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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다마의 망나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스포츠

윤희권
작품등록일 :
2019.06.28 16:01
최근연재일 :
2019.07.11 20:00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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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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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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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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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화

DUMMY

10,000다마의 망나니 012화



시작하기 전, 이지운과 홍재표가 번갈아가며 연습구를 쳤다.

당구대의 상태는 많은 경기를 치르고 정비하면서 상당히 좋아져 있었다.

공이 미끄러지는 현상도 없었고 쿠션에 맞은 공의 각도가 이상하게 좁혀지거나 길어지는 경우도 없었다.

‘당구대도, 컨디션도 최상의 상태다.’

다음은 이기는 것.

“그럼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무원의 말과 함께 두 선수는 뱅킹에 들어갔다.

‘이 어린 선수는 어떤 걸 보여주려나?’

대전연맹의 간판 자리를 빼앗겠다는 이지운의 야심을 알 리가 없는 홍재표였지만 그 또한 이 경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선발전에서 ‘그 경기’를 보았던 이들이 수없이 얘기했던 선수.

어쩌면 현재 국내 당구계를 휩쓸고 있는 류상욱이나 세계 주니어 3쿠션 선수권을 3연패 한 김행직의 뒤를 잇는 선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건 좀 너무 이른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지만.

‘여기서 확인해볼 수 있겠지. 한 경기만으로는 부족하겠지만.’

먼저 뱅킹.

선수의 기본기 중 하나인 샷의 파워 조절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다.

‘한번 봐볼까.’

홍재표는 일부러 이지운이 칠 때까지 기다렸다.

탕!

한눈에 보기에도 깔끔한 폼으로 적당한 힘이 들어갔다. 곧 홍재표도 따라 쳤고 두 공은 거의 같은 위치에 섰다.

사무원이 큐대를 가져와 공중에서 두 공의 우열을 가렸고, 이지운에게 선공 선택권이 주어졌다.

당연히 이지운은 선공을 선택했다.

초구를 쉽게 가져간 이지운의 인터벌이 길어졌다. 40초를 모두 사용하는 모습에 홍재표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게 말로 들었던 그건가?’

분명 그때 당시에는 휴식 시간을 모두 사용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 40초.

길만 보기에도 넉넉하지 않은 시간.

마침내 이지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오!”

“저건 진짜 류상욱이랑 비슷한데?”

주변에서 감탄사와 함께 소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홍재표뿐만이 아니라 이미 다른 선수들도 이지운에 대해 듣고 있었다.

그리고.

한구석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며 남몰래 웃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호호. 그 정도가 아니라고.’

노심초사 첫 경기를 지켜보았던 이세현은 팔짱을 낀 채로 주변의 기분 좋은 소란을 즐기고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이지운을 응원하고 있다는 걸,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당연히 류상욱 선수가 먼저지만. 어쨌든 나한테 돈 주는 사람이 이기면 좋고.’

“누님분도 오셨군요.”

김동건이 슬쩍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저도 보긴 해야죠.”

“동생분이 잘하고 있어서 기분 좋으시겠어요.”

“동생? 아. 그렇죠!”

순간 무슨 동생이냐며 말실수를 할 뻔했던 이세현은 살짝 미소 지었다.

“초반부터 앞서 나가네요.”

이세현의 말대로 이지운은 홍재표를 상대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3점, 4점 차로 선두를 취했다.

“이지운 선수의 기세가 좋네요. 하지만 방심하는 순간 중반부터 역전될 겁니다.”

“홍재표 선수가 중반부터 강한 선수는 맞지만 충남도지사배 종합대회에선 초반에도 강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죠.”

이세현은 자신이 말한 후 이상하게 조용해진 느낌에 고개를 돌리니, 눈이 똥그래진 채로 김동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구에 관심이 엄청 많으신가 봐요?”

당구는 일반인이라면 무슨 당구 대회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렇게 친화적이지는 않은 스포츠다.

그나마 관심이 있다고 해도 선수도 모를 테고 선수까지 알 정도라 해도 쿠드롱, 브롬달, 야스퍼스, 산체스 같은 4대 천왕 외에는 알기가 힘들었다.

정말 당구를 좋아해서 텔레비전 채널까지 챙겨보지 않는 이상은.

이세현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크게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선수의 누나가 당구를 좋아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네. 예전부터 종종 챙겨봤거든요.”

“국내 대회 상황까지 아실 정도면 엄청 자주 보시나 봐요.”

“네, 뭐 그렇죠. 호호. 아무튼 중반 이후에도 압도하는 게 누가 될지는 모르겠네요.”

은근히 이지운을 무시하는 느낌에 굳이 끝말을 남기고 당구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렇듯 당구대 밖에서 남모를 기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당구대 안에서도 팽팽했다.

‘좀처럼 흔들리질 않네.’

죽빵을 오랫동안 쳐오면서 가장 익숙해진 건, 심리 싸움이었다.

지금까지 굳이 상대의 당구를 익혀서 친 것도 심리 싸움 중 하나였다.

너의 당구에 당하는 기분이 어때? 같은 느낌으로 싸움을 걸고 그에 상대방이 응하면 역으로 찌르는 수법.

혹은 최대한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을 공을 남겨서 스스로를 말리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홍재표는 좀처럼 말려들지를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당구를 칠 뿐.

‘확실히 재미있는 선수군.’

홍재표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이지운이 계속해서 자신을 툭툭 치면서 싸움을 걸어오는 것을 알았지만 상대해주지 않았다.

홍재표의 이닝이 돌아왔다. 이지운은 의자에 앉아 차분히 홍재표를 바라보았다.

3개의 공이 근소한 차이로 일렬로 정렬되어 있는 공.

‘좋아. 뒷공을 치자니 앞공이 절묘하게 가로막고 있어.’

앞공을 두껍게 쳐서 위, 아래로 횡단하는 샷을 노린다? 그러기엔 너무 부정확하다.

그렇다면 앞공을 맞추고 크게 돌릴까?

어찌 되었든 이런 식으로 첫 공이 강제되는 상황은 그다지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다.

‘어디 한번 보여주시지. 간판선수.’

타-앙!

홍재표의 큐대가 공을 때렸다. 공은 빠르게 굴러가며 가장 앞에 있던 공을 지나쳤다.

‘설마.’

침을 꼴칵 삼켰다. 그대로 굴러간 공은 가장 뒤에 있던 공에 맞고 대각선으로 진행하며 구석에 두 번 튕기고 마지막 쿠션에 닿은 후에 남아있던 앞공을 맞혔다.

‘진짜 기본기가 괴물 같네.’

샷의 파워와 당점의 정확도, 큐대의 방향까지 모든 게 완벽하지 않다면 앞공에 맞고 길이 흐트러질 수 있었다.

그걸 정확히 빗겨나가 가장 뒤에 있던 공을 맞히다니.

‘강심장인 건가, 자신에 대한 믿음인가.’

인정해야 했다. 적어도 이 선수에겐 심리 싸움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가장 상성이 안 좋은 타입이다.

“시작이군요.”

“네?”

“이제부터 홍재표 선수가 몰아치기 시작할 겁니다. 이지운 선수한테는 힘든 흐름이 되겠군요.”

김동건의 말 그대로였다.

홍재표는 순식간에 몰아치더니 11점의 하이런을 달성했다.

24점 대 17점.

4점 차로 앞서고 있던 이지운이 순식간에 7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보통 프로 당구 선수의 에버리지는 1.2점. 평균적으로 한 이닝에 1.2점을 낸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7점의 점수 차이는 최소 6번의 차례를 더 세이브 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7점 차죠. 40점까지는 점수도 많이 남았고 지운 씨, 아니 지운이도 하이런의 경험은 많아요.”

그렇게 말하는 이세현의 입술은 자신도 모르게 말라갔다.

확실히 아직 기회는 있었지만 7점 차라는 점수는 보기에도 커 보였다.

그리고 그걸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건 이지운 자신이었다.

‘제기랄.’

잡힐 것 같던 등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초반부터 승부수를 띄운 것이 잘 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역전의 빌미를 주어버렸다.

‘지금부터 바쁘게 따라잡아도 힘들다. 이닝마다 득점을 높여서 따라잡는다?’

그딴 건 말도 안 되는 계획이다. 지금부터 매일 로또를 사서 페라리를 사겠어! 같은.

매번 좋은 공이 온다는 보장도 없고 항상 7점, 8점씩 득점을 하는 건 정밀한 기계라도 당구대의 상태에 따라서 경로가 달라지는 당구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확실한 답안을 생각해야 한다. 방향이 아닌 방법을 생각해야 해.’

매번 쉽지 않은 공이 오면서 첫 공을 해결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더 많은 시간 아니면 공을 쉽게 풀어갈 방법이 필요하다.

저번처럼 휴식 시간을 사용할까?

아니.

그건 솔직히 반쯤은 운이었다. 모든 걸 다 걸고 쳤던 것이기에 아예 뒤를 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건 다시는 시도해선 안 될 것이다.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도박이다.

홍재표의 당구를 뚫어지라 관찰한다. 깔끔한 폼과 교과서적인 당구.

간혹가다 상식을 뛰어넘는 기본기로 예상 못 했던 경로를 노리기도 했다.

“잠깐. 저 정도면···.”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온 이지운은 조용히 침묵했다.

그 모습에서 이세현은 익숙함을 느꼈다. 류상욱과의 대결에서도 보였던 모습.

“이건 좀 일방적이군요.”

김동건의 안타까운 목소리.

이미 28점 대 22점.

40점까지는 단 12점만이 남았다. 이지운이 따라잡을 수도 있겠지만 홍재표의 기세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지운 선수 나이에 이 정도면 놀라울 정도네요. 앞으로 좋은 선수가···.”

“아직 안 끝났는데요.”

이세현이 김동건의 말을 칼같이 잘랐다.

“아직 안 끝났어요.”

굳이 이세현은 말을 반복했다.

“물론, 끝나지는 않았습니다만. 지금은 아무래도.”

“두고 보세요. 지금까지 지운이는 수많은 게임을 역전했으니까요.”

많은 게임을 직접 본 것도 아니었지만 이세현은 괜히 늘 봐온 것처럼 말했다.

이세현의 말이 신호탄이 된 것일까.

갑자기 이지운의 득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28점과 22점에서

30점과 25점으로.

31점과 27점으로.

마침내 같은 점수까지 쫓아왔다.

“갑자기 아까의 스타일로 돌아왔어?”

초반엔 40초의 인터벌 시간을 모두 이용하고 이후엔 망설임 없이 치던 이지운은 중반부터 공 하나, 하나마다 시간을 들였다.

그런데 후반에 와서는 갑자기 처음부터 길을 설계해서 몰아치는 스타일로 다시 돌아왔다.

김동건은 중반부터 이지운의 준비 시간, 인터벌이 길어진 이유를 눈치채고 있었다.

이지운은 자신의 당구에 집중하느라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홍재표가 조금씩 쉽지 않은 공을 주고 있었다.

자신이 치지 못하고 실패한 공이 상대에게 기회가 뒤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본이고 기본기가 강한 홍재표가 익숙하게 하는 것 중 하나였다.

“이후의 공까지 설계하기엔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었나? 갑자기 어째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운이만의 방법을 찾은 거겠죠.”

“홍재표 선수는 달라진 게 없는데. 갑자기 방법이 생길 리가!”

김동건은 인정할 수 없었다.

이지운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목표인 김동건이 새파란 선수에게 진다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당구라는 게 항상 이길 수 없는 게임이고 새로운 강자가 나온다지만 홍진표는 김동건 자신에게 있어 영원한 강자여야만 했다.

“아직 이지운이란 선수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나 봐요?”

이세현은 자신이 이기는 것처럼 기세가 등등해졌다.

“방법이 없어 보일 때, 방법을 만드는 선수가 이지운이란 선수죠.”

경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두 사람이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도중.

정작 공을 치고 있는 두 선수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경기 후반.

차이 없는 점수.

상황에 휘말려서 다른 것들을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집중이 흐트러지면서 경기를 더 망칠 수도 있었다.

오직 자신의 당구에만 더욱 집중했다.

이지운 조차도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다. 만약 지더라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게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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