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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다마의 망나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스포츠

윤희권
작품등록일 :
2019.06.28 16:01
최근연재일 :
2019.07.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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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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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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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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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05화

DUMMY

10,000다마의 망나니 005화



‘설마. 어쩌다 친 거겠지.’

가능할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속인 게 아니라면 당점이니 회전이니 신경도 쓰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흉내를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익숙한 공이네.”

이지운이 당구대에 찰싹 붙었다.

큐볼이 두 개의 공에 쌓여진 형태.

대니얼이 맛세로 처리한 공과 똑같은 형태였다.

‘설마.’

최수호의 설마가 무섭게 이지운은 큐대를 세웠다. 마치 방금 전의 대니얼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탕!

큐볼이 공에 맞고 쿠션에 튕겨서 쓰리 쿠션이 되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똑같았다.

“말도 안 돼!”

최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고 입을 가렸다.

나름 일반인 사이에선 꿀리지 않을 실력을 가진 최수호였다. 그렇기에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당구 좀 쳐본 사람이라면 따라서 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옆에서 정확한 당점의 위치를 알려주거나 폼 정도는 잡아줘야 한다.

더군다나 평소에 익숙하지 않던 길이라면 여러 차례 연습을 해봐야 가능하다.

그런 것을 이지운은 눈으로만 보고 익힌 것이다.

‘재능? 본 걸 바로 따라 하는 게 재능으로만 되는 일인가?’

최수호가 놀라는 것에 비해 대니얼은 담담했다.

‘역시.’

아까부터 대니얼이 느낀 감정은 최수호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오직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것.

흡수당하는 느낌.

질척하게 옆에 붙어서 조금씩, 조금씩 앗아가는 느낌을 대니얼은 첫 게임부터 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지운이 자신의 옆에 달라붙기 시작했을 때부터 늪이 자신을 삼키는 느낌에 몸을 털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 첫 게임이 끝날 즈음에야 정체를 알아냈다.

이지운의 맹렬한 시선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적의 성장을 기뻐해야 할지, 두려워해야 할지.’

재미있는 게임을 할 수 있다면 난이도가 오르는 것도 좋다.

어차피 대니얼에게 이번에 잃는 돈은 크지도 않았고 다음 게임에서 만회하면 그만이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처음 이지운의 투박한 당구를 봤을 때, 최수호가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지운의 큐대가 다시 공을 노렸다.

탕!

완벽한 대회전.

왼쪽 하단에 당점을 준 큐볼은 쿠션 근처에 있던 공을 맞히고 뒤로 크게 돌아 쿠션에 맞은 뒤, 마지막 공에 부딪혔다.

자신이 전 게임에서 했던 끌어치기를 활용한 대회전이었다.

‘더 깔끔해졌어.’

모두가 이지운을 다시 보고 있는 순간, 이지운의 머릿속은 터질 것 같았다.

‘제기랄. 뭐가 이리 복잡해?’

당구는 단순명료한 게임이라 생각했다.

치면 간다.

힘이 다하면 멈춘다.

맞으면 튕겨 나간다.

하지만 대니얼의 당구를 보고 회전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알던 당구가 갑자기 바다처럼 넓어졌다.

이지운은 최대한 자신의 머릿속에 대니얼의 당구를 때려 박았다.

당점에 따른 공의 진행 경로

쿠션에 닿았을 때, 공의 궤적

큐볼을 칠 때, 팔의 힘과 각도

모든 정보가 뒤섞이면서 이지운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쉽지 않지?”

알고 있다는 말투에 인상을 찡그린다.

“훈수라도 두려고?”

“필요하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대니얼은 상대할수록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집중하자. 집중.’

공 하나는 쿠션과 거리를 두고 구석에 있고 다른 하나는 세로로 있는 단쿠션 중앙에 맞닿아있다.

단쿠션 중앙에 맞닿아있는 공을 목표로 삼는다.

‘두껍게. 공을 밀고 지나가서 쿠션을 맞추고 다음 공을 노리자.’

분명 대니얼은 밀어서 칠 때, 당점을 상단에 두었다.

‘그리고 큐는 길게.’

탕!

첫 공에 맞은 큐볼은 두 번 세로로 있는 단쿠션에 튕기고 길게 늘어진 장쿠션을 맞춘 뒤, 마지막 공에 맞았다.

“오, 그렇지. 그렇게 밀어치는 거야.”

깔끔하게 비워져 얼음만 남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대니얼이 다가온다.

“댁이 내 선배라도 되나?”

“엄밀히 따지면 선배는 맞지. 내가 더 먼저 이쪽에 있었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음 공을 준비하려는데.

“정말? 그쪽에서 치려고?”

“개···.”

말을 말자.

안 그래도 복잡한데 괜히 휘말릴 필요가 없다.

겨우겨우 집중하여 한 이닝에 7개의 공을 칠 수 있었다. 게임은 바로 전의 게임과 다르게 치열했다.

이지운이 1점 차이로 앞서면 대니얼이 다시 따라잡고 앞서 나갔다. 그러면 다시 이지운이 점수를 따라잡았다.

탕!

대니얼이 친 공이 마지막 공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간다.

“선배라더니 이번 건 못 치셨네?”

이지운의 비아냥을 대니얼이 받아쳤다.

“가끔은 후배에게 양보해야지.”

“내가 이기면 당신이 후배겠지.”

현재 점수는 똑같이 38점.

게임이 끝나는 40점까지는 단 2점.

한 이닝에 2점을 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평균적으로 5점, 6점씩 내는 이지운이 한 이닝에 2점을 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실수한다면 똑같은 점수인 대니얼에게 기회가 넘어간다는 압박감이 흔들리게 만들었다.

탕!

처음으로 큐대가 흔들렸다.

당점이 어긋났지만 다행히도 큐볼은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공을 맞혔다.

‘지는 게 무서운 거야?’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간 당구장에서 이지운은 여러 번 패배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접전 끝에 패배했던 게임들.

지금까지 당구를 쳐오면서 유일하게 분했던 게임이었다.

‘이번엔 저놈 때문에 지고 싶지 않은 거지만.’

고개를 돌려 대니얼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대니얼은 빙긋 웃었고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한 구.

아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한 구.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기 위한 한 구.

이지운은 당구대 위를 바라보았다.

공 하나는 구석에 붙어 있고 단쿠션을 따라서 거리를 두고 다음 공과 함께 큐볼이 근처 대각선에 놓여 있다.

‘멀리 있으면 대회전이라도 해보는데.’

어떻게 쳐도 쿠션에 바로 맞을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지난번에 쳤던 게임이 떠올랐다.

‘그거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길은 나왔다. 하지만 쳐본 적이 없는 길이기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감으로 쳐야만 했다.

‘공을 밀고 나가야 하니까 상단, 왼쪽으로 10시쯤인가? 두께는 반 정도.’

짧은 심호흡 후에

이지운의 큐대가 공을 때렸다.

“오오?”

큐볼은 단쿠션 근처에 있던 공을 밀고 나가 쿠션에 튕겼다. 그리고 아래로 흘러간 공은 당구대를 세로로 횡단하며 마지막 공에 맞았다.

저번에 쳤던 게임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며 장쿠션 사이에서 단두대처럼 움직이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물론, 힘으로 치던 것과는 달리 당점을 통해 회전을 이용했지만.

“이건 내가 보여준 적 없던 길인데.”

“선배로서 이 정도는 보여줘야지.”

마지막까지 조마조마하게 바라본 샷이었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니얼이 들고 있던 술잔을 뺏어 들었다.

“이지운 후배님. 아직 1 대 1인데?”

씁쓸한 액체가 목을 타고 가슴을 향해 내려간다.

“다음 게임도 이길 테니까.”

자신이 생겼다. 머릿속에 다운로드가 완료된 느낌이다.

“바로 다음 게임으로 가지. 이젠 뱅킹 해야겠지?”

말을 마치고 최수호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최수호는 뱅킹을 위해 공을 세팅했다.

가슴이 뛰었다.

수없이 내기 당구를 쳐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오랜만의 고동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는 당구를 치는 기분이었다.

“그럼 이번엔 봐주지 않고 가도 되는 거야?”

“그러던가.”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이지운을 보며 대니얼은 피식 웃었다. 자신도 이렇게 즐겁게 당구를 쳐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자신에게 붙어 있던 매니저도 내치고 혼자서 이 판에 남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재미없어.

그게 대니얼이 자신의 전 매니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오랫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이젠 돈도 대니얼에겐 별 가치가 없었다.

“뱅킹 시작하시죠.”

선공은 대니얼이 가져갔다. 첫 이닝부터 6점을 가져가며 선방한 대니얼은 이지운의 차례를 흥미 깊게 바라보았다.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첫 게임의 이지운과 두 번째 게임의 이지운이 달랐고 이제 시작하는 세 번째 게임의 이지운은 또 달랐다.

자신만이 배워온 당구를 치던 것이 첫 게임의 이지운이었다면 두 번째에는 더 발전된 당구를 쳤다.

그리고 지금 이지운은 또 다른 단계의 당구를 하고 있었다.

투박했지만 처음 본 이지운도 분명 어느 당구장이든 가서 사장에게 도전장을 내밀어도 지지 않을 실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지운은 가히 프로와 견주어도 될 수준의 실력이었다.

이런 대니얼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음을 바로 증명되었다.

“쳇.”

혀를 차며 당구대에서 물러났다. 두께가 조금 빗겨나가면서 마지막 공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이닝에 획득한 점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본 적이 없던 점수다.

“10점? 너무 열심히 치는 거 아니야?”

대니얼의 목소리는 놀란 목소리였지만 얼굴은 평온했다. 그런 대니얼을 보며 똑같이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선배님 따라서 열심히 치다 보면 후배도 언젠가 이 정도는 칠 수 있을 거야.”

“비슷한 것 같은데~ 그렇게 선배님이 되고 싶다면야 못 불러줄 건 없지! 원해?”

“당구나 쳐.”

이지운의 말에 대니얼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당구에 집중했다.

보통 첫 이닝에 최소 7점에서 8점까지 득점하는 것이 꽤 잘 친다 하는 사람들의 평균이지만 인간이란 게 그렇듯 항상 똑같을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어느 장소, 어느 상황과 상관없이 항상 이닝마다 10점, 11점을 낸다면 당구는 10분 만에 끝나는 싱거운 게임일 것이다.

대니얼은 더욱 집중했다. 오랜만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흐흥~”

하지만 그 와중에도 대니얼은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여유를 잃고 쫓기는 순간 큐대 또한 흔들리고 원하는 두께와 당점대로 못 치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번 게임도 박빙이겠군.’

최수호는 어느새 푹 빠져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게임보다 흥미진진했다.

박빙인 게임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나름 선정해서 데려오는 플레이어들이기 때문에 실력은 모두 뛰어났다.

하지만 지금 게임은 달랐다.

처음엔 쉽게 무너지던 이지운이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전혀 다른 당구를 보여주더니 대니얼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마지막 게임은 이지운이 대니얼을 6점 차로 따돌리기 시작했다.

‘더 성장할 구석이 있었나?’

물론 최수호가 이지운을 데려오기로 결정했을 때도 이지운은 상급의 플레이어였다.

당점 활용은 잘 못 하는 것 같은데도 두께 조절과 폼이 완벽해서 공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깔끔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향후 미래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도 참고 데려온 것인데 이지운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러다 후배 생기겠는데?”

이지운이 이죽거리고 대니얼이 맞받아쳤다.

“나도 선배 생기면 좋지? 선배면 술도 사주나?”

“잘하는 후배여야 사주는 맛이 있지.”

이젠 3점 차로 따라온 대니얼에게서 이지운이 도망칠 차례였다.

30점과 27점.

적어도 각자 3이닝은 쳐야만 끝날 법한 점수였다.

“멀리 안 도망치면 금방 쫓아갈걸?”

“왜 도망친다고 생각해? 끝날 수도 있는데.”

당당한 이지운의 모습에 최수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세만큼은 타고났다. 더러는 허세가 오히려 족쇄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걸로 자신을 잘 관리할 수 있다면 증폭제도 될 수 있다.

‘그래. 잘만 하면.’

탕.

‘허세 또한.’

탕.

‘증폭제가···.’

탕.

‘허세?’

순식간에 이지운은 6점을 획득했다. 어느새 게임이 끝나기까지 단 4점밖에 남지 않았다.

심지어 공이 좋은 위치에 놓였기에 다음 1점도 확정적으로 생각하면 3점밖에 남지 않았다.

최수호는 대니얼을 살폈지만, 대니얼은 술이 아닌 물을 마시며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최수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니얼이 일어나 큐대를 제자리에 놓기 전까지는.

‘끝났군.’

대니얼은 확신했다.

이지운이 이번에 게임을 끝낼 것이다.

어째서인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자신과는 다른 곳으로 이지운이 달려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3번의 게임을 치르고 대니얼과 상당히 많은 횟수의 공을 치고 난 뒤였다.

서로가 지쳐 있었다.

점점 연속해서 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니얼의 예상대로 이지운은 마지막 공으로 40점을 달성하고 게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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