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1/ [직촬] 전역을 앞둔 여러분들의 흔한 미래.avi (3)
- 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다음 소설 내용에서 등장하는 인물, 배경, 단체 등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로써 현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미리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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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길의 강압 때문에 반강제로 끌려온 공릉의 번화가에는 다양한 모습을 한 수많은 사람들과 쉴 새 없이 일렁이는 네온사인으로 온 거리가 가득 차 있었다.
조금 더 길을 걸어 먹자골목에 들어서자 명함을 뿌려대는 나이트삐끼서부터 머리에 넥타이를 두른 양복쟁이 무리, 술에 취해 업혀 가는 인사불성 아가씨까지 누가 더 진상을 잘 부리나 대결을 벌이는 월드컵 결승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더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이 한마디로 개판 5분 전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번잡한 곳에 나온 것이 생각보다 간만이었던지라 어찌할 줄도 모르고 멍하니 발을 멈추고 말았지만, 김준길은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붐비는 먹자골목으로 계속해서 나를 이끌었다.
이윽고 한 귀퉁이를 돌아 들어간 그는 꽤 멀끔한 고깃집 앞에 멈춰 섰다. 가게 앞 입간판에 적혀있는 메뉴들은 나 같은 일개 대학생이 돈을 턱턱 내기에는 가격대가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준길은 일절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당당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여기, 꽤나 비싼 곳 아닙니까?”
내 표정을 확인한 김준길은 안경을 슬쩍 치켜올리며 히죽 웃었다. 하지만 따로 질문에 대한 답은 해주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도 못 느꼈다는 표정이 보였기에 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를 따라 들어갔다.
준길의 거침없는 행보는 끝이 없었다. 비싸 보이는 고깃집에 덜컥 들어선 그는 뒤이어 매장의 제일 구석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메뉴판을 슬쩍 둘러보더니 이번에는 치맛살, 제비추리 같은 값비싼 특수부위를 마구잡이로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행보가 내가 가게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슨 5드론 전법도 아니고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건가. 어디서 한국한국열매라도 생과일주스로 갈아먹고 왔는지 그의 빨리빨리 정신은 도가 넘칠 지경이었다.
“여기 치맛살하고 제비추리, 그리고 토시살도 넉넉히 주시고······.”
느지막이 신발을 벗어두고 실내로 들어오던 나는 그가 고기를 주문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소변이 마렵거나 하는 다른 건 모두 다 제쳐두고 테이블로 후딱 달려와 최우선으로 그를 말리는 데 급급했다.
“저기, 그렇게 시키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지금 민간인이야. 선후임 관계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다나까 좀 쓰지 마. 드럽게 짬내 나니까.”
주문을 저지하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준길은 느닷없이 삿대질까지 해가며 일침을 날렸다.
“그래도 이건 가격이······.”
“어디 도망 안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단 시켜주는 대로 먹어.”
“예······.”
아, 진짜 이젠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본인 입으로 괜찮다고 말까지 했으니 오늘 한 번 저 인간 지갑 사정이나 파탄 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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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임우영이 가스비 잡는 거꾸로 타는 보일러도 아니건만 처음 계획 땐 존재조차 없었던 술자리에서 두 번씩이나 놀라운 일을 경험해버렸다.
놀라운 일 그 첫 번째, 난 그 누구와 비교해봐도 절대 꿀리지 않는 고기 굽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김준길의 능숙하면서도 세심하게 고기를 다루는 손길 앞에선 그저 패배감만을 맛볼 수밖에 없었는 것.
앉은 자리까지 열기를 뿜어내는 용광로 같은 참숯에 소고기를 맛있게 구워내기 위해선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이 강력한 화력을 가진 숯불에 고기를 조금이라도 오래 뒀다간 고기의 겉면은 까맣게 그슬리고 동시에 속은 덜 익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화력을 줄이고 익히는 시간을 늘리면 지속적으로 열을 받는 소고기의 육질이 질겨지므로 결국엔 비싼 고기를 시킨 이유가 없어지고 만다.
학교 앞, 1인분에 4,000원 하던 수입산 냉동 삼겹살도 맛볼 기회가 적었던 궁핍한 대학 생활 속에서 육식을 향한 절실함과 간절함 끝에 얻게 된 나의 고기 굽는 테크닉은 싸구려 냉동고기도 갓 도축하여 신선한 고기로 느낄 수 있게끔 탈바꿈해주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프로다. 나만큼은 되어야 이런 고급 고기를 만질 수 있다. 비록 싸이코 김준길이 사주는 고기이지만 정말 큰돈을 들여야만 먹을 수 있는 한우를 이렇게 날로 먹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혼신을 담은 테크닉으로 구워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내가 한숨과 함께 힘껏 다짐하고 집게와 가위를 집어들은 순간 갑자기 김준길은 안경을 고쳐 쓰며 내 손에 쥐고 있던 연장을 모조리 뺏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제가 굽겠습니다.”
“됐어, 넌 먹기나 해라. 그리고 그 망할 존대 좀 제발 그만해줘.”
잘라 말해 고작 고기를 굽는 일일 뿐이지만, 이게 또 뭐라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남에게 뺏긴 기분이라 괜히 씁쓸한 뒷맛을 삼켰다.
그래? 어디 좋다. 보여 줘봐라. 너의 실력을 한 번 보겠다. 이 앞에 놓인 한우야 물론 네 놈이 사는 것이긴 하지만,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실력으로 인해 고기 맛을 버리게 되었다간 큰 호통을 각오해야 할 것이야!
“토시살이 오늘 육색도 그렇고 상태가 좋네. 이거 먼저 시작해볼까?”
녀석의 어설픈 실력으로 인해 괜히 비싼 고기를 망칠까 걱정하던 나의 뒤통수를 누군가가 세게 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식육 전문가다운 발언을 내뱉는 김준길의 목소리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뒤이어 테이블 위 불판에서는 전설이 될 무대의 막이 올랐다.
“허, 허억!”
일단 준길은 단시간에 모든 고기를 불판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제일 먼저 불판에 올린 고기에서 육즙이 올라오는 기미를 확인하고선 집게뿐만 아니라 가위까지도 고기를 뒤집는 데 사용해가며 양손으로 불판 위를 지배했다.
컷팅 마저도 예술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기를 역결로 썰어내 치맛살의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씹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먹는 사람을 위해 세심한 포인트까지 잡아내다니. 받아먹기에만 익숙한 고기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그저 ‘와, 잘 굽는다.’란 감탄을 하는 걸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고깃집에서 젓가락보다 집게를 우선으로 쥐는 나 같은 사람들은 놈의 기술이 본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김준길 이 녀석, 사람 갈구는 재주 말고도 이런 은밀하면서도 위대한 능력도 가지고 있었구나. 다시 보았다.
“여긴 익었네. 이쪽 라인부터 먹어.”
“어, 예.”
“소주 할 거지?”
“당연합니다.”
서로의 잔이 쨍하며 부딪히고 찰랑대는 술을 목구멍으로 한 모금씩 털어 넘긴다. 상황이 정말 웃긴다. 그 싸이코 같은 지랄 같던 선임이랑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술 한 잔을 나눠 마시게 될 줄이야. 분명 오늘 난 이 녀석에게 퍽치기 한 방으로 커다란 엿을 먹이려고 했는데 말이다. 인생이란 역시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게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학교 다시 다니는 거야? 너 예전에 학과가 맘에 안 든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걸 기억하고 계십니까? 뭐, 1학기만 더 다녀보고 생각해보려 합니다.”
준길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좋네, 하고 싶은 거를 제대로 하는 게 최고지.”
놀라운 일 두 번째는 싸이코 김준길의 성격이 예전과는 확연하게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예비역이 된 김준길은 개지랄로 불리던 과거가 무색할 정도로 타인을 신경 쓰고, 앞사람의 말을 경청해주며, 편안하면서도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전형적인 착한 남자로 바뀌어있었다.
잠깐이었지만 나의 대뇌 전두엽이 이 인간의 악랄한 과거를 순간 잊고. 꽤 좋은 놈이라는 판단을 잠시 내리기도 했다. 정신 차리자. 나란 놈은 녀석한테 그 길었던 시간만큼을 당하고 살았었는데 순간의 오판으로 중요한 과거를 잊어버릴 수는 없지 않나. 과거를 잊은 자에게는 미래란 없단 말이다.
“김 병장님이 부대 계실 때 막내가 누구였습니까? 짬 차이가 얼마나 났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계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내 머리를 혹사해가며 가까스로 암산을 시작해본다. 하지만 김준길은 내가 암산을 할 시간도 주지 않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야, 내가 나이는 더 많으니까 존대는 써도 상관없는데 이제는 그 병장이란 호칭 좀 그만 떼 주라. 내가 전역한 지 얼마나 됐는데, 듣기 민망해 죽겠다.”
이 자식, 아무렇지 않게 또 뱀처럼 슬슬 군대 얘기에서 빠져나간다. 김준길은 식사가 계속되는 동안 전역자끼리, 그것도 같은 부대 선후임 사이였다면 절대 빠질 수 없는 레퍼토리인 자대 얘기라던가 과거 부대 사람들에 관한 얘기에는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방금과도 같이 내가 대화를 그 방면으로 은근히 유도를 해봤지만, 김준길은 계속 말을 돌리며 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나도 더 이상 언급을 멈췄다. 일단 지금 그만해야겠다. 더 추궁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지금 여기는 밥상머리이자 술자리다. 밥과 술은 기분 좋게 먹어야 한다. 생각 없이 괜찮은 분위기를 망쳐 입맛을 버리고 술맛도 버리는 바보짓을 하기는 싫었을뿐더러, 처음 보게 된 김준길의 또 다른 일면을 조금 더 관찰하고 싶기도 했다. 혹시나 김준길이 싸이코답게 일부러 꿍꿍이를 숨기고 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본성을 다시 드러낼지도 모르는 일이니 경계 또한 늦추지 않았다.
이렇듯 놀라운 모습들 말고도 많은 사정이 겹쳐졌기에 난 복잡한 생각을 안고서 앞사람의 행동만을 신중하게 예의주시했다. 물론 겉으로는 그가 계속 구워주는 맛있는 고기를 그저 받아먹는 일만 반복했을 뿐이다.
김준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자대에선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저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다른 동기들의 평판대로 악독한 선임의 모습 말고도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술상 앞에선 나도 그냥 녀석을 맞춰주었다. 그렇게 유야무야 이 사람과 어울려주다 보니까 안주가 워낙 좋아서 자연스레 술도 꿀떡꿀떡 잘만 넘어갔다.
그때였다. 녀석의 볼이 벌겋게 상기된 게 눈에 들어온 것은.
“하아! 야아, 이거 오늘- 진짜 기분 좋네.”
아차, 이제서야 기억이 나버렸다. 이 사람은 술에 대해 강점을 보이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는 걸.
재작년 수송부 앞 공터에서 가졌던 중대 회식 때, 인사불성 수준으로 만취해서는 포술담당관한테 깽판 부린 병사가 이 녀석이지 않았었나? 이거 까딱해서 술 좀 더 먹였다가는 시체 하나 치우게 생겼다.
“슬슬 고기도 다 먹었는데 일어나시는 게 어떻습니까?”
“에? 왜-애? 이제 시작 아니냐?”
어디서 감히 부랄 두 쪽 달고 태어난 놈이 혓바닥 꼬인 소리를 내는 거냐. 순간 그 고른 치열을 그대로 날려버리고 싶었으니까 참아줬으면 한다.
“여기서만 술 먹을 게 아니지 않습니까? 2차 어떻습니까?”
“으응? 나-아 아직 안 취했는데에? 임우영, 너어 혹시······ 다른 안주도 먹고 싶어서 그랬구나? 그래! 내가 다 사줄게, 사줄게.”
약간의 정신이 남아있는 취객을 상대하는 데는 달콤한 말로 꼬시며 술자리서 끌어내는 것이 상책이다.
“네, 일단 나가는 게 어떻습니까?”
“좋아아~ 그럼, 이제 다른 거 먹는 거 맞지? 나가자, 나가자고!”
맥없이 풀린 눈을 하고 있는 김준길이 밥상에 팔을 지지해가며 자리서 일어섰다. 거동이 가능하다면 아직은 버틸 만한 거겠지? 일단 그렇다면 여기서 내보낸 다음에 앞일을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
“어어? 나 왜 이래?”
물론 김준길이 서 있는 모습 그 채로 고꾸라지기 이전까지는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식당 바닥에 널브러진 김준길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이마에 손이 짚어졌다. 내가 미친다,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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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및 구성 : 종량제 / 제작지원 : 김필수
- 작가의말
현재 업로드를 하고 있는 연재분은 기존에 올라와있는 최종 퇴고본이 아닌 오리지날 연재 초판을 오탈자 비문만 수정해서 올리고 있는 버전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공지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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