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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 듀라미스 작가, 북풍광입니다.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3.27 19:44
최근연재일 :
2014.04.23 16:4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1,619
추천수 :
586
글자수 :
61,703

작성
14.04.08 08:21
조회
2,373
추천
31
글자
9쪽

누님의 정체(9)

DUMMY

조조는 이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황보숭이 직접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라, 척준경이 간청하여 겨우 얻어낸 자리였다. 정말 초인적인 힘으로 감정을 눌러 기회를 잡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같이 끓어오른 마음이 쉽게 가라앉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해도 너무한다. 어째 문무에 뛰어나다고 알려진 자가 이리 사람을 챙기는 데 인색한 것인가. 그야말로 수하들 보기 남부끄러운 일이었다. 지난날 황보숭의 언질을 받고 물러날 때만 해도 생각조차 못했던 일인데, 그는 새삼 척준경과 자기 사이에 놓여있는 거리차를 느끼곤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옆에서 그보다 더 분기탱천한 하후돈을 달랜 것은 역시 하후연이었다. 하후돈과 달리 어지간한 일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들 그러지 마십시오. 그래도 아예 전장에서 벗어난 것보다야 낫지 않습니까. 척준경의 꽁무니에 매달려 쫓아갔다간, 아무리 범 같은 형님이라고 해도 공적을 세우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형님은 밸도 없소!”

“이놈아. 대장부라면 기회를 잡기 위해서 가끔 속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럼 맹덕 형님은 밸이 없어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줄 아느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하후돈을 연이 꾸짖자, 그는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 심심치 않게 멱살을 잡고 흔들었던 두 사람은 마치 이곳이 씨름판이라도 되는 양 다시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아무리 하후연이 사람이 좋다고 해도, 그도 사내였다. 걸려오는 싸움을 피할 만큼 나약한 약골은 아니었다. 기회를 엿보던 하후돈이 당장 달려들려고 할 때, 조조가 한 차례 소리를 질러 두 사람을 막았다.


“그만들 해라. 내가 말이 너무 심했다.”

“형님!”

“묘재의 말이 맞아. 기회를 얻기 전까진 납작 엎드려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저들에게 당한 치욕은 전쟁터에서 황건적 놈들에게 갚아주면 되는 게다. 화를 더욱더 깊이 눌러 담아라. 그리고 내일 전장에 나서게 되면 적들을 향해 그 울분을 풀자. 지금은 그거면 됐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알겠습니다.”


하후돈과 하후연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바야흐로 범인과는 다른 조조의 인물됨을 볼 수 있는 때였다. 한편 한당과 주치를 비롯한 정보, 황개를 불러 모은 손견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하들의 당당한 기세가 마음에 든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내일 전투에 관한 것들만 가득할 뿐, 조조에 관한 일은 전부 지워져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손견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손견의 입술을 비집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내일 우리가 오른편에 선봉을 맡게 되었을 때, 그쪽에 장각의 무리가 있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그자가 왼편에 있을 경우 문제가 생긴다. 그자의 실력을 직접 볼 일은 없었지만, 낙양의 야차라 불릴 정도로 도적들을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흑산적의 장연까지 품에 넣은 기백으로 봤을 때 분명 만만히 볼 자는 아닐 게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잠깐 마주쳤을 뿐이지만 이 한당의 간담을 서늘하게 울릴 정도였으니 분명 실제로 검을 맞대면 대부분의 장수들이 채 5합을 버티지 못할 겁니다.”

“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 번 검을 맞대보고 싶군요.”


정보가 자신의 철척사모를 들어 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손견까지 나서서 인정한 자를 경계하거나 피하기는커녕 한 판 제대로 붙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정보뿐일 것이다. 손견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정보만이 아니었다. 후에 오의 개국공신이 되는 이들은 하나같이 용맹할 뿐만 아니라, 성품이 곧고 겸손하여 손견의 옆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그럼에도 제 주인인 손견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질 각오와 패기를 갖추었으니, 그야말로 영웅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호승심이 가득 담긴 정보의 말에 씩 웃은 손견은 이내 손뼉을 쳐 주위를 모으고 말을 이었다.


“자. 다른 말을 할 시간이 없다. 내일 오른편에 장각이 서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가 있으니 수를 좀 쓰자. 밤이 깊어 앞뒤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면 정보와 황개는 병력을 이끌고 군문 밖으로 나가라. 하여 크게 우회한 뒤 왼편 풀숲에 숨어 있다가, 만약 장각이 있거든 급히 들이쳐라. 알겠느냐?”

“예. 척준경에게 알리지 않아도 될까요?”

“알리지 않아도 된다. 황건적은 멍청하게도 스스로 머리에 노란 두건을 쓰고 있다. 두건만 쓰면 다행인가, 갑주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농부들이 대부분이다. 두건은커녕 갑옷까지 걸치고 있는 자네들을 본다면 척준경의 병사들도 함부로 하지 않겠지.”

“좋은 계책입니다. 본래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법. 황보숭 장군에게 몰래 언질을 하고 나간다면 장각의 목은 주군의 손에 들어오겠지요.”

“좋아. 다들 나가보라.”

“예!”


손견은 사람을 보내 황보숭 장군에게 은밀히 언질을 하도록 하고 긴장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머릿속엔 이마에 힘줄이 툭툭 불거지던 조조보단 눈빛이 사납게 살아있던 척준경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앞으로 천하를 놓고 다투는 상대가 되겠지. 이미 한 왕실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버린 손견에겐 척준경은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이 정도 수라면 그라도 별 대책을 세우지 못하겠지. 그는 흐뭇한 마음으로 잠자리로 향했다.


한편, 반 시진 뒤 장군 황보숭의 막사 안.


“대체 이 자들이 무슨 수를 꾸미는 게야.”


그리고 척준경에게도, 손견에게도 비슷한 계책을 받은 황보숭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


척준경과 왕자지는 1800에 달하는 병사들을 이끌고 선봉에 섰다. 그의 옆에는 조조, 그리고 그 옆으로 손견이 서 있었는데 다들 서로를 보곤 고개를 살짝 숙였을 뿐 따로 입을 열어 인사를 나누진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한 존재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손견은 설마 그가 자신과 똑같은 계책을 썼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언제나 척준경의 옆에 있던 장연이 보이지 않는 것을 미심쩍게 여기고 있었고, 척준경은 황개와 정보가 없음을 눈치 채곤 씩 웃을 뿐이었다. 자꾸 척준경을 흘끔거리던 손견이 막 입을 떼려던 때, 뒤에서 말을 타고 나온 황보숭과 주준이 그들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하니 장각 놈을 사로잡는 건 시간문제로군.”

“과찬이십니다. 장군!”

“허허. 설마 의용군에 불과한 자들이 이 정도로 기세가 등등할 줄이야. 우리 관군이 밀릴 정도입니다. 황보숭 장군.”

“하하하.”


주준의 말에 황보숭은 기꺼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보기에도 정말 더 이상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해 보이는 병력이었다. 좌편에 선 척준경과 별무반의 부리부리한 눈빛과 살기, 그에 뒤지지 않는 조조와 손견의 병사들은 두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채워주었다. 물론 솔직히 혈기가 왕성한 자들이 모이다 보니 불안한 건 있었다. 어제 재가를 해주긴 했지만, 서로가 상대의 왼편과 오른편에 각각 자신의 병력을 매복시켜 둔 것이 장각의 목을 벤 공을 얻기 위함임을 노련한 그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는 아련한 시선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첫 출전. 자신도 저런 때가 있었던가. 분명 있었겠지. 지금은 아무런 마음도 들지 않지만, 어떻게든 상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밤을 새워 읽은 병서의 내용을 치열하게 떠올렸던 나날이 생각난다. 분명 이 셋은 크게 될 것이다. 황보숭은 그들의 눈빛만으로도 이미 승리를 손에 쥔 느낌이었다. 그는 반대편에서 노란 깃발을 나부끼며 서 있는 황건적의 대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적은 전술 경험이 적다 못해 없다시피한 오합지졸이다. 가서 관군의 무서움을 똑똑히 보여 주거라.”

“예! 장군!”

“전군 진격하라!”

“진격하라! 단숨에 달려 적의 진형을 무너트린다!”


중앙에 선 조조의 말에 모두가 말의 고삐를 잡아 당겼다. 말이 세차게 투레질을 하고, 전방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병사들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힌다. 잠시 뒤, 마치 세상이 끝난 것만 같은 침묵 뒤로 수천의 선봉대가 말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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