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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 듀라미스 작가, 북풍광입니다.

척준경, 삼국지에 빠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3.27 19:44
최근연재일 :
2014.04.23 16:4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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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글자수 :
61,703

작성
14.03.30 15:29
조회
3,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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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글자
11쪽

누님의 정체(3)

DUMMY

척준경은 조조라는 걸출한 인재를 얻고, 무너져가는 한 왕실의 신임을 독차지하기 위해 세차게 말을 달렸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조조의 위에 서 있어야 했다. 조조는 어차피 십상시들의 눈 밖에 나, 곧 고향으로 돌아갈 터였다. 거기서 의용군을 조직해 세력을 키우고 3년 뒤에나 모습을 드러낼 자를 얻기 위해선, 그의 위에 설 필요가 있었다. 이왕 패가 손에 들어왔다면 그것을 쓰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쓰는 것이 사내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비록 조조가 언제든지 주머니를 뚫고 튀어나갈 왕의 재목이라도 말이다.


‘먼저 황보숭의 눈에 드는 것은 내가 될 것이다.’


척준경은 필승의 각오를 다졌다. 어차피 조조 역시 이미 황보숭의 눈에 들어가 있으니 다시 낙양으로 돌아오게 된다. 태평도의 무리가 본격적인 거병을 시작하게 된다면 말이다. 이후 혁혁한 공을 세우며, 왕윤을 만나기 전까지 동탁의 오른팔 노릇을 할 것이니 결국 자신과는 끊임없이 부딪치게 될 사이라는 것이다. 그 때, 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자신의 세력도 물에 쌀 불리듯 불려둘 필요가 있었다. 여인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어느 한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지 않게 조절하는 능력, 그녀는 그것을 극한의 수준으로 터득하고 있었다.


“어이. 너희들. 누구 허락받고 이 팔달산을 지나려는 거냐.”

“......길목을 지나는데 왜 산적의 허락이 필요한가.”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척준경은 여지없이 걸려오는 시비에 고개를 들었다. 미리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두길 잘했다. 이 길목엔 무려 수천에 달하는 도적떼가 판을 치고 있다고 하더니만, 아무래도 낙양 팔달산에 있는 산적 떼인 모양이었다. 잡졸이긴 하지만 무려 이천에 달하는 병력을 손에 쥐고 있던 산적 두목 이천징은 수백의 별무반과 함께 팔달산에 모습을 드러낸 척준경을 보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네놈이 이 어르신의 소문을 듣지 못한 모양이구나? 팔달산의 이천징이라고 하면 울던 아이도 놀라 울음을 뚝 그치고, 산천초목이 벌벌 떤다는 얘기 말이다.”

“네 안색을 보아하니 이제 막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파리하고, 눈동자는 푹 죽어 있는데 대체 어느 누가 벌벌 떤다는 말이냐. 아무래도 지금껏 선량한 백성들의 호주머니만 털어왔지, 제대로 된 관군과는 만나보지 못한 모양이구나.”

“뭐라!”


지지 않고 대꾸하는 척준경의 말에 이천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지금껏 산적 두목으로서 이와 같이 수치를 당한 일이 없거늘. 자신들과 마주친 관군들은 저마다 무릎을 꿇고 빌거나, 걸음이 날 살려라 도망가기 바빴고, 백성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체면을 자신의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그에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투박한 박도를 든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가라! 가서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특히 저 수괴 놈은 내 직접 사지를 찢어 놓으리라!”

“우와아!!”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각기 손에 익은 병장기를 든 산적들이 중구난방으로 몰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척준경의 뒤에 서 있던 왕자지와 별무반은 하나 같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가에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벌써 검을 빼든 채 그들의 접근을 기다리던 척준경은 이내 말의 배를 박차며 달려 나갔다.


“우리 별무반의 매서움을 보여줘라! 칼을 버린 자는 살려주되, 끝까지 저항하는 자는 목을 베어 그 수급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을 것이다!”

“예! 장군!”


척준경은 명령을 내리는 것으론 성에 차지 않는지, 직접 말에서 내려 적들을 향해 뛰어갔다. 그의 검이 한 번 춤을 출 때마다, 어지럽게 손을 놀리던 산적들이 입에서 피를 뿜고 쓰러졌다. 때로는 포효하는 호랑이와 같고, 때로는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과도 같으니 성난 발길질에 짓밟히는 건 멋모르고 대항하던 산적 떼요, 검에 베이는 건 못된 생각을 하던 역적의 무리더라. 뒤를 따르는 왕자지와 별무반은 또 어떠한가. 가히 일당백의 기세로 검을 휘둘러 산적들은 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다.


“이......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두목! 어서 몸을 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퇴각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퇴각이라니! 지금 이 자리에서 등을 돌리면 모두 죽는다!”

“저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야차입니다. 야차!”

“젠장!”


두목은 부하의 말에 하는 수 없이 검을 높이 쳐들었다. 무려 세 배나 많은 이천의 산적들이 와- 하고 우그러졌다. 이천징이 할 줄 아는 전술이라곤 돌격과 퇴각밖에 없는데, 척준경은 신기라도 들린 것처럼 검을 휘두르다가, 이내 적들을 넓게 감싸고 날랜 말을 앞세워 일직선으로 돌파하니 이건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결국 허둥지둥 도망가던 이천징은 자신의 뒤를 붙잡은 척준경을 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정신없이 양손을 비비며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이천징이 배움이 부족하여 어르신을 몰라 뵙고 죄를 저질렀습니다.”

“딱하긴 하나 내가 여기서 군사를 물리면 네놈들은 분명 다시 산적질을 하겠지.”

“뭐든 다 드리겠습니다. 재물을 달라 하시면 재물을 드리고, 군량을 달라 하시면 군량을 전부 드리겠습니다. 뭣하면 이 이천징의 수하들까지도......!”

“음.”


코를 처박고 발발 떠는 이천징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척준경은 이내 왕자지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제 생각엔 그의 수하들에게 각자 먹고 살 만큼의 재물과 군량을 나눠주고 풀어줌이 나을 듯 싶습니다.”

“어째서? 우리도 지금 병력이 필요한 만큼, 합류시키는 게 더 낫지 않겠나?”

“그것은 한 수만 내다본 것이지, 두 수를 내다보지 못했으니 하책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이 자와 나머지 병력들을 돈을 주어 뿔뿔이 흩어지게 한다면, 이들은 자신이 엄청난 사람을 만났다며 보는 사람마다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본래 발 없는 소문이 천리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당장 이들을 합류시키는 것보다 더 엄청난 수의 의병들이 곧 장군의 수하로 몰려들 게 될 겁니다.”

“음. 자네의 말이 옳다. 역시 고려에서나 대륙에서나 자네가 없으면 이 척준경의 오른팔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구먼.”

“과찬이십니다.”

“하하.”


한 판 기꺼운 웃음을 터트린 척준경은 왕자지의 말을 그대로 전하고, 이들의 산채를 털어 전부 흡족할 만큼의 재물과 쌀을 나누어주었다. 이내 전부 떠나게 하니, 다들 척준경의 앞에 절을 올리고 사라지더라. 이후 척준경은 낙양에서 완과 허창에 이르기까지 하남과 영천군을 돌며 이름단 도적들을 전부 쓸어 담기 시작했다. 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 전국을 들끓고 일어나는 민란과 산적들은 척준경의 가공할 만한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두 손을 들고 도망쳤다. 어느새 하북 지역엔 한손에 검을 들고, 다른 손엔 적장의 수급을 든 야차와 같은 자가 척준경이다, 라는 소문이 도니 그의 명성을 들어 산채를 접거나, 합류하는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척준경 형님을 모시려 왔습니다!”

“제발 저희들을 사람답게 살게 해 주십시오!”

“어르신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가겠습니다!”


결국 수백에서 시작한 별무반은 벌써 그 수가 천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다. 척준경으로서는 그야말로 가만히 앉아 떡을 입속에 넣는 격이었다. 그쯤에서 만족할 만한 하건만 척준경은 왕자지와 함께 한 군데를 더 노리고 있었다. 바로 태평도의 무리와 함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흑산적의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최소 병력이 일만이고, 최대 십만에 달하는 이들이 있다고 전해진다. 척준경은 그 무리들을 정리해 자신의 힘으로 맞아들일 생각이었다.


“장군님!”

“무슨 호들갑이냐.”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되었다니, 무슨 소리야.”

“화, 황건적들이, 장각 그놈이 드디어......!”

“천천히 말해 보아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척준경의 말에 호들갑을 떨던 왕자지가 숨을 돌렸다. 물론 척준경에 비해 삼국지나 한 왕실에 대해 알지 못하는 왕자지라 하더라도 대강의 큰 흐름은 잡고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이 흐름 안에 휘둘리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척준경에게 말했다.


“장각이 드디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수만 해도 족히 오십만에 달한답니다!”

“뭐라! 드디어......!”


척준경은 바닥을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척준경의 앞에 드디어 거대한 역사의 물결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후한 중평 원년, 태평도의 무리들이 중국 전역에서 일제히 봉기한 것이다. 장각이 관리에 뽑히지 못한 채 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던 때, 한 노인에게서 태평요술이 담긴 책 세 권을 받아드니, 이것이 바로 태평도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밤낮으로 태평경을 읽어 사람의 병을 도력으로 낫게 하거나, 천재지변을 막는 방법을 익히니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게 되었다. 이에 힘을 얻은 장각이 제 스스로를 태평도인이라 일컫고, 태평도를 전국에 널리 퍼트렸다.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마땅히 누른 하늘이 서리라. 때는 바로 갑자년,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주문처럼 뻗어나간 글귀와 함께 태평도는 살기가 어렵고, 핍박당하는 백성들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그 수는 무려 수십만에 달할 정도였다. 세상이 바뀔 것이다, 오직 천공장군 장각만이 우리들을 이끌 수 있다. 그런 믿음이 전국으로 뻗어 나갔다. 이에 놀란 황제가 하 황후의 오라비인 대장군 하진을 불러 들였고, 하진은 그날로 군사들을 풀어 반란을 토벌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바야흐로 전국의 무장들이 무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씨앗처럼, 하나 둘 눈치를 보며 올라오기 시작할 때였다. 척준경은 얼굴 가득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서둘러 군막을 나섰다. 황보숭의 부름이 오기 전에 흑산적의 산채를 들이쳐야 했기 때문에, 그의 시선은 온통 놈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향해 있었다.


작가의말

실제 흑산적은 태평도의 무리와 함께 세력을 일으켰습니다.

그 세력이 무려 10만에 달했다고 전해지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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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누님의 정체(4) 14.03.31 2,901 43 9쪽
» 누님의 정체(3) +2 14.03.30 3,287 3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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