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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 듀라미스 작가, 북풍광입니다.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3.27 19:44
최근연재일 :
2014.04.23 16:4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1,617
추천수 :
586
글자수 :
61,703

작성
14.04.02 14:41
조회
2,278
추천
35
글자
9쪽

누님의 정체(6)

DUMMY

“아니! 준경이 아니냐!”

“사부님!”


척준경은 반가운 얼굴로 자신을 맞는 노식에게 서둘러 절을 올렸다. 아무리 중국과 고려의 예의가 다르다고 해도, 오랜만에 만난 스승에게 하는 예는 제대로 알고 있었다. 고개를 들며 슬쩍 눈치를 살피니 노식은 의심하는 기색은 전혀 없고, 오히려 제자의 출세를 가득 반기는 눈치였다. 사실 얼마나 반갑겠는가. 안 그래도 다시 발령을 받아 급하게 정리하는 바람에 아끼던 애제자들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도 내려주지 못했는데, 알아서 척척 도적들도 물리치는 용맹스러운 무사가 되었다니. 아무리 눈치가 빠르고 학식에 조예가 깊은 노식이라도 제자의 일에선 이성보단 감성이 앞서는 노인이었다. 척준경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사부님을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게 되다니, 이 준경, 평생의 원이 하나 풀렸습니다.”

“허허 노부도 마찬가지다. 이곳에 온 것은 누구의 뜻이더냐.”

“황보숭 장군께서 저를 부관으로 쓰시겠다고 불러 주셨습니다.”

“나중에라도 사례를 해야겠군. 스승 된 자로 네 앞길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나의 무지로구나.”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알아봐 주신 것만으로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척준경의 말에 노식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설마 준경이 황보숭의 부름을 받을 정도까지 성장한 줄은 미처 몰랐다. 비록 하진 대장군의 앞에서 그가 직접적으로 척준경을 불러 쓸 것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는 하진을 안심시키기 위한 기만책이라고만 여긴 것이다. 제대로 된 부관은 얼마 전 고향으로 낙향한 조조이고, 척준경은 그의 밑으로 들어갈 거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오히려 당당히 부관의 자리에 이름을 들이미니, 노식으로서는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준경의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얼른 들어가자.”

“예. 스승님.”

“형님. 저희들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병사들을 잘 다독여 주어라. 강행군을 해서 많이 피곤할 게다.”

“예!”


노식은 준경의 말에 두 말 없이 등을 돌리는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범의 기운을 가진 자들에, 사모를 든 자는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투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의 팔뚝을 길게 가른 상처를 바라보던 노식이 문득 물었다.


“근데 저 자는 누구냐. 흔히 보기 힘든 자로구나.”

“아. 이번에 새로 들인 자입니다. 흑산적을 이끌던 장연이라는 자인데, 제가 아우로 삼았습니다. 한 자루 사모를 귀신같이 돌리는데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허허. 그래? 아무래도 네가 영웅의 기상을 가지고 있으니 주변에 인재들이 모여드는구나. 즐거운 일이다. 즐거운 일이야.”

“과찬이십니다.”


척준경은 기꺼워하는 노식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문득 전날의 일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간다.


“죽여라!”


이 말만을 남긴 채 눈을 감은 장연의 목을 그는 베지 않았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 땅에 넘어와 처음으로 기백이 있는 자를 만났다. 그저 그런 피라미들을 베느라 지친 척준경에겐 그야말로 한 줄기 빛이 비춘 것과 다름이 없었다. 척준경은 그의 앞에 사모를 던지며 씩 웃었다.


“넌 이대로 죽기엔 아깝다. 나를 따라 천하를 도모해 보는 것이 어떠하냐.”

“천하? 하! 네 꿈이 크다 못해 허황되기 그지없구나. 고작 이 정도 군세로 천하를 꿈꾸다니. 미련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사내가 꿈을 꾸는데 그 크기가 무슨 상관이며, 허황된들 또 어떠한가. 믿어보아라. 적어도 지금 이 산적질보다는 훨씬 더 나은 미래를 살게 해 주겠다. 산적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경험과 부, 명예를 주겠다. 이 척준경을 믿고 따라오너라.”

“......”


장연은 진심을 말하는 척준경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비록 먹고 살기 힘들어 시작한 도적질일지라도 그 역시 사람이었다. 명명백백한 장부였다.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망설이던 장연은 사모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옅게 웃고 있는 척준경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을 받아줄 것을 청했다. 척준경은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그것이 바로 어제 오후의 일이었다.


척준경의 별무반이 흑산적을 쓸어버렸다는 소문이 주변에 파다하게 퍼졌을 무렵, 황보숭의 명을 가지고 등장한 사내가 그에게 복귀할 것을 청했고, 척준경은 당연히 받아들였다. 산적들 중 자신의 군에 합류하고 싶어하는 자는 전부 받아준 뒤의 일이었다.


그렇게 황보숭의 명에 따라 모여든 인재들은 바야흐로 다음과 같았다. 역전의 명장 주전 휘하 강동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손견, 문과 무를 모두 겸비했다고 알려진 장군 황보숭 휘하 요 근래 낙양성 주변의 도적들을 모조리 제거하며 낙양의 야차로 기세를 올리고 있는 척준경과 그의 부관이 된 조조, 마지막으로 학식의 깊이를 따라갈 자가 없다고 알려진 노식 휘하 4세5공의 명문 가 하남 원씨가의 원소가 그 주인공이었다. 각지에서 활약 중인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대장군 황보숭은 그들의 기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그는 기꺼워하며 입을 열었다.


“아직 한 왕실의 뿌리가 마르지 않았구나. 전국에 이토록 많은 인재들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자네들과 함께라면 그깟 장각과 장보의 누런 무리 따위가 무에 그리 두렵겠는가.”

“과찬이십니다. 대장군 어른.”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자, 양 옆에 앉은 주전과 노식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척준경은 척준경대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검을 빼들고 칼춤이라도 추고 싶다. 원소에 손견, 조조라니. 게다가 비록 이곳엔 들어오지 못했지만 저들의 아래엔 문추와 안량, 하후돈, 한당 같은 굵직굵직한 무장이 함께이지 않는가. 낙양 근처에서 질리도록 벤 도적들과는 검 맛이 다를 것이었다. 척준경은 무의식중에 팔에 불끈하고 들어가는 힘을 가라앉히려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 영웅들이 하나같이 내뿜는 진한 기운이 그의 마음을 간질였다. 이제는 전부 잊은 줄 알았던 젊었을 적의 호기로움이 싱그러운 봄바람처럼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즐겁구나. 영웅들이 모여 있으니 날아갈 것 같다.’


그는 이 자리에서 느껴지는 서로에 대한 긴장감에서 벗어나 훨씬 더 상층의 공기를 맛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앞으로 펼쳐질 역사를 모두 꿰뚫고 있는 자의 특권이었다. 덧붙여 자신의 실력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고려 최고의 무인, 척준경만이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평범한 자였다면 그들의 앞에 서는 순간 기에 질려 제대로 입도 열지 못했을 것이다. 한 차례 영웅들을 둘러본 척준경은 자신을 찾는 황보숭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래. 척준경. 비록 자네가 낙양성 근처에서 갖은 전과를 올렸다고는 하나 아직 생소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으니 이곳에서 간단하게 소개를 해봄이 어떻겠는가.”

“낙양성 야차에 관한 소문은 많이 들었으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구먼.”


노식의 말에 주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척준경은 그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예를 표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장군께서 이 몸을 어여삐 여기시어 자리를 마련해 주셨으나, 실제로도 그리 대단한 놈은 아닙니다. 태생은 저 먼 고려의 출신이고, 낙양으로 온 것은 누님의 배려 덕분입니다. 이후 스승님의 문하에서 차근차근 배워나가다가 다시 돌아와 그 길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운이 좋아 나약한 산적들을 만났을 뿐, 그리 큰 인물은 못 됩니다.”

“출신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척 장군의 소문이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강동 땅까지 휘몰아치더이다. 내 꼭 이번 기회를 통해 뵙고 싶었는데,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야말로 강동의 호랑이를 직접 뵙게 되니 더 이상 바랄 일이 없습니다.”


척준경은 손견과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한편에 앉아 있는 원소를 바라보았다. 훤칠한 얼굴, 가만히 앉아 있어도 확연히 드러나는 영웅의 기상. 하지만 그에겐 한 가지 없어도 되는 것이 있었다. 대단한 가문 덕에 시대를 풍미하는 명사들하고 사귀다 보니 처음 보는 자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것 말이다. 자신을 아랫사람 보듯 하는 그의 시선에 척준경의 입가에 비틀린 웃음이 내려앉았다. 어차피 조조나 손견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자다. 물론 한동안 대륙을 뒤흔드는 용장이 되는 것은 맞는 얘기였지만. 척준경은 원소에게도 똑같은 말을 하고 예를 올렸다. 원소도 심드렁하게 대꾸할 무렵,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이제 막 올라온 조조였다.


작가의말

이 작품은 10화에서 15화 연재후 다른 곳과의 형평성을 위해  유료 연재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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