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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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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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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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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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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쪽

불한당(不汗黨). (10)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봄소식을 제일 먼저 알리는 식물로 개나리와 진달래가 꼽힌다.

노란 개나리가 높다란 교도소 담벼락 아래 화단에 피어있다.

생화가 아니다.

미술팀이 조화를 심어놓았다.


부우웅!


교도소 세트의 거대한 철문이 호송버스를 집어삼킨다.


“컷!”


봄기운이 완연한 3월에 접어들면서 <불한당> 프로덕션도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몇 주 동안 전국을 돌며 로케이션을 진행한 제작진이 다시 WaW종합촬영소로 돌아왔다.

드라마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공주교도소 세트 촬영이 시작됐다.

이전 삶에서는 2005년 영화 <홀리데이> 촬영을 위해 익산시 성당면의 폐교를 교도소 세트로 리모델링해서 사용했다.

<거룩한 계보>, <부러진 화살>, <해바라기>, <타짜> 등 각종 영화의 세트장으로 사용되었는데, 특히 <7번방의 선물>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세를 탔다.

일찍이 WaW가 여주지역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를 조성했기에 이번에는 지자체에서 예산을 낭비해 시대극 세트 조성을 남발하지 않았다.


“로케 끝났습니다. 사동 찍으러 갑시다!”


프로덕션 막바지가 되자 감독이 류지호인지 최영웅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매우 중요한 장면이 아닌 경우에는 주로 최영웅이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이다.


‘금오상사를 확 인수할까?’


호송버스로 사용된 차량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사용되었다.

1986년 생산된 모델이었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로 전투경찰 버스로 사용되곤 했다.

이 시기 한국영화와 드라마에 클래식 자동차를 대여해 주는 업체로는 금오상사가 유일하다.

여름 홍수로 보유하고 있던 차량 수백 대가 침수 당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것 같았다.


“김 피디!”


눈에 띠지 않는 장소에서 제작부 군기를 잡고 있던 김재욱이 달려왔다.


“금오상사가 홍수 피해를 입었다고 하지 않았냐?”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아마? 툭하면 비에 망가질 걸?”

“한 백대 폐차 안 시켰어?”

“그 정도로 피해를 입었으면 망했을 텐데.....”


아직은 홍수 피해로 차량기지를 옮기지는 않은 모양이다.


“금오상사 박 대표에게 내가 투자해 줄 테니까 제대로 된 클래식카 박물관 만들자고 해봐.”

“웬 자동차 박물관?”

“금오에서 전직 대통령들이 타던 차들을 보관하고 있을 거야. 나름 역사성이 있는 차량을 다수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폐차장 같은 곳에 보관하면 쓰나.”

“네가 나설 것 없이, 종합촬영소에 남는 부지를 저렴하게 제공해 주는 게 났지 않겠냐? 박물관을 만들어도 종합촬영소 내에 만들면 될 것 같은데?”

“좋아. 소장하고 네가 의논해 봐.”

“알겠어.”

“박물관 만들면 내가 기부한다고 꼭 덧붙이고.”

“그럴 게.”


금오상사가 보관하고 있는 클래식 자동차 하나하나 역사성을 품고 있다.

그 동안 한국영화와 드라마, 광고 등 수많은 작품에 기여하기도 했고.


“이제 공주 떼고 순천으로 바꿔도 되지?”

“그러라고 해.”


호송버스가 들어간 교도소 입구에는 ‘공주 교도소’ 현판이 걸려 있다.

드라마 <불한당>에는 한국의 주요 교도소가 거의 대부분 등장한다.

3명의 주인공이 하도 자주 교도소를 들락거렸고, 무기징역을 살게 된 이후로도 이런저런 사고를 치면서 여러 번 교도소를 옮겼기 때문이다.


저벅저벅.


떡대를 자랑하는 재소자 7명이 사동 복도를 걸어간다.

분위기가 제법 흉흉하다.

뭔가 사건이라도 벌어지려고 하는지.

그런데, 교도관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떡대들이 한 방으로 몰려 들어간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큰절을 한다.


[회장님! 절 받으십시오!]


절을 받는 이는 최양동이다.

오랜 수감생활은 최양동을 유명한 주먹으로 만들었다.

최양동은 80년~94년까지 전국의 어지간한 교도소는 모두 거쳐 갔다.

사회에서 건달로 활동할 때보다 교도소에서 명성이 더 높아졌다.

전국 각지의 주먹들과 두루 관계를 맺었는데, 특히 공주교도소에서는 무소불위의 특권을 누렸다.

건달들이 수시로 찾아와 인사를 하고 돌아가고.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지만, 어린 태가 남아있는 청년이 마치 아이돌을 영접하는 팬마냥 찾아와 인사를 올리곤 했다.


[누구냐?]

[광주의 조민호입니다.]

[반갑다.]


이감을 갈 때마다 재소자 작업장 반장들이 가장 먼저 찾아오곤 했다.


[작업장 반장들입니다. 회장님.]

[그래 다들 고생이 많다.]


작업반장들이 큰절을 하고 난 후, 일명 소지(사동 청소부)들이 손에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최양동의 방에 음식이 한상 푸짐하게 차려진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교도소에서 조폭두목이 회를 시켜 먹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바로 최양동과 김대천이었기에.

그들 이후로 거물급 조폭들의 교도소 내에서 소위 황제복역이 일반화 된다.

암튼 감옥에 수감됐지만, 최양동의 위세는 날이 갈수록 커진다.


❉ ❉ ❉


WaW 종합촬영소 교도소 세트 구역에는 사동과 작업장만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소장실, 보안과 사무실, 면회실은 물론이고 경비교도대 내무반까지도 만들어져 있다.

교도소장실은 경찰서장실이나 관공서 고위급 집무실로 쓸 수 있도록 변형이 가능했다.

소장실 세트에 중견 탤런트 여럿이 자리하고 있다.

공주교도소장과 보안과장 등 간부에 캐스팅된 이들이다.

구식 연기 습관이 고쳐지지 않는 텔레비전 연기자 출신들에게는 다이얼로그를 주지 않았다.

대사분량이 많은 배역은 믿을 만한 배우에게 맡겼다.

원로 배우 몇 명이 볼멘소리를 했지만, 류지호는 꿈쩍하지 않았다.

교도소장 역할은 류지호의 페르소나라고까지 불렸던 김영찬 배우가 카메오로 출연했다.


[며칠 생활해 보니 어떤가?]

[좋습니다.]

[김해교도소 수형기록을 확인해보니.....]


김영찬이 잠시 말을 끌었다.

간부들 표정이 굳어지며 긴장한다.


[모범적이더군.]


참석한 교도소 간부들의 맥이 ‘탁‘ 풀린다.


[처음에 난 동명이인인가 했어.]

[......]

[여기서도 잘 협조해 줄 것이라 믿어.]

[예...]

[최 회장 같은 사람은 써먹는 게 좋다는 게 보안과장과 내 생각이야.]


최양동이 슬쩍 보안과장을 노려본다.

보안과장도 그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일종의 기싸움이다.


[아, 오해 말아. 앞으로 재소자들을 잘 이끌어 달라는 말이니까.]


김영찬은 단 한 씬에만 출연할 예정이다.

대본상에서는 무미건조한 역할이었다.

류지호가 따로 주문한 캐릭터와 연기가 없었다.

그런데 김영찬 스스로 능글능글한 성격을 만들어서 연기를 펼쳤다.




최양동은 15년 형을 받아 교도소에 수감된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아우들은 출소 후 전국적으로 흩어져 기반을 잡는다.

비록 총두목은 교도소에 갇혀있지만, 그 수하들이 잃었던 기반을 살려낸다.

조직의 기반을 회복한 수하들이 자주 면회를 온다.


[나와바리를 수복하는 건 좋은데, 함부로 칼 주지 마라.]

[형님은 빵에서 청춘을 썩히고 있는데, 배신자들은 사회에서 활개치고 있습니다.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놈들이 다치면 누구라도 내 오다라고 할 거 아냐. 특히 검찰에서. 경거망동하지 마.]


최양동으로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급수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 형기 절반을 채운 후에 가출옥 대상이 되니까.

배신한 놈들이나 적대 세력은 출옥 후에 손봐주어도 늦지 않았다.


덜컹!


공주교도소 작업장 한편에 마련된 사무실.

일반 작업장의 반장실보다 훨씬 넓고 깨끗하다.

응접소파와 책상까지 구비되어 사회의 일반 사무실 같다.

보안과장의 안내로 사무실로 들어온 최양동이 묻는다.


[뭡니까? 이 방은?]


보안과장이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시늉을 한다.

최양동이 소파에 자리를 잡으면.


[만장일치로 최 회장이 총반장에 추대되었어. 소장님도 허락하셨고.]


마침내 최양동이 일급재소자가 됐다.

그에 따라서 교도소 내 공장의 반장들을 지휘하는 총반장, 자치단체인 봉사대 대장, 일급수 자치위원회 대표 등 재소자가 가질 수 있는 감투란 감투는 모두 가지게 됐다.

호칭도 반장이나 형님이 아닌 ‘회장’이라 불렸다.

공주교도소를 시작으로 이후로 이감되는 교도소마다 황제 같은 존재가 된다.

이 시기만 해도 전국 각지의 교도소를 호남출신 조폭들이 장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최양동은 검경에 의해서 과대포장됐다.

매스컴을 통해 명성까지 생겼다.

한국의 어지간한 교도소를 두루 섭렵하면서 ‘상왕’처럼 군림했다.

이감 되는 교도소 내의 모든 주먹들을 자신 휘하에 뒀다.

그의 이름 석자는 한국 조폭세계의 최고 오야붕과 동의어처럼 되어버렸다.




김대천은 최양동보다 일 년 늦게 구속되었다.

1심에서는 13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운이 매우 좋았다.

때마침 계엄령이 해제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서 항소심 재판이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법원에서 열렸다.

2심 재판부는 5년 6개월을 선고했다.

김대천의 수감생활도 최양동 못지않았다.

오죽하면 2000년대 초반 진주교도소에서의 호화 수감생활이 문제가 되어 열악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청송교도소로 이감됐을까.

90년대에 김대천은 이감되어 가는 교도소마다 소장을 비롯해 주요 간부들과 친분을 쌓았다.

교도소 내에서 술, 담배는 물론 휴대전화까지 자유롭게 사용했다.


“후우. 김대천이가 우리 소에는 안 왔으면 좋겠는데....”


한때 교정공무원 사회에서 김대천이 재소하는 곳마다 여러 명 목이 날아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교도관들이 이런저런 식으로 다 코가 꿰었기 때문이다.

전국 주요 교도소장 중에서 김대천과 최양동의 뇌물을 받지 않은 자가 없을 정도였다.

이전 삶에서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언더커버 소재 영화가 있었다.

일부분 최양동과 김대천의 교도소 수감 에피소드를 많이 참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복역수에게는 귀휴라는 외박이 주어진다.

그러나 최양동과 김대천은 수감 중에 교도소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허가되지 않은 곳으로 재소자가 이동하는 것은 무조건 탈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불한당>에서 최양동과 김대천이 교도소를 허가 없이 벗어나는 장면이 나온다.

전직 교도소장과 교도관들이 법원에 <불한당> 방영중지가처분 신청 및 명예훼손 고소를 걸게 되는 빌미가 된다.

사실을 왜곡했다면서.

그 만큼 송진한의 대본은 적나라했다.

그것을 기반으로 류지호의 연출이 더해지니 허구의 에피소드가 제법 실화처럼 받아들여졌다.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but the darkness has not overcome it.]

(빛이 어둠에 비치니,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

- 요한복음 1장 5절.


시련극복 메시지나 선이 악을 이긴다는 의미로 자주 인용되는 성경 구절이었다.

두 주인공은 교도소에서 장기복역하면서 빛을 만났다고 주장한다.

크리스찬이 되었다나.

그러나 그 빛이 두 사람을 구원으로 이끈 것 같진 않았다.

장기복역 후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금방 다시 교도소로 복귀했으니까.

두 주인공의 길고 긴 수감생활은 그렇게 길게 늘여놓진 않았다.

참고로 김대천은 10번, 최양동은 7번 구속당했다.

소년원까지 포함하면 각각 13번, 9번이란다.

김대천은 모두 합해 약 33년, 최양동은 약 20년의 징역을 살았다.

깡패로서 전성기는 10년 안팎.

그 외에 삶의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낸 것이다.

송진한 작가는 검찰과 언론이 암묵적으로 손을 잡고 만들어낸 조폭 신화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불한당>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싶다고 자주 강조했다.

류지호는 깡패 역사를 통해 그들 못지않은 우리 사회의 불한당들을 함께 드러내고 싶었고.

사회적 메시지를 잘 다루는 류지호와 풍자와 해학에 일가견이 있는 송진한 작가가 의기투합해 만들어가는 드라마가 <불한당>이다.


❉ ❉ ❉


[김대천이 5년 6개월을 복역하는 동안 광진파 세력이 힘을 잃었다. 그와 수하들이 사회에 있을 때는 한국의 어떤 조직도 감히 넘보지 못했다. 최양동마저 육군본부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사실상 양동파도 와해되다시피 하다 보니 서울 시내는 무주공산이 되었다. 그 빈틈을 파고 든 것이 이영재의 세력이었다. 최양동과 김대천이 수감되어 있는 동안, 이영재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1986년 출소한 김대천이 이영재를 잡으러 갔다가 경찰에 쫒기기도 했다.]


출소한 김대천이 마주한 것은 뒷골목 세계가 이영재의 천하가 되었다는 현실이다.

호남계 주먹 선배들 모두가 그의 스폰서가 되어 있었다.

스폰서들도 김대천에게 등을 돌렸다.

세 명의 주인공은 비슷한 또래이며 광주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다.

그러니 김대천과 최양동이 모시던 선배들을 이영재 역시 모셨다.

적어도 겉으로는.

두 명의 전국구 건달이 수감되어 있는 동안 이영재는 호남 주먹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데 성공했다.


1986년 6월 중순.


한강 둔치로 최고급 승용차들이 속속 들어온다.

클래식 자동차 업체 금오상사가 보유한 당시 차량들은 물론이고 동호회가 지원한 차량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실제 한강 둔치는 아니다.

여주 강변에 만들어진 축구장이다.

사방에 그린 스크린을 쳐 놓았다.

포스트프로덕션에서 당시 한양대 근처 한강 둔치를 CG로 합성할 예정이다.

소위 3대 패밀리라고 불리는 조직의 똘마니들이 한통속이 되어 속속 도착하는 차량들을 주차장 쪽으로 유도했다.

그리고 초대손님들을 본부석으로 안내했다.

금배지를 단 국회의원도 있고, 연예인도 있다.

조폭은 물론이고 저명인사, 사업가, 5공 실세, 대통령 친인척, 공무원, 검사 등 100여 명의 엑스트라들이 본부석에서 북적거렸다.

참석자들이 다들 으리으리한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모두가 금일봉을 냈다.

심지어 방명록에 실명을 기재했다.


“저건 너무 오바 아니야?”


당시 여야의 총재들까지 금일봉을 보내왔다는 설정에 김재욱이 우려를 드러냈다.


“송 작가 말로는 전직 국무총리까지 화환을 보냈다더라. 대통령도 금일봉을 보냈을 정도라던데?”


제1회 새마을축구대회.

80년대 서울 한강 둔치에서 열렸던 조폭들의 친선축구시합이었다.

자유당 시절 건달선배들부터 호남계 1세대 건달들, 감옥에 가 있는 최양동을 제외한 3대 패밀리 두목이 전부 참석한 조폭 세계의 최대 이벤트였다.

명분은 꽤 그를 듯 했다.

전국새마을조기축구협회장이자 현직 부장검사가 폭력 전과자들을 새마을정신으로 갱생시킨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속내는 전혀 달랐다.

이 행사를 기획한 것은 김대천과 이영재였기에.

일반의 시선을 의식해서 여야 정치인을 초청하고, 유명 연예인을 동원하고, 행사 사회는 유명 코미디언이 맡았다.

매해 개최되는 이벤트로 만들기 위해 ‘제1회’라고 못 박았다.

금방 흐지부지 된 행사가 되지만.


[건달 조직 간에 다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이지 않고 서로 돕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김대천의 말에 여당 실세와 검찰 고위 관계자들이 꽤나 만족스러워 했다.


[대견하구만.]


이 날의 친선조기축구대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언제나 욕심이 문제를 낳게 마련.

이 날 금일봉으로 모은 돈이 문제가 되어 김대천이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게 된다.


[조기축구대회에서 모은 돈 어떻게 했는지 불어. 그럼 몸 성히 보내 줄 테니까.]

[......]

[금일봉으로 모아진 돈이 호남출신 유력 정치인에게 흘러들어간 거잖아.]

[.....]

[지들끼리도 의리 밥 먹듯이 저버리는 새끼들이 뭣 빨랐다고 정치인에게 의리를 지켜?]


어차피 김대천으로서는 감옥에 갈 수밖에 없다.

인천의 모 호텔 청부살인과 관련해 수배령이 떨어진 상황이었기에.

김대천은 안기부의 강요에 굴복하진 않았다.

결국 또 다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야권 유력 정치인을 보호하기 위해 입을 다문 것이 아니다.

전라도가 배출한 대통령 후보를 안기부에 팔아먹는다면 건달로서의 삶이 끝장날 뿐만 아니라, 동향사람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다.

김대천은 김태평 대통령을 암시하는 인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일군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 두려웠기에 안기부의 강압에 굴복하지 않았다.


“와! 이걸 3회차에 다 끝내버리네!”


조감독 이동화가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탄성을 토했다.

스토리보드 없이 촬영을 진행했음에도 류지호의 촬영 속도는 여느 감독들과 비교불가였다.


“대사 씹힌 건 ADR 딸 거죠?”

“응. 딱히 중요한 대사도 아니고.”

“어째 영화 찍을 때보다 드라마 찍으면서 후시를 더 많이 하신대?”

“안 그럼 예산에 맞추겠냐?”

“아휴, 이제 돈 좀 팍팍 써가면서 찍으셔도 되잖아요.”

“한국영화시장이 받쳐줘야지. 나도 200억짜리 300억짜리 영화 팍팍 찍고 싶다. 네가 한국영화판 좀 키워 봐. 대작 좀 찍어보게.”

“암튼, 있는 양반이 더 하다니깐.”

“뭐 인마?”

“아니에요. 프로덕션 쫑하기 전까지는 계속 몹씬만 몰아서 찍을 거예요. 알고 계시죠?”

“엉.”

“이상하게 형하고 영화 찍으면 괜히 날로 먹는 거 같단 말이야.”


이후로 여름 배경의 군중씬을 모아서 촬영했다.

마지막 군중씬은 1990년에 김대천 등이 결성한 종교 모임 행사였다.

일반인들은 개신교와 조폭 사이를 연결 짓지 못한다.

최양동의 혼사를 주선하고 결혼예배까지 해준 곳이 여의도의 모 대형교회다.

경기도 이천 근처 기도원을 섭외해 건달 수백 명이 모인 기도모임을 촬영했다.


[어이! 최 목사 여기 와서 찬송가 384장 부르시오.]

[.....]


제 버릇 못 고친 듯 김대천이 기도모임에 참석한 목사들을 함부로 대했다.

막 ‘범죄와의 전쟁’을 대통령이 선포하던 시기였다.

이 기도모임을 통해 범죄단체 구성 혐의로 또 다시 구속된다.

그때 구속으로 그의 시대는 완전히 저물고 만다.


❉ ❉ ❉


엊그제 크랭크인 한 것 같은데 벌써 크랭크 업 날이 찾아왔다.


“류 감독하고 작업하고 나면, 내가 뭘 했나 기억이 하나도 안 나.”

“나도 그래. 한 번 필 받으면 막 몰아치듯이 찍으니까.”

“이번 드라마는 더 그런 거 같아.”

“아무래도 대사씬 전부를 멀티카메라 돌렸으니까. 한번 탄력 받으면 씬을 팍팍 떨어뜨렸지.”


특별히 복잡한 동선이 없고, 대사로만 이루어진 장면은 미술과 조명을 풀세팅한 상태에서 멀티 카메라를 돌려서 빠르게 분량을 소화했다.

하루 촬영에서 한국영화 평균 촬영 커트 수는 15~30여 개다.

씬 수로는 대략 2~3씬 정도.

물론 액션, 군중, 특수효과가 들어가는 장면은 한 장면 촬영에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참고로 지금까지 한국영화 총 커트 수 기록은 <무사>의 2,500여개.

그 기록을 올해 <해결사>가 깼다.

최종 커트 수가 2,500개를 넘게 된다.

몇 년 후 <황해>가 3000여 개 총 커트 수로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이 시기까지 한국영화 한편의 평균 커트 수는 1,000~1,200 사이.

액션스릴러 장르에서도 2,000 커트를 넘지 않는 편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보통 100분당 1,100 커트 수가 평균치로 알려져 있다.

류지호는 프로덕션 과정에서 대략 1만 커트 정도를 촬영한다.

그것들이 편집 과정에서 1,500 커트 안팎으로 압축된다.

다른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커트 수가 많지 않은 편이다.

롱 테이크를 즐겨 사용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평균 커트 길이가 긴 편이기 때문이다.

TV드라마는 일일, 시트콤, 미니시리즈, 대하사극의 하루 촬영 분량이 제각각이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쪽대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숨도 안자고 2박 3일을 논스톱으로 촬영하는 일까지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과로에 내몰린 방송 스태프가 사망하기도 한다.

김영복 촬영감독이 류지호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제 감독들 좋은 시절 다 갔어.”

“....?”

“표준근로계약이 얼추 정착되고.... 충무로가 사실... 감독이 원하는 컷이 나올 때까지 마음껏 찍는 문화였잖아. 근로시간 단체협약이 이뤄지면서 감독들이 그렇게 세트장 들어가서 날 새는 줄 모르고 찍는 건 못하게 됐잖아.”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야.”

“앞으로 입봉 하는 애들은 나 때 누렸던 호사를 못 누리는 거지.”


김영복 같이 나름 깨어있다는 촬영감독조차 마인드가 그랬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WaW는 프리프로덕션을 워낙 빡세게 하니까. 솔직히 네 영화도 그렇고 WaW 작품을 하다보면 긴장감이란 게 있어. 아침에 첫 커트 카메라 온 되고 나면 와다다다 그냥 막 달리니까....”


충무로에서는 모든 책임을 대부분 감독이 진다.

반면에 할리우드는 부서별로 책임이 어느 정도 분산되어 있다.

분업화가 잘 되어 있어서 그렇다.

촬영, 미술 같은 메인 부서뿐만 아니라 모든 파트가 자기 직무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프로덕션 진행에 대한 부담, 예정된 스케줄을 정확한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부담 등.

대부분 시간과 관련한 싸움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면 돈이 얼마나 들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2010년대에 가까워질수록 충무로 헤드스태프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특히 촬영분야에서 눈에 띠는 이들이 많이 등장했다.

영어로 원활하게 의사소통만 될 수 있다면 할리우드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적응력이 관건이다.

영화가 제작되는 공정은 세계 어디나 똑같다.

다만 국가마다 문화가 다르고 법률이 다를 뿐.

가령 충무로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는 사안이 할리우드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한국에서는 오래 걸리는 일이 미국에서는 바로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충무로 영화인들이 할리우드 진출에 필요한 것은 영어와 책임감 뿐.

재능이나 경험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다고 류지호는 생각했다.


“디지털 작업을 남들보다 조금 앞서서 하다보니까 나도 매너리즘이 생긴 것 같아.”

“무슨 매너리즘?”

“필름으로 찍을 때는 12시간 후에 나올 현상된 프린트의 결과를 모르니까 과감했던 부분이 있었거든. ‘에라~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확 지를 때가 있었어. 근데 디지털로 작업하면서 그냥 바로바로 다 보이잖아. 그리고 포스트프로덕션에서 어떻게 나올지 알아버리니까. 현장에서 그냥 뭉뚱그려서 가는 부분이 생긴 거지.”

“그래서 매번 같은 감독하고만 일하지 말고 젊은 감독들하고도 일해 보라니까.”

“불러 줘야 말이지. 젊은 감독들이 나와 작업을 잘 안 하려고해.”

“그러는 나는? 난 형하고만 하는데?”

“너는 중견감독이지 이 사람아!”

“아직 삼십대거든.”

“나이가 문제냐? 벌써 몇 편을 찍었냐?”


류지호의 필모그래피는 외국에서도 흔치 않았다.

그 정도로 다작 감독에 속하는 편이다.


“대기업 투자제작팀 실장이란 친구들이 우릴 잘 모르니까... 그리고 요 몇 년 사이에 유학파나 한예종 출신의 젊은 촬영기사들이 많이 입봉하면서 아무래도 젊은 피 쪽으로 더 시선이 가는 것도 있고.”

“한국 나이로 50이면, 촬영에 자신만의 철학이 녹아들기 시작할 때인데.... 그 부분은 많이 아쉽네.”

“한창 때는 충무로에서 도는 시나리오 절반이 들어왔던 적도 있고 그랬는데. 이제는 한 달에 한 편 받아보기도 힘들어.”

“그래도 버텨봐. 표준근로계약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영화판이 합리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젊고 혁신적인 것과 함께 경험을 중요시 하는 분위기도 존중 받을 테니까. 회차에 대한 부담과 예산 문제, 섭외 문제 그런 것들이 타이트해 지면 프로덕션에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촬영감독이 더 중요해 지게 되어 있거든. 경험이 없다보면 아무래도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환갑 넘어서까지 카메라를 잡고 싶은데 될지 모르겠다...”


세대 간 갈등하게 만드는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있은 것일까.

충무로는 이상하게 한창 물이 오를 시기의 노련한 스태프들 외면하고, 젊고 파릇파릇한 헤드 스태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제2의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였던 90년대부터 그래왔다.

영화 현장을 잘 모르는 대기업 실장들이 껄끄러운 베테랑보다 만만하게 여겨지는 젊은 스태프를 선호한다는 설명으로는 어딘지 부족했다.

경험 많고 노련한 것이 완숙함으로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으로 치부된다고 할까.


“감각만 무뎌지지만 마. 영화 모르는 애들이 충무로 들어와서 날로 먹지 않게 할 테니까.”

“네가 충무로 보안관이냐? 할리우드에 영화하기도 바쁜 놈이 무슨....!”

“WaW가 하고 있잖아. 마흔 넘어서도 조감독하는 사람도 생겼고, 젊은 친구들한테 나이 먹었단 이유로 꼰대 소리 들으며 조용히 사라졌어야 할 선배들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어. 한창 때인 형이 약한 소리하면 안 되지.”

“역시 충무로에서 의리 있는 놈은 지호 너 밖에 없다.”

“되도 않는 아부 그만 떨고. 얼른 가서 카메라나 잡으셔. 오늘도 쳐낼 분량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자 그럼, 밥 값 좀 해보실까나.....”


88서울올림픽 무드가 최고조에 달했다가, 폐막식과 함께 한풀 꺾이기 시작하던 시기.

강남구 압구정동 한 호텔 앞.

양동이파 계열의 순천지역 조직원들이 승용차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들 발치에는 길이 40㎝의 생선회칼 2개와 손도끼가 놓여 있다.

마치 저 옛날 ‘사보이호텔 습격‘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다.

호텔에서 이영재가 나오자, 그를 미행하기 시작한다.

이영재 일행이 한 식당에 도착한다.

미행했던 순천파 조직원들이 식사 중이던 이영재 일행을 습격한다.

순천파 조직원들은 이영재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회칼로 쑤셔댄다.

이영재 일행이 저항을 해보지만, 무참하게 린치를 당하고 만다.


- 불구가 됐다.

- 식물인간이 됐다더라.


다리를 집중적으로 찔렸기 때문에 이영재에 대해 온갖 루머가 주먹세게에서 돌았다.

사실은 경찰의 보호 속에서 4개월에 걸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듬해 미국으로 도피성 출국을 했다.

사실상 주먹세계에서 은퇴한 것이다.


[현실을 직시해. 이건 우리가 선택한 삶이야. 우리 모두는 천국에 가지 못해.]


Timely Comics의 최대 라이벌 AC Comics의 성인물을 담당하는 자회사에서 출판한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영화 <로드 투 퍼디션>에서 나오는 유명한 대사였다.

양동이파는 한 때 국내 최대 규모의 폭력조직이었다.

한창 잘나갈 때 부하들만 500명이 넘었다.

최양동 본인은 개인 보디가드만 4명을 데리고 다녔다.

검찰은 이를 부풀렸다.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해서 최대 1만 명까지 조직규모를 추정했다.

범광진파 역시 정관계 인사들과 친분을 맺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세를 키웠다.

결국 두 조직의 수괴들은 출세욕에 혈안이 된 검사와 선정주의 기사에 목말라 있던 기레기들에 의해 암흑가의 최고가 되었다.

그러나 집요한 표적수사의 희생양으로 전락해서 수차례나 감옥을 들락거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일반적으로 70~80년대 주먹계를 이른바 3대 패밀리 시대라고 규정한다.

한때 3대 패밀리는 국내 조직폭력계의 상징이었다.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무대에서 사라진 사람은 이영재였다.

1988년 양동이파 방계조직인 순천파로부터 다리를 난자당한 이후 미국으로 도피했다.

그의 퇴장은 3대 패밀리 시대가 막을 내리는 신호탄이었다.

김대천은 62년 인생 중 절반이 넘는 34년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다.

출소 후에는 건강이 좋지 못함에도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장기복역 출소 후에도 해외불법원정 도박, 갈취, 사기혐의 등으로 계속해서 교도소를 드나들고 있는 최양동의 사정도 썩 좋지 못했다.

뿌린 대로 거두고,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스스로가 돌려받는다고 한다.

대중문화계에서 격언이 있다.


“동기와 출발이 자연스러워야 결과도 좋다.”


얄팍하고 탐욕스럽기만 기획은 결코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없고, 결과적으로 흥행에 성공할 수 없다는 충고다.

미국에서 <Christmas Cargo> 포스트프로덕션이 마무리 단계를 앞두고 있는 시기에, 한국에서도 <불한당> 프로덕션의 대장정이 서서히 마무리됐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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