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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다마의 망나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스포츠

윤희권
작품등록일 :
2019.06.28 16:01
최근연재일 :
2019.07.11 20:00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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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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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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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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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04화

DUMMY

10,000다마의 망나니 004화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혼자 있고 싶었기에 세현도 돌아가라고 한 참이었다.

넓은 스위트룸에 혼자 누워 있으니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피가 배어 나오는 붕대를 한 채 큐대를 잡던 사내의 손이 자꾸만 떠올랐다.

“쳇. 쓸데없이.”

어디까지나 끝까지 몰렸을 때의 일.

상관없는 일이다.

자신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당구장을 드나들기 시작하고 나서 당구로 진적은 거의 없었다.

당점이니 회전이니, 어느 쿠션에 때려야 하는지 등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이들을 보면서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지금까지 승리만을 알아왔던 이지운은 패배를 생각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기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이기고 나면···.’

많은 돈과 많은 돈. 그리고.

많은 돈.

문득 아까 보았던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류상욱이 떠올랐다.

꼴 보기 싫지만 높은 프라이드가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당구장에선 마주친 상대들에겐 본 적이 없던 얼굴이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이지운이 생각을 정리하며 침대에 누워있던 시각, 최수호는 끊임없이 전화를 돌린 덕분에 다음 상대를 잡을 수 있었다.

게임 상대를 잡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플레이어는 많고 돈이 필요한 사람은 더욱 많았다.

하지만 ‘최수호에게 필요한 플레이어’는 많지 않았다.

전날.

이지운이 자신의 룸에서 세현이 조달한 안주와 함께 맥주를 즐기고 있을 때 최수호는 정보원에게 요청한 이지운의 정보를 훑어 내려갔다.

간단한 신상 정보와 함께 대략적인 그동안의 전적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최수호가 가장 주의 깊게 본 것은 이지운이 제대로 된 패배의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좋지.’

패배를 통해 배운다? 그딴 흔한 말은 최수호가 신경 쓰는 일이 아니었다.

패배의 경험을 통해 이지운이 스스로를 울타리에 가두고 자신들의 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그게 최수호의 노림수였다.

“이번에는 뺏길 수 없지.”

이번의 상대야말로 이지운에게 자괴감을 심어줄 수 있는 가장 어울리는 상대였다.


* * *


“오늘은 얼마야? 또 얼마 벌지도 못하는 건 아니지?”

저번 게임은 걸린 돈이 2억이었지만 칩을 번 만큼 받고 최수호와 나눠서 가지니 실제로 들어오는 돈은 절반밖에 되지 못했다.

예전 수입에 비하면 훨씬 많은 금액이었지만 1억이라는 소리에 신났던 거에 비하면 적었다.

“하하. 이번은 좀 다를 겁니다. 충분히 만족이 안 되셨나요?”

“뭐, 그런 건 아닌데.”

최수호는 뒷좌석에 앉아 뻑뻑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지운을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저번의 게임은 최수호가 생각하던 것보다 싱겁게 끝났지만 아깝지 않았다.

애초에 후배의 ‘버리는 카드’를 확실히 버리기 위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너무 싱겁게 끝났기에 최수호는 특별한 플레이어를 준비해 두었다.

‘어디까지 통할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릿속에서 완벽히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해도 당구는 항상 원하는 대로 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치면 칠수록 길이 꼬여서 이지운의 이닝이 많아지는 것이 증명하고 있었다.

자신이 치는 한 이닝에 획득하는 점수를 올려서 전체 이닝을 적게 가져갈수록 유리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최수호는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이지운은 이닝이 많은 대신, 상대의 정신적인 부분을 공격해 상대의 이닝도 늘리는 스타일이었다.

대부분 돈에 쫓기는 상대만을 만나본 이지운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쫓기지 않는 상대의 무서움을.

“도착했습니다.”

최수호와 이지운은 익숙하게 건물로 들어갔다.

“이런 곳이 더 있나?”

최수호와 이지운이 간 곳은 저번의 건물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그렇죠.”

지하 1층을 누르고 최수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여러 곳에 두는 편이 거리에 따라서 모이기도 편하니까요.”

“돈도 많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곳엔 위, 아래로 갈 수 있는 계단 외에 문 하나만이 덜렁 놓여 있었다.

이전의 Bar와는 다르게 모르는 사람이라면 관리실 같은 건가, 하면서 지나칠 정도다.

“들어가죠.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밖은 회색 콘크리트로 딱딱한 풍경이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났다.

한쪽 전면이 유리로 되어있어 들어가지 않아도 모든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천장에서 느긋하게 돌아가는 실링팬과 은은하게 안을 밝히는 조명.

푹신한 소파와 음료수가 종류별로 잔뜩 들어 있는 냉장고.

그리고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당구대까지.

남자들이 로망으로 뽑는 게임룸을 그대로 옮겨놓은 방이었다.

‘지랄 중에 최고봉은 돈지랄이라고 하더니.’

소파의 상태나 다른 시설들만 보더라도 손이 많이 타지 않았다는 것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오. 빨리 오셨네.”

소파에 앉아 한가롭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사내가 일어났다.

“오랜만입니다.”

최수호와 악수를 나눈 사내는 물끄러미 이지운을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그쪽이 오늘 플레이어지? 난 대니얼.”

“대니얼?”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이다.

“이쪽에서 쓰는 예명 같은 거지.”

갑자기 예명?

기가 차서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한쪽에 놓여 있는 술병에 시선이 갔다.

“난 발렌타인.”

“···이쪽 분은 이지운 입니다.”

자신을 대니얼이라 소개한 남자는 상쾌하게 웃으며 이지운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하하하. 이지운 씨. 재미있네.”

“그쪽도.”

“수호 씨. 진짜 오랜만이지? 거의 1년만인 것 같은데.”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요즘 너무 춥지 않아? 작년에는 이렇게 안 추웠던 거 같은데.”

“벌써 1월이니까요.”

최수호의 단답에도 불구하고 대니얼은 제스처까지 섞어가면서 밝게 대답했다.

그러기를 10분이 지나도 대니얼의 입은 멈출 줄을 몰랐다.

심지어 다시 소파에 걸터앉아 있었다.

“우리 당구 치러 모인 거 아닌가? 그쪽 매니저는 언제 오지?”

뚱한 얼굴로 대니얼을 바라보던 이지운이 입을 열었다.

“이분은 따로 매니저가 없습니다. 대니얼 님. 그럼 시작할까요?”

대니얼은 기지개를 켜며 이지운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러게~ 우리 친구는 성격이 많이 급한가 봐.”

“쓸데없이 시간 버리기 싫은 거지.”

닦달하듯 당구대로 걸어가 큐대를 잡는다. 대니얼은 일어날 기미도 없이 소파에 한껏 기댄 채, 고개만 뒤로 꺾어서 날 보고 있다.

한참 눈싸움을 벌이던 대니얼은.

“하아. 보채는 남자는 인기 없는데.”

가벼운 발걸음으로 헐렁헐렁 걸어와 큐대도 잡지 않고 이지운과 마주섰다.

“3판 2선?”

“칩 없이.”

저번 게임도 기존에 치던 죽빵과 다를 바 없는 규칙이었지만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하고 왔기에 최수호에게 따졌다.

그 덕분에 이번에는 미리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대회 규칙이라니.’

최수호도 이번 게임은 꽤 예외적인 상황이라는 듯, 출발하기 전에 객실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사실 이지운도 당구 대회를 본 적은 없기에 규칙은 자세히 몰랐다.

야구처럼 각자가 돌아가며 이닝을 가지고 40점을 내면 승리하는 규칙.

최수호는 가운데에 서서 이지운, 대니얼과 눈을 한 번씩 마주쳤다.

“그럼 뱅킹부터···.”

“아냐, 됐어. 지운 씨, 먼저 쳐.”

“뭐요?”

당구장 몇 개 정도 접수해 봤다는 자만심에 빠져서 선공을 양보하는 놈들이 종종 있다.

그런 놈들은 꼭 한 번만 더 치게 해달라면서 추하게 매달리고 파괴되어왔다.

대니얼이라는 이놈도 다를 게 없다.

“원한다면야.”

3개의 볼을 모두 잡은 대니얼은 당구대 위에 대충 볼을 굴리고는 소파 등받이에 걸터앉았다.

동네 당구장에 친구들과 놀러 온 태도가 어이없다.

이지운이 어이없이 바라봐도 대니얼은 손을 들어 당구대를 가리킬 뿐이었다.

‘언제까지 여유로운지 보자고.’

자신의 그런 태도가 이지운의 스위치를 건드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니얼은 하품만 길게 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기를 죽여주지.’

빈 쿠션을 노려서 뱅크샷으로 간다.

이번에 적용된 대회 규칙은 뱅크샷이든 아니든 모두 1점이기 때문에 어렵게 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건 오기다.

탕!

뱅크샷을 성공시키고 자신만만하게 대니얼을 봤더니 자리에 없다.

“맞았나?”

어느새 술잔을 들고 있던 대니얼이 위스키를 한입 홀짝이며 묻는다.

“뭐, 맞았겠지.”

그리고는 술잔을 들고 소파 등받이에 걸터앉는다.

신경 안 쓴다. 이건가?

“자자.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은 신경 좀 써야 할 것 같은데.”

“그런가?”

술을 홀짝이며 당구대 위를 보기만 할 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한 이닝에 5개의 공을 칠 때까지도 대니얼은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지운의 이닝이 끝나자 대니얼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런 당구를 치는구나. 잘 알겠네.”

“그런 당구?”

“아! 나쁘다는 말은 아니니까!”

양손으로 손사래를 치더니 큐대를 잡는다. 실력 좀 보고 싶지만 이번엔 힘들 것 같다.

공 3개가 구석에 모두 붙어 있다. 마치 큐볼이 두 공에게 포위된 것 같은 형태다.

첫 공을 맞힌다고 해도 잘못 튀어나가면 다음 공에 바로 맞는다.

“재밌네.”

대니얼은 술잔을 들어 한입 마시고는 당구대에 찰싹 달라붙더니 큐대를 높이 들었다.

맛세(Masse).

‘300점 이상 마세이 금지’라는 유명한 말을 만들어낸 찍어서 치는 기술이다.

‘똥폼은.’

큐대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각을 보던 다니엘은 마침내

탕!

힘껏 공을 찍었다.

일직선으로 굴러간 큐볼은 옆에 있던 공에 맞고 뒤로 빠지며 급하게 꺾였다.

그대로 옆에 있던 쿠션에 두 번 튕기고는 뒤를 막고 있던 쿠션에 한 번 더 튕기고 다음 공에 맞았다.

“오! 진짜 잘 들어갔다.”

“여전하네요.”

이미 대니얼의 실력을 알고 있던 최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서울에서 정확한 당점으로 회전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이를 뽑으라면 다섯 손가락에 뽑히는 플레이어.

이지운과는 완전히 다른 타입이었다.

“잘 치네.”

그렇다고 해서 이지운에게 위기감은 들지는 않았다. 예전 게임에서도 회전을 잘 이용하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그뿐.

‘안 될 각을 노리다가 망하는 놈들이 대다수였지.’

하지만 이지운의 예상과는 다르게 대니얼은 자신의 첫 이닝에만 7개의 공을 쳤다.

5점과 7점. 많은 차이는 아니다.

‘이 정도는 따라붙을 수 있어.’

그런 이지운의 생각은 이닝이 거듭될수록 무너져갔다.

점차 안 좋은 곳으로 공이 몰리는데도 불구하고 이지운은 3개, 4개를 치면서 추격했지만 대니얼은 예술적인 스핀을 이용해 유유히 빠져나갔다.

어느덧 점수 차는 10점까지 멀어지기 시작했다.

‘벌써 흔들렸나?’

최수호는 그동안 대니얼보다 이지운에게 집중했다. 자신보다 상대방이 이닝을 길게 가져갈수록 초조해진다.

가만히 상대방이 치는 것만을 구경하게 되면 자신은 이곳에서 제외된 느낌마저 들게 된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던 이지운이 일어났다.

“너무 붙으면 부담되는데. 혹시 작업거는 거야?”

어느새 이지운은 대니얼의 옆에 착 달라붙어서 보기 시작했다.

“신경 안 써도 됩니다.”

냉랭하게 대답한 이지운은 말없이 대니얼의 큐대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흔들린··· 건가?’

점수 차이가 커질수록 이지운은 때로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때로는 당구대에 찰싹 붙어 대니얼의 플레이를 지켜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처럼.

탕!

대니얼의 큐대가 큐볼을 때렸다.

첫 구에 맞은 공이 좁은 각도로 구르며 쿠션에 맞았다. 보통이라면 밀고 나갈 만한 각도였지만 기가 막히게 꺾인다.

두 번 더 쿠션에 맞고 튕긴 공은 마지막 공에 맞았다.

대니얼이 40점을 먼저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15점 차인가? 아쉽네!”

자신의 어깨를 팡팡 때리는 대니얼을 한번 흘겨본 이지운이 공을 당구대 위를 정리했다.

“먼저 치던가.”

“양보하는 거야? 안 그래도 되는데! 먼저 쳐도 돼.”

“필요 없으니까 먼저 쳐.”

‘이 둘은 처음 보는데 왜 서로 반말하는 거야?’

기묘한 신경전인지 아니면 서로가 원래 그런 성격이라 그런 건지.

최수호는 동네 친구처럼 아옹다옹하는 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이번엔 이지운이 패배할 것이 뻔히 보였다. 15점 차로 졌음에도 자존심 때문에 선(先)을 내어주다니.

“그럼 사양하지 않고.”

역시나 대니얼은 자신의 첫 이닝부터 8개의 공을 처리했다.

이지운의 차례.

공은 운 나쁘게도 일직선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

‘첫 공부터 운이 좋지 않군.’

이 정도로 철저하게 패배하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이 하락한다면 최수호에게도 좋은 결과는 아니기에.

하지만 이지운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 큐대를 조준했다.

그리고.

탕!

큐대에 맞은 큐볼은 첫 공에 맞더니 급하게 꺾이며 당구대를 길게 가로로 차지하고 있는 장쿠션을 때렸다.

그리고는 공 사이에서 위, 아래로 오가며 쿠션을 세 번 때리고 마지막 공에 닿았다.

“오?”

“어?”

“뭐, 이런 느낌인가.”

일부러 노려서 회전을 주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는 길이었고 큐대가 공을 노리는 당점 또한 완벽해야 했다.

‘그사이에 회전 주는 법을 익혔다고?’

최수호는 이른바 ‘이지운 길들이기’의 계획을 급하게 수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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