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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공사 님의 서재입니다.

학교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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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공사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8
최근연재일 :
2023.06.1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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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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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연애금지구역(10)

DUMMY

26화. 연애금지구역(10)



‘자...그럼. 이제 어쩐다?’


은혜 선생님이 나와 아주머니를 교무실로 안내하는 도중에도 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제. 뭘 어째야 하지?


딸의 연애를 막았던 것이 결국 이런 결과를 낳았다.


데이트 폭력을 당했음에도 아무런 말도 못한 채 혼자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학교재판의 피고인으로 회부되는 결말.


당사자가 아닌데도 착잡하네.


있을 수 있는 최악의 결말이지 않을까.


“...고맙다.”


교무실에 도착한 아주머니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뜻밖이었다.


그 덕분에 빠르게 돌아가던 내 사고가 순식간에 날라갔다.


방금전까지 차곡차곡 정보가 쌓이던 머릿속에는 고맙다는 단어 하나만이 남아있었다.


근데 뭐가 고맙다는거지?


“우리 딸이 그랬다는거...난 몰랐어. 전혀.”


이미 선생님들도 모두 퇴근하였을 시간.


붉은 노을이 배경으로 깔린 교무실에 남아있는 것도 우리 세명 뿐이었다.


“언젠가부터 집에서도 외출복을 입고 있더니...그게 그거 때문이었다니...알아내줘서 고마워...아무도 몰랐는데...”


은혜 선생님은 충격받은 아주머니의 손에 커피 한잔을 쥐어드렸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아니요. 솔직히 좀 놀랐네요.”


아주머니는 커피를 살짝 홀짝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김지한이라는 애가 누구죠?”


“어머니. 일단 진정해주세요.”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갈라져 나왔다.


“혜진이한테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전혀 몰랐는데,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는데!”


“저기 아주머니.”


내가 조용히 말했다.


“이거 이혜진 누나한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니?”


“아주머니는 오늘 학교에 오지 않았고, 피고...아니 이혜진 누나랑 저희가 했던 말 전부 못들은걸로 해주세요.”


아주머니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안다. 내가 하는 말이 말도 안된다는거.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피고인을 구하려면, 이혜진이 무죄를 받게 만들려면. 이 수 밖에 없어.’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저 사람들의 고통을 이용해서 이길 생각이나 하는 내가 한심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받은 고통과 생겨난 비극.


누군가는 복수해야 하니까.


“오늘 이 사실을 모르는 척 해주세요. 그래야 이길 수 있어요.”


“그게 진짜에요 선생님?”


아주머니가 은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선생님도 아시는게 없는건 매한가지.


어쩌면 이 사건에 대해서는 나보다 아시는게 적을 수도 있다.


“전 잘 모르겠네요.”


“아줌마. 절 믿어주세요.”


“아까 그 사실을 추리했던게 너지?”


“네. 저에요.”


“그걸 알았으면 주변에 다 알려서 해결해야지.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학교재판 잘 아시잖아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목이 막힌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셨다.


“이것도 재판이고, 나중에 복수를 하려고 해도 일단 무죄를 받아야 해요.”


유죄를 받게 되면 그 다음은 소년법원이다.


그곳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은 소년이 어떤 처벌을 받을지 구체적으로 정한다.


그 말인즉 일단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인생에 빨간 줄이 그인다는 이야기이고.


그걸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학교재판에 항소와 재심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이후에 모든 사실을 밝혀 김지한을 고소한다고 해도 일단 유죄를 받는다면 이혜진의 인생이 망가지는건 바꿀 수 없다는 말이다.


“재판에서 이겨야 진짜 이길 수 있어요.”


“진짜...왜 우리 딸이 이래야 하는거지?”


슬픔을 받아들이는 5단계 라는 말이 있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지금 저 아주머니의 단계는 수용이다.


“왜 하필 혜진이가...내가...그러지만 않았으면...”


후회하셔도 어쩔 수 없어요. 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할 수는 없었다.


저분은 나보다 그 사실을 더 잘 아실테니까.


“왜 이런 제도가 만들어져서는...왜...”


어쨌든.


지금 내가 하려는건 저 5단계에서 한가지를 추가하는 것이다.


복수.


“꼭 무죄 받아낼게요.”


이미 시작된 학교재판.


재판에서 피고인 이헤진을 도울 수 있는건 이제 나와 가람 누나 뿐이다.


...그리고 또 굉장히 잔인한 말이지만.


무죄라는 한 문장은 우리의 생기부에 적혀 훌륭한 이력이 되어 주겠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그것을 도와주면서도.


한편으로는 타인의 불행으로 자신의 이익을 쌓는게.


우리 학교재판 변호사다.


“믿어주세요. 무죄 받을테니. 제가 하는대로 해주세요.”



**



“그랬었구나...”


시간은 흘렀고 다음날.


나와 가람 누나가 새로운 증인과 만나기 위해 카페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 때 어머니가 오셨다고?”


“응. 얘기 다 들으신거 같더라고. 꽤 우셨어.”


“그럴만 하지. 결국에는 본인이 원인이셨으니.”


가람 누나는 에스프레소를 한모금 마셨다.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게 저 쓴걸 도대체 왜 마시는거야?


보기만 해도 턱이 아려오는데.


“그래서. 계획이 뭐야?”


가람 누나가 나에게 물었다.


“재판을 질질 끌어야지. 노을이 질때까지.”


노을이 지는 순간 우리가 이길테니까.


“유이든? 한가람?”


곧 우리의 앞에 기다리던 증인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최아린 맞으시죠?”


내가 말했다.


“네. 맞아요.”


평범하게 잘 입은 옷에 아마 남친에게 선물받은 것일 목걸이.


관리가 잘되어 있는 똑단발은 이혜진의 긴 장발과 완벽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문자로 확인하셨죠?”


“네. 확인했어요.”


최아린이 커피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보니까 제가 불륜녀 포지션이던데요? 솔직히 그건 좀 재미있던거 같아요.”


최아린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그 오해 받은 순간에 대해서 듣고자 연락했습니다.”


“그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 나시나요?”


가람 누나가 내 말을 이어받았다.


“글세요. 솔직히 잘 기억은 안나서.”


김지한은 이헤진을 협박해서 미리 말을 맞추고 거짓 증언을 했었다.


그렇다면 분명히 최아린과도 말을 맞춰놓았을 터.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 말은 분명히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럼 그날 어떻게 들켰는지 말씀해주세요.”


하지만 모든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 순 없겠지.


그건 그거 나름대로 수상하니까.


“아. 그건 기억 나요.”


“그 때 어떻게 들키셨죠?”


“그러니까...어떻게 들켰는지는 저도 몰라요.”


“모르신다고요?”


“네.”


최아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잠깐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본건데 두 사람이 싸우고 있더라고요.”


“싸우고 있었다면 그 화장실 간 사이에 들킨거겠군요.”


“아마 그렇겠죠. 그래서 언제 어떻게 들켰는지는 정확하게 몰라요.”


“그럼 그날이 언제였는지는 기억하십니까?”


“네. 5월 10일이었어요.”


면담은 금방 끝났다.


애초에 딱히 물어볼 것도 없었고.


평범하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뜨는 것으로, 면담은 마무리되었다.



**



“아직이야?”


다시 다음날.


5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변호사 대기실에서 재판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이야.”


가람 누나가 말했다.


“아직 말할지 말지 못 정했데.”


누나는 그동안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고 있었다.


바로 이혜진에게 용기를 주는 일.


이헤진이 심각한 두려움에 빠져 증언을 거부하고 있는 이상 우리가 이길 수는 없다.


아무리 우리가 추리를 통해 증명해도 본인이 아니라고 하면 무슨 소용이야. 증거도 없는데.


아니, 증거가 있기는 있지.


하지만 그 증거란게 이혜진의 몸에 있는 멍들이었다.


그걸 보여달라고 해도 본인이 거부하면 뭘 어쩌겠나.


강제로 볼 수 있는것도 아니고.


피해자로부터 지속적으로 받은 데이트 폭력의 흔적을 밝히고 협박을 당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이헤진의 증언이 필수적이었다.


“이제 10분 남았는데 어쩌지?”


그런데 아직까지 이혜진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니 가람 누나도 불안할테지.


뭐 사실 나도 불안하다.


“...누나.”


근데 그래서 어쩌겠나. 피할 수가 없는데.


“누가 그랬다?”


난 이미 모든 떡밥을 뿌려놨고, 이제 회수할 차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재판과 사건을 있는 그대로 즐기라고.”


“든아. 그거 내가 한말이잖아?”


“그때는 그게 이해는 가도 공감은 안갔었거든.”


승리를 위한 떡밥이 모두 회수되었을 때.


이미 우리는 이긴 상태일 것이다.


“근데 지금 이러고 있으니까 바로 공감이 가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떡밥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는 그 부분들.


앞으로 있을 일을 나 혼자만이 알고 있다는 기묘한 감정과 내가 만들어낼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어떻게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어떤 평가를 내릴까.


내가 만들어낸 결과에 따른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니.


어떻게 즐기지 않을 수 있겠나.




“재판을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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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7화. 재판(6) 23.06.16 15 0 9쪽
46 46화. 재판(5) 23.06.14 16 0 9쪽
45 45화. 재판(4) 23.06.13 16 0 9쪽
44 44화. 재판(3) 23.06.12 21 0 9쪽
43 43화. 재판(2) 23.06.11 18 0 10쪽
42 42화. 재판(1) 23.06.10 20 0 9쪽
41 41화. 피고인 실종 사건(9) 23.06.09 25 0 10쪽
40 40화. 피고인 실종 사건(8) 23.06.08 17 0 10쪽
39 39화. 피고인 실종 사건(7) 23.06.07 16 0 9쪽
38 38화. 피고인 실종 사건(6) 23.06.06 20 0 9쪽
37 37화. 피고인 실종 사건(5) 23.06.05 19 0 10쪽
36 36화. 피고인 실종 사건(4) 23.06.04 15 0 9쪽
35 35화. 피고인 실종 사건(3) 23.06.03 18 0 9쪽
34 34화. 피고인 실종 사건(2) 23.06.02 18 0 9쪽
33 33화. 피고인 실종 사건(1) 23.06.01 21 0 9쪽
32 32화. 연애금지구역(16) 23.05.31 18 0 10쪽
31 31화. 연애금지구역(15) 23.05.30 16 0 9쪽
30 30화. 연애금지구역(14) 23.05.29 16 0 9쪽
29 29화. 연애금지구역(13) 23.05.28 17 0 10쪽
28 28화. 연애금지구역(12) 23.05.27 14 0 9쪽
27 27화. 연애금지구역(11) 23.05.26 17 0 9쪽
» 26화. 연애금지구역(10) 23.05.25 16 0 9쪽
25 25화. 연애금지구역(9) 23.05.24 14 0 9쪽
24 24화. 연애금지구역(8) 23.05.24 17 0 10쪽
23 23화. 연애금지구역(7) 23.05.22 21 0 10쪽
22 22화. 연애금지구역(6) 23.05.20 18 0 10쪽
21 21화. 연애금지구역(5) 23.05.19 23 0 9쪽
20 20화. 연애금지구역(4) 23.05.18 1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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