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군신 듀라미스 작가, 북풍광입니다.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3.27 19:44
최근연재일 :
2014.04.23 16:4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1,569
추천수 :
586
글자수 :
61,703

작성
14.04.19 18:25
조회
1,992
추천
31
글자
10쪽

누님의 정체(13)

DUMMY

척준경은 별무반에서도 추리고 추린 백여 명의 병사들만 거느린 채 산을 올랐다. 어차피 황건적은 잘 조련된 군사들이 아니었다. 막사에 불이 옮겨 붙고 혼란이 가중되면 그들은 살 길을 찾기 위해 줄행랑 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데는 그리 많은 인원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장군. 적진의 위치와 경계를 확인하고 왔습니다!”


그 때, 마침 풀숲을 헤치고 나타난 장연이 척준경의 앞에 군례를 올렸다. 부상을 당한 것도, 허겁지겁 쫓겨 온 것도 아니었다. 표정이 좋고, 발걸음도 가벼운 것을 보아 아무래도 예상한 대로 적이 움직여주는 모양이었다. 군례를 받은 척준경이 그를 향해 물었다.


“그래? 지키는 자의 수는 얼마나 되더냐?”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깨어있는 병사들도 전부 졸고 있고, 내부 역시 고요했습니다. 화공을 감행하기에 아주 좋은 상황이라 보여 집니다.”

“예상대로군. 이래서 백성을 현혹시키는 무리가 대장군이 되면 안 된다는 거다. 그들은 지나친 혈기와 이루지 못할 이상 외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자들이거든.”

“지나친 혈기와 이루지 못할 이상......”


어쩌면 그것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을까. 장연은 척준경의 말에 분해하기보단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확실히 장연 역시 흑산적을 일으켜 백성들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만 가지고 있었을 뿐, 어디를 어떻게 들이치자, 라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만약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 척준경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는 언젠가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관군에게 토벌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장연은 장각에 대해 미묘한 동정심을 품고 있었다. 그를 흘끗 바라보던 척준경이 재차 입을 열었다.


“장각과 장보, 장량은 백성들의 이상적인 삶을 이루어주기 위해 일어선 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달과 부를 얻기 위해 도구로서 그들을 필요로 했을 뿐이다.”

“하지만 장각이 태평경을 보고 백성들을 구휼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그 역시 무너져 가는 한 왕실을 물리치지 않고는 구원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비록 문인들과 지식을 겨룰 만큼 뛰어나진 못하나 한 가지만은 잘 알고 있다. 정말 백성의 편에서 서려고 하는 자들은 제 자신을 저리 요란스럽게 치장하지 않아.”

“......”


그제야 장연도 마치 천자의 모습처럼 온갖 현란한 것들을 몸에 두르고 있었던 장각의 모습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 백성들을 착취하고, 괴롭혔던 십상시들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장연이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뒤로 물러서자, 척준경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병사들을 끌어 모았다.


“이동할 것이다. 앞장서라. 장연.”

“예. 장군.”

“전군 이동한다.”

“예.”


조용히 대답한 병사들이 척준경의 뒤를 따랐다. 장량의 초야 진지까지 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멀리서 세워진 화톳불이 보이자, 척준경은 바로 주먹을 들어 올려 따라오는 병사들을 전부 앉혔다. 바람은 적 쪽을 향해 여전히 강하게 불고 있었다. 은은히 불을 밝힌 화톳불 옆에 세워진 누런 깃발이 사정없이 펄럭이는 것을 본 그의 입가엔 미소가 떠올랐다.


“왕자지. 다섯 명을 줄 테니 은밀히 적진을 염탐해라. 만에 하나라도 화공을 눈치 채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 땐 이쪽이 크게 당한다.”

“예. 장군.”

“장연은 돼지기름을 발라둔 나무들을 확인하고, 병사들에게 횃불을 들고 대기하게 하라. 막사에 불이 붙으면 바로 불을 붙여 퇴로를 막는 거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장연과 왕자지가 척준경의 명령에 따라 사라지자, 그는 더욱더 자세를 낮췄다. 그것은 오랜 시간동안 장수로 살아온 척준경의 탁월한 준비성이었다. 아무리 약한 상대라도 저마다 비장의 한수는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 하나의 가능성마저 제거하는 것이 병력을 이끄는 장수로서의 자격이었다.


“기름을 발라라.”

“예.”


척준경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뒤에 서 있던 병사들이 이미 파놓은 구덩이 안에 기름을 붓기 시작했다. 주변에 탈 만한 것들을 전부 치워버린 상태에서 불을 붙이자, 불은 활활 타올라 시뻘건 혀를 이리저리 날름거렸다. 바로 기름을 묻힌 솜을 두른 화살을 꺼내든 병사들이 불이 꺼지기 전에 얼른 구덩이 안에 집어넣어 불을 붙였다.


“긴장해라. 왕자지는 금방 돌아올 거다.”

“예.”


다들 불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대기했다. 왕자지가 돌아올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다들 적어도 3일은 지난 것만 같이 느낄 정도였다. 그 때, 모두의 기다림을 안고 돌아온 왕자지는 척준경의 앞에 서둘러 예를 갖추고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 없습니다. 적들은 모두 막사 안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화공을 감행하시면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불화살을 날림과 동시에 퇴각한다! 이미 적의 도주로는 차단되었으니, 멍하니 있다가 화마에 휩쓸려 죽지 말고 화살을 쏜 연후에 재빨리 몸을 빼라. 알겠나.”

“예! 장군!”

“좋아. 전군 불화살을 날려라!”


척준경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백여 개에 달하는 불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화살들은 곤히 자고 있는 막사에 떨어져 일제히 불을 붙였다. 큰 이파리와 풀들로 얼기설기 엮어두었던 막사들은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곤히 자고 있는 황건적들마저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자가 태반이었다. 극도의 피로감 속에서 겨우 눈을 감았던 장량은 갑자기 주위가 시끌벅적해지자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이 떠 올렸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도 제대로 하기 전에, 급하게 달려 들어온 장보가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장량!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장량!”

“아니. 형님.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적이 화공을 썼네! 불화살이 빗발치는데다가 산에 불이 붙어서 주변이 온통 불바다야! 얼른 빠져나가지 않았다간 우리 모두 여기서 죽는다는 말일세!”

“예? 그, 그럴리가!”

“벌어진 일이라니까! 얼른 갑옷을 챙겨 입고 나오게. 얼른!”

“아, 알겠습니다!”


장량은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가는 장보를 보며 얼른 갑옷을 주워 입었다. 제대로 잠도 못자고 일어난 탓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살기 위해선 얼른 뛰쳐나가야 했다. 그는 점점 영웅이고, 나발이고, 부귀영화고 뭐고 간에 다 진절머리가 났다. 애초에 태평경이나 읊어주면서 백성들을 현혹시켜 돈줄이나 빼앗았으면 되었을 것을. 장각이 괜한 욕심을 부려 자신의 신세까지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불만이 그의 머릿속을 꽉 사로잡았다. 하지만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 큰형님이 있는 광종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그는 얼른 밖으로 뛰어 나왔다.


“광종으로 간다! 모두 퇴각하라!”

“모두 퇴각하라!”


그들은 그래도 주변에 병력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얼른 병장기와 간단한 식량만을 챙겨 도망치듯 떠났다. 장보와 장량은 급히 말을 달려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는데, 뒤에서 비명을 지르는 자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아 뒤따르던 병사들의 사기를 절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허나 어쩌겠는가. 원래 인간의 본성이란 가장 급할 때 나오는 것을.


“네 이놈들! 강북의 손견이 여기 있다!”

“감히 어딜 도망가려 하느냐!”

“돌, 돌파. 돌파해라!”

“우와아!!”


이미 오솔길을 장악하고 있던 손견군이 그들을 막아섰지만, 본래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고 하던가. 눈이 뒤집힌 장보와 장량의 적극적인 돌파로 황건적은 관군과 검을 맞대고 처음으로 발악에 가까운 저항을 보여주었다. 물론 사로잡힌 자와 죽어나간 자는 셀 수도 없었고, 특히 손견과 한당, 주치와 황개에게 목이 날아간 장수는 그 수만 해도 수십에 달했으니, 그야말로 황건적 군의 대패였다.


“주군!”

“워워.”


더 볼 것도 없이 쫓아가려던 손견은 갑자기 다가오는 한당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인가.”

“조조군이 오솔길을 틀어막고 있다고 합니다.”

“조조가? 어제부터 보이지 않더니만 그런 곳에 가서 있었단 말이냐.”

“예. 괜히 이대로 적들을 몰아주었다가 조조에게 공이나 세워주는 것은 아닐까 걱정입니다.”

“흠.”


한당의 말도 일리가 있다. 이미 저들이 대기를 하고 있고, 황건적의 잔당들은 무서운 속도로 도망치는 중. 척준경의 때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장담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직 저들 말고도 숲으로 도망친 자들도 적지 않다. 차라리 그들을 모조리 때려잡아 데려가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었다. 손견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전군 지금부터 삼십 명 단위로 흩어져 적을 찾는다. 찾아낸 적은 모조리 말살하고, 혹여 항복하는 자가 있거든 받아주어라. 장수도 마찬가지다.”

“예! 주군!”

“절대 안쪽으로 들어가진 마라. 손견의 군사가 불에 타 죽었다는 말이 들리면 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예! 주군!”


말을 마침과 동시에 손견 자신도 즉시 숲 안으로 사라졌다. 이미 자신의 공을 세울 만큼 세운 척준경은 안전한 곳으로 빠져 활활 타오르는 숲을 구경 중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누님의 정체(14) +3 14.04.23 2,446 46 12쪽
» 누님의 정체(13) +1 14.04.19 1,993 31 10쪽
13 누님의 정체(12) +2 14.04.16 2,451 28 9쪽
12 누님의 정체(11) +1 14.04.14 1,683 32 9쪽
11 누님의 정체(10) +4 14.04.09 2,529 31 8쪽
10 누님의 정체(9) +6 14.04.08 2,371 31 9쪽
9 누님의 정체(8) +2 14.04.04 2,480 35 8쪽
8 누님의 정체(7) +5 14.04.02 2,730 35 8쪽
7 누님의 정체(6) +2 14.04.02 2,276 35 9쪽
6 누님의 정체(5) +2 14.04.01 2,125 38 8쪽
5 누님의 정체(4) 14.03.31 2,898 43 9쪽
4 누님의 정체(3) +2 14.03.30 3,281 39 11쪽
3 누님의 정체(2) +1 14.03.29 3,253 48 9쪽
2 누님의 정체 +10 14.03.27 3,594 52 7쪽
1 서장 - 유비를 만나다 +4 14.03.27 5,460 6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