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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cea 님의 서재입니다.

세티아 왕국의 작은 영주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렌시아a
작품등록일 :
2020.05.11 22:43
최근연재일 :
2020.05.27 21: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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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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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5.2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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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Ep 1. 미운오리새끼(31)

DUMMY

타닥, 흩날리는 불똥 사이로 날카로운 섬광이 내달렸다. 흡사 불꽃을 가르듯 내질러진 창은 기사가 입고 있는 판금갑옷이 무색할 정도로 손쉽게 생명을 앗아갔다.

푹, 하고 판금으로 보호되지 않는 턱 밑에 창날이 박혔다.


"하아, 하아."


얼마나 창을 휘둘렀을까? 성치 않은 몸으로 계속해서 창을 다루던 소년은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을 텐데도 다시금 비틀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다시 창을 고쳐 잡았다.


"네 놈!"


잔뜩 지친 그를 향해 기사 중 한 명이 검을 휘둘렀다. 육중한 롱소드가 소년을 양단할 기세로 날아들었다.

콰직, 아니나 다를까 기사의 검을 받은 소년의 창대가 맥없이 꺾여 부러졌다.


"시그너스!"


창대가 부러지고 사방에 파편이 흩날렸다. 그 광경에 소녀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저 날카로운 철검이 소년을 꿰어낼 것만 같아, 소녀는 울먹인 얼굴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런 소녀의 걱정은 기우로 그쳤다. 소년은 몸을 뒤로 빼내는 것으로 검의 간격을 벗어나며 옷깃만 베인 것이다.

소년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 세우곤 검을 고쳐드는 기사를 향해 부러진 창대를 힘껏 던졌다.

퍽! 하고, 날카로운 창날이 기사의 눈에 깊이 박혔다.


"으아아악!!"


그 기사로부터 고통에 겨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내 목을 꿰뚫는 날붙이에 그륵,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고꾸라졌다.


'대단하네요.'


십대 중반의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훈련된 기사 여럿을 제압한 소년의 무용에 아멜리아는 작게 감탄했다.

그런 아멜리아의 감평과는 달리 노예소녀는 "괘, 괜찮아?" 떨리는 몸만큼이나 애처로운 목소리로 소년을 살폈다.


"시끄러워."


소녀의 걱정에 소년-시그너스는 기사의 창을 집어 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희미하게 입 꼬리가 느슨해진 것이 소녀의 걱정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 모습이 아멜리아에겐 좋아하는 이에게 일부러 차갑게 대하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일까?


'···도련님과 닮았네요.'


백작가의 서자 제피란 알펜시아. 아멜리아는 왠지 모르게 열 살 된 소년을 떠올리곤 고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럼 다시 가죠." 앞에서 기사들을 정리한 레이나의 재촉에 일행은 다시 서둘러 이동하였다.


'···이쪽은 다시 봐도 굉장하네요.'


한 눈에 봐도 건장한 기사 대여섯 명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과연 왕실 근위 기사. 명불허전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나저나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요?'


지금은 배신했다 하더라도 세리스의 충신인 레이나가 노예상에 있었고 성 내 화약고가 폭발했다. 또한 성 여기저기서 불꽃이 치솟고 갖은 소음이 메아리치는 것이, 마치 교전이라도 일어난 것만 같다. 비명소리는 물론 욕설과 병장기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성안을 가득 메우다 못해 넘칠 정도다.

도대체 누가? 어째서 교전을 벌이고 있단 말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아멜리아는 이내 거세게 도리질 쳐 호기심을 떨쳐냈다. 지금은 이 혼란의 기회를 이용해 최대한 도망치는 것이 우선이다. 이곳에 남아 있어봐야 노예로 팔려나갈 뿐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다행이네요.'


하마터면 임무수행 중 노예로 팔려갈 뻔한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아멜리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멜리아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레이나가 이끄는 노예 행렬은 어느덧 동쪽 성문 가까이 다가왔다. 모르긴 몰라도 한바탕 소동으로 대부분의 병력들이 서쪽 성문에 위치해 있는 모양인지 경계를 서고 있는 인원은 두 명의 기사가 전부였다.


"잠시."


앞서가던 레이나는 보초의 존재를 확인하곤 행렬을 제지했다. 그러곤 순간 앞으로 뛰쳐나가는 레이나.


"어?!"


"뭐, 뭐야!"


갑작스러운 그녀의 기습에 고된 훈련을 받아왔던 그들은 검조차 뽑지 못 하고 주검이 되어 바닥을 적셨다.


"···세상에."


아무리 그녀가 왕실 기사라지만 이정도의 실력 차라니, 지금까지 쓰러진 기사와 용병들을 상대하면서 작은 찰과상 하나 입지 않은 두 먼치킨의 무용에 아멜리아는 남몰래 좌절하였다.

그런 아멜리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이나는 검을 갈무리 하곤 성문을 열었다.


"서둘러 나가죠."


그러나 활짝 열린 동쪽 성문에도 불구하고 노예들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선뜻 발걸음을 옮기는 이가 없었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깬 건 노예들 쪽이었다.


"저,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가나요?"


걱정스러운 얼굴만큼이나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보는 그녀들은 빈말로라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몸은 두려움에 떨리고 얼굴은 피로로 초췌했다.

그도 그럴게 그녀들 대부분은 여기저기 팔려 다니는 노예들이었다. 노예제도가 합법인 말틴 공화국에서 노예인 그녀들에겐 가족은커녕 갈 곳 조차 마땅히 없었다.

더군다나 아는 이 하나 없는 타국에서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 없는 그녀들이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우선 나가서 생각해보자 라며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때문일까? 그녀들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성 밖을 보고 있었다.


"···그렇군요."


갈 곳 없는 그녀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비전을 제시해주지 않는 이상 그녀들은 노예로서의 삶이 더 나을 것이다.

레이나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이내 입을 열었다.


"우선은 공주마마께로 갈까요?"


"고, 공주마마요?"


갑작스럽게 왕족이 언급되자 노예들은 일제히 숨을 삼키며 긴장했다.

그도 그럴게 노예의 신분으로 태생이 노예이거나 마을 소녀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그녀들에게 왕족이라니,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지 않는가?


"그럼, 저희들은······."


설마 공주마마님의 시녀가 되는 걸까? 왕궁의 시녀로?

말도 안 된다. 기껏해야 귀족들의 성 노리개였던 그녀들이 왕궁에서 일하다니, 예법은커녕 글도 모르는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멜리아는 헛된 기대를 품지 않게 레이나에게 말했다.


"저희는 글도 예법도 모르는걸요."


낙담해하는 그녀들에겐 미안하지만 나중에 헛된 기대를 품고 실망하는 것보다야······.


"걱정 마세요. 여러분들이 갈 곳은 왕궁이 아니니까."


"···그럼?"


공주님을 만나 봬서 무엇을?

그 궁금증에 답하듯, 레이나는 그녀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로렌시아 지방으로 갈 겁니다."


*


"구호의 성 소녀 기사 수도회입니다. 성문을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성문 아래 소녀 기사의 요구는 비명과 병장기 소리에 묻혔다. "으아악!" "죽어!" 살기어린 소리가 동산에 메아리쳤다.

도대체 성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마치 교전이라도 벌어진 듯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소음에 엘레노어는 마른침을 삼켰다.


"···용병들과 교전하고 있는 걸인가?"


그 상황 속에 세리스는 중얼거렸다.

기사단과 용병들의 교전. 아마 모르긴 몰라도 궁지에 몰린 기사단이 그들을 팔아넘기려 함으로서 교전이 발생한 모양이다.


'성문은 열어주길 바랬는데······.'


귀족을 매수함으로서 성 내부에 사건을 발생시키고 이를 빌미로 성에 접근, 기사단에 압박을 가한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상황은 뜻밖에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용병들을 팔아넘기려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그만 들킨 것이다.


"도대체가, 어떤 머저리인거야?"


예상했던 것 보다 무능한 지휘관에 세리스는 "칫!" 작게 혀를 찼다.

노예상을 팔아넘기려는 계획이 노예상 혹은 그 휘하 용병들에게 들어갔다는 전제 자체가 난센스다. 이래서야 성문을 열 겨를이 없겠지······. 세리스는 탄식과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성이라도 해야 하나?"


당연한 말이지만 발키리아는 공주를 호위하는 기사단이다. 그런 그녀들이 전쟁도 아니고서야 공성무기를 가지고 있을 리 만무했다.


"하아, 귀족들이 좀 도와줬으면 좋을 텐데."


푸념 섞인 바램을 가져보며 세리스는 웅장한 성문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일까? 자신의 옆구리를 찌르며 "고, 공주님, 저기!" 적잖게 놀라는 엘레노어에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세리스의 작은 어깨가 경직되며 숨을 삼켰다. 어린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부릅뜬 눈으로, 숲 저편에서 나타난 인영에 세리스는 입을 열었다.


"······레이나."


그곳에는 긴 금발의 여기사가 있었다.


*


모리스는 마른 침을 삼켰다.

어쩐 일인지 기사들과 용병들 간의 교전이 일어났다. 카인의 죽음에 대해 알려진 탓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로?

모리스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거세게 도리질 쳐 의문들을 떨쳐냈다. 이유야 어찌되든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도망가야겠군."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호기롭게 발키리아와 싸울 것을 주장했던 소년 역시 탄식하듯 말했다. 그도 그럴게 이미 기사와 용병들은 서로에게 창칼을 겨누어 도저히 통제 할 수 없었다. 또한 같은 갑주를 걸친 그들이 누가 누군지 구분조차 가지 않았다.

이래서 지휘는커녕 오히려 같이 혼란에 휩싸일 뿐이다.

도망칠 수밖에 없다.


"발키리아들이 성문을 통과한다 하더라도 사태를 수습하는데 시간이 걸릴 거야."


그 틈에 동쪽 성문으로 도망가 몸을 숨겨야 했다.

소년의 주장에 모리스는 목이 타들어갔다. 바짝 말라가는 목이 가슴을 태우듯, 모리스는 터질 것 같은 분노를 삭이며 소년을 노려보았다.

모리스는 모든 걸 잃었다. 모르긴 몰라도 공화국에 있는 자신의 상단은 백작의 계략대로 쑥대밭이 되었을 덧이다. 또한 여기서도 재산을 버리고 도망쳐야 했다. 그럼에도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낮았다.

이 모든 불행이 저 소년을 만나고부터다.


"······."


모리스로선 소년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저 소년이 하는 말은 얄미울 정도로 타당했다.

어쩔 수 없다. 어찌할 방도가 없다. 모리스는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며 소년의 말을 따랐다. 호위 용병들을 거느린 채 성을 벗어나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성문으로 향하는 길은 지옥 그 자체였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핏자국들과 철퇴에 우그러진 머리, 나뒹구는 팔다리 등 수행하는 호위 무사들조차 헛구역질을 삼킬 정도다.


"그것 참, 고약하군."


경박하게 투덜거리는 에르나 그조차도 미간이 주름져서 펴질 줄 몰랐다.

그때였을까? 타들어가는 막사와 막사 사이, "모리, 스, 님?"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노예상을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


"레이나······."


죽은 줄만 알았다. 설령 살아있다 하더라도 재기 불능의 몸이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세리스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살아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를 털어내며, 기사는 무용을 발휘해 탈출해온 것도 모자라 노예들을 구출해온 것이다.

엘레노어는 혹시 하는 심정에 그녀 뒤의 노예들을 살펴봤지만 이내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로 크게 낙담했다.


"도련님······."


노예상으로부터 소녀들을 탈출시키는 기지를 발휘한 소년. 알펜시아의 차남인 소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엘레노어를 본 세리스는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사이 발키리아들은 노예들과 레이나를 살폈다.


"레이나 경은 좀 쉬시지요. 나머지는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그녀가 세리스의 특명을 받아 움직였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녀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레이나를 부축했다.


"레이나 어디로 나왔지?"


레이나가 구출 해 온 노예들. 성 안의 노예상의 존재를 밝힐 확실한 증거에 더 이상 소극적으로 대치하지 않아도 되었다.

재해 진압이란 명분이 아닌 알펜시아 기사단을 칠 구실이 갖춰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선 성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동쪽 성문으로 도망쳤습니다."


세리스의 물음에 레이나는 자신이 도주해온 길을 밝혔다. 굳게 닫힌 서쪽 성벽이 아닌 활짝 열린 동쪽 성문을······.


"4부대는 여기서 노예들을 보호 5부대는 지금 즉시 동쪽 성문으로 진입. 진압한다."


대처는 생각보다 빨랐다.

세리스는 신속히 부대를 나눠 노예들을 호위 후송시키고 자신을 호위할 몇몇 기사들을 남긴 채 동쪽 성문으로 병력을 투입했다.

혼란에 서로에게 창칼을 들이대는 기사들은 제대로 대처조차 못하고 진압될 것이다. 그것으로 이 노예상 소동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엘레노어는 레이나를 올려다보았다.

세리스의 호위 기사이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혼자 용병들에게 달려들던 그녀가, 어째서?


"꺄아악!"


순간 손목이 잘려나간 여기사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야말로 섬광. 발키리아의 손목을 베어낸 칼날은 투구 사이 그녀의 목 깊이 박혔다.


-어째서 우리에게 칼을 겨누는 거지?!


공주의 기사는 시퍼런 칼날을 들어 세리스를 겨누었다.


*


"모리스, 님?"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위태로운 숨소리를 쥐어짜낸 그 목소리는 모리스의 발목을 붙잡았다. 성을 집어삼킨 화마의 그늘 아래 그는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헤리슨?"


알렌시스가 등용되기 전 용병들의 책임자인 그가 피웅덩이에서 자신의 고용주를 불러

세운 것이다.


"모, 모리스, 님······."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그는 허리를 베였는지 허리춤의 갑주가 새빨갛게 물들다 못 해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과다 출혈로 몽롱한 눈은 오히려 쇼크로 죽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다.


"누, 누가 이런?!"


한 때 자신의 측근의 처참한 모습에 모리스는 숨을 삼켰다. 목을 죄여오는 보이지 않던 올가미가 차츰 실감이 왔다.

전 용병 통솔 대장이었던 그는 자신이 만든 피웅덩이에서 허우적대며 옛 주인에게 애써 입을 열었다. 몽롱하다 못 해 혼미한 정신으로 감각조차 없는 입술을 어렵사리 달싹였다.


"여, 여 기사, 가······."


-타앙!


그러나 그러한 노력을 비웃듯, 무정한 총성은 해리슨의 목소리를 지워버렸다.


"···어?!"


총성이 메아리치고, 누군가의 얼빠진 목소리가 맴돌았다.


"······어째서?"


어째서 초연이 나오는 총구로 그의 미간을 겨누고 있단 말인가?!


"알렌시스!!"


모리스는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등 뒤, 권총을 겨눈 소년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런 살기어린 모리스의 모습에도 소년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킥!"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바아보~! 바보 머저리들! 정말 바보천치들이야."


금방이라도 배꼽을 부여잡고 구를 듯 과장되게 웃음 짓는 소년은 권총을 거두었다.


"노예상의 용병 통솔 대장이라고? 내가? 귀족인 내가?"


이때까지 살갑던 소년은 광기어린 웃음을 터트리며 노예상을 비웃었다.


"내가 살기위해 겨우 인신매매나 하는 범죄자 따위와 함께한다고? 정말 그 말을 믿은 거야?!"


무슨 말일까? 갑작스러운 소년의 변화에 주변 용병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 상황 속에서 모리스만이 이를 갈며 소년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리스의 노림수를 읽지 못했다는 점은 그렇다 쳐도 소년은 계속해서 싸울 것을 주장하며 카인을 자극했다. 또한 용병들에게 성을 지킨다 말하면서 정작 통솔 대장으로서 명령 하나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용병들을 기사들과 같은 갑주를 입혀 기사들 사이에 풀어 놓았다. 마치 혼란을 조성하듯······.

소년은 양 팔을 벌리며 마치 자랑하듯 말했다.


"이 화재. 이상하지 않아?"


"······."


"누가 성안에서 화재가 일으켰을까? 배신하고 지금 어딘가에 숨어있을 귀족들이? 막사를 집어 삼킬 정도의 화마를 과연 그 바보들이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


"너, 설마?!"


모리스의 비명 같은 추궁에 소년은 웃음으로 답했다.


"처음부터 모든 게 계획대로란 거야."


소년의 선언에 용병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이 상황을 주도하고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 바로 소년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모리스는 "이, 이익!" 끓어오르는 분노에 이를 갈았다.


"네 놈!!"


모리스의 고함에 용병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들었다.


"죽여 버려!"


모리스의 명령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호위 용병이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의 2배나 될법한 건장한 청년이 달려드는데도 불구하고 소년은 권총조차 뽑지 않은 채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여기서 문제."


쉬익! 소년의 목소리를 가르듯 날카로운 날붙이가 허공을 가르며 소년에게 휘둘러졌다.


"내가 어떻게 이 성에 불을 지를 수 있었을까?"


소년은 계속 모리스와 함께였다. 의심 많은 모리스는 자기 눈앞에서 소년이 벗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더군다나 이 정도 방화 작업을 혼자서, 그것도 저 어린 소년이 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어떻게 방화를?

그 의문에 답하듯 콰앙! 하고 강철을 두들겨 패는 요란한 굉음이 터지며 달려들었던 용병이 투구가 함몰된 채 고꾸라졌다. 순간 날아든 철퇴가 그의 머리를 후려 친 것이다!


"이, 이건······."


"내 기사들이야. 굳이 지금 이름 붙이자면 알렌시스 기사단이랄까?"


소년의 옆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병장기를 꼬나 쥔 채 노예상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허름한 복장에 초췌한 몰골의 그들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기사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능숙하게 무기를 다루며 용병들을 압박해갔다.


"무, 무슨······."


"모두 네 상품들이였지."


검투사!!

모리스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틀어막았다.

싸우기 위한 노예들은 초췌한 몰골에도 불구하고 용병들을 압도했다. 애초에 정규 훈련은커녕 용병단에도 들지 못하는 양아치 집단이 사경을 넘나드는 검투사들을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럴 수가."


노예들을 풀어줬다고? 저 야수 같은 놈들을 전부 매수했단 말이야?! 도대체 언제? 누가? 어떻게 그들을 풀어주고 매수했단 말인가?!


"···설마?"


헤리슨이 죽기 전에 중얼거렸던 그 말. 분명 여기사라고······.

레이나 린드가드! 그녀가 녀석의 수족이 되어 움직인 것이다.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 역시 모리스의 경계 대상이다. 그녀가 혼란이 일어나기 이전 검투사들을 매수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실제로도 상황이 일어나기 전 그녀가 배치된 곳은 검투사들이 아닌 성 노리개들의 감독이었지 않은가? 그 상황에서 그녀가 혼란을 조성하고 검투사들을 매수하여 구속되어있는 그들을 풀어주다니,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모리스의 의문은 이내 용병들의 비명소리에 씻겨나갔다. 검투사들의 난입에 용병들이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악!" 사방에서 용병들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 역시 저 칼에 베여 비명을 지를 판이다.

모리스는 그 악몽 같은 현실에 뒷걸음쳤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파해야!

마른 침을 삼키며 주위를 살폈다. 비록 호위 용병의 수가 많다 하더라도 검투사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몰살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 때 장검을 털어내는 경박한 용병이 눈에 들어왔다.


"에, 에르나! 녀석을 죽여!"


이 녀석은 다르다. 양아치 무리들 중 단연 돋보이는 실력으로 남들보다 높은 급액으로 고용한 녀석이다. 제아무리 훈련된 검투사들이라도 에르나라면 순간 파고들어 소년의 목을 취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그를 미리 매수해놓지 않았던가?

그런 모리스의 기대에 부흥하듯 에르나는 서서히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뭐, 그런 이유로 미안해 보스."


에르나는 죄책감을 털어내듯 작게 중얼거리며 칼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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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p 1. 미운오리새끼(19) 20.05.19 48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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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p 1. 미운오리새끼(13) 20.05.16 74 1 13쪽
14 Ep 1. 미운오리새끼(12) 20.05.15 79 1 20쪽
13 Ep 1. 미운오리새끼(11) 20.05.15 89 1 15쪽
12 Ep 1. 미운오리새끼(10) 20.05.14 92 4 19쪽
11 Ep 1. 미운오리새끼(9) 20.05.14 92 0 19쪽
10 Ep 1. 미운오리새끼(8) 20.05.13 102 2 25쪽
9 Ep 1. 미운오리새끼(7) +2 20.05.13 110 2 18쪽
8 Ep 1. 미운오리새끼(6) 20.05.12 138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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