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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다마의 망나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스포츠

윤희권
작품등록일 :
2019.06.28 16:01
최근연재일 :
2019.07.11 20:00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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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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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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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화

DUMMY

10,000다마의 망나니 013화



소곤소곤거리던 모두가 정적에 잠겼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에 모두가 말을 잊었고 승자에 대한 작은 경외심이 장내를 휘감았다.

“홍재표 선수와 이지운 선수의 결승.”

종료 선언을 하던 사무원은 침을 삼켰다.

“이지운 선수가 승리하였습니다!”

어차피 한 번의 경기.

연맹 내에서 열린 작은 평가전일 뿐.

하지만 대전연맹의 간판선수를 이제 막 선발전을 마친 18세의 젊은 선수가 이겼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졌다.

약간 오버해서 말하자면 대전연맹의 입지를 넓힐 새로운 출발일 수도 있었다.

“좋은 경기였습니다. 이지운 선수.”

홍재표가 손을 내밀었다.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내미는데 이게 굳은 얼굴로 날카롭게 몰아치던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소에는 상대를 얕보거나 무시하던 이지운도 이번은 진심으로 홍재표를 높게 평가했다.

류상욱 다음으로 상대하기 껄끄러운 상대였다. 이번에는 이겼지만 다음에도 이기리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후반부에 어떻게 한 거지?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악수를 나누고 있는 두 선수 사이로 김동건이 끼어들었다.

“쉽지 않은 공이라 다음 공까지 계산하기 어려울 텐데?”

홍재표는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궁금했다. 아무런 말 없이 이지운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걸 말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굳이 숨길 이유도 없겠지.’

홍재표에게 대책을 마련할 기회를 주겠지만 그건 상관없다. 그렇다고 해서 패배한다면 겨우 그 정도였던 거겠지.

“홍재표 선수가 공을 칠 때부터 계산했습니다. 저 공이 빗나갔을 경우로.”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렇죠. 보통이라면. 하지만 홍재표 선수가 교본 같아서 그나마 파악이 가능했습니다.”

그 말에 홍재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김동건은 도저히 인정을 할 수가 없었다.

‘상대의 공을 보면서 계산한다고?’

상대방이 어떻게 칠지 예상하는 건 해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상대방이 성공한다면 다시 처음부터 계산해야 한다.

“그걸 매번 다시 계산했다?”

“첫 공을 어떻게 칠지 계산하는 거죠. 그다음 공까지 계산하는 건 욕심이죠.”

자신의 당구가 너무 안일했던 것인가?

당구는 두뇌 싸움이라지만 두뇌보다는 감각에 맡겨온 지난 세월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지운의 두뇌 싸움은 이미 평범한 범주를 벗어났다. 마치 난공불락의 성을 공략하는 지휘관과도 같다.

어쩌면 대전의 간판선수가 정말로 바뀌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김동건은 고개를 획획 저어 떨쳐냈다.

“그럼 우승한 선수부터 4등까지 시상하겠습니다.”

우승이라 적힌 팻말과 함께 소정의 상금을 봉투로 받았다.

“이야. 돈도 받고 기분 좋겠는데?”

“네. 그렇네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살짝 금액을 확인해보니 60만 원 정도였다.

애초에 친목 도모 겸의 평가전이니 우승 금액을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겨우 60만 원 가지고 기분이 좋겠다느니 하는 건 어울려주기 힘들다.

“3월은 정기 평가전이 쉬는 달이니, 다음에는 인제 오미자배에서 보겠군요.”

준우승 팻말을 들고 있는 홍재표가 손을 내밀었다.

그렇군. 지금은 같은 연맹의 동료지만 대회에서는 다시 또 적으로 만나게 된다.

‘별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데···.’

이기긴 했지만 껄끄러운 상대다. 실제로도 아슬아슬하게 이겼고 평가전에서와 실제 대회에서의 결과가 같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류상욱만 견제할 일이 아닌데 이거.’

무언가.

무언가 더 사용할 수 있는 자신만의 것을 늘려야 한다. 그런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럼 식사라도 같이하러 가시죠!”

대전연맹의 사무원이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홍재표도 그렇지만 홍재표를 이긴 이지운도 꼭 데려갈 생각이었다.

‘식사?’

허나 그런 자리라 반가울 리가 없었다. 애초에 누군가와 친목을 다진다거나 그런 일은 껄끄럽고 불필요하다.

어차피 세계로 뻗어 나가 류상욱을 만나기 위한 디딤돌일 뿐이다.

이지운과 눈이 마주친 이세현이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가족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지운이랑 저는 가야 할 것 같네요.”

그럼 가족들도 같이, 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사무원은 말을 삼켰다. 어차피 평가전은 다음에도 있고 기회는 많다.

“아쉽네요. 그럼 다음에는 꼭 같이 드시죠.”

“네.”

“에이. 같이 가면 좋은데.”

김동건의 말은 무시하고 뒤로한 채, 둘은 당구장을 빠져나왔다.

혹시라도 누가 말이라도 걸까 봐 허둥지둥 빠져나가는 모습이 꼭 야반도주하는 이들 같았다.

“그럼, 호텔로 돌아갈까요?”

단둘만 남게 되자, 이세현은 다시 존댓말로 돌아왔다.

“괜찮다면 가줬으면 하는 곳이 있는데···.”

이지운의 말을 들은 이세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서울이요? 거긴 왜?”

“만날 사람이 있어서.”

“곧 대회인 건 알고 있죠?”

“아, 어차피 인제 가려면 올라가야 되잖아. 미리 올라간다 치면 되지.”

맞는 말이긴 했기에 이세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시동을 걸었다.

‘그래도 갑자기 서울이라니.’

심지어 이지운이 말한 장소는 대체 왜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곳이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해보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전화번호 압니까? 난 모르는데.”

“저도 몰라요. 이젠.”

그렇다고 이렇게 무작정 가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그래도···.”

백미러를 통해 뒷자석을 보았지만 이미 이지운은 눈을 감고 있었다.

‘버릇을 잘 못 들였어.’

돈을 받고 있는 입장이니 뭐라고 말은 못 했지만 내심 억울한 이세현이었다.

그래도 단둘이서 가는 길이고 대전에서 서울이 짧은 길도 아닌데 말동무라도 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면허 따라고 말이라도 해봐야 하나.’

대신 운전하는 건 자신도 불안하니 바라지도 않지만 면허라도 따고 나면 운전자의 입장도 조금은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지운이 자는 동안 부지런히 운전한 이세현은 서울에 도착했다.

이전에 한번 가봤던 길이지만 이세현은 능숙하게 길을 찾아갔다.

은밀성 때문에 길도 자주 바뀌고 내비게이션에 이력이 남지 않도록 길 안내도 쓰지 않는 환경 덕분에 길 찾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다.

‘부모님한테 말씀도 못 드렸네.’

차를 멈춘 이세현은 뒷좌석에서 자고 있는 이지운을 흔들어 깨웠다.

“도착했어요.”

과연 그가 있을까.

“누나는 먼저 들어가요.”

이세현을 보내고 지하로 들어간다. 회색 콘크리트가 답답하게 가로막고 있는 이곳.

불안감 반, 기대감 반을 품고 이지운이 문을 열었다.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끼이익-

두꺼운 문이 불쾌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하지만 이 정도의 불쾌함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자가 있다면.

“이게 누구야?”

“진짜 있네. 지박령이야?”

“오랜만인데, 말이 섭섭하네. 여긴 이제 내 개인 연습실이라고?”

“아이돌도 아니고 연습실은 무슨.”

이지운의 말에 대니얼이 씩 웃었다.

“오늘은 게임 없어? 수호 씨는? 그 옷은 또 뭐고?”

밑을 내려다보니 평가전에서 입었던 옷 그대로다. 제기랄. 벗는 걸 깜빡했다.

“그만뒀어.”

“수호 씨가 그럴 리는 없고. 네가?”

“그래. 아니, 지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조끼와 넥타이를 벗어 던지고 큐대를 잡았다.

“당구 좀 치자.”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당구를 치자니. 성질 급한 남자친구 같네.”

“상대할 만한 사람이 당신밖에 없는 궁핍한 인맥이 문제지.”

“그래서 그냥 치면 돼?”

“아니.”

대니얼을 찾아온 이유.

죽빵에도 능숙하고 실력도 있으며 자신의 요청에 조건 없이 응해줄 사람이기도 했지만.

“겐세이 위주로 플레이해 줘.”

“세이프티 플레이(Safety Play)?”

“그래. 뭐, 그거.”

대회에 앞서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견제구를 더 쉽게 풀어나가고 상대방도 어렵게 만드는 연습이었다.

이제야 무언가를 어설프게 준비하기보다는 잘하는 것을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나랑 해도 되겠어, 진짜?”

“왜? 안 돼?”

“그래. 우리 후배가 그렇게 소원하는데, 선배가 들어줘야지.”

“아 좀.”

그 이후로는 틈만 나면 찾아가 대니얼과 당구 연습을 했다.

어렸을 때 이후로, 이렇게 연습에 매진해 본 건 오랜만이었다.

때로는 밤새 당구를 치기도 했고 대니얼의 연습실에서 자고 일어나 연습하고 다시 잠드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다.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이세현이 데리러 왔을 때에서야 밤낮을 잊었던 대장정이 끝을 맺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마음 내키면.”

이제는 올 생각이 없지만.

대니얼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이제는 다른 프로 선수와도 어울릴 필요가 있다.

그러는 편이 대회에도 더 도움이 되겠지. 다른 선수들과 붙어본 경험을 나누면서 대비도 될 테고.

“가죠.”

바로 인제로 향했다. 그동안의 피로도 쌓였기에 미리 도착해서 며칠 동안 쉬고 재충전할 필요가 있었다.

‘집도 좀 구해둬야겠는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라는 사람도 집을 떠난 뒤에는 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반겨줄 사람도 없고 집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못 했지만 매번 호텔을 이용하려니 돈도 돈이지만 짐이 문제였다.

매번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복장까지 챙기니 영 정신이 없었다.

피곤이 몰려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침내 첫 대회가 시작하는 날.

프로 선수로서는 처음 출전하는 대회.

“뭐, 어디 동네 당구장에서 하는 건 아니지?”

“전국 대회 수준을 뭐로 보는 거예요?”

“대회를 나가봤어야 알지.”

초등학생 때 웅변대회도 안 나가봤는데 전국 대회라고 말해봤자 감이 올 리가 없다.

“앞으로 5일간 진행되는데 전문 선수는 첫 2일간 진행되는 거로 알아요.”

“2일? 이틀 동안 계속 대회라고?”

“당연하죠. 이 대회는 전체 참가하는 인원만 1,000명이에요. 3쿠션 남자부만 300명이죠.”

엄청난 숫자에 기겁했다.

평가전 때처럼 몇 번 붙으면 끝나는 대회이겠거니 생각하고 이지운은 가벼운 마음으로 왔었다.

하지만 우승까지 제치고 나가야 하는 선수만 300명이라니.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해도 한 명당 몇 경기를 치러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저희는 시드를 배정받지 않았으니까 조별예선부터 치르겠죠. 그래서 이렇게 이른 시간에 도착한 거예요.”

아침 7시 30분.

확실히 이른 시각이었다.

사실 이마저도 이지운이 느긋하게 준비하는 바람에 계획보다 늦게 도착한 것이지만.

“그럼, 들어가죠.”

이세현이 들어가는 건물을 잠시 훑어보았다.

‘새로 지은 건물인가?’

시청이나 어딘가의 구청 같은 건물이 넓적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 내렸을 때는 무슨 건물인가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거대한 강당에 당구대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2층 사이드에는 응원석으로 보이는 플라스틱 좌석이 쭉 늘어져 있고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전혀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와도 대회가 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챌 광경이다.

“지금부터 시작인가.”

드디어 류상욱이 있는 세계에 다가가기 위한 한 걸음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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