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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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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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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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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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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매뉴얼이 다가 아니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여론조사. 류지호 이중국적 허용 72%의 국민이 찬성!]


류지호의 복수국적 문제는 양대 포털에 상주하는 악플러들과 기사 조회수로 장사하는 인터넷 언론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국적법이 개정되고부터는 류지호의 이중국적 문제가 매주 포털 뉴스 섹션을 장식할 정도로 뜨거웠다.


- 자랑스러운 한국인 류지호에게 복수국적을 허용해야 한다.

- 스스로 국적을 포기한 사람에게 국적을 회복시켜주는 것은 형평성에서 어긋나며 국민 정서와 동 떨어진다.


여론의 장에서 두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포털 댓글란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찬성과 반대로 나눠져 키보드 배틀이 벌어지곤 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관없는 이들 더 난리다.

그런데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로 기류가 상당히 바뀌었다.

<Christmas Cargo>가 작품상 포함 8개 부문 석권하자, 한국에서 뜨겁던 류지호에 대한 복수국적 허용 논란이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됐다.

대중의 여론이란 것이 우습기 짝이 없다.

1조 원에 달하는 기부체납에도 류지호의 복수국적 이슈가 찬반으로 나뉘었다.

그런데 아카데미 8개 부문 수상만으로 단번에 허용 쪽으로 여론이 쏠렸으니까.

올해 1월 1일을 가해 개정 국적법이 전면 시행됐다.

류지호는 특별귀화자 조건을 충족했다.

국적심사위원회에 복수국적을 신청할 수가 있다.

청와대 차원에서 허용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대한민국의 국적 회복 혹은 귀화가 인정된다면, 국적 취득 1년 내에 법무부 장관에게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외국 국적을 행사할 수 없고, 오직 대한민국 국적만을 행사하겠다는 서약이다.

당연히 입출국시 대한민국 여권만을 사용해야 한다.


- 잘 됐다. 사람들이 네 국적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게 영 찜찜했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근심이 가득한 어머니의 음성에 류지호는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죄송해요.”

- 네가 죄송할 게 뭐라니. 에휴~

“그 문제는 계속해서 여기저기서 말들이 나올 거예요.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별 거 아니니까.”

- 그러면 어떻게 한다니. 그냥 미국 시민으로만 쭉 살아야 해?


미국시민권을 취득한 것이 죄가 아니다.

그럼에도 류지호처럼 잘 나가는 사람은 웬만하면 한국인으로 남아있길 바라는 것이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괜히 제 국적문제 때문에 신경 쓰시게 해서 죄송해요.”

- 원정출산으로 미국 시민권 딴 국회의원이나 대기업 아들·딸도 있다는데. 넌 군대도 갔다 오고, 기부도 많이 하잖아. 훈장은 못 줄망정.....

“훈장 준대요, 어머니.”

- 그래? 예전에 문화훈장 받지 않았었나?

“국민훈장 준다네요.”

- 아이구. 경사났네. 언제 준대? 그래서 언제 한국에 오는데?


아들의 훈장 수훈이 좋은 것인지.

그를 위해 아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반가운 것인지.

반응으로 봐서는 명백히 후자란 생각이 들었다.


“관계부처에서 절차는 끝나고 대통령 제가만 남았다고 하네요.”

- 잘됐다. 축하해, 아들.


사회 지도층이나 유명인의 군대 문제와 국적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매우 예민한 사안이다.

연예인 국적을 두고도 온갖 말이 많은데, 재계서열 2위 그룹을 소유한 부자가 한국국적을 포기했다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큰 충격이자 상처였다.

그를 통해 한국인들의 정치권과 행정부에 대한 경각심도 조금 커졌다.

다시는 류지호 같은 경우가 나오지 않도록 선출직 권력을 잘 뽑아야 한다는 공감대 같은 것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형성되기도 했다.

청년들은 류지호가 국적을 버린 것을 전적으로 후진적이고 권위적인 한국의 정치와 경제 시스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엄만 훈장은 안 줘도 좋으니. 네 국적만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잘 처리할게요. 그 문제는 신경 쓰지 마세요.”


남이 잘되는 꼴을 절대 못 보는 심보의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교포 2,3세가 외국국적을 선택했다고 해서 애국심 부족을 걸고넘어지거나 무턱대고 병역 회피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한 면이 없지 않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한 번도 안 가본 아이들은 류지호가 보기에 한국인이 아니다.

미국인이다.

그들에게 한국인으로써의 의무와 책임을 강요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 OO계의 유승진.

- 돈 벌려고 한국 오지 마라.

- 세금 안 내고 튀면 한국에 영원히 못 들어 올 줄 알아라.

- 의료보험은 너희 나라 미국에서.


모 가수의 병역회피 도주사건으로 인해 한국인들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 영주권자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돈벌이 때문에 미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한국에서 일하는 이들과 류지호의 경우를 똑같이 봐선 안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조롱인지 열등감의 표현인지 모르지만, 포털 댓글마다 ‘양키 류지호’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검머외(검은머리 외국인)도 아니고 양키(Yankee)라니.

류지호는 그 댓글을 보여준 여동생과 함께 폭소를 터트린 적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까방권’ 드립도 빠지지 않는다.

많은 네티즌들이 만기전역한 류지호에게 평생 까임방지권이 주어졌다면서 비난글마다 ‘까방권’ 드립으로 응수하곤 한다.


- 시아와 준혁이는 건강하게 잘 있지?

“며느리 바꿔줄 게요.”


이후로 전화기는 며느리 레오나의 차지가 되었다.

류지호가 복수국적을 취득하게 되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사실은 나쁜 점이 더 많다.

대표적인 것이 세금문제다.

또한 한국인이기 때문에 국회 청문회에 불려갈 수도 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길들이겠답시고 귀찮게 할 수도 있고.

사실 세금문제가 성가시긴 한데, 그것도 딱히 류지호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한국과 미국은 1976년에 한미조세조약을 맺었다.

다른 국가와 맺은 조세조약과 달리 한국에는 상당히 불합리한 조항이 많았다.

2009년에 조세조약 개정 협상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이 엉터리 한미조세조약이 류지호에게는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이민자들의 경우 세법 측면에서 미국 국적의 보유가 상당히 값비싼 대가가 따른다.

미국 시민권자 또는 항구적 거주자는 매년 전 세계 소득에 대해 미국에 세금 신고를 해야 한다.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해외 자산 등을 보유한 경우에도 미국에서 세금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조건 미국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각종 제재를 받게 된다.

문제는 그러한 정보신고의무가 너무나 많거니와 복잡하기 그지없다는 점이다.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다고 해도 매우 지난하고 복잡한 정보신고과정을 거쳐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말의 거짓 신고도 용납되지 않는다.

미국의 지독한 세법과 관련 의무에 대해 알게 되면, 평소 미국 국적 보유자들을 부러워했던 이들에게는 조금이나마 위안 아닌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의 세법이 고마울지 모른다.

게다가 지난해 해외금융계좌신고법(FATCA) 제정으로 재외 미국인의 세금 신고가 한층 강화되었다.

개인과 소규모 법인은 관련 서류 작업과 비용 부담이 더욱 가중되었다.

류지호는 비서실에 회계사가 있고, 소유한 기업의 회계팀도 있으며, 따로 세계적인 회계법인에서 세금 관련 문제를 처리해 주고 있다.

법의 허점이나 사각지대까지 귀신 같이 공략해 류지호의 세금을 줄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니 미국·한국 복수국적자가 된다고 해서 류지호가 머리 싸맬 필요는 없다.

한국국적을 회복하는 부분에서는 류지호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어떻게 할 거야?”


시어머니와 통화를 마친 레오나가 물었다.


“뭘?”

“한국국적 회복하는 것.”

“글쎄....”


본래는 한국국적을 회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정부의 태도가 너무나 간곡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중요한 M&A건을 두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기도 했고.


“복수국적과 M&A 승인에 대해 딜을 걸었다면서?”

“딜까지는 아니고. 나름 고민이 많은가 봐.”


가온그룹의 반도체 사업 부문은 하이닉스 채권단과 인수합병 본계약을 앞두고 있다.

그에 대응해서 정부에서 반도체산업을 기간산업을 지정하겠다며 협박을 했던 모양이다.

기간산업은 법적으로 외국인이 소유하거나 최고경영자가 될 수 없다.

대표적으로 화학, 조선, 항공 등의 산업의 소유와 경영을 외국인이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전 삶에서 땅콩회항으로 문제가 된 국적항공사 자매 중에 한 명이 미국국적자로 국내 항공사 최고위직을 수행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럴 정도로 국가 기간산업을 각 나라마다 보호하고 있다.


“전자산업의 ‘쌀‘로 부상하고 있는 반도체도 기간산업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인데...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지.”

“그러다 M&A 허락하지 않으면....”

“그럴 리는 없어. 사겠다는 회사가 현재로써는 가온이 유일하니까.”


본래 하이닉스반도체 채권단 및 (주)하이닉스와 가온그룹이 3월 초순에 지분인수계약을 맺기로 합의를 봤다.

류지호의 훈장수훈 문제와 복수국적 허용 이슈가 끼어들면서 잠정 보류되었다.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채권단 때문이다.

참고로 가온그룹은 (주)하이닉스 채권단이 보유한 구주 4,435만주(6.4%)를 매입하고, 새롭게 제3자 배정방식으로 발행할 신주 1억 2,721만 주(15.1%)를 인수하기로 했다.

지분인수 규모는 (주)하이닉스 총 발행주식의 21.6%에 해당된다.

금액은 대략 3조 4천억 원이다.


“내 복수국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무슨 훈장을 주는지 보면 알 수 있겠지.”


훈장수훈에 대해 이러저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에 따라 정부포상 대상자를 국민이 직접 추천하는 ‘국민포상추천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국민 추천을 받은 인물 중 심사를 통해 장관·총리·대통령표창, 국민포장과 국민훈장까지 수여하기로 한 것.

류지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하는 3등급의 보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를 수훈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진작부터 훈장 등급을 놓고 고심 중이고, 영국에서도 왕실 차원에서 훈장 추서가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류지호에게 최고 등급의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할 것인지, 아니면 문화예술인이 단 한 번도 추서된 적이 없는 국민훈장을 수여할 것인지.

훈장 수준을 보면 류지호에게 대해 한국정부가 어떤 의중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류지호가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게 되면, 내국인 자격으로 국민훈장 2등급인 모란장 추서가 가능하다.

국민훈장은 공무원, 교사, 군인·군무원이 아닌, 문화·예술·체육·산업·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일반 국민이 받을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훈장이다.

일각에서 최고등급인 무궁화장 추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최고훈격인 무궁화장은 국민적 추앙을 받는 사회원로에게 수여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이제 갓 마흔이 된 류지호에게 원로에게나 수여하는 훈장을 수여하는 것이 이르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나이 때문에 최고등급 수훈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우습지만.

쉽게 바뀔 수 없는 전 세계 정부들의 공통된 관행이다.

그렇기에 한 단계 아래 추서가 유력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기도 한다.

참고로 국민포상추천제를 통해 대한민국 최고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은 인물은 단 둘이다.

고 이태석 신부와 아덴만의 영웅 외상외과 교수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대체로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등 국가요인이 퇴임한 후 관례적으로 수여되는 경우가 많고, 각종 정부 기념일에 각종 협회장 같은 이들에게 남발하는 경우가 많아 훈장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즉 고관대작들의 퇴임선물 같은 것이랄까.


“반도체 회사 M&A를 걸고넘어진 것이 괘씸하긴 한데.... 청와대 입장에서 여론을 반전시킬 빅 이벤트가 필요한 것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고. 내 체면을 살려주는 선에서 적당히 합의를 봐야겠지.”

“정치인들은 쉬운 문제를 어렵게 풀려는 경향이 있어.”

“하하. 그래야 있어 보이니까. 쉽게 문제를 해결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잖아.”


‘으으‘ 레오나가 요상한 소리를 내며 몸서리쳤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연기 못하는 배우가 정치인 같아.”


세상에 만장일치란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인간 한 명 한 명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각자의 가치관과 신념이 다르기에.

류지호의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는 언제 될지 알 수 없는 민감한 사안 중 하나다.

특히 언론에서 없는 문제까지 만들어서 이슈로 띄우느라 열심이고.

정부가 부담을 느낀다면 언제든 없던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류지호는 주면 받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속편하게 생각했다.

다만 (주)하이닉스 인수합병에 방해를 놓는다면.

절대 묵과할 수 없겠지만.


❉ ❉ ❉


지난해 늦가을이었다.

호국훈련이 한창일 시기.

제2차 한국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호국훈련은 G20 정상회담으로 예년보다 20여일 늦게 실시했다.

오전에 해병대 연평부대가 호국훈련의 일환으로 바다를 향해 포사격 훈련을 했다.

이를 남한 측의 도발로 규정한 북한이 그 날 오후 기습적으로 대연평도에 포탄을 발사했다.

이에 남한 역시 즉시 대응했다.

대한민국의 영토인 연평도를 북한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포격해서 시작된 전투로 정전협정 이래 최초로 발생한 민간 거주지에 대한 공격이었다.

군인은 물론 민간인 사망자까지 나온 상황이었기에 자칫 휴전이 깨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포격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한국군은 공군전투기와 해군 함정이 급파되었고, 북한 역시 미그기를 출격시키는가 하면 경비정도 출동시켰다.

공중과 해상에서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다.

이전 삶과 달리 이번에는 해병대에서 나름 대비가 되어 있었다.

(주)나래안전 시스템의 장교 전역자들이 해군과 해병대를 일 년 내내 괴롭혔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은 북한의 후계세습 진행과정을 세심하게 살폈고, 해군은 잠수정과 경비정 도발을 대비했으며, 해병대는 호국훈련을 준비하며 만일의 사태까지도 철저히 점검했다.

연평도 해병대의 호국훈련이 한창일 시간, 북한의 특이동향을 파악한 국방정보본부가 첩보고보고를 청와대와 국방부장관을 비롯해 주요 기관에 통보했다.

이전 삶에서는 이 보고가 묵살되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북한의 3代 후계세습이라는 정치변혁기에 북한 수뇌부들이 확전까지 불사하고 도발을 저지를 것이라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기에 호국훈련을 주관하는 합동참모본부는 훈련기간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 결과, 이전 삶보다 대응을 잘했다.

사상자도 줄었고, 북한군이 쏜 탄환과 비슷한 수준으로 응사했다.

팀스피릿 훈련이던 시절부터 북한은 매우 강력하게 남측의 육해공 합동 훈련을 비난해 왔다.

그들은 군사강국인 남한이 육해공군 최대 규모 기동부대에서 실탄과 주요 무장을 하고 훈련을 하다가 그대로 휴전선을 넘지는 않을지 걱정을 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북침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국제법상 가능하지 않고.

게다가 핵개발이니 3대 세습이니 북한 내부 사정도 썩 좋지 못하기에 전쟁긴장감을 조성해서 내부 불만을 잠재울 필요도 있었다.


“남한이 호국훈련을 취소한다고 해서 북한의 도발이 없었을까.....”


류지호는 그저 혼잣말을 한 것뿐인데, (주)나래안전 시스템 총무이사 조준열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군 정보부와 전략관들 모두가 아니었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답을 듣고자 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가 대화로 이어졌다.


“맞아요. 일단 도발부터 하고 이유는 나중에 아무 거나 갖다 붙였을 겁니다. 되도 않는 남측 어선의 NLL 침범이라든가.”

“3대 세습이 완료되고 후계자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서 그가 군을 통솔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희생당한 분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합참이 나름 대응을 잘 했다니 오랜만에 군바리 소리 안 듣고 밥값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겠어요.”

“다만 정치적인 후폭풍이 꽤 커서 청와대가 이래저래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국방장관은 아직 그대로죠?”

“예.”


본래대로라면 두 정권에 걸쳐서 온갖 사고를 치는 인물이 새로운 국방장관이 되고, 다음 보수정권에서 국가안보실장까지 해먹으면서 별의 별 짓을 다 해야 했지만, 한국 정치와 역사가 바뀌면서 그 인물이 정치 현장으로 나올 일이 없었다.

그저 예비역 장성으로 남을 것 같았다.

이전 삶에서 문제의 국방장관은 독일 육군사관학교 연수를 다녀온 일명 독일유학파였는데, 그가 안보실장을 하면서 두 정권에 걸쳐서 독일 육군사관학교 연수를 갔다 오거나 유학을 했거나 공부하러 갔다 온 사람들이 대거 중용됐다.

그래서 ‘독사파’(독일사관학교출신 파벌)란 사조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군대 파벌 중에 1992년부터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수도방위사령부, 청와대 경호실 등의 요직에 진출하며 두각을 나타낸 육사 34기도 있다.

이번 정부의 국방관련 요직에는 그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정의국 대통령이 김용삼 정부 출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전 삶에서 일명 독사파라 불렸던 이들보다 노대우와 김용삼 두 정권에서 두루 요직을 거쳤던 군 인사들이 이번 정부 군대를 책임지고 있다.


“잘 대처했든 우왕좌왕했든. 정부는 뭘 해도 욕을 먹게 되어 있는 것이니까, 더는 그쪽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합시다.”

“예. 의장님.”

“그나저나 나래안전에서 해군에 병원선을 기부체납할 것을 논의 중이라고요?”

“예.”

“왜요?”

“재작년 연말부터 서해함대의 장교와 수병들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고생한 해군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다는 것이 회사 내 예비역들의 일치된 생각이며 게다가 유사시 서해 5도는 물론이고 남해 다도해에서 의료지원을 해야 할 병원선 수준이 형편없기도 하고 또....”


조준열 이사가 되도 않는 이유를 들어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류지호는 귀담아 듣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REMO>와 <Christmas Cargo>를 준비하며 류지호는 미군의 다양한 함선을 경험해 봤다.

그 중에는 미 해군이 자랑하는 머시급 병원선(USNS Mercy, USNS Comfort )에도 승선해 봤다.

배수량이 7만 톤이 넘고 병원선 자체가 야전병원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역시 천조국‘이란 탄성이 저절로 나왔었다.

당시 안내를 했던 미 해군 관계자가 어지간한 국가의 탑클래스 종합병원과 비교해도 손색을 없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1,000개의 병상, 80 병상의 중환자실, 280개 침대의 응급실, 12개의 대형 수술실을 갖추고 있고 CT를 비롯한 첨단 의료기기가 마련되어 있으니 자랑할 만도 했다.


“한국 해군의 병원선 수준이 어떻기에 형편이 없다고 한 겁니까?”

“한국의 해군은 연안 방어만 하기 때문에 아예 군용 병원선이 없습니다.”


류지호는 왠지 기시감이 들었다.

항공모함이 필요없다는 논리와 매우 유사했기에.


“보건소가 없는 서해와 남해 섬 주민들을 위해 최대 160톤급 병원선 다섯 척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 중입니다.”

“아, 그냥 바다에 떠 있는 보건소 같은 거군요?”

“예. 규모가 작기도 하고 예산도 무척 짜게 편성해서 한해 10억 정도 투입된다고 합니다. 물론 인건비는 제외한 금액입니다.”


이전 삶에서 포털뉴스를 통해 군용 대형 병원선을 본 것도 같은데.

아직 건조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부하려고 했습니까? 설마 미 해군의 머시급이나 글로벌 NGO단체 Global Mercy Ships처럼 수만 톤급의 초대형 선박을 사줄 생각은 아니겠죠?”

”기존 운영되고 있는 국내 병원선의 두 배 배수량급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나래안전에서 병원선 살 여력을 되고요?”

“현재 보유현금만 대략 6,078억 원입니다. 올해 순이익도 14.5% 증가할 전망이고. 배당도 없을 터라 현금이 더 쌓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해군에 300톤 급 기부하면 좋아하겠어요?”

“....예?”

“명색이 군에서 운영하는 병원선이잖아요. 최소 1,500톤의 호위함급은 되어야 고마워할 것 같은데.”


이전 삶에서는 한산도급 훈련함을 유사시 병원선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 해군에서 인도받아 작전이 없을 때는 도서지역 접종지원, 의료지원 등에 서 나름 활약했었다.

다만 훈련함이다보니 함포와 어뢰발사관 등이 장착되어 있어 제네바 협약에 따른 병원선 보호를 받지 못했다.

국제법과 협약에 의하면, 병원선은 무장을 철거해야 하고 함체도 흰색으로 도색해야 한다.


“해군에 300~400톤급 병원선 사주고 좋은 소리 못들을 바에야 그룹 차원에서 Global Mercy Ships 재단처럼 병원선을 운영하는 것은 어때요? 마침 황해여객도 있고.”


가온그룹이 문제의 황해여객을 매입해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엄격한 안전기준을 마련함으로써 이전 삶에서 일어났던 대형참사를 막을 수 있게 됐다.

물론 황해여객을 제대로 경영한다고 해서 한국의 해상사고가 없어지지 않을 테지만, 최악의 참사가 벌어지는 것만큼은 사전에 차단했다.


“마침 기존 6,000톤급 여객선(세O호) 대신 신형 여객선을 들여오기로 했잖아요. 기존 선박을 판매하지 말고 병원선으로 개조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은데.”


이전 삶에서 죽음의 이름이었던 선박을 이번에는 생명을 살리는 선박으로 탈바꿈시키는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랐다.


“의장님... 황해여객은 연매출이 320억 안팎입니다. 병원선을 감당하기에 좀.....”

“소유는 나래안전에서 하고 운영과 관리를 황해여객에서 하는 것은요.”

“병원선까지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황해여객은 인천-제주, 인천-백령도, 여수-거문도, 부산-옥포 등의 정기 연안여객선 사업을 하며 모두 다섯 척의 여객선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인천-제주 간 노선에 여객선 두 편이 운항 중이다.


“되도 않은 한강수상택시 즐거운서울 지분은 모두 털어버리라고 하세요. 대신 새만금 수상여객유람선 사업을 전북과 의논해 보라고 하고.”

“....예.”


류지호는 병원선과 관련한 이슈를 미리 알았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6,000톤 급 병원선을 가지고 있었다면, 일본 대지진 때 파견해서 생색을 낼 수 있을 테니까.

그랬다면 일본에서 가온그룹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을 터인데.


“일본에 진출한 바나나톡은 이용자가 많이 늘었대요?“

“한국보단 못하지만 소프트인프라가 아이폰을 판매하며 적극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기에 이용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국내에서 정식서비스를 시작한 바나나톡은 6개월 만에 사용자 100만 명을 찍고, 올해 들어서 1천만 명을 기록했다.

앞으로 2~4개월 간격으로 사용자를 1천만 명씩 늘려가게 된다.

한국보다 늦게 출시된 일본은 재일동포와 아이폰 사용자를 중심으로 500만 명이 이용 중이다.

도호쿠대지진이 발생해 일본의 전화 통신망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바나나톡이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를 통해 폭발적인 가입자와 이용자를 확보할 것으로 류지호는 내심 전망했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 잇속을 챙기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인스턴트 메신저의 불모지 일본에서 바나나톡을 통해 재난상황을 조금이나 극복할 수 있다면 마냥 이기적인만은 아니지 않을까.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은 못 듣더라도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일본법인만 독립적으로 놔두고, 한국과 글로벌 서비스는 반드시 한국 본사에서 지배하고 통제하는 구조로 만들어가라고 아이윈랩에 다시 한 번 당부하세요.”

“글로벌 서비스... 말씀이십니까?”

“예.”


미국계 SNS와 인스턴트 메신저앱이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언감생심 한국의 서비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될 것이라는 조준열 이사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 먹히면 대만에서 먹힙니다. 대만에서 먹히면 홍콩과 태국에서도 먹힙니다. 두 나라에서 먹히면 나머지 동남아시아 시장은 거저 딸려 옵니다.”


동남아시아는 일본의 앞마당이다.

일본자본이 동남아시아 곳곳에 많이 투자되어 있기도 하고.

이 시기까지만 해도 일본산은 무조건 세계 최고라는 인식이 있다.


“광성그룹이 한국이냐 일본기업이냐 논쟁이 있는 걸 알 겁니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기업이나 서비스도 일본 현지에서 똑같은 논란에 휩싸일 수 있어요.”

“극우들의 반한감정 때문이겠군요?”

“일본의 언론이 혐한팔이 하는 것이나.... 일본의 자민당 정치인이 생각하는 것은 똑같아요. 내부의 구린내를 가리기에 한국팔이만큼 유용한 이슈는 없죠. 스가 나오토가 임기를 마치고 나서 자민당이 집권하게 되면 혐한이 극성을 부릴 겁니다. 일본에 진출해 있는 가온그룹 산하 현지법인들을 보호할 방법을 마련해 둬야 할 겁니다.”

“...예.”


류지호는 이전 삶에서 제법 떠들썩했던 르노-닛산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카를로스 회장이 나쁜 놈이든 피해자든, 류지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권 차원에서 자국 기업과 힘을 합쳐 외국 기업의 지분까지 버젓이 강탈하는 짓도 서슴없이 저지른다는 점이 중요할 뿐.

일본은 미국을 제외하고 모든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이다.


“자국 내에서만큼은 어느 나라도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나라가 일본이란 사실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예. 의장님.”


아무리 이야기해도 겪어보지 못하면 모른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잔소리처럼 당부를 할 수밖에 없다.

알고도 당하면 바보니까.

그런 사정을 모르는 많은 이들이 류지호의 지나치게 신중한 비즈니스 태도를 흉 보곤 한다.

지금까지 결과로 증명해지 못했다면 ‘미스터 할리우드’가 아니라 ‘미스터 겁쟁이’라고 불렸을지도 모른다.


작가의말

편안한 주말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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