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1 킹덤 : 전쟁
시리즈1 킹덤 : 왕들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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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내가 소시지를 입에 물고 아야코에게 입으로 잘라 먹으라고 장난을 쳤다.
아야코가 무표정한 얼굴로 기계처럼 요리용 가위를 들고 소시지를 싹둑 잘라서 다시 불 위에 올렸다. 아야코가 가위를 들고 다가왔을 때 태연한 척했어도 사실은 섬뜩했다.
모두 킥킥댔다. 나는 무안했다. 이게 남편 알기를... 콱, 봐준다... 아야코 장난 많이 늘었어...
아야코가 지글거리며 익는 잘린 소시지를 집게로 집어 입에 넣었다.
- 맛있지?
아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 판타스틱...
- 침 묻었을 텐데...
아야코가 장난으로 헛구역질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여차하면 언제든지 용천을 쓸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겨울밤은 차가웠지만 둥근 보름달과 정원에 피운 모닥불과 훈훈한 얘기 꽃으로
오랜만에 분위기가 따사로웠다.
- 내 아들 노무라 쥰페이, 예비 며느리 혼다 유리나, 언제 식 올릴래?
엄마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니 쥰페이가 그렇게 좋으냐, 엄마는 쥰페이만 보면 미소가 흘러넘친다. 며느리 아야코한테 오금 박힐 일 있냐, 나는 속으로 괜한 몽니를 부렸다. 진짜 그런 게 아니라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좋아서 그렇다.
- 베아트리체 어머니, 여기에 우리나라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방도 있지요?
- 응, 있지... 쓸래?
- 아뇨, 쥰페이 신방 주게요, 첫날밤 잠 못 잘걸, 문구멍 다 뚫어나야지, 킥...
쥰페이와 유리나는 갸우뚱했지만, 나 혼자 재미있어했다. 수진 누나도 내 말뜻을 알아차리고 미소를 머금었다.
비서가 와서 또 베아트리체 엄마에게 귓속말했다.
- 수사관이, 왜?
우리 모두 베아트리체와 베아트리체 비서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머리에 뭔가 번뜩하고 스쳐 지나갔다. 수사관이라면? 박하향? 에그 이 무슨 날벼락이야? 눈치 빠른 아야코와 조선의를 안 보는척하며 눈치를 살폈다.
선수를 쳐야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빨리 돌려보내야 했다.
- 내가 나가볼게...
- 나도.
역시 쥰페이는 내 편이다. 내가 입장 곤란해질까 봐 따라나선 거였다.
- 들어오라고 하세요.
- 뭘 들어와, 아까 박살 난 헬기 때문에 몇 마디 물어보겠지, 성가시게...
앗 뜨거라, 매 해동청(海東靑)보다 더 날카로운 눈을 가진 아야코의 예민한 반응에
나는 별거 아닌 것처럼 에둘러 엉정벙정 떨었다.
- 몽, 쥰페이... 니들은 앉아 있어, 내가 나가볼게. 몽은 계속 고기 굽고, 쥰페이는 엄마가 결혼식 어떻게 할지 물으시는데 왜, 딴짓이야? 대답하기 불편한 거 있어?
- 뭐가, 딴짓이고 불편해, 임마? 니가 황위 계승 5위로 올랐으면 올랐지
왜 마타도어(matador)냐?
입에 지퍼를 채웠나 할 정도로 말이 없던 다이히토가 쥰페이를 발끈하게 만들고 일어섰다. 물론 쥰페이도 노골적으로 유리나 눈치를 보며 일부러 과민반응을 보였지만...
- 와, 축하한다, 다이히토 마마... 다섯 명만 제치면 천왕이네?
- 10년 동안에 고작 2명이야, 문제는 남은 다섯 명이 나보다 더 오래 살 거 같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 어떡하냐, 친구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다섯 명이 빨리 죽으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네, 킥...
아야코 빼고 모두 까르르 웃었다.
다이히토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농담을 해서 나도 맞장구를 쳐줬다.
- 쿠데타를 일으키면 되지...
역시 아야코다웠다. 농담해도 화끈하게 했다.
- ‘레테의 의자’...
- 말했어요?
- 아뇨.
- 몽대 옆에 분이 몽대 와이픕니까?
- 예... 앉아 있는 꼬마 아가씨가...
- 멀리서 봐도 예쁘네요?
- 몽대가 리퓸씨 닮았다고 했잖아요...
다이히토와 박하향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오지 않고 문에서 가까운 마당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뒤에 다이히토가 말해줘서 알았지만, 다이히토 회사 ‘레테의 의자’ 지분 20%는 하향의 것이라고 했다. 레테는 망각의 강이고 그 망각을 건너온 사람도 조금은 기억이 남는 사람이 있어 지옥의 신 하데스가 의자에 앉아서 완전히 기억을 지우라는 의미로 망각의 의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순전히 내 생각인데 다이히토는 미나미를 잊으려고 회사 이름을 지었는데, 박하향이 캄보디아 화장실에서의 끔찍한 악몽을 망각하기 위해서 좋은 이름이라 생각하고 의기투합 회사를 키운 것 같았다. 하향의 미국식 예명이 자기 이름 리버와 퍼퓸에서 한자씩 딴 게 리퓸이라고 했다. ‘레테의 의자’ 시장 가치가 100조를 훨씬 상회한다고 했다. 하향의 재산이 20조라... 애플, 삼성, SK, 화웨이, TSMC 등 세계 초일류 기업들이 인수하려고 눈독을 들인다고 했다. 어마어마하네, 이 돈이 있기에 성제와 붙어 보겠다는 것인가? 돈이 있어야 싸움도 한다고 큰소리친 내가 부끄러웠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돈 많다고 말을 하지 가시나... 암튼 나는 이 주둥이가 문제야...
- 탄피는 혹시...
- 네, 주워서 보관하고 있는데... 러시아 산 신형 기관단총 PPSH-41이더군요.
- 파파샤라?
- 러시아 쪽 루트가 있는 거 같네요...
- 그렇죠... 이때까지 사용된 무기가 다 러시아 거니까...
- 헬기는?
- 성제 회사 건데... 탈취당했답니다.
- 그걸 우리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 그러게요... 가볼게요, 몽대 와이프가 이쪽으로 오네요.
뭔가 미심쩍은지 아야코가 하향과 다이히토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머리가 주삣 섰다. 큰일이네, 가시나 빨리 안가고 뭐하냐?
- 전화해도 되죠?
- 그러세요...
- 010 3398 7733
- 내가 먼저 전화하라고요?
- 그럼, 번호...
- 내가 하죠,뭐... 갑니다.
다이히토가 적극성을 띠었다. 하향도 남녀칠세부동석도 아닌데 전화 못 할 일도 없고... 괜히 나는 신경이 쓰였다. 하향이가 뒤돌아서자 아야코도 가다가 되돌아왔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 아야코야.
- 예...
- 몽대가 불안하면 헤어져, 아직 식도 안 올렸고 혼인신고도 안 했잖아?
- 혼인신고 했습니다.
- 언제?
-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 어디서?
- 한국하고 일본에서...
- 우리집 식구가 돼야 상주를 할 거 아닙니까?
내가 끼어들어 유사시 벌어질 황당한 일을 대비했다.
- 식은 안 올렸잖아?
- 식은 다테야마에서 올렸어요...
아야코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 양가(兩家) 허락도 안 받고 올린 결혼은 무효야...
- 엄마, 왜 그래요?
- 아냐, 아냐, 그냥 헤어지고 우리끼리 살자, 조한이는 니피도 섞였지만 내 피도 섞였잖아, 그러면 충분히 나도 같이 살 자격이 되잖아.
- 아, 진짜 뜬금없네, 잘살고 있는데 엄마가 나서서 아들 부부를 갈라놓으려는 용심은 대체 뭐지? 질투?
- 뭐, 질투? 지랄 염병은... 난 더 이상 니 때문에 아야코한테 꿇어앉아서 비는 시어머니는 하기 싫다.
- 엄마가 무릎 꿇은 건 엄마의 오해에서 빚어진 거잖아요? 왜 아들을 자꾸 바람둥이로 만들어요?
- 니 아버지 돌연변이라 빼놓고 대대로 바람이잖아.
- 웃대 선대가 바람이라고 내가 바람이라는 논리는 무슨 논리요?
- 저, 어머님... 외할아버지도 바람이셨어요?
- 응, 우리 집인들 별수 있겠어, 양쪽 집이 바랍둥이 집인데... 그래서 내가 확신하는 거야.
모두 큭큭 대며 웃었다.
- 웃지 마, 쥰페이, 너네집 선조들도 장난 아니더라, 임마! 내 다 까발릴 거야! 유리나 나중 쥰페이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 해 줄게.
- 아니 익히 들어 알고 있어...
내가 괜히 쥰페이를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졌다.
- 그래서 피를 못 속인다고 하잖아, 방금 그 여자 봐라...
- 수사관이라고 했잖아요?
- 니가 수사관이라고 했지, 여자 수사관이라고 했냐? 여기 멀리서 봐도 수사관 여자 미모가 출중하던데 아야코가 긴장 안 하게 생겼어? 친구라고 쥰페이하고 다이히토가 나서서 얼버무리고, 어디서 도사 앞에 요령 흔들고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냐?
- 하긴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신경이 쓰이기는 쓰였어요.
아야코가 속에 있는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엄마 장단에 손뼉을 친 거였다. 아야코가 두 번 속지는 않았다. 두 번 속아줄 뿐이었다. 엄마는 장난으로 사전에 아야코의 의심을 차단한 거였다. 그때는 띨띨한 나만 속아서 가슴 졸였다. 엄마나 아야코가 하얗게 모를 정도로 의심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다이히토가 차근차근 설명을 잘해 그냥
넘어갔었던 거였다.
- 나가서 살아야지, 해괴한 논리로 아들 부부 사이를 이간질 시키지 않나...
- 마음대로 해, 나는 성님하고 살기로 했어...
- 무슨 소리 해요, 민폐 끼치게?...
- 아니다 몽대야, 내가 동생한테 간절히 부탁했다. 니들이 사업한다고 바빠지면 난 외로울 거야, 그래서 동생보고 같이 살자고 했어, 여기 방만해도 수십 개야. 너희들 다 살아도 남아돌아. 모자라면 지어도 돼고...
베아트리체 엄마가 더 적극적으로 애걸했다.
- 큰 어머님, 어머님, 제가 모시고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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