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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다마의 망나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스포츠

윤희권
작품등록일 :
2019.06.28 16:01
최근연재일 :
2019.07.11 20:0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4,370
추천수 :
62
글자수 :
81,809

작성
19.07.02 20:01
조회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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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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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6화

DUMMY

10,000다마의 망나니 006화



최수호는 술잔을 비웠다. 평소 술은 입에도 안 대던 최수호지만 오늘만큼은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대니얼과 이지운이 당구를 친 이후, 이지운은 다른 플레이어와 붙어서도 몇 번을 이겼다.

그리고 자신이 이전에 담당했던 플레이어와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재미없어.

이미 한번 겪어본 일이었기에 최수호는 다양한 플레이어를 섭외하여 이지운과 게임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이지운은 그 이후로 계속 패배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전혀 집중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더 이상의 대결은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제기랄!”

최수호는 술잔을 집어 던졌다. 유리 파편과 함께 들어있던 술과 얼음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냥 돈이나 벌면 되지. 재미? 재미 따위는 다른 곳에서 찾으라고!”

이지운은 계속 아슬아슬하게 패배하면서 손해는 크지 않았지만 수익의 조그마한 부분을 나누어 받는 최수호에겐 점차 줄어드는 잔고가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돈에 눈이 멀어있던 이지운이 무언가를 새롭게 느끼고 있다는 건 최수호도 알 수 있었다.

돈, 명예, 권력.

권력에 매력을 느끼기엔 이지운은 권력을 잡아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명예.

명예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곳이 이곳이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말이 된다.

명예가 없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근데 그걸 어떻게 충족 해주냐고.’

해외와 커넥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중 앞에서 당당하게 칠 수 있는 게임도 아니다.

유명한 선수? 유명한 플레이어야 있지만 이지운이 알 리가 없다.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봤자 자신이 모른다면 그저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다.

“잠깐, 선수?”

언젠가 들었던 소문이 떠올랐다.

지금 가장 떠오르는 신예, 류상욱과 이 내기 당구를 정착시킨 자산가, ‘회장님’ 간에 어떤 계약이 걸려 있다는 소문.

아무리 이 바닥에서 꽤 오랜 시간을 굴러온 자신이라도 회장님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건 엄청난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또 포기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핸드폰을 열어 연락처에서 회장님을 찾았다.


[빌어먹을 새끼]


저장되어 있는 이름을 보고 피식 실소가 터졌지만 핸드폰을 든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밉보이는 순간 자신은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소문을 추궁당하기라도 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지하실에 갇혀서 고문을 당할지도 모른다.

“아니. 고작 선수 하나 연결해 달라고 하는 건데. 이 정도는 별거 아니잖아?”

그래도 여기서 5년을 있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요청해 볼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꽉 눌러버렸다.


* * *


“지운 씨. 일어나세요.”

항상 뒤에서 담배를 피우며 떠들곤 하던 이지운은 요새 항상 웅크리고 누워서 잠을 청했다.

“어, 음, 어··· 도착했나?”

목이 칼칼해서 헛기침을 하며 일어났다. 세현에게 물 한 통을 받고 밖으로 나왔더니 목이 칼칼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뭐야? 여기 어디야?”

그대로 생수를 따서 들이켰다. 이지운의 주변에는 모두 얇게 눈이 깔린 황무지밖에 없었다. 오직 낡은 창고 하나만이 보일 뿐이었다.

“나 묻으려고 데려온 거야?”

“저희 장소를 쓰기도 싫고 엮이고 싶지도 않다고 해서 상대가 장소를 정했습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된 사람이네.”

“지운 씨가 할 말은 아니지 않아요?”

대답도 않고 물 한 통을 다 비워버린 뒤 창고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들어가는 동안 의구심이 들었다.

‘엮이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외부인이라는 건가?’

최수호와 함께 창고로 들어갔을 때엔 텅텅 빈 공간에 당구대 하나만이 덜렁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표지에서 보았던 당구천재, 류상욱이 서 있었다.

“너.”

이지운의 목소리와 함께 류상욱의 동공도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류상욱 선수!”

세현이 뛰어 들어왔다.

“패, 팬이에요! 혹시 싸, 싸인···.”

“네.”

이미 알고 있었는지 세현은 가져온 노트를 내밀었고 류상욱은 싱긋 웃고는 사인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눈앞에 펼쳐진 팬미팅 현장에 이지운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세현 씨?”

최수호가 부르자 사인을 다 받은 세현은 몇 걸음 물러났지만 창고를 벗어나지 않았다.

원래 저런 캐릭터였나?

어쨌든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류상욱은 이지운을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내가 누군지 기억해?”

“이젠 이런 곳까지 떨어진 거냐?”

피식 웃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패배의 추억을 만들어준 남자, 류상욱.

“어릴 때랑 달라진 게 없네.”

아버지를 따라서 다녔던 당구장이 류상욱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곳이었기에 그곳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류상욱과 이지운. 동년배였기에 둘이서 당구를 치는 일이 많았다.

“넌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류상욱에겐 당구장에 있었던 때가 그저 유년기의 추억에 지나지 않았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이지운도 자신에게 패배한 동년배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류상욱이 이지운을 기억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분이 나빴다.

이지운과 당구를 칠 때면 항상 기분이 찜찜했다.

“편하게 살아오신 누구랑은 좀 다르게 처절해서.”

“그래서 이딴 짓이나 하고 있어?”

류상욱은 가시 돋친 말투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실망하고 있는 거지?’

분명 느끼는 감정은 실망인데 류상욱은 왜 실망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빨리 끝내. 더 있기 싫으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더 그렇거든?”

“그러시겠죠.”

둘은 고개를 서로 홱 돌리고는 이지운은 큐대를 챙겼고 류상욱은 당구공을 세팅했다.

반면 최수호는 어안이 벙벙했다.

‘둘이 알고 있던 사이였어?’

류상욱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았지만 서로 알고 있을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서로 싸우는 꼴이 어린 소년들 같아서 십몇 년은 알고 지낸 사이 같았다.

“3쿠션. 40점. 단판.”

“대회 규칙으로 가실 건가요?”

“예.”

최수호의 질문에 류상욱은 짧게 대답했다. 잔뜩 썩어 문드러진 표정이 최수호와는 말도 섞기 싫다는 마음이 잔뜩 담겨 있었다.

“3쿠션 칠 수 있지?”

“3구도 3쿠션으로 치는데?”

“뱅킹 필요해? 한 번도 못 이겼잖아?”

“언제 이야기를 하고 자빠졌냐? 이러다 전생 이야기까지 하겠네.”

‘대체 얘는 왜 이렇게 날 싫어해?’

류상욱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이지운은 유독 자신한테만 삐뚤어지게 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뱅킹.

류상욱과 이지운.

서로 알지 못 했지만 둘은 지금까지 쳐왔던 수많은 뱅킹 중에서 가장 집중하고 있었다.

‘이번만은 절대 지고 싶지 않아!’

똑같은 생각을 품고 공을 때렸다. 두 공은 동시에 쿠션을 치고 돌아와 같은 라인에 멈췄다.

“뱅킹은 괜찮네.”

“저번엔 어떤 놈이 선배 노릇 하더니 이제는 선생까지 왔네.”

“뭐?”

“시끄럽고, 뱅킹이나 다시 하자고.”

세 번째 뱅킹까지 가서야 류상욱의 공이 조금 더 구르며 이지운의 선공이 정해졌다.

이번에는 이지운이나 류상욱 모두 말이 없었다.

류상욱은 그때의 이지운이 얼마나 바뀌었을지 궁금했기에 집중했고 이지운은 갑자기 3쿠션을 쳐야 한다는 긴장감에 쌓여 있었다.

기본적인 3구, 4구, 포켓볼과 3쿠션이 가지는 무게는 다르다.

어쨌든 2개의 공을 맞히기만 하면 되는 것과 달리 3개의 쿠션을 쳐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으니까.

기본적으로 공식 대회들도 3쿠션으로 진행되는 대회가 많다는 건 알고 있다.

‘쫄 필요 없어.’

첫 공은 쉽게 가져갔다. 3구든, 4구든, 3쿠션이든 초구 배치를 이지운이 연습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보통 초구와 이후의 진행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에 이지운은 첫 이닝부터 4점을 획득했다.

9점, 10점 등 한 이닝에 높은 점수를 몰아치는 하이런이 아닌 이상 4점이라면 이지운 나름대로 선방한 것이었다.

“예전보단 실력이 늘었네.”

“자칭 선배라는 놈한테 배웠거든.”

류상욱이 개인 큐대에 쵸크질을 하며 당구대에 가까이 섰다.

한숨을 길게 내쉬며 한참 당구대 위를 내려다보던 류상욱은 1분이 안 되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큐대를 겨냥했다.

‘뭐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좋은 길이 보이지 않거나 보였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한 길이 정말 최선인지 여러 번 검토하는 과정에서 시간은 다소 길게 가져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지금 놓인 공의 위치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첫 표적 공이 강제되지 않아서 자유롭게 길도 선택할 수 있었고 쿠션과 붙어 있거나 공이 일직선으로 있지도 않았다.

‘원래 신중한 스타일이었나?’

초등학교 때의 일이었기에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지금처럼 신중하게 칠 정도라면 분명 기억에 남았을 것이었다.

타앙!

경쾌한 소리와 함께 류상욱의 공이 빠른 속도로 굴렀다.

깔끔한 3쿠션이었다. 공이 멈추길 기다리던 순간.

타앙!

모든 공이 멈추자마자 바로 류상욱이 공을 때렸다.

공이 멈추면 같이 길이라도 보려고 했던 이지운은 당황했다. 별다른 고민 없이 빠르게 치는 스타일도 많지만 이건 너무 빨랐다.

이런 류상욱의 빠른 공격은 다음 공까지 이어졌다.

‘설마···.’

그 모습을 보며 이지운은 단 하나의 의심이 들었다. 아니, 의심이라기엔 추측이었지만 분명했다.

난구를 맞이한 류상욱은 한 손으로 쵸크를 던졌다 받으며 생각에 잠겼다.

일반 당구인이라면 한참 길을 생각하다가 마침내 친 공이 애매하게 빗나갈 공이지만 류상욱이라면 어렵지 않게 처리할 만한 공이었다.

그런데도 한참을 생각하던 류상욱은 쵸크를 내려놓고 큐대를 잡았다.

타앙!

이번에도 류상욱은 공을 처리한 직후, 모든 공이 멈추자마자 다시 바로 공을 때렸다.

“다음 공까지 한 번에 계산하는 거군.”

“아니? 다다음 공까지인데?”

“3번째엔 천천히 치더만. 뭘.”

“신중하게 치는 거지. 너네 같은 아마추어나 그때그때 대충 맞춰 치는 거야.”

“쫄리기는 한가 보네? 우리 잘나신 프로님이 신중하게 치기도 하고.”

이지운과 류상욱은 서로를 째려보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흥, 하며 돌아섰다.

그러나 최수호와 세현은

“다음 구를 예상해서 친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공을 칠 때, 어느 정도 예상해서 치는 건 일반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류상욱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칠 정도로 완벽하게 계산한 플레이는 많은 게임을 지켜본 최수호도 처음 볼 정도였다.

‘이건 오히려 좌절감만 심어주는 거 아닐까?’

최수호도 류상욱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다른 세계에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신은 생각도 못 했던 길로 치면서 유리하게 상황을 유지했고 처음 칠 때부터 이후 진행 방향까지 생각하기 때문에 공이 꼬이는 일도 적었다.

이대로라면 이지운은 무력하게 패배하는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때 최수호가 이지운을 보며 데자뷔를 느꼈다. 아니, 데자뷔가 아니었다. 이미 본 모습이었으니까.

이지운은 몸을 숙여 류상욱이 들고 있는 큐대의 시점으로 당구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대니얼 때와의 경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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