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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다마의 망나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스포츠

윤희권
작품등록일 :
2019.06.28 16:01
최근연재일 :
2019.07.11 20:00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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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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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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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4화

DUMMY

10,000다마의 망나니 014화



“지금부터 몇 가지 설명을 할 테니까 잘 들으세요.”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지운을 구석 벤치로 끌고 간 이세현은 설명 모드에 들어갔다.

“첫 번째. 안내 방송으로 이름이 호명되면 15분 내로 가세요. 제발. 전 이게 제일 걱정돼요.”

“네, 엄마.”

“하아. 두 번째. 상대방이 플레이 중일 때는 대기석에 가만히 있으세요. 절대 벗어나면 안 돼요.”

이건 이지운이 가끔씩 상대방에게 붙어서 당구 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경우 때문에 이세현이 콕 집어 얘기한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함부로 입 열지 말고. 복장 준수하라는 거지. 몇 번을 얘기하는 거야?”

이미 선수 선발전 때부터 이세현이 얘기한 것이었다.

아무리 이지운이 지금은 착한 소년인 척하고 있지만 기본 성격이 어디 갈 리가 없었다.

거기다 말, 기세 싸움이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죽빵에서는 허용되는 것들이 대회에서는 당연하게 허용이 되지 않았다.

어이없이 공도 못 쳐보고 실격 처리가 되는 일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기에 이세현은 누누이 이지운에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럼 이제 시간이니까 들어가서 대기하세요. 예선 정도는 가뿐하죠?”

“당연하지. 대전연맹의 간판선수한테 무슨 걱정을 하는 거야?”

“아직 간판선수는 홍재표 선수거든요!”

이세현이 올라가고 이지운은 강당에 홀로 남았다.

홀로 병원에 온 기분이었다.


[경기번호 12번. 경기. 김수발. 경기. 김수발. 진당구클럽. 주영민. 진당구클럽. 주영민. 27번 테이블입니다.]


진료받는 환자들처럼 대기하고 있으면 방송이 나오고 호명된 선수들이 테이블을 찾아간다.

아직 호명되지 않은 선수들은 이지운과 같이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자신들이 호명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전. 이지운. 대전. 이지운.]


이지운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배당된 테이블로 갔더니 당구대와 큐대가 당구장에서처럼 세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보통 점수판이 놓이는 곳에는 태블릿 같은 전자기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이게 그건가?’

항상 손가락으로 일일이 하얀색, 빨간색 주판을 옮기던 이지운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세현이 이미지까지 보여주며 가르쳐준 덕분에 대충 어떻게 조작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역시 신기했다.

“신기하죠? 이제는 점수도 기계로 체크하다니.”

상대 선수의 말에 이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옆에 0이라고 크게 쓰여 있는 게 점수고, 아래에 그려진 이게.”

이지운의 말대로 화면의 왼쪽, 오른쪽을 가장 크게 점수가 표시되는 영역이 자리 잡고 있었고 아래에는 녹색, 빨간색으로 된 게이지 같은 게 떠 있었다.

“그게 선수별 인터벌 시간이죠. 인공지능으로 선수 호명까지 해주다니 신기하죠.”

5분의 연습 시간을 가진 뒤, 뱅킹을 위한 포지션을 세팅했다.

“잘 부탁합니다.”

“네. 잘 부탁합니다.”

서로 손을 맞잡은 뒤에 뱅킹에 들어갔다. 따로 심판도 없었기에 모든 걸 선수들이 해야만 했다.

항상 뱅킹에서는 강했던 이지운 이었지만 조금 더 공이 길어지면서 선공의 찬스를 놓쳤다.

조용히 뒤로 나와서 의자에 앉은 이지운은 점수판을 터치한다. 정상적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 대회에서 떨어지느냐, 마느냐가 걸려있는 치열한 상황인데도 주변은 조용했다.

다른 테이블에서 당구공을 때리는 소리와 이름 모를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주변에는 관객도, 심판도 없다.

몇 명의 심판이 각 구역을 전체적으로 관리할 뿐이었다.

누군가와 잡담을 할 수도 없고 다른 이들의 말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공허함.

‘상대방보다 이 정적이 더 거슬리네.’

가만히 상대의 당구를 지켜보다가 득점하면 점수판을 눌러주고 다시 당구를 지켜보고 점수판을 눌러주고.

가끔씩 구역의 심판이 와서 돌아보고 가는 정도.

그러다 상대방이 공을 놓치면 일어나서 준비하고 시간이 끝나기 전에 공을 친다.

‘언제까지 쳐야 하지.’

상대는 어렵지 않았다.

어느 정도 치긴 하지만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이들에 비하면 그렇게 강한 편도 아니었고 껄끄러운 점도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도저히 집중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테이블, 저 테이블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으니 대회를 나온 게 아니라 당구장에서 친구들과 가볍게 당구 한판 하는 느낌이었다.

선수들을 찾는 방송은 5분마다 흘러나오고 이곳, 저곳에서 웅성거림까지.

죽빵부터 평가전까지 다 관중들을 두고 일대일로 싸우는 게임만 해왔던 이지운에겐 너무 낯선 광경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이지운이 수고하셨다는 말이라도 건네려니 상대는 말없이 겉옷을 챙겨 입고 자리를 떠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조용히 플레이하고 조용히 떠나고 있었다.

‘무슨 공장도 아니고.’

승리자와 패배자를 찍어내는 공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다.

짐을 챙기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예선은 끝났고 이제 512강을 준비해야 한다.

‘미친. 512강이라니.’

오늘이 512강.

내일은 256강부터 64강.

모래가 32강부터 결승이다.


[대전. 이지운. 대전. 이지운.]


회사로 향하는 직장인처럼 테이블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리고 상대와 마주하는 순간.

“어?”

“여어.”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싶어 눈을 비볐지만 앞에 있는 상대는 여전히 똑같았다.

“대니얼?”

“금방 다시 만났네?”

이지운은 점수판을 확인했다. 대전연맹의 이지운, 그리고 경기연맹 김수발.

“김수발 씨?”

“대니얼.”

“그렇군요. 김수~발 씨. 근데 지금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등록하기 전에 이름을 바꿨어야 하는 건데···.”

욕을 하듯 자기 이름을 얘기하는 이지운을 보며 대니얼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좀 인맥이 있거든. 우리 후배랑은 다르게.”

“내가 선배로 정해진 거 아니었나?”

정말 웃기게도 김수발, 대니얼이 반가웠다. 입대하는 훈련소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느낌.

‘둘 다 안 가 봤지만.’

둘 모두 연습을 끝마치고 뱅킹을 준비했다. 서로 간에 굳이 긴 말도 필요가 없었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 선수를 만난 탓일까? 뱅킹은 대니얼이 이기면서 선공까지 가져갔다.

“우리 후배, 뱅킹은 더 연습해야겠어.”

“선수 생활을 아직 얼마 못 해봐서 모르나 본데, 다 작전이라는 거다.”

당연히 이지운에게 작전은 없었다.

“한두 달 먼저면서 생색낼 거야? 그렇게 생색만 많이 내면 인기 없어.”

어깨를 으쓱이고 의자에 앉았다. 강한 상대를 만나는 것에 거부감 따위는 없지만 하필 대니얼이라니.

이길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기껏 견제를 연습했던 상대를 만나버리니 밤도 새워가며 준비했던 연습의 효율이 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어떤 식으로 견제를 할지 나도 알 수 있다는 거지.’

파악된 만큼 상대에 대해서도 파악이 되어 있다. 더군다나 이미 한 번 이겨봤고 몇 주 동안 같이 동고동락했으니 자신처럼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대니얼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지운이를 만날 줄은 몰랐네.’

연습할 때부터 이 대회에 참가한다는 건 이지운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과는 대회에서도 만날 것이라 생각했고 첫 경기를 치르기 위해 테이블로 가고 있는 이지운을 목격도 했다.

허나 이것이 찬스가 될지, 악운이 될지는 대니얼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일단, 이지운이 좋아하는 공과 싫어하는 공의 파악은 끝났어.’

대체로 이지운은 뭉쳐 있는 공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구대를 넓게 사용하던 옛날의 스타일 때문인지 극도의 회전이 필요한 공은 기피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꼭 공을 모아줘야지.’

아무리 연습해서 약한 부분을 보완한다고 해도 자신이 싫어하는 공이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는 법이었다.

모여 있는 공이라고 해도 거기에서 공 하나만 잘 빼내서 친다면 쳐야 하는 공들 두 개가 몰리게 되는 셈이니 더 쉬워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쉽게 빼내서 칠 수 없도록 만들면 되는 일이지.’

4점까지 획득한 대니얼이 다음 공을 때렸다. 공의 궤도만 봐도 이지운은 대니얼이 견제를 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쳇. 하필 이런 공을.’

공 3개가 애매하게 쿠션에 모여 있었다.

맛세와 끌어치기를 활용해 구석에 있는 쿠션만으로 3쿠션을 치자니 애매했다.

그렇다고 큐볼로 다른 경로를 노리자니 애매하게 공이 위치해 있어 칠만한 경로가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큐볼이 유일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경로에 빨간 공이 걸치고 있어서 첫 구가 강제될 수밖에 없었다.

‘적 사이에 가둬진 공주님이네.’

대니얼은 자신이 쳤지만 누가 봐도 기분 나쁠 만한 위치라는 거에 감탄했다.

대니얼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득점으로 이어질 만한 길은 보이지 않았다.

‘자, 어떻게 할래? 포기하고 견제로 맞불을 놓는 것도 재미있지.’

그러나 그것을 이지운이 용납할 리가 없었다. 길을 찾다가 실패하면 실패했지 처음부터 망할 걸 생각하고 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혹시 이건 어떨까?’

폼을 잡은 이지운의 큐대가 당구대의 구석을 향했다.

구멍이 뚫린 포켓볼과는 다르게 막혀 있어서 어디로도 빠져나갈 곳이 없어 보이는 막다른 구석.

‘나도 그 선수처럼 노려보자.’

다른 선수가 한 일을 자신이 못 할 리는 없다. 그런 자신감이 없다면 금방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탕!

이지운의 공이 예정대로 구석을 때렸다. 대니얼은 이번 이닝을 이지운이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큐대에 맞은 큐볼이 구석에 맞더니 정확하게 반대 방향을 향해 대각선으로 구르며 공과 공 사이를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뭐야 저게?’

전에 같이 게임을 했을 때도, 그렇게 오랜 시간 연습을 했을 때도 본 적이 없던 경로였다.

구석에 맞고 튕겨 나온 공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대각선으로 구르며 공과 공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왔다.

그대로 굴러서 빠져나가는 것으로 끝날 것만 같던 공이었다.

대각선으로 잘 올라가던 공은 왼쪽으로 회전하며 포물선을 그렸고 처음에 있던 위치와는 정반대에 있는 단쿠션에 맞았다.

그렇게 튕겨져 나온 공은 장쿠션에 또다시 튕기며 그대로 타고 굴러와 첫 공, 쿠션, 마지막 공에 맞고 멈췄다.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관전하던 대니얼은 이미 눈알이 튀어나올 기세였다.

‘진짜 단단히 미친놈이야.’

조금이라도 잘 못 맞는다면.

처음 구석에 맞고 튀어나온 공이 조금이라도 닿은 공에 닿았다면.

그대로 망해버릴 길이었다.

‘후우.’

안도의 한숨으로 머릿속을 정리했다. 아슬아슬하게 첫 공을 지나쳐갔던 홍재표의 샷을 상기하며 쳤던 공이었다.

처음 이 길을 생각했을 때는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지만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다.

네가 어떤 공을 주든 상관없어.

그런 경고를 상대에게 확실히 심어줘야 한다고 본능이 외친 것이다.

‘좋아. 어디 한번 견제로 가 보자고.’

오히려 좋은 기회다.

대니얼과의 연습에서 익혔던 것들은 기본일 뿐. 그게 전부라면 여기서 떨어져도 할 말이 없다.

그렇게 쉬운 선수로 남을 생각은 없다.

까다로워서 단번에 칠 수 없는 공부터 시작하자. 마치 선생님이 학생에게 문제를 내는 것처럼.

하지만 학생의 성장이 아닌, 고통과 패배를 위한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다.

‘자. 즐거운 난구풀이 시간이다.’

이지운은 대니얼을 보며 씨익 웃었다.

지금까지 이지운이 가식적으로 웃는 모습을 몇 번 보았던 대니얼이었지만.

지금의 웃음은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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