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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다마의 망나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스포츠

윤희권
작품등록일 :
2019.06.28 16:01
최근연재일 :
2019.07.11 20:00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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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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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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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9화

DUMMY

10,000다마의 망나니 009화



대전당구연맹의 사무원으로 선발전을 보기 위해 나온 사내는 이리저리 돌면서 예비 선수들을 살폈다.

‘저 사람은 꽤 치는데?’

사무원 자신도 당연히 당구를 즐겨 치기에 보는 맛도 있었다.

“한 게임당 30분 정도로 치면 1시간은 걸리겠네.”

그래도 자리에 묶여서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느니 이렇게 나와 바람도 쐬고 당구도 보는 게 더 좋았다.

슬슬 게임이 치열해질 무렵, 의자에 앉아서 믹스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엇. 거기. 어. 이지운 선수?”

다행히도 한 번에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어쨌든 여기에 있는 이들은 모두 연맹의 예비 선수이기에 사무원으로서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네?”

“다른 선수는 어디 갔습니까?”

“집에 가던데요?”

사무원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렇게 되면 진행에 차질이 생긴다.

더군다나 지금 가버린 사람이 이지운과 붙었던 상대라면 동호회 소속으로 상당히 이름을 날리던 선수였다.

분명 아까까지 치고 있던 것을 보았는데, 잠시 눈을 뗀 사이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그러다 점수판에 눈이 갔다. 30 대 8.

“이거 건드리셨습니까?”

“예? 건드리기야 했죠.”

“저희가 점수를 기록해야 돼서 막 건드리시면 안 되는데.”

“저는 제가 친 것만 올렸는데요?”

잔뼈가 굵은 사무원이었기에 대강 상황을 추리할 수 있었다.

“혹시 이지운 선수가 이겼습니까?”

“네.”

정말 간혹, 이런 경우가 있었다. 대회에서 큰 점수로 패배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실감한 나머지, 선수를 포기하는.

‘이 소년이 이겼다고?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것 같은데.’

소위 신동이라 불리는 청소년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선발전에서는 보기 힘들었다.

그 정도 실력을 가졌다면 당구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선수들의 대략적인 개인 정보는 모두 머릿속에 들어가 있었다.

‘분명 검정고시 출신이었지.’

왜 이런 선수를 미리 체크하지 못 했었나. 입상 경력도 없었으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야 했다.

“다음 경기 기대하겠습니다.”

사무원은 짤막한 말과 함께 사라졌다.

“하-암. 지루해.”

방해자가 사라지자마자 하품과 함께 본심이 흘러나왔다.

이미 돈이 걸린 죽빵을 수없이 쳐온 마당에 선발전이라고 갑자기 위축될 이유도 없고 상대 수준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차라리 빨리 세계로 넘어갈까.’

그러면 좀 더 재미있는 당구를 칠 수 있을 것 같다.

“재미있는 당구? 선수가 부족하다고 했었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마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지명하는 대로, 다음 대전 상대와 붙어주세요.”

사무원의 말과 함께 모두 자신의 당구대를 향해 걸어갔다. 이지운의 맞은편에도 선수 한 명이 대기했다.

홀로 당구대를 차지한 선수에게 사무원이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한 분이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게 되셔서 이번에는 제가···.”

“저기.”

사무원과 선수 두 명의 눈이 이지운에게 쏠렸다.

“제가 두 분이랑 동시에 치면 안 될까요?”

나름대로 상당히 예의를 갖춰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두 선수는 빠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만약 선발전이 아니었다면 당장 욕설이 날아가도 당연할 일이었다. 자신들을 대놓고 무시한 꼴이니.

하지만 이지운이 그들의 소소한 감정까지 신경 쓸 리가 없었다.

“저는 괜찮아요.”

이지운의 마지막 한마디에 결국 분노가 터져 나왔다.

“너가 아니라 우리가 괜찮아야 되는 거 아니냐?”

“어린 새끼가 지금 장난치는 거야 뭐야? 요즘은 이런 놈도 다 받아줘?”

동시에 분노를 터뜨리는 두 명을 사무원은 어떻게 말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얘는 인성 검사를 어떻게 통과했어?’

종종 거만한 사람들이 보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안하무인인 망나니는 사무원도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도 없고 두 선수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도 않았기에 사무원은 나름의 묘안을 짜냈다.

“그럼 그렇게 하는 대신, 두 경기 중 한 경기라도 진다면 실격 처리하겠습니다. 실격 처리될 경우, 당연히 두 분에게도 사과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렇게 할게요.”

흔쾌히 수락했다. 두 사람도 내키지는 않지만 사무원이 정했으니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듯했다.

당구대 사이에 서서 준비하고 있는데 처음 말을 걸었던 스포츠머리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고개 숙여 인사하자 남자도 당황하며 어정쩡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해볼까요.”

초반에라도 순서가 차례차례 오도록 한쪽은 뱅킹을 집중해서 치고 한쪽은 멀리 빗겨나가게 쳤다.

당연히 집중해서 친 쪽은 선공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들도 눈치를 챘는지 전보다 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더 딱딱하게 굳어서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안쓰러워질 정도가 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째서?’

이지운을 상대하고 있던 남자는 으스러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도저히 이길 것 같지 않았다.

초반, 이지운이 한 곳에서 이닝을 끝내고 다른 곳에서 자신의 이닝을 이어나갈 때만 해도 이게 무슨 촌극인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점차 이지운의 이닝이 겹쳐지면서 두 당구대에서 모두 자신의 차례가 오자 보여준 행동은 웃음기를 싹 가시게 만들었다.

이지운은 40초의 시간제한을 충분히 활용하며 한 이닝에 1점, 2점씩 꾸준히 득점하며 차이를 벌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상대의 이닝이 길어지기라도 하면 여유가 생긴 이지운은 한 이닝에 8점을 내는 하이런을 달리기도 했다.

“잠깐! 잠깐만!”

결국 참지 못한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이지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에 앉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잠깐 얘기 좀 합시다.”

이지운을 상대하고 있던 둘은 머리를 맞댔다.

이대로 가면 두 명 다 승산이 없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작전 회의는 빠르게 끝났다. 이미 이지운과 격차가 심했던 선수는 전 게임도 패배했기에 희망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작전은 간단했다.

한 명이 점수를 내는 것을 포기하고 계속해서 공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어차피 선발은 글렀으니 자신을 우습게 여긴 이지운이라도 같이 데려가겠다는 물귀신 작전이었다.

다른 경기를 관전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이 기묘한 경기에 빠져있던 사무원도 작전을 주워듣고는 혀를 찼다.

‘자신의 경기를 포기하다니. 애초에 선수로서는 글러 먹었군.’

그 마음이 이해는 됐지만 한심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좋은 선수를 놓치는 건가.’

안타까움이 들었다.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을 가진 선수를 놓치는 건 연맹에서도 아쉬운 일이었다.

계속 한쪽에서 어려운 공이 나온다면 아무리 잘 친다고 해도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사무원은 자신도 모르게 이지운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럼 계속할까요?”

이 상황을 알 리 없는 이지운은 마지막 남은 믹스커피를 모두 들이켰다.

다시 말도 안 되는 경기가 진행되었다.

그들의 말을 듣지 못했음에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부쩍 한 당구대에서만 어려운 공이 계속되었다.

길을 보고 있는 동안 이미 다른 당구대에선 자신의 차례가 왔고, 공을 보지도 못하고 시간이 흘러갔다.

겨우 어려운 공을 처리하고 나서 다른 당구대로 오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5초 남짓이었다.

눈에 띄게 무득점이 늘어갔고 점수 차이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점점 이지운을 상대하고 있던 둘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여기까진가.’

남몰래 이지운을 응원하고 있던 사무원이 등을 돌리려는 순간.

“잠깐만요.”

이지운이 손을 올렸다.

“잠깐 휴식할 수 있나요? 대회 규칙 맞죠?”

사무원은 점수를 살폈다. 한쪽은 23점과 10점이었고 다른 쪽은 양쪽 다 20점으로 점수가 같았다.

‘그렇군! 한쪽을 휴식하면 다른 쪽은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지.’

돌파구가 보이는 듯했다.

“5분의 휴식이 가능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럼, 이쪽 경기를 휴식하겠습니다.”

이지운은 20점으로 같은 점수인 경기의 휴식을 요청했다.

사무원이 휴식을 공지하려던 그때.

“저도 휴식하겠습니다.”

노린 것처럼 큰 점수 차로 뒤지고 있던 사내가 손을 들었다.

동시에 멈춰서 휴식이 끝나도 동시에 진행되도록 하려는 속셈이었다.

그 이후는 말하기에도 유치했다.

이지운이 다시 휴식을 요청하면 다른 선수가 또 휴식을 요청했다.

결국 10분 동안 두 경기 모두 진행되지 않았고 이지운이 두 개의 당구대와 씨름하는 동안 다른 두 명은 휴식을 즐겼다.

“이지운 선수.”

사무원은 조용히 이지운을 불렀지만 아무런 말도 없었다.

“다음에도 기회는 있습니다. 제가 다음 선발전에는···.”

“조용히 좀.”

뭐라도 위안의 말을 해주려 다가갔던 사무원은 냉랭한 반응에 입맛만 다시며 뒤로 물러났다.

기나긴 10분이었다. 10분간 이지운은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어휴. 이제 끝났나?”

휴식을 즐기던 둘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이미 다른 경기들은 모두 끝나서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이지운의 처형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보는 눈이 너무 많아졌는데?”

이미 선발전에서 이지운에 대한 복수로 목표가 바뀌어버린 둘은 호탕하게 웃었다.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던 이지운이 고개를 들었다.

“12. 6. 9. 0. 3···.”

“뭐?”

이지운은 둘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숫자들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곧 이지운이 폼을 잡았다.

“12.”

타-앙!

“6.”

타-앙!

두 개의 당구대에서 동시에 공이 구르기 시작했다.

“9. 0. 3. 0. 8···.”

공이 멈추기 전까지 이지운은 무언가를 잊지 않으려는 듯이 계속해서 숫자를 읊었다.

모두가 이 기괴한 광경에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9.”

큐대가 공을 때리고.

“0.”

또 다시 공을 때렸다.

“3. 0. 8. 10. 0···.”

이지운이 읊는 숫자가 달랐다. 그때.

“설마, 당점 위치 말하는 거 아니야?”

관람하고 있던 인원 중 하나가 말했다. 이지운은 그런 말도 들리지 않는지 시선은 당구대에 고정한 채로 계속 숫자만 읊을 뿐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이지운이 폼을 잡았을 때, 그 말이 사실이었다는 걸 모두가 알 수 있었다.

3이라고 말하면서 이지운이 당점을 3시에 둔 것이다.

“10분 동안 모든 공을 다 설계했다고? 그딴 게 말이 되냐!”

다른 누군가가 질색하며 외쳤다.

외침은 하나였지만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머릿속으로 이후에 공을 어떻게 칠지는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망상일 뿐이다.

실제로 공이 어떻게 굴러갈지는 알 수 없고 매번 제대로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모두가 경악하는 사이에도 이지운은 멈추지 않았다.

“3, 30점···.”

이지운이 한 경기를 끝냈다.

모두가 숨죽였고 이지운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 한 방울이 땅에 떨어졌다.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단 한 경기.

앞으로 3점이면 이지운의 승리였다.

틱!

마지막 2점만 남은 상황.

이지운의 큐대가 빗나갔다. 그리고

털썩.

이지운은 무너지듯 쓰러졌다.

어느새 들어온 이세현이 부축했다.

“혼절했군.”

당구를 치다가 혼절하다니. 세상에 이런 경우가 있을까?

사무원은 마지막 남은 선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질문을 받은 선수는 눈을 꾹 감았다. 꽉 다문 입에서 느껴지는 건, 깊은 후회였다.

“···기권하겠습니다.”

항상 큐대 소리만 들리던 당구장에 우렁찬 박수 소리가 가득 들어찼다.

‘경외’가 담긴 박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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