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만채는 1573년 생이었지만 글을 진행하면서 훗날 임진왜란을 겪을 때에 고작 약관도 채 되지 않을 나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고, 또 쟁쟁한 영웅들과 논쟁을 하기에도 어린 나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여 만채의 생년을 1566년생으로 수정하였습니다.
2.
위와 마찬가지로 김신묵 집안의 노비 수에 대한 설정을 수정했습니다.
기존에 김신묵 집안의 노비는 500명이고 외거노비가 450구, 솔거노비가 50구라 표현하였습니다. 한데 이에 수정을 가하여 외거노비를 1400구, 솔거노비를 100구로 수정하겠습니다.
사실 이는 애초에 만석꾼을 집필 할 무렵부터 1000구 이상으로 할지, 그냥 500구로 할지 고민했던 사안입니다. 한데 막상 500구로 정하여 쓰고 보니 만석꾼 집안 답지 않는 노비의 수였습니다. 하여 외거와 솔거를 포함하여 1500구로 수정하겠습니다.
외거노비들 중 8할은 나주에서 생활한다는 설정이며 그 외 2할의 노비들은 인근 고을에 포진하여 신공을 바친다는 설정입니다.
3. 서신 중에 앙견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앙견이라는 어려운 단어보다는 서신에 어울리는 단어라고 할 수 있는 앙망(仰望)으로 하려고 하였습니다마는 듣자니 자주 구설수에 오르는 사이트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라고 하여 뜻이 곡해 될까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앙견으로 대체했습니다.
4. 3번 사항만 적고 작가의 말을 끝내려다가 또 노파심이 도져서 4번 사항을 만들어 글을 남겨봅니다. 댓글에 일일이 답댓글을 달지 않고 있는 이유는 전혀 귀찮아서가 아닙니다. 잘못된 고증이나 그 외 지적 그리고 조언 등은 늘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답댓글을 달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근거있는 지적과 조언에 제 필력이 부족하여 행여나 ‘아니 꼬운’ 내지는 ‘누굴 가르쳐?’ 라는 식의 답댓글로 비쳐질까봐 우려해서입니다.
한번 글을 써 봅니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칠 때에 의병을 일으키라는 명을 내리지 않아 뜻있는 자도 가만히 있었도다. 허나 곽재우란 자가 있어 왜군에 맞서 싸우니 만고의 영웅이다. 싸움이 끝나고 임금의 명이 없었음을 굶어 죽음으로 갚으니 신하와 군주 사이의 엄함이 이와 같았다. 허면 상놈과 양반 사이의 엄함은 어찌하겠느냐. 조선 500년 법도가 어찌 이어졌을꼬......
선조가 왜란당시 가장 걱정했던것. 침략한 왜구가 아님.
노비들 이끌고 일어선 양반가를 가장두려워함.
이유?? 이씨 조선왕조가 호족이 자신의 군사력으로 일어섰기 때문.
당시 노비는 양인 즉 병사로 쓸 수도없는 신분.
왕 입장에서 왜구보다 더 두렵던 양반들의 하수인? 손과 발?이 노비 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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