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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 듀라미스 작가, 북풍광입니다.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3.27 19:44
최근연재일 :
2014.04.23 16:4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1,578
추천수 :
586
글자수 :
61,703

작성
14.03.29 16:58
조회
3,254
추천
48
글자
9쪽

누님의 정체(2)

DUMMY

척준경은 달리는 말 위에서 조조를 흘끗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꽉 다문 입, 우뚝 선 콧날이 보면 볼수록 영웅의 상이었다. 덧붙여 다부진 체격에 몸에서 풍겨 나오는 힘이 보통이 아니라, 절로 척준경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다. 허리에 찬 검이 나 보라는 듯이 훤하게 매달려 있으니, 아무리 봐도 검술의 검자도 모르는 신출내기는 아닐지라. 본래부터 영웅이나, 영웅에 필적한 자를 보면 꼭 검을 겨뤄야 직성이 풀렸던 척준경의 호승심이 다시 한 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영웅들을 지휘하는 자라면 분명 보통 실력은 아닐 테지. 이자와 한 번 붙어봤으면 좋겠구나.’

“뭘 그렇게 보시오.”

“음?”

“뒤에서 말로 다 못할 살기가 자꾸만 등을 찌르니, 따가워서 못 견디겠소. 거참. 불만이 있으면 그 자리서 말로 할 것이지. 왜? 이 조조와 검이라도 섞고 싶은 것이오?”


조조의 대답은 실로 퉁명스러웠다. 아무래도 자신을 끝까지 의심하고 있다고 지레 짐작해버린 모양이었다. 척준경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과했음을 깨닫곤 빙그레 웃으며 살기를 가뒀다. 어차피 좋든 싫든 오래볼 사람이다. 중국대륙을 정신없이 휘저어야 할 자신에겐 없어선 안 될 조력자이기도 했다. 자신의 호승심 때문에 애먼 사람을 놓치고 싶진 않았다. 그는 한껏 말을 몰아 조조의 옆에 바짝 붙이곤, 이내 입을 열었다.


“미안하군. 아무래도 처음 봤더니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일세.”

“뭐. 이해하오. 원앙도 항상 조정에 들어갈 때마다 날더러 억지로라도 웃으라고 할 정도니. 허허. 그러고 보면 누님을 빼놓곤 날 처음보고 좋게 봐준 사람이 없구먼. 다음부턴 환대 좀 해 주시구려.”

“약속하지.”


어딘가 어색하게 들리는 척준경의 말에 조조는 씩 웃었다. 폼을 보니 아무래도 한, 두 번 겪은 일이 아닌 모양이다. 하긴 가뜩이나 제 할아비가 환관인데 돈을 풀어 산 관직인 효렴으로 올라왔다고 하니 청의淸議들이 반길 리가 없었다. 그 뿐이랴. 낙양의 북부도위로서 오색五色 칠을 한 몽둥이를 들고 십상시인 건석의 아재를 때려죽인 일 때문에 제 편이라 생각했던 환관들마저 등을 돌리지 않았던가. 그런 일을 겪고도 꿋꿋이 낙양 땅을 지키고 있으니 참으로 강직하면서도 놀라운 자다. 척준경은 마주 웃으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그 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조조가 잘 보이지 않는 희끄무레한 곳을 가리켰다.


“자. 목도 칼칼한데 저 마을에서 목이나 좀 축이고 갑시다. 내, 형님에게 전할 말도 있고.”

“형님이라니?”

“민망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이미 누님께 약관이 한참 지났다는 얘긴 들었소. 나름대로 친근해지고 싶은 뜻이니까, 이 조조도 동생처럼 받아주시구려.”

“......알겠네.”


척준경은 바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조가 어떤 자인가. 자존심이 워낙 강하고, 다른 사람에게 지기 싫어하는 자 아닌가. 그런 자가 어쨌든 척준경을 보며 한 수 낮춘다는데, 거기에다 대고 정색을 할 만큼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누님이라는 사람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듯 했고. 잠시 그의 눈치를 살피던 척준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바로 낙양으로 가는 게 아니었나?”

“낙양 땅은 무슨 얼어 죽을. 모르는 사람들 앞이라 말을 안 했다 뿐이었는데, 자꾸 그렇게 모른 척 하실 거요? 아마 낙양으로 되돌아오는 건 적어도 3년, 아니면 4년 후가 되리라는 건, 형님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소. 앞장서서 주도한 사람이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알고 있었지. 다만 혹시 주변에 보는 눈이나 듣는 귀가 있을까 하여 해본 말이다.”

“걱정 마시오. 여기까지 왔으면 제 아무리 불알 없는 십상시 놈들이라고 사람을 보내진 못했을 테니. 일단 갑시다.”

“알았네.”


척준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거야 원, 전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으니 대응하기도 애매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일로 계속 마음을 쓸 수도 없다. 척준경은 앞으로 겪을 일이 더 많은 만큼, 대충 어느 정도만 지나면 쉽게 해결 될 일이라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슴푸레 보이는 마을에 접어드니 여러 필의 말과 무장한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마다 서서 왁자지껄 떠드는데, 그 모습이 척준경에겐 굉장히 낯익었다. 대체 누구일까. 어떤 자들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도 머릿속에선 허물어져 버리는 모래성처럼, 그들을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 때, 제일 앞에서 튼실한 갈색 종마에 올라타 있던 자가 벼락같이 척준경의 앞으로 달려왔다. 그가 훌쩍 뛰어 감격한 얼굴로 앞에 부복하니, 당황한 척준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누구기에 이토록 급히 무릎을 꿇는 건가.”

“검교호부상서檢校戶部尙書어른! 저 왕자지입니다!”

“왕자지?”


순간 그는 한 달음에 말에서 뛰어 내려갔다. 과거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할 때, 자신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준 왕자지를 설마 이곳에서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척준경은 직접 부복한 그를 일으켜 세우며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두 눈이 붉게 달아오른 전장의 전우를 보니 척준경의 마음도 거친 소용돌이가 휘몰아 쳤다. 가슴 한 구석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울컥 솟구쳐 오르는 느낌이었다. 왕자지 뿐만 아니라 뒤에 서 있는 별무반 수백 기를 보고 있자니, 정말 든든해져 그는 몇 번이나 수하의 어깨를 내리쳐야 했다. 뒤에서 말에 탄 채로 빙그레 웃고 있던 조조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입을 열었다.


“누님께서 남기신 선물이오.”

“선물? 선물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형님이 노식의 문하로 들어가고 나서, 누님이 전국을 수소문해 찾아낸 이들이 바로 왕자지와 그 패거리였소. 낙양 근교에서 도적놈들을 때려잡는 걸 내가 회유해 데리고 왔지. 누님께선 형님의 배움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계셨소.”

“......”

“자. 이제 마음대로 해 보시오. 안 그래도 전국에서 태평도의 무리들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있소이다. 그리고 낙양 땅 안에선 십상시들이 폐하를 쥐고 온갖 짓거리를 다하고 있지. 이 조조는 낙양 땅 안에서 역적 놈들이 엄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오색 몽둥이를 들고 서 있을 테니, 형님은 형님 패거리들을 이끌고 명성을 쌓아 오시오. 천하가 벌벌 떨고, 형님 이름만 들어도 도적놈들이 오금을 저릴 정도로 말이오.”


아. 이것이었는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척준경은 그 ‘여인’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대체 이 삼국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조조와 자신의 뒤에는 거대한 세력이 있고, 그들은 십상시가 들고 일어서는 한을 지키려 하고 있다. 그를 위해 내부 단속은 조조에게, 외부 단속은 이 척준경에게 맡기려 하는 것이다. 척준경은 왕자지와 수백 기의 별무반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이 수만으로 적을 제거하라는 명이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척준경에겐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그는 고려의 무사, 그것도 산천초목을 벌벌 떨게 만든 진정한 무인이었으니까.


“알겠다. 아직 본격적인 거병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이 가는 곳이 있으니, 바로 그 쪽부터 정리하도록 하지.”

“뭐. 태평도의 무리들이 시끌벅적해지면 아무리 썩어빠진 조정이라도 대책을 세우지 않겠소. 안 그래도 청의들을 몇 사귀어 두었으니, 일이 잘 되면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협조하리다.”

“그래. 누님께 안부 전해드려라.”

“이를 말이겠습니까.”


고개를 살짝 숙이고 피식 웃은 조조가 말에 탔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척준경은 자신의 검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아직 태평도의 무리가 본격적으로 일어서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 불이 번질 것을 알고 자신을 보냈다. 그렇다는 건 낙양에 있는 그 여인도 보통내기가 아니란 말이었다.


“앞으로 참 재미있게 돌아가겠군.”

“전군! 출격 준비하라!”

“예!”


여진을 정벌하기 위한 별무반이 이제는 태평도의 무리들을 정벌하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사나운 살기를 거침없이 뿜어내고 있는, 매서운 눈길의 척준경이 서 있었다.


작가의말

별무반은 사실 그리 강하진 않았다고 하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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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누님의 정체(5) +2 14.04.01 2,125 38 8쪽
5 누님의 정체(4) 14.03.31 2,899 43 9쪽
4 누님의 정체(3) +2 14.03.30 3,282 39 11쪽
» 누님의 정체(2) +1 14.03.29 3,255 48 9쪽
2 누님의 정체 +10 14.03.27 3,595 5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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