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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 듀라미스 작가, 북풍광입니다.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3.27 19:44
최근연재일 :
2014.04.23 16:4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1,596
추천수 :
586
글자수 :
61,703

작성
14.04.01 22:11
조회
2,126
추천
38
글자
8쪽

누님의 정체(5)

DUMMY

척준경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낸 장연은 곧바로 사모를 크게 휘둘러 목을 노렸다. 기세가 실린 거친 공격이었다. 게다가 빗겨낸 힘을 그대로 이용하여 휘두른 것이라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척준경은 이를 악물곤 허리를 뒤로 확 젖혀 사모를 피해냈다. 고작 산적에 불과한 자다. 자신을 막아낸 것도 모자라 거센 반격을 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적어도 고려에서 맞서 싸웠던 여진족의 장수들보다 강한,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놈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던 그는 눈을 부릅떴다. 당황한 건 당황한 거고, 승부는 승부다. 위기를 벗어나니 척준경 특유의 호승심이 불타올랐다. 그는 허리를 젖힘과 동시에 발을 들어 올려 휘둘러진 사모의 막대 부분을 마주 걷어차니, 중심을 잃은 장연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네 이놈!”




척준경의 호령에 장연도 지지 않고 주먹을 번쩍 들어 올렸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말 뼈다귀 같은 놈이 소리를 지르느냐! 네놈이 주변에 조무래기들을 쓸어대면서 기가 산 모양인데, 흑산적은 그런 놈들과는 전혀 다르다. 여기서 호된 꼴을 보지 말고 얼른 꽁지 말고 도망가는 게 살 길이다!”


“어디 실력도 그와 같은지 한 번 보자!”




척준경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검을 휘둘렀다. 장연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사모를 위에서 아래로 올려쳤는데, 검과 사모가 부딪치자 새빨간 불꽃이 사정없이 튀었다. 하지만 좋은 것은 기세뿐이었다. 고려의 검술을 처음 접해보는 장연은 채 5합을 마주하기도 전에 손발이 어지러워져 더 이상 사모를 들고 있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부딪칠 때마다 손이 떨릴 정도의 완력과 번개 같이 날아드는 검은 너무나 걸출해 혀를 절로 내두르게 될 정도였다.




“윽!”


“하!”




결국 사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정연은 황망한 눈길로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미 왕자지가 이끄는 별무반들이 3배에 가까운 흑산적의 무리들을 어그러트리고 있었다. 정연의 얼굴은 금세 낯빛이 되었다. 설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자들이 고려의 북방에서 거친 여진족들과 맞서 싸운 정예병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결국 살기 힘들어 호미와 가래를 들고 일어선 백성들과 거친 훈련을 이겨낸 별무반은 애초부터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는 사모를 내던지더니 척준경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믿기질 않는다. 대체 너희들은 어디에서 온 자인가.”


“관군이다.”


“거짓말! 지금까지 이 주변 관군에 대한 정보는 모두 섭렵한 상태다. 걔 중에 이 정도로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자들은 없었어!”


“신경 쓸 게 무에 있겠나.”


“......하기야 어차피 죽을 몸인데 신경 쓸 것도 없겠지.”




장연은 모든 걸 내려놓은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뜻이 있어 병사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처참할 정도로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어떻게든 뭘 더 뺏기에 급급한 놈들을 징벌하고 싶었다. 수십의 관아를 털었다. 십상시에게 돈을 주고 관직을 산 현령들을 죽이고,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그 끝은 결국 이것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세력에게 밀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도 이기지 못한 거다. 그는 다가오는 척준경을 보며,




“죽여라.”




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죽음이 눈앞에 왔다가는 순간이었다.




****




“뭐라. 누가 날 불러?”


“황보숭 장군이라 했습니다.”


“이런!”




가만히 누워 서책을 훑어보던 조조는 황보숭이란 이름 석 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저 십상시들 중 하나가 이용해 먹기 위해 자신을 다시 부른다고 생각했는데. 황보숭이라면 그 가치부터가 다른 자였다. 얼마 전 오색 몽둥이를 놓고 나설 때, 좋게 보였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그게 사실이었을 줄이야! 그는 옆에서 늘어져 있는 하후돈의 얼굴을 몇 번 때리곤 고개를 조아리는 하인에게 말했다.




“사신을 정중히 뫼셔라. 절대 한 치의 서운함도 느끼게 해선 안 된다.”


“예? 하지만 오늘은 조흥, 하후돈과 함께 사냥에 나가시기로 한 날이......!”


“이런 멍청한 놈!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는데 그걸 잡지도 않고 놀러 나가라는 말이냐! 당장 내 말대로 해!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말이다. 알겠느냐?”


“예!”




하인은 조조의 시퍼런 서슬에 눌려 얼른 자리를 피했다.




‘대체 황보숭이란 자가 누구기에 저 난리를 피우시는 거야.’




차마 주인의 앞에서 꺼내지 못한 말을 뒤에서 중얼거려 보는 하인에겐 지금 조조를 찾아온 사신의 중대함이 전혀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잠시 뒤, 하인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온 사내는 감탄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확실히 내시의 집안이라 해서 무시했었는데, 그의 집은 수도의 고관대작들 것과 버금갈 정도였다. 대체 얼마나 많은 재물을 쌓아둔 것일까. 그는 이 정도 기반이라면 평생 아껴가며 먹고 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하인의 안내를 따라갔다.




“어서 오시오.”


“조조님이십니까?”


“그렇소. 내가 바로 조조요.”




조조의 말에 사내는 얼른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헤어지기 전 자신에게 내려진 특명. 그것은 조조를 어떻게 해서든 낙양 땅으로 올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낙향해서 점점 조급해하는 조조를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겠지만 실제로 신도 아니고,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선택 받지 못했다. 부관이 아닌 부관의 부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누구보다도 기가 센 조조가 과연 자신을 따라 올라올 지 알 수가 없었다. 조조는 황망히 허리를 굽히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아니 말을 나누기 전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이번에 제 주인이신 황보숭 장군께서 조조님을 낙양으로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이미 정해진 선약이 있다 할지라도 우선은 저를 따라 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허허. 그건 오히려 이 조 아무개가 부탁해야 하는 건데. 그래. 당연히 장군님의 부관직을 받는 거겠지?”


“그, 그것이......”




조조는 자신의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사내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노식은 원소를, 주전은 손견을 제 부관으로 선택했다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황보숭은 당연히 자신을 부관으로 세울 줄 알았는데. 그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인가? 이건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다. 이제야 왜 사내가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과 버금갈 만한 사람은 자신 밖에는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굳은 표정의 조조가 입을 열었다.




“말해봐라. 황보숭 장군님의 부관이 누구라더냐.”


“최, 최근 낙양 등지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척준경이란 자입니다. 장군께서는 아무래도 그 분이 자신의 부관에 적합하다고......!”


“척준경!”




조조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그랬다. 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자. 자신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십상시들의 눈 밖에 나서 고향에 낙향한 사이, 그자는 누님의 말대로 착실히 커나갔다. 노식의 문하에서 그를 데려오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상황이 완전히 뒤집어 진 것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관이든, 부관의 부관이든 무슨 상관인가. 그의 주변엔 믿을만한 듬직한 이들이 많았다. 조조는 전쟁터에서 황보숭의 인정을 받고자 했고, 그의 두 눈은 예상치 못한 실패에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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