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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 듀라미스 작가, 북풍광입니다.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3.27 19:44
최근연재일 :
2014.04.23 16:4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1,598
추천수 :
586
글자수 :
61,703

작성
14.04.02 23:17
조회
2,732
추천
35
글자
8쪽

누님의 정체(7)

DUMMY

“어찌하여 이 조조는 빼놓고 회의를 하시는 겁니까!”

“이런 무례한 놈!”

“여기 계신 장군들이 보이지 않느냐!”


혈기 넘치는 조조의 말에 노식과 주준이 분기탱천하여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엉겁결에 막아섰지만, 옆에 서 있던 하후돈이 언월도의 등으로 목을 때려 가볍게 기절시켜 버렸다. 일이 이렇게 되자 회의장 안에 있던 병사들이 전부 검을 뽑아들었다. 본래 이들은 조조보다 그 계급이 높은 황보숭 장군의 소속이다. 감히 조조도 아닌 그의 밑에 있는 수하가 병사에게 손을 댄다는 것은 군령으로 엄히 다스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쯤 되면 스스로 꼬리를 내릴 만도 하건만 조조는 기어이 문 안으로 들어와 의자를 가져오라 소리를 질렀다.


“의자를 가져 오너라!”

“조조!”

“그만들 하시지요.”

“장군! 저 자의 도가 지나쳤으니 군법으로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어찌 부관도 아닌 자가 함부로 엉덩이를 들이밀려 한다는 말입니까!”

“두 분의 말씀이 지극히 타당합니다. 허나 저 아이 역시 낙양에선 그 기개와 무예로 이름을 널리 떨친 자요. 자신이 부관으로 발탁되지 못한 것에 대해 일순 화가 난 것 같으니 용서해 줍시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정도 패기는 있어야 그래도 전장에 데려갈 만 하지 않겠습니까.”


황보숭의 말에 두 사람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결국 같은 입장에 선 황보숭을 더 이상 곤란하게 만들지 말자는 암묵적인 협의였다. 이 정도까지 조조를 감싸고도는 걸 보면 분명 그도 속으로 걸리는 일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전에 만남을 가졌을 때, 은근히 언질을 주고 믿음을 주었는데 이번에 뜬금없이 척준경을 뽑아 스스로 화를 자초한 걸 수도 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의장 안까지 밀고 들어오는 조조의 행동은 그야말로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노장들의 마음이 한 풀 꺾였다고 해서, 치솟았던 화까지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설전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조조는 결국 의자가 들어와 앉을 수 있게 되자, 즉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 조 아무개, 비록 내시의 아들이지만 사람 도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관의 부관일 수밖에 없는 제 처지도 충분히 이해하고, 낙양의 야차로 명성을 떨친 척준경을 시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아 우격다짐을 벌였습니다. 두 분의 심기가 불편하셨다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허허. 진즉에 그리 말을 했다면 좋았을 것을.”

“미리 사람을 보내지 그랬나.”

“사람을 보냈다면 제가 여기에 들어오는 걸 허락하셨겠습니까?”


형형한 조조의 눈빛에 척준경은 아무도 모르게 씩 웃었다. 하. 정말 이놈의 중국 대륙은 심심할 틈이 없다. 인구가 많아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삼국지의 무대 자체가 뛰어난 영웅들의 놀이터이기 때문인가. 그의 시선이 절벽 위에 선 조조에게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 자리에 들어온 것이다. 만약 노식과 주준이 군법을 가지고 강하게 밀고 나간다면 아무리 황보숭이라고 해도 막아줄 수 없다. 어쩌면 조조 혼자만이 아닌 병사를 기절시킨 하후돈까지 모조리 끌려가 목이 베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수하의 목숨까지 담보로 내놓으면서 그는 어떻게든 이 자리에 들어오려 했다. 그렇게 일을 벌임으로서 황보숭 뿐만 아니라 남은 두 사람에게도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것이다.


‘이걸로 내게 밀린 것은 만회를 했다. 아니지. 어쩌면 낙양의 야차라는 별명을 가진 나보다 오히려 조조의 인상이 그들의 뇌리 속에 강렬하게 남았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좋은 인상을 갖진 않겠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한 왕실을 살리기 위한 일에 무모한 배짱을 가진 그를 써먹을 확률이 높다.’


그것은 자신에게 들이대는 비수의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다고, 척준경은 생각했다. 긴장하라는 것이다. 황보숭의 지지를 얻어냈다고 해서 방심하지 말라. 방심하는 순간 내 비수가 목을 찌를 것이라고, 조조는 우회적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척준경의 심장이 또다시 짜릿한 전율에 휩싸였다. 조조의 말에 노식과 주준이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침묵하자,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황보숭이 얼른 입을 열었다.


“자. 어차피 이미 자리에 앉았으니 이 일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맙시다. 조조도 그만 일어나라. 회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 장군.”

“흐흠.”


못마땅한 표정의 노식과 주준도 일단 그의 합석을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기절한 병사들을 끌어내고 나서, 겨우 정리가 된 좌중을 돌아보던 황보숭은 아직 척준경 밖에 자기소개를 하지 않은 것이 번뜩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결국 이 자리에선 척준경이란 이름 세 글자만 모두의 머릿속에 새겨 넣은 셈이었다. 다시 한 번 근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 황보숭이 탁자 위에 놓인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전국적으로 태평도의 무리들이 기승을 떨치고 있지만, 우리가 그와 맞먹는 병력을 갖춘 것도 아니니 이름난 도적놈을 집중 공격하는 것으로 저들의 예기를 떨쳐내야 할 것이오.”

“이름난 도적이라면 장각과 장보, 정원지들이 있는 곳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소. 허나 정원지가 있는 유주성은 이곳에서 너무나 외지고, 정원지의 세력을 들이치는 것보단 장각과 장보가 있는 형주 장사의 영천을 공격하는 게 낫겠지. 일단 이 놈들을 힘을 합쳐 섬멸한 후에 사기가 떨어진 황건적 놈들을 하나하나 피를 말리는 것이 좋을 듯 싶소.”

“역시 황보숭 장군답게 멋진 전략이긴 합니다만......”


황보숭은 노식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까부터 골똘히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인재들을 거느리고 세 명 다 한 곳에 뭉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원소를 불러 이것저것 귀엣말을 하던 그는 이내 마음을 결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황보숭을 똑바로 보며 의견을 내놓았다.


“장각과 장보는 환술로 사람을 속이고 자신들을 따르게 만드는 것에만 이골이 난 사기꾼들이지, 뛰어난 무장은 아닙니다. 분명 황 장군과 주장군이 도착함과 동시에 겁을 집어먹고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겁니다. 두 분의 현묘한 계책으로 그들을 쳐부술 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 노식은 원소와 함께 광종으로 가 그곳의 도적들을 깨끗이 소탕할까 합니다.”

“허허. 그것도 좋은 전략이구려.”

“원소라면 믿을 만하지.”


두 사람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니, 노식은 두 팔을 앞으로 들어 예를 표했다. 중지를 정한 이들은 간단한 말들을 주고받고는 회의를 파했다. 어차피 대장군 앞에선 그저 자신들이 이러이러한 결론을 내리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라고만 물으면 된다. 황후의 오라비가 벼슬인 하진 놈은 움직임도 둔한데다가, 머리까지 나빠 영천이나 광종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황보숭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가던 척준경은 자리에서 일어난 조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일이 이렇게 되어 미안하군.”

“아니요. 괜찮소. 형님이 원해서 한 일도 아니고.”

“경고는 잘 받겠네. 하지만 내 자리를 뺏으려면 이번 전쟁에서 부지런히 성과를 올려야 할 게야. 낙양의 야차라는 별명은 그깟 도적 한, 두 놈을 죽여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역시 형님도 보통 인물은 아니시구려.”

“자네도 마찬가지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곤 씩 웃었다. 호걸은 호걸을 알아본다고 하던가. 그들은 무의식중에 자신의 눈앞에 선 자가 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서로에게 군례를 갖춘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텅 비어버린 회의장 안엔 낡은 지도 한 장만이 맴돌았다. 지도 위에는 누렇게 칠한 말판이 온갖 영웅들에게 둘러싸여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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