은 여전히 황건적을 향해 있었다. 그 때, 온몸에 피를 잔뜩 묻힌 왕자지가 말을 달려 옆에 섰다.


“장군! 정리가 끝났습니다! 이대로 들이칠까요?”

“아서라. 장각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장각이 놈이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입니까. 어차피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수훈을 세운 겁니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다른 곳을 들이쳐 그 공을 크게 늘리는 것이......!”

“장각이 아니면 장보다. 발견되기 전까진 아무도 검을 들지 마라.”

“장군!”

“어서!”


척준경의 말에 왕자지는 이를 악물곤 병사들을 풀어 주위를 살피게 시켰다. 모두가 눈앞의 적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야를 넓히니, 장각과 장보를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본대를 이끌고 신나게 짓쳐 내려온 장각은 아쉽게도 척준경 쪽이 아닌 손견의 군세가 있는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미 기세가 어그러져 산 속으로 서둘러 도망 중이니 급하게 뒤쫓아도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이를 알고 있는 손견 역시 무리하게 그를 뒤쫓기 보단 홀로 떨어진 장보를 사로잡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었다. 말 위에서 그 형세를 지켜보고 있던 척준경은 장연 쪽을 향해 손을 높이 치켜 올렸다. 그의 신호를 알아본 왕자지가 서둘러 뒤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소리 화살을 쏴라! 신호를 보내야 한다!”

“예! 장군!”


순간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장연의 부대가 함성을 지르며 튀어 나오니, 손견의 기세에 어그러져 도망치던 장보와 그 잔당들은 혼비백산하여 검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다. 한 때, 흑산적을 이끌며 관군을 모조리 죽인 용맹한 도적답게 장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모를 휘둘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사방에 피가 튀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무장들의 목이 달아나니 서둘러 뒤를 쫓아온 손견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를 보고 분개한 한당이 즉각 활대에 화살을 걸치고 앞으로 나섰다.


“주군은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적장의 목을 이 활로 떨어트리겠습니다.”

“......그럴 것 없다.”

“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한다는 짓 좀 보십시오! 이대로 있다간 재주는 우리가 넘고 공은 척준경이 챙겨가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생각해봐라. 장보의 세력을 일망타진한 것은 척준경의 군사들인데, 그 중에 장보의 대가리를 취한 것이 이 손견의 군사라는 보고가 들어가면 황보숭 장군이 어떻게 보겠나. 필시 공을 탐해 억지로 저들의 옆에 붙어 있었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몰이를 한 것은 사실이나 결국 실질적으로 들이친 것은 척준경의 수하다. 그만 놔 두어라.”

“......하지만!”

“패배를 인정하는 것도 유능한 장수의 조건 중 하나다. 다들 군사를 돌려서 남은 잔당들을 처리하는 데 우선을 둔다. 주치는 병력을 보내 장각이 도망간 곳의 산세와 오솔길을 살피고 돌아오너라. 혹여 근처에 마을이 있는가도 살펴두고.”

“예! 주군.”


한당이 인정하고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돌리려는 사이, 척준경의 본대가 장보가 있는 쪽으로 몰려들었다. 안 그래도 성난 범 같은 장연을 막는 것도 벅찬데 척준경과 왕자지까지 모여드니 장보는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마침 그의 옆에 있던 파재가 이를 악물곤 장보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가십시오! 지금 이곳은 도저히 우리들이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파재.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하여 저들을 뚫고 나간단 말인가.”

“인공장군께서 군사를 휘몰아 오고 계십니다. 아마도 천공장군께선 이대로 광종으로 군사를 물리실 듯하니 인공장군의 도움일 받아 일시에 저 협곡으로 도망쳐야 할 것입니다.”

“아, 알았다! 내 너의 충정은 잊지 않으마!”

“충정을 기억하실 것은 없고, 단지 백성들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오냐!”

“계집들처럼 무슨 이야기를 그리 속닥거리는 것이냐!”

“어이쿠!”


순간 그들의 앞에 나선 장연의 외침에 장보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하였다. 심장은 쉴 새 없이 두근거리고, 이마에선 연신 땀이 솟아나니 그야말로 딱 겁에 질린 필부를 보는 것 같더라. 군대를 이끄는 장수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파재는 장보의 말을 때려 달아나게 한 뒤, 병력을 이끌고 장연의 앞을 막아섰다. 실력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의 눈이나 기세로 봐선 보통 도적은 아니었다. 장연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한 차례 숨을 돌린 파재가 검을 뽑아 들었다.


“아서라. 나를 죽이기 전엔 장군을 쫓을 생각일랑 말아야 할 거다.”

“황건적 중에 이런 놈이 있었던가. 네 이름이 뭐냐.”

“파재다. 관군 놈들을 전부 죽이기 전엔 죽지 않을 몸이니 기억해 두어라.”

“후후. 좋은 인연을 만났구나. 허나 내 검을 받아내지 못하면 그저 한낱 황건적의 무리 중 한 놈일 뿐. 어디 한 번 덤벼 보아라.”

“오냐!”

“이랴!”


장연은 말을 달리며 사모를 낮게 깔았다. 그것은 투박한 박도를 들고 있는 파재에게 어느 정도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그도 척준경을 만나기 전에는 산적을 이끄는 우두머리에 지나지 않았기에 자신의 주인을 도망 보내고, 당당히 맞서는 파재에게 마음이 동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매섭게 달려온 그들은 서로의 검을 맞대지 못했다. 옆에서 황건적을 격파하며 달려온 척준경이 마치 어린아이 사탕 물리듯 파재의 허리띠를 잡아 자신의 옆구리에 끼운 것이다.


“이, 이것 놔라!”

“장연, 협곡 안에서 원군이 오고 있다. 이대로 있다가는 오히려 역으로 당할 수 있으니 일단 전군에 퇴각 신호를 내려라.”

“예! 장군!”

“네놈은 아무래도 장연의 마음에 든 듯하니, 어디 가서 시험을 좀 해보자꾸나.”

“네놈이 대체 누구냐!”


악을 바락바락 쓰는 파재의 뒷덜미를 몇 번 때린 척준경은 그의 몸이 늘어지자, 씩 웃곤 말을 돌렸다. 젊은 혈기로 가득 찬 놈들. 이미 노장의 반열에까지 올라가 본 척준경에겐 볼 때마다 새롭고 자신에게까지 힘을 주는 재미있는 놈들이다. 어쩌면 이 자가 자신의 세 번째 수하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파재의 머리에 둘러져 있는 노란 두건을 빼어 허공에 던졌다. 바람을 타고 살짝 위로 올라갔던 두건은 기세를 잃고 땅에 떨어져, 곧 수많은 말발굽에 의해 짓밟혀야 했다.


***


“없어졌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쾅! 하고 황보숭이 탁자를 내리치자, 보고를 하던 장수가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입을 비쭉 내밀은 것이 아무래도 없어진 건 조조인데, 자신에게 역성을 내는 게 불만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오로지 대장군의 말만 통용되는 군막이다. 게다가 조조에게서 장군에게 꼭 좀 전해주라며 서신과 함께 받은 것도 있으니 이대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조조가 쓴 것으로 보이는 서신을 그에게 내밀었다. 서신을 찢을 듯이 거칠게 봉인을 해제한 황보숭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신 조조, 삼가 아뢰옵니다. 신이 보건데 아무래도 장각은 광종으로 말머리를 틀은 것 같고, 용맹한 손견과 척준경의 무용 아래 장보와 장량의 부대도 으스러지기 일보 직전이옵니다. 허나 저들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으니 만약 다른 곳으로 숨어들었다가 잠잠해진 이후에 재차 병력을 결성하게 되면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그들이 도망칠 길목에 진을 치고 있으려 합니다. 이에 대한 재가는 이미 주준 장군님께 받아두었으나, 미처 시간이 없어 대장님께 보고하지 못한 점, 깊이 사죄드립니다. 이하. 조조 올림.’

“허허. 뭐라? 주준에겐 고할 시간이 있고, 내겐 고할 시간이 없다?”

“장군. 어찌 처결할까요.”

“처결이고 나발이고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자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패잔병을 처리하겠다는 이자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자네는 가서 주준 장군을 불러오게!”

“주준 장군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무래도 주준도 생각이 있기에 허락을 한 것이겠지. 어서!”

“예! 알겠습니다!”


황보숭의 말에 장군은 얼른 밖으로 뛰어 나갔다. 조조, 이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 벌인 일은 적어도 자신을 각인시키겠다는 초기의 의도만큼은 제대로 달성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누님의 정체(14) +3 14.04.23 2,448 46 12쪽
14 누님의 정체(13) +1 14.04.19 1,994 31 10쪽
13 누님의 정체(12) +2 14.04.16 2,452 28 9쪽
» 누님의 정체(11) +1 14.04.14 1,685 32 9쪽
11 누님의 정체(10) +4 14.04.09 2,530 31 8쪽
10 누님의 정체(9) +6 14.04.08 2,372 31 9쪽
9 누님의 정체(8) +2 14.04.04 2,481 35 8쪽
8 누님의 정체(7) +5 14.04.02 2,732 35 8쪽
7 누님의 정체(6) +2 14.04.02 2,277 35 9쪽
6 누님의 정체(5) +2 14.04.01 2,127 38 8쪽
5 누님의 정체(4) 14.03.31 2,900 43 9쪽
4 누님의 정체(3) +2 14.03.30 3,285 39 11쪽
3 누님의 정체(2) +1 14.03.29 3,256 48 9쪽
2 누님의 정체 +10 14.03.27 3,596 52 7쪽
1 서장 - 유비를 만나다 +4 14.03.27 5,463 6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