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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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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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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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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3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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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Academy Awards!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이전 삶에서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 생방송은 역사에 길이 남았다.

안타깝지만, 나쁜 쪽으로.

최악의 시상식으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시상식을 중계하는 방송국도 그대로, 제작자와 작가진도 그대로.

단지 진행자만 한 명 바뀌었을 뿐.

그 동안 코미디언이나 입담이 좋은 배우가 사회를 맡았던 관례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젊은 미남미녀 배우에게 아카데미 시상식 진행을 맡겼다.

할리우드 대표 미남미녀 배우가 새로운 아카데미 시상식 진행자로 뽑혔다는 소식이 퍼진 후로 많은 업계 사람들이 걱정했다.

역사와 전통 그리고 초대형 행사를 매끄럽게 이끌어갈 수 있을지.

그렇다고 두 사람이 시상식을 망칠 줄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두 사람 다 생방송 진행이 처음도 아니었고.

유명연예인이라면 한번쯤 출연하는 SNL에 출연했을 때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수천 만 명의 동시 시청자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부담감과는 천지차이였지만.

우려가 있긴 했지만, 기본은 해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 전해진 시상식 대본이 문제였다.

매우 엉성했다.


‘내 회사가 제작했다면 뭐라도 훈수를 뒀겠지만.....’


이전 삶의 시상식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류지호다.

그렇다고 남의 방송국 시상식에 참견할 순 없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로지 ABC의 몫이었으니까.

책임도 그들이 져야 하고.

류지호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제작팀의 안일한 준비로 인해 전도유망한 배우 두 명의 커리어에 흑역사가 새겨졌다는 점이다.


찰칵!


레드카펫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은 류지호와 앨런 포스터가 레드카펫에 입장했기 때문이다.

오스카 레드카펫은 일반적인 영화제나 한국의 시상식처럼 정갈하면서 질서정연하지 않다.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다.

야외 레드카펫 행사장에서는 참석자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사진기자를 향해 포즈를 취해주고 팬들의 응원에 화답한다.

정돈된 분위기는 안쪽의 레드카펫에 들어서부터다.

그렇다고 도떼기시장처럼 정신없지는 않다.

암튼 멋진 턱시도 차림의 류지호가 사진 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일부러 배우들과 따로 움직였다.

배우들이 좀 더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다.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면 아무래도 시선이 분산될 터.


찰칵찰칵.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협찬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비서실장 제니퍼 허드슨이 협찬들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미 아카데미 시상식에 입을 수트가 따로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류지호의 모든 예복은 맨해튼의 파커가문 단골 테일러 숍에서 책임지고 있다.

1989년부터 줄곧 그래왔다.

겉으로 볼 때 럭셔리해 보이진 않는다.

차라리 수수해 보일 수도 있다.

브랜드를 유추할 만한 부분도 드러나있지 않고.

그런데 가격을 알게 되면 기함을 토할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Christmas Cargo>의 수상 예측보다 시상식 참석자들의 패션에 관심이 많은 ABC 리포터들이 류지호의 턱시도를 보며 품평을 늘어놓기 바빴다.


- 미스터 할리우드라고 불리는 지호 류. 세계 최고 부자. 그가 입은 저 턱시도의 가격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 참석자들의 평균 예복 가격이 대략 1만 2천 달러라지요?

- NO!

- 2만 달러!

- 뉴욕에서 전해 온 소식에 의하면 무려 5만 달러라고 합니다.

- 오 마이 가쉬!


한화로 6,000만 원짜리 턱시도란 소리다.


- 이번 오스카 시상식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턱시도인데, 무려 5개월에 걸쳐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 미스터 할리우드가 이미 아카데미 수상을 예상했던 모양입니다. 하하.

- 동부 전통가문 사람들의 예복을 주로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테일러 숍인데, 고객의 요청이 있을 경우 테일러 숍을 유추할 수 있는 그 어떤 문양도 넣지 않는다고 합니다.

- 아는 사람만 알아차릴 수 있다는 초부자들만의 패션이군요?


레드카펫 행사를 중계하는 두 명의 진행자가 침을 튀겨가며 류지호의 턱시도에 대해 떠들어댔다.

류지호의 비서들은 오늘의 패션에 대해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류지호조차도 턱시도의 가격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ABC 중계진은 모르는 게 없었다.

새삼 유명인에 대한 미국 언론의 집요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오스카 레드카펫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그 시각.

평범한 외모의 남녀가 똑같이 생긴 가죽가방을 들고 Kojak Theatre로 들어갔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면, 모두의 주목을 받았겠지만.

일부러 눈에 뜨이지 않는 외모의 남녀를 선발하기 때문에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 결과 집계는 수십 년 동안 영국의 유명 회계법인에서 맡아왔다.

시상 순간까지 보안을 유지하고 봉투를 전달하는 역할까지, 80여년에 걸쳐 아카데미 수상작 선정 과정의 관리를 맡고 있다.

두 사람은 바로 런던에 본사를 둔 세계 4대 회계법인 소속 파트너 회계사다.

그들이 든 가방 안에는 오늘 수상자가 명시된 24개의 봉투가 담겨 있다.

남녀로 구성된 회계사팀은 시상 무대 양편으로 나눠져 시상자들에게 각각의 봉투를 전달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서류가방은 본인들 외에 절대 만지지도 구경도 하지 못한다.

북적북적한 분위기에서 조용히 시상식 안으로 회계사들이 들어가고. 이후로도 한참 동안 레드카펫 행사가 이어졌다.

한국시간으로 10시 30분이 되면서 시상식의 막이 열렸다.

안타깝지만 <Christmas Cargo> 출연배우들은 이번 오스카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우조연상은 <파이트>의 크리스 베일이 수상했다.

하비 웨인스타인이 관여한 영화였다.

류지호로서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다.

다만 웨인스타인이 기고만장할 것이 고까울 뿐.

단편과 장편 애니메이션 수상에 이어 각본상과 각색상 수상이 이어졌다.


“제길. 아깝네....!”


앨런 포스터가 비 맞은 중처럼 연신 중얼거렸다.

안절부절.

<Christmas Cargo>의 공동 제작자로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수상여부에 온통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술상 부문이 줄줄이 발표되었다.

<Christmas Cargo>가 많은 부분에서 노미네이트되었고, 또 수상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간이 온 것이다.


“예스!”


앨런 포스터가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의상상과 미술상을 연달아 <Christmas Cargo>가 차지했다.

류지호 사단이라고 불리는 의상 디자이너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두 사람은 이번 오스카 수상이 각각 생애 두 번째, 세 번째 수상이다.

그럼에도 오스카 트로피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소감을 전 하는 두 사람은 무척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특히 의상상 부문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여러 시상식에서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 <Christmas Cargo>가 시대물이나 판타지도 아닌데 왜 후보에 올랐고 또 수상까지 하게 되었는지 의아하신 시청자들이 많을 실 것 같아요.

“영화의상 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경우가 근현대의 어중간한 시대이거나 관객들에게 낯선 문화권의 복식을 재현하고 그것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에요.”

- 아, 그렇군요.

“특히 전쟁영화의 의상팀은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요. 그 사실을 모르는 아카데미 회원을 아마 없을 겁니다.”

- <Christmas Cargo>에 투표한 것은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군요?

“당연히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면도 중요하죠. 하지만 수천 벌의 군복과 군화를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한국의 DCN 중계팀이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 부분 수상자에 <Christmas Cargo>팀이 선정된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인지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다큐멘터리와 여우조연상 수상에서는 앨런 포스터도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Christmas Cargo>가 노미네이트 된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좋았어!”


이어 사운드 편집, 사운드 믹싱, 편집, 촬영 부문에서 연이어서 <Christmas Cargo> 헤드스태프들이 무대에 올라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주요 기술상 부문에서는 <인셉션>과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이변일 수도 아닐 수 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시대 최고의 촬영감독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로저 딕스를 따돌리고 데온 비베가 생애 두 번째로 오스카 트로피르 들어올렸다.

<시카고>에 이어 또 한 번의 오스카 주인공이 된 데온 비베는 수상소감에서 류지호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멋지게 해냈다!”는 말로 감격스러운 감정을 전했다.

시각효과 부문에서는 <인셉션>에게 트로피를 양보해야 했다.

나중에 알려진 이야기로는 배우조합과 제작자조합원의 표 상당수를 <인셥션>이 가져갔다고 한다.

두 조합은 회원 수가 가장 많았기에 <Christmas Cargo>가 수상의 영예를 차지할 수 없었다.


"딕스씨가 너를 노려보는 것 같은데?“


앨런 포스터의 말에 류지호가 <더 브레이브> 팀이 모여 있는 객석을 쳐다봤다.

로저 딕스는 수상소감을 전하는 데온 비베를 지켜보며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쇼생크 탈출>로 시작해서 고언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와 <파고>를 거쳐 이번 <더 브레이브>까지 모두 8번이나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고도 아직까지 상을 받지 못하는 불운을 겪고 있다.

그런 영화인이 어디 그 한사람뿐이겠는가 마는.

암튼 무대에서 연달아서 <Christmas Cargo> 관계자가 호명 됐다.


“된다...될 거야.”


앨런 포스터가 보기에 지금까지의 분위기만 봐서는 작품상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기대감에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져만 갔다.

분장상과 외국어영화상 시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지나갔다.

오죽하면 류지호가 우황청심원이라도 먹였어야 했나 후회할 정도로 앨런 포스터의 신경이 매우 예민했다.

류지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부분의 영화인들은 앨런 포스터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영화음악까지 <Christmas Cargo>의 로이 호너가 차지하게 됨으로써 이번 아카데미의 주인공이 되는가 싶었다.


‘가만 있어보자. 지금까지 몇 개였지. 하나 둘 셋.....’


현재까지 가장 많은 오스카 부문을 휩쓴 영화는 1959년 <벤허>, 1997년 <타이타닉>, 2003년 <반지의 왕 : 왕의 귀환>이었다.

모두 11개 부문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 가운데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은 후보로 지명된 모든 부문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Jay 이놈은.... 정말 미친놈이라니까. 어떻게 오스카 역사에서 무려 두 편이나 기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어. 아직 마흔도 안됐으면서....!’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분은 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각본상이다.

오스카 5대 부문이라고 일컫는다.

이 다섯 부문을 동시에 차지한 영화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 <양들의 침묵>(1991) 등 3편뿐이다.

<양들의 침묵>의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모리스 메타보이였는데, 오라이언에서 준비하던 것을 트라이-스텔라로 가지고 온 것이 류지호다.

90년대 이후 할리우드 영화의 중요한 순간마다 류지호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러니 미스터 할리우드라고 불릴 수밖에.


‘이 녀석은 요절만 하지 않으면... 저 옛날 기라성 같았던 이들도 해내지 못했던 온갖 기록과 영광이란 영광은 다 차지할 수 있을 거야.’


류지호를 두고 잠시 딴생각을 하면서 앨런 포스터는 차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감독상과 작품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과 달리.

류지호는 매우 편안한 상태로 시상식을 지켜봤다.

이미 작년에 <허트 로커>가 여성감독으로 처음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캐시 비글로 감독이 연출한 <허트 로커>는 전쟁영화 장르였다.


‘작년에 <허트 로커>가 감독상부터 작품상, 각본상 포함해서 6개 부문을 휩쓸었는데, 설마 연달아 전쟁영화에 표를 주겠어?’


그렇기에 류지호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혹시나 각본상을 받게 되면, 뜻하지 않은 성과라고 기쁨이 두 배가 되겠지만.

영국 아카데미는 <킹스 스피치>가 석권했다.

그리고 미국 아카데미에서 가장 임팩트가 큰 후보작으로 <소셜 네트워크>가 꼽혔다.

감독상 후보들도 누구 하나 만만한 인물이 없었고.

류지호가 영화감독으로서의 명성은 가장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물론 할리우드에서 연출한 영화만 놓고 봤을 때다.

모든 필모그래피를 다 따지면 류지호도 충분히 뛰어난 감독이다.


‘오스카가 유독 서부극이나 SF영화에 인색한 편이니까.... <더 브레이브>는 빼고! 역시 다크호스라면 영국 아카데미를 휩쓴 <킹스 스피치>인가....?“


사실 <킹스 스피치>가 오스카 캠페인에서 갑작스럽게 부상한 것에 많은 연예부기자들 사이에서 석연찮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몇몇 영화전문기자들의 취재에 의하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름 정도 앞두고 <킹스 스피치>의 배급사 웨인스타인 컴퍼니가 집중적으로 캠페인을 했다고 한다.

밝히기 꺼림칙한 각종 로비 공세가 오스카 투표 마감 열흘 전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이야기까지 기자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아직까지 확인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그간의 하비 웨인스타인의 행보로 보았을 때 의심이 가는 구석이 많았다.


“드디어.....”


주요 부문 시상의 시간이 찾아왔다.

앨런 포스터가 너무 놀라서 신음을 흘렸다.


“...어!”


고언형제는 몇 년 전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한 바 있다.

때문에 앤드류 핀처와 류지호 그리고 대니 애런노보스키 세 명의 감독상 삼파전이라 많은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감독상을 <소셜 네트워크>의 앤드류 핀처가 가져갔다.

여러 차례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가 고배를 마신 바 있는 앤드류 핀처다.

아카데미 회원들이 볼 때 줄 때도 되었다고 생각할 법도 했다.

남우주연상은 각각 <킹스 스피치>와 <블랙 스완>의 주인공들이 차지했다.


“......!”


무대 뒤에서 스티븐 아들러가 회계사로부터 봉투를 건네받았다.

작품상 후보작들이 소개되고.

마침내 스티븐 아들러가 봉투를 열어 수상자를 확인했다.

찰라지만, 스티븐 아들러는 호흡을 고르는 짧은 순간에 오만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1920년대를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스튜디오 MSM.

그 이후로 할리우드 최고라고 불리는 스튜디오가 Tri-Stellar다.

그렇게 만든 것은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 아니다.

봉투에 적혀 있는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한 녀석.

Ji ho Ryu다.

자신은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하기까지 오랜 시간 절치부심했다.

그런데 이 녀석은 20대 나이에 첫 수상을 하더니 30대(만으로)에 또 한 번의 작품상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됐다.

영화의 신이 있다면, 축복과 사랑을 류지호란 녀석에게만 몰아주는 것 같았다.

배가 살살 아파온다.


“축하합니다. 제83회 아카데미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의 주인공은 바로.... <Christmas Cargo>!”


<Christmas Cargo>팀이 벌떡 일어서서 환호성을 터트렸다.

누구보다 앨런 포스터의 놀람과 환희가 상당했다.


“진정 해, 친구.”


자신의 자리에서 방방 뛰는 앨런 포스터를 진정시킨 류지호가 천천히 무대로 걸음을 옮겼다.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소감을 나중에 말할 법도 하건만.

무엇이 그리 급한지 앨런 포스터가 대끔 마이크 앞에 섰다.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약간 횡설수설 댔다.

미리 준비한 소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간간이 유머를 섞어서 객석의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어 류지호가 마이크 앞에 섰다.


“먼저 가족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시아와 준혁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클립과 배런도 수고 많았어. 다 너희들 덕분이다. 음... 내 마음은 온통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찍은 영화가 후보에 오른 다른 영화들, 혹은 작년 한해 미국에서 개봉한 모든 영화들에 비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영화에 대한 같은 애정과 신념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내게 어떤 것보다 특별한 삶을 허락해주었습니다. 나는 영화가 아니었으면 솔직히 말해서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그만 벌라고 합니다. 이제 그 정도면 되지 않았냐고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로지 영화를 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고 돈을 벌었습니다. 사람들이 기부를 하기 위해 돈을 버는 줄 알지만... 사실 나는 영화를 하기 위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내가 만들 수 없는 영화가,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함께 이야기할 영화가 제작되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다른 누군가가 좋아하는 영화도 만들어질 필요가 있으니까요.”


예정되어 있던 생방송 시간이 끝이 났다.

현장의 시상식 중계팀은 이대로 생방송이 끊길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상 수상자의 수상소감을 끊어버릴 수도 없고.


“영화가 내게 준 그리고 이곳에 계신 많은 분들께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하여 우리가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기회이며 축복이자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량한 행동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일 뿐이라는 부모님과 스승님의 가르침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과거의 나는 바보 같고 멍청이 같았으며 게을렀습니다. 때론 패배자였습니다. 세상이 또 여러분이 내게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실수를 덮어줄 것이 아니라 반성할 수 있도록 서로를 지지해주고, 서로가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서로를 가르쳐주고, 구원을 향해 가도록 서로를 인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류지호는 무대로 입장하는 통로에서 프로듀서가 매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발견했다.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환상적인 순간입니다. 빨리 아내와 아이들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친구들과 파티를 벌여야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고 희생한 모든 분들께 오스카 삼촌의 축배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은 모든 영화 시상식에서 가장 마지막에 수여된다.

최고의 상이기 때문이다.

1998년까지는 제작사 대표가 수상자로 나섰다.

이 시기에는 프로듀서가 수상한다.

수상자로 나선 류지호는 감독이 아닌 프로듀서 자격으로 작품상을 수상했고, 또 수상소감을 전했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은 그동안의 결과를 봤을 때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가운데 70%가 감독상도 함께 수상했기에.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그런 경향에서 비켜나갔다.


‘감독상 놓친 걸 아쉬워하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하겠지?’


꾸준히 감독으로 활동하다보면 언젠가 감독상도 받을 있겠거니.

작품상은 제 아무리 오랜 시간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다고 해도 노미네이트조차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영광을 마흔도 전에 벌써 두 번이나 경험하게 된 류지호다.


✻ ✻ ✻


이전 삶과 달리 제83회 아카데미 수상자는 큰 이변 없었다.

대체로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결과가 나왔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다만 새로운 진행자가 된 두 명의 남녀 MC의 미숙한 진행이 빈축을 샀다.

그 때문에 오랜 시간 아카데미 시상식 연출을 맡아 왔던 프로듀서가 해고됐다.

어찌 되었든, 오스카 레이스 막판, <킹스 스피치>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며 절대적인 강자가 없이 세 편의 경쟁작이 고르게 상을 나눠 가질 것으로 봤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가 예상과 많이 달랐다.

<Christmas Cargo>가 작품상, 미술상, 촬영상, 음악상, 사운드 편집, 사운드 믹싱, 의상상, 편집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다.

아카데미의 주요 부문 5개 즉 작품, 감독, 남우주연, 여우주연, 각본상을 함께 묶어서 ‘Big 5'라 칭한다.

그를 두고 '오스카 그랜드슬램'이란 표현도 쓴다.

각본상을 뺀 나머지 네 개의 상을 수상한 작품을 지칭할 때다.

<Christmas Cargo>는 Big5 가운데 단 하나의 상만 수상했다.

그럼에도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8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2년 전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수상한 기록과 동수를 이루었다.

2004년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이후 가장 많은 오스카 트로피를 챙긴 영화가 되었다.

2010년대 최다 수상 기록으로 남게 된다.

아카데미 주요 부문은 <킹스 스피치>가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소셜 네트워크>가 감독상과 각색상을 가져갔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세 편의 경쟁작이 'Big 5'를 나눠 가진 셈이다.

오스카 트로피에 욕심이 많은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으로서는 <블랙 스완>이 여우주연상을 챙김으로써 체면치례를 했다.

<인셉션> 또한 시각효과상을 수상함으로써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자신들만의 잔치로 만들었던 ParaMax는 올해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무려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고언형제의 <더 브레이브>가 단 하나의 트로피도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언형제가 여전히 아카데미 단골 후보임을 보여줌으로써 현시대 미국 영화계의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한명이란 걸 확인시켜주었다.


- ‘오스카가 오스카 한‘ 제 83회 시상식! 단 생방송 진행은 ’최악 중 최악‘!

- 새로운 MC는 감탄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 빌리의 진행이 그리웠을 뿐.....


할리우드 주요 매체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평가한 기사들의 헤드라인이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최초로 남녀 공동 MC를 내세워 '세대교체'라는 측면에서 관심을 모았다.

시상식 전부터 대형 쇼의 진행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시상식 자체는 대체로 큰 사고 없이 무난했다.

다만 재미는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NeTube 영상시대를 반영한 코믹한 영화 편집 클립들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기획도 없었고 특별히 재미있는 해프닝도 없었다.

언론의 대체적인 평가는 ‘실망스럽다’였다.

소수가 ‘무난했다’라고 평했다.

ABC 중계진은 새로운 진행자 체제와 IT 트렌드를 반영한 기획을 야심차게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재미있게 만들어내진 못했다.

암튼 시상식은 아카데미 위원회와 ABC 방송국이 고민할 문제다.

핵심은 어떤 영화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

과하지 않은 예술성.

<Christmas Cargo>는 아카데미가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핵심요소가 담겨있다.

그 동안 아카데미가 사랑해 왔던 메시지와 서사가 담긴 영화.

바로 <Christmas Cargo>에 최고 영예를 안겨줌으로써 전통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알게 뭐야? 이미 오스카는 우리 수중에 이렇게 들어와 있는데.”


앨런 포스터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오스카 트로피를 마치 토르가 묠리느를 들어 올리듯 높이 쳐들었다.

그는 취한 상태다.

기분과 술 모두에 취해 애프터 파티 내내 뜬구름 위를 노닐었다.

무려 일주일 동안 각종 축하파티를 돌아다니며 오스카 수상자로써의 영광을 마음껏 누렸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류지호조차 내버려두었다.

생애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순간이었으니까.

암튼, <Christmas Cargo>는 지난해 칸 영화제 폐막작 선정 이후로 토론토 국제영화제 및 각종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상영되었다.

그 이름만으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타임지 선정 2010년 최고의 영화 1위, 골든 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전미 비평가협회 및 LA, 뉴욕, 시카고 비평가협회상, 프로듀서, 감독, 배우 조합상을 포함해 각 직능별 조합상에서 끊임없는 수상 행진을 이어갔다.

각종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178개 부문 노미네이트, 61개 수상이라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주요 노미네이트 및 수상 실적은 다음과 같다.

제83회 아카데미 12개 부문 노미네이트.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각본상,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편집상, 음향상, 미술상, 시각효과상, 음향 편집상 등 8개 부문 수상.

제68회 골든 글로브 4개 부문 노미네이트 및 음악상 수상.

2011 타임지 선정 최고의 영화 1위

제64회 영국 아카데미(BAFTA) 12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 기록 및 작품상, 편집상, 음악상, 미술상 수상.

런던비평가협회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미술상, 편집상, 음악상 수상.

프랑스 아카데미(CESAR) 10개 부문 노미네이트. 기술상 6개 부문 수상.

크리틱스초이스어워드 최다 수상.

토론토영화비평가협회 감독상, 작품상 노미네이트 및 수상.

전미 배우조합 포함 할리우드 각 직능별 조합이 수여하는 상 7개 부문 수상.

뉴욕비평가협회(NYFCC), 워싱턴DC비평가협회(WAFCA), 보스턴비평가협회(BSFC), 라스베가스비평가협회(LVFCS), 디토로이트비평가협회((DFCS) 세인트루이스비평가협회(SLGFCA) 외 다수 비평가협회가 수여하는 상 수상.

4대 비평가협회상인 전미 비평가협회, 시카고비평가협회, 뉴욕비평가협회, LA비평가협회가 수여하는 상 석권.

미국영화연구소(AFI) 특별상.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할리우드영화제 등 각종 북미 영화제 스포트라이트상 및 관객상 수상.

할리우드 카프리영화상 올해의영화상 및 각종 부문 수상.

유럽영화상 8개 부문 노미네이트 및 주요 기술상 수상.

기타 등등.

<Christmas Cargo>는 상복이 터졌다.

류지호도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상복이 터진 한 해였다.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감독상 트로피만 해도 10개가 넘을 정도였다.

2011년 여름이 되면.

벨에어 주택에 방 하나가 리모델링 공사를 하게 된다.

트로피만 따로 전시하는 공간을 만드는 공사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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