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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다마의 망나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스포츠

윤희권
작품등록일 :
2019.06.28 16:01
최근연재일 :
2019.07.11 20:00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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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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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글자수 :
81,809

작성
19.07.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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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7화

DUMMY

10,000다마의 망나니 007화



처음 당구를 칠 때만 해도 류상욱은 항상 쳐왔던 자신의 당구를 묵묵히 수행했다.

하지만 점점 찜찜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이내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어렸을 때도 똑같았다.

어릴 적 지고 난 뒤에 다시 붙을 때마다 이지운은 레벨 업 하듯 큰 폭으로 성장했다.

마치 자신을 비료로 쑥쑥 성장해나가는 새싹 같았다.

그때 당시, 모두에게 인정받던 신동이자 새싹은 류상욱,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기? 질투? 아니야. 그런 하찮은 게.’

라이벌로 인정하고 있었나?

확실히 못 본 새에 이지운은 무시무시한 적수로 성장해 있었다.

텅, 텅.

류상욱이 친 공이 미묘하게 빗나가며 이지운의 이닝이 돌아왔다.

첫 이닝에 무려 7점.

류상욱의 하이런 기록인 10점에는 못 미치지만 이 정도도 꽤 잘 쳤기에 만족했다.

이지운은 큐대에서 공과 맞닿는 부분인 팁에 쵸크를 바르며 전보다 조금 더 시간을 가졌다.

머릿속에서 길을 정하고 바로 움직이던 평소의 이지운보다 더 템포가 느렸다.

“애인도 아니고, 같이 시간까지 맞춰줄 필요 없는데.”

조용히 앉아서 자신의 당구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인 류상욱도 오늘은 묘하게 말이 많아졌다.

“빨리하니까 손해 보는 것 같잖아.”

“생각도 없으면서 생각하는 척하는 것보단 손해 보는 게 낫지.”

“누가 생각이 없데?”

이지운이 마침내 폼을 잡았다.

목표가 되는 두 개의 공이 모두 같은 장쿠션에 붙어 있었다.

이지운의 공은 그나마 쿠션에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대회전으로 치기에도 위치가 애매했다.

‘마세?’

대니얼과의 게임을 알 리가 없는 류상욱은 이지운이 마세 자세를 취하자 고개를 기울였다.

‘시간이 그만큼 흘렀으니 저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이지운은 나름 맛세로 초반부터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류상욱의 이지운에 대한 평가가 높았기에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이지운이 친 공은 깔끔하게 장쿠션을 디딤돌 삼아 통통 튕기며 쓰리 쿠션을 완성시켰다.

두 명은 서로 이닝마다 최소 1점씩은 꼬박꼬박 득점하며 엎치락뒤치락 경기를 진행했다.

이런 모습을 많이 보아왔던 최수호에게도 의외였지만 가장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던 것은 세현이었다.

항상 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현은 이지운이 당구 치는 모습을 처음 접했다.

세현에게 이지운은 시골에서 올라온 주제 모르는 촌놈에 지나지 않았다.

툭하면 자신에게 맥주니 육포니 편의점을 들락날락하게 만들었고 항상 뒤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구를 좋아하는 세현에게 이지운의 당구에 대한 태도는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재미가 없다느니, 어차피 뻔하다느니. 그것이 다 이지운의 허세가 반 정도 섞여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세현에겐 당구를 우습게 본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전부 초심자의 행운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당구는 좋아하지만 150도 못 치는 세현에게 이지운은 다가갈 수조차 없는 고수로 보였다.

더군다나 자신에게는 아이돌과 다를 바가 없던 류상욱 선수와 아는 사이인 데다 당당하게 맞서고 있으니 충격도 이만한 충격이 없었다.

“뭡니까?”

이지운이 시선을 느끼고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세현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짝사랑의 상대를 바라보다가 들킨 것 같았다.

‘저런 망나니 같은 놈한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신 차려!’

하지만 단순히 망나니로 치부하기에는 이지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원래도 날카로운 인상이긴 했지만 지금은 유독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이유는 모두 알고 있었다.

류상욱에게 쫓기고 있어서?

패배가 두려워서?

아니다.

모든 것을 걸고 집중하고 있기에.

이지운의 한 큐, 한 큐에서.

타오를 듯 뜨거운 이지운의 시선에서 절실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둘의 점수는 30점을 넘어섰다.

단 한 번의 공타도 없이 매 이닝마다 꾸역꾸역 점수를 먹고 있는 집중력에 세현과 최수호도 압도당했다.

‘지금까지 내가 이런 게임을 본 적이 있었나?’

그 순간 대니얼이 떠올랐다. 지금의 흐름은 이지운이 대니얼을 이겼을 때와 똑같았다.

‘설마.’

똑같은 시나리오로 이지운이 이긴다?

그것도 주니어 선수권을 정복하고 세계적인 클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를?

심지어 류상욱은 세계 랭킹 10위권 내도 노려볼 수 있는 선수로 평가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지운이 이닝을 따라잡을수록.

류상욱과 이지운이 단 4점을 앞둔 상태에서 이지운의 이닝이 돌아온 순간 최수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마? 설마? 진짜로?”

“그럴 리가 없잖아요.”

최수호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밖으로 나온 순간 세현이 빠르게 부정했다.

서로 속마음을 말한 적도 없었지만 세현은 최수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류상욱 선수가 일개 아마추어한테 질 리가 없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세현과 최수호는 둘에게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들리지 않도록 나지막하게 말했다.

“언제나 이변은 있을 수 없는 곳에서 만들어지지.”

“이변도 근거가 있어야 만들어지는 거죠. 말도 안 되는 망상이에요.”

류상욱의 패배를 세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지운에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갤러리가 좀 시끄러운데.”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자신에게 좋은 말을 할 리는 없었기에 이지운은 떠들고 있는 둘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미리 변명거리라도 만들려고?”

틈을 놓치지 않고 류상욱이 찔러 들어온다.

“변명거리? 그건 너한테 필요하겠지.”

이지운은 낡은 큐대를 들어 올렸다. 다른 곳에서 쓰던 큐대인지 오랫동안 사용한 흔적들이 있었다.

‘감은 잡았다. 해보자.’

이지운은 머릿속에 가상의 당구대를 만들고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앞으로 4구.

한참 당구대와 눈싸움을 하던 이지운이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큐볼을 때렸다.

탕!

이지운이 1점을 획득한 순간, 모두의 동공이 커졌다.

공이 멈추기가 무섭게 이지운이 자세를 잡더니 바로 친 것이다.

“진짜였나? 진짜로 그때와 똑같이!”

최수호는 양팔에 닭살이 돋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던 그림이 눈앞에서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단 2구.

이지운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지막 1구.

모두가 침을 삼켰다.

이미 길을 알고 있다는 듯 이지운은 바로 자세에 들어갔다.

이지운의 큐대가 뒤로 당겨진다.

그리고.

탁!

큐대가 공을 때렸다.

마치 장작이 타는 소리처럼 탁한 소리와 함께 큐대에 맞은 공은 첫 공에 맞은 뒤에 엉뚱한 곳에 멈췄다.

“아···.”

모두가 얼어붙었다.

이지운의 큐대 끝에는 갈라진 팁이 당구대 위에 떨어져 있었다.

떨어진 팁을 주워서 큐대와 함께 바닥에 내던졌다.

타-앙!

류상욱은 무난히 40점을 만들었고 게임은 이지운의 패배로 끝났다.

이지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분노에 꽉 주먹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릴 뿐이었다.

류상욱은 가만히 이지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이지운.”

이름을 불렸지만 고개도 들지 않았다.

“이곳으로 와라. 기다릴 테니.”

그 말만을 남기고 류상욱은 빠르게 뒤돌아 걸어 나갔다.

류상욱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지막 한 구.

만약 큐의 팁이 부서지지 않았다면?

이겼음에도 자신은 패배자였다.

자신의 개인 큐대를 바라보았다.

‘이지운에게도 큐대를 준비해 줬다면?’

밖으로 나온 류상욱은 큐대를 멀리 던졌다.


* * *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아무런 말도 없이 바닥 카시트만 바라보고 있었다.

차 안이 항상 시끌벅적 시끄러웠던 건 아니지만 지금의 침묵은 무겁고 불편했으며 가시처럼 찔러왔다.

특히 세현은 유독 불편했다. 그저 망나니라 생각했던 이지운의 다른 모습을 보아서일까.

평소의 그녀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을 내뱉었다.

“그, 아쉽네요. 그래도 팁만 부서지지 않았다면 이겼을 게임이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침묵은 더 깊게 폐부를 찔러왔다.

그러다 호텔에 도착할 무렵.

“아니야.”

침착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왜 애초에 팁을 체크하지 않았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팁이 부서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대로 3쿠션까지 이어졌을까?”

“그건···.”

“그딴 건 모두 핑계라고!”

이지운의 말에 가장 놀라고 있는 건 최수호였다. 지금까지 이지운이 이렇게 진지하게 화를 내는 경우는 없었다.

“내려줘.”

“네? 하지만···.”

세현이 이지운과 최수호의 눈치를 살폈다. 최수호는 여전히 앞만 보고 있을 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기서 내려줘.”

최수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괜찮나요?”

“괜찮으니까, 내려줘.”

차가 멈추고 이지운은 차에서 내려 거리를 걷던 이들과 섞여서 사라졌다.

“가지.”

“네.”

최수호는 굳게 묶고 있던 넥타이를 풀고 시트를 한껏 뒤로 밀었다.

“다른 플레이어를 찾아야겠군.”

“네?”

최수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날카로운 감이 다시는 이지운을 이 바닥에서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같은 시각.

이지운은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았다.

어째서인지 스스로의 감정이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분하다.

근데 무엇에 화가 난거지?

단순히 패배 때문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그건 분명했다.

대니얼과의 당구도.

류상욱과의 당구도.

수많은 게임 속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발걸음을 멈췄다. 뒤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부딪히며 화를 내고 갔지만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다음 날.

세현은 언제나와 같이 주차장으로 먼저 내려왔다. 어제 온통 흙바닥인 곳을 다녀왔기에 세차도 할 필요가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던 세현은 동상처럼 굳어버렸다.

잔뜩 지친 얼굴로 이지운이 차 앞에 서 있었다.

“이지운··· 님?”

어제의 일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님 자를 붙인 세현이었다.

“매니저님한테 전화 할게요.”

“하지 마세요.”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려던 세현이 행동을 멈추고 이지운을 바라보았다.

“세현 씨.”

“네?”

“대회 나가려면 어떻게 합니까?”

“네?”

“그, 뭐. 류상욱이 나갔던 주니어인가 뭔가 하는 대회요.”

이지운의 눈은 지쳐있지만 똑바로 세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현은 소름이 돋았다.

갑작스러운 이지운의 방문 때문도.

또렷한 시선 때문도 아니었다.

‘갑자기 왜 존댓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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