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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 듀라미스 작가, 북풍광입니다.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3.27 19:44
최근연재일 :
2014.04.23 16:4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1,577
추천수 :
586
글자수 :
61,703

작성
14.03.31 20:05
조회
2,898
추천
43
글자
9쪽

누님의 정체(4)

DUMMY

전 북지태수 황보숭은 서둘러 조정에 입궐했다. 비록 당고의 화에 연루되어 벼슬을 잃고 낙향해야 했지만, 이제야 한 왕실을 바로잡을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에 그의 얼굴엔 웃음꽃이 절로 피어났다. 그를 도와줄 왼팔과 오른팔도 사해에 그 명성이 자자한 자들이었다. 유비의 스승인 노식과 전 교지태수 주전. 둘 다 태평도를 때려잡고, 나아가 황실을 위기에서 구할 충신들이었다. 무슨 변덕이 불었는지, 절대 신임을 받지 못할 것 같은 세 사람이 각기 황제의 명을 받들어 입궐한 뒤였다. 이제야 그릇된 조정을 불알 없는 환관들의 손에서 구할 수 있다. 황보숭에겐 그것이 마치 꿈만 같은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자리에 들자,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하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황보숭 장군이 아니시오.”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하진 대장군.”

“허허. 새삼스럽게 고개를 숙일 것이 무어요.”


하진은 자신을 향해 극진히 예를 표하는 황보숭을 보며 허허롭게 웃었다. 황후의 오라비로 가진 능력에 비해 많은 것을 손에 쥔 그는 항상 곧게 선 이들의 칭찬에 목이 말라 있었다. 그래서였는가. 나라에서 문과 무를 모두 겸비한 것으로 알려진 황보숭의 극진한 인사가 그의 마음을 한껏 부풀게 만들었다. 말로는 사양하면서도 두 눈이 양껏 웃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더 해! 더 고개를 숙여! 라고 그의 반달눈이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이미 장군의 속셈을 알아챈 노식과 주전 또한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히니, 하진의 콧대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아져,


“시대의 영웅들이 나를 인정해주니 참으로 기분이 좋구려. 그래. 당장이라도 병사를 일으킵시다. 아니면 그 전에 여러분이 군영에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한 가지씩 원을 들어주겠소.”


라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나서서 지껄이는 것이었다. 때를 놓칠세라 얼른 앞으로 나선 주전이 황보숭 대신 입을 열었다.


“이 주전, 당장이라도 역도들을 때려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대장군도 아시다시피 몸은 노쇠하고, 겁이 많아 선봉에 나설 젊은 장수를 한 명 데려오고 싶습니다.”

“허허. 그건 너무 쉬운 부탁인데. 그래, 이렇게 직접 말씀하시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마음에 둔 자가 있는 모양이구려. 대체 그게 누구요?”


콧수염을 배배 꼬며 거들먹거리는 하진의 말에 잠시 숨을 가다듬은 주전은 이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가 선봉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은 오군의 손견이라는 자입니다. 성을 함락시킬 때는 제 스스로 성벽을 기어 올라가 적의 피를 몸에 뿌리며 칼춤을 추고, 병력과 마주했을 때는 묘한 계책을 써 머리로 물리치니, 그야말로 능히 부대의 선봉에 세울 장재將材입니다.”

“오오. 손견이라면 나도 이름을 좀 들은 바가 있소. 그건 나로서도 대 환영이니, 내 뜻을 주전공께서 좀 전해주시구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하. 자. 다음은 누굴 천거하시겠소?”


하진의 말에 이번엔 황보숭이 앞으로 나섰다. 안 그래도 그는 본래 조조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그 자의 됨됨이나 범상치 않은 기운이 몇 번이고 자신의 마음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고향에 내려가서도 만약 다시 조정에 올라오게 된다면 자신의 옆 자리를 꿰차고 앉을만한 놈은 그 놈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조조는 앞서 주전이 말한 손견에 비하면 그 세력이 보잘 것 없었다. 비록 고향에서 의용군을 모집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다 끌어봐야 얼마나 될 것인가. 놓치지 아까운 재목이라 군침만 흘리고 있었는데, 마침 딱 좋은 세력이 하나 더 나타났다.


“척준경이다!”

“야차, 야차가 나타났다!”

“도적놈들을 모두 쓸어버려라!”

“예! 장군!”


바로 낙양 일대를 야차처럼 휘젓고 다니는 척준경이라는 자였다. 비록 관직을 따로 받지 않고 바로 의병을 조직해 도적들을 처단하기 시작한 게 흠이지만, 그 무예와 용맹이 워낙에 뛰어나 그런 단점들을 모조리 덮어 버렸다. 아무리 기세 등등한 도적도, 수천에 달하는 도적 떼의 두목도 척준경이 휘두른 단칼에 목이 잘린다는 소문은 이미 낙양 일대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 자와 조조를 자신의 휘하에 둘 수만 있다면, 황보숭이 생각하는 한의 황실은 보다 빨리 안정을 되찾을 것이었다. 황보숭은 하진의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제가 천거할 사람은 바로 척준경이라는 자입니다. 최근 낙양 일대를 휩쓸면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도적들을 처단하고 다니는데, 습격하여 뺏은 재물과 식량을 근처 마을에 무상으로 베푸니 그를 따르는 자가 구름같이 몰려든다 합니다. 또한 지금은 하북 최대의 도적인 흑산적과의 대결을 앞두고 있고, 승리 또한 당연한 것이라 분명 황건적들을 처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호오. 그래요? 그런 자가 있었단 말이요? 참으로 대단하구려. 얼마나 무용을 떨쳤기에 우리 황 장군님의 귀에까지 들어간 겐지. 한 번 불러오시오. 얼굴이나 좀 봅시다.”

“예. 그리고 그 부관으로 천거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습니다만......”

“아아. 부관까진 상관없소. 어떤 사람을 쓰던 황 장군이 알아서 잘하시겠지.”

“예.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물러난 황보숭이 즉시 눈짓을 하자, 뒤에 서 있던 자가 고개를 끄덕이곤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마치 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헐레벌떡 뛰어, 낙양성 밖의 팔달산 주변으로 가기 시작했다.


“어이!”

“억!”


그리곤 마침 갈림길에서 편안히 앉아있는 자의 등을 탁 치니, 한가로이 술을 마시고 있던 자가 깜짝 놀라 등을 곧게 폈다.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팔짱을 낀 채 웃고 있는 사내를 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한손에 든 술병은 애지간한 변명으론 빠져나가기가 힘든 일이었기 대문이다. 그는 한눈에 봐도 여물을 잘 먹은 튼실한 말의 고삐를 내어주며 괜히 딸꾹질을 몇 번 했다.


“자. 여기 있다. 척준경을 잡으러 가는 모양이군.”

“그래. 자넨 어떻게 해서든 조조님을 데려오게. 주인님의 명이야.”

“걱정 마. 오히려 그 놈을 조심하라고. 흑산적의 무리까지 손에 넣은 뒤로 기고만장해 지지 않는다곤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걱정 말게. 척준경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흐흐. 벌써 단단히 빠졌구먼.”

“자. 그럼 장군님 앞에서 뵙지.”

“알겠네~”


사내는 즉시 말을 달려 척준경이 있는 쪽으로 말을 달렸다. 그 시각, 척준경은 산채 앞까지 똑바로 말을 달려 자신을 따르는 수천의 병력에게 막사를 짓도록 했다. 한 번도 진지구축을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을 고려 식으로 목책을 세우고, 천을 얼기설기 엮어 막사를 세우니 처음 겪은 병사들이 저마다 탄성을 지르기 바쁘더라. 20년 이상을 전쟁터에서만 살아온 척준경에겐 그건 땅 짚고 헤엄치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울창한 숲과 가파른 산세를 바라보며 왕자지에게 넌지시 말했다.


“흑산도의 머리수가 어느 정도 된다고 했지?”

“일만에서 이만정도 됩니다. 부풀려진 건 십만이나 이 산 안에 그만한 수가 전부 들어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흠.”

“적의 예기를 꺾기 위해서라도 일단 들이쳐 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적들은 우리의 다섯 배나 되고, 산세도 저들에게 유리하니 필경 방심을 하고 있을 게다. 이쪽의 수가 대단치 않음을 깨달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스스로 몸을 드러낼 것이야.”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갸웃거린 왕자지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꽹과리와 징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더니 산을 빼곡하게 채운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마다 흉흉한 살기를 드러내고, 한 손엔 날카로운 검을 쥔 이들을 보자, 왕자지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소리를 질렀다.


“호부상서어른! 흐, 흑산적黑山賊 놈들입니다!”

“모습을 드러냈으니 내려올 마음도 있을 것이다! 징을 울리고 북을 쳐라! 단숨에 돌파한다!”

“예! 전군 돌격하라!”

“별무반은 나를 따라 오너라!”

“예!”


한편 밑에서 복작거리는 모습을 쳐다보던 장연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저들이 이 흑산적을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본 것이지. 아무리 무식하기로서니 천하의 장연에게 맨 몸으로 덤비는 이들을 보니 괜히 호승심이 치밀었다. 그는 양옆에 바위를 잔뜩 준비해놓은 산적들에게 손을 휘저은 뒤 스스로 사모를 집어 들고, 산 밑으로 내달았다. 주인을 휘말리게 할 수는 없는지라.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산적들도 전부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내려갔다. 검은 두건을 쓴 물결이 덮쳐오니 척준경은 밑에서 코웃음을 한 번 치곤 크게 검을 휘두르더라.


‘네놈이 결국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하찮은 자존심을 앞세우는 건 어느 산적 놈이나 다 똑같구나.’


그는 이 검에 장연의 목이 떨어질 거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의 검이 장연의 묵직한 사모에 막혔을 때, 척준경은 산적들을 처단하기 시작한 지 처음으로 호승심 가득한 눈길을 장연에게 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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