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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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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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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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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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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만수무강(萬壽無疆).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신종플루가 한국에 막 상륙하던 시기였다.

치명적인 감염병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기관에 대해 류지호의 고민을 헨리 게이츠에게 털어놨다.

그 문제와 관련해 대화를 나눠보자며, 헨리 게이츠가 얼마 후 한국으로 날아왔다.

지난 2001년 이후로 8년 만에 한국 재방문이었다.

마침 정의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할 예정이었는데, 겸사겸사 한국에서 머물고 있는 류지호와도 조용히 만나기로 했다.

류지호에게도 청와대 초청장이 전달되었다.

미국시민이 된 후로 처음으로 청와대를 방문하게 됐다.

청와대는 IT계의 거물 그리고 글로벌 투자거물과 대통령이 면담한다고 공식 발표하고, 주요 의제가 차량IT 및 게임 분야 글로벌 협력 방안이라고 밝혔다.

특히 대통령과의 면담 이후에 국내자동차 회사 및 정보통신연구원 등과 '차량IT혁신 센터 건립' '글로벌게임 허브센터 건립'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라고 홍보했다.


“정보통신산업분야에서 한국 국민과 정부가 이룩한 놀라운 성과는 한국을 파인소프트의 글로벌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에서 매우 중요한 협력 대상으로 올려놓기에 충분했습니다. 앞으로 파인소프트는 한국정부 그리고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헨리 게이츠는 구체적인 투자액으로 1억 5천만 달러를 언급했다.

헌데 청와대는 7조원의 경제유발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며 설레발을 쳤다.


“정보통신연구진흥원 그리고 경일자동차그룹과 차령 IT혁신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지요?”

“그렇습니다. 아울러 3년 동안 관련 중소기업 60개를 육성해 최소 2개 이상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기로 했습니다.”


사실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뿐이다.

실제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류지호도 간간이 참견해서 몇 가지 충고를 전했다.


“2010년대에 차량 IT시장이 4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산업계에서 적어도 10%를 확보하기 위한 협력기반을 속히 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헨리 게이츠의 관심사항은 사실 자동차산업이 아니었다.

2,3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글로벌게임허브센터가 더 관심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영 맥을 못 추고 있는 PS의 콘솔게임기 시장 확대를 위해서.


“산업은행이 Rehman 인수를 못해 섭섭하십니까?”

“세계 4위 권의 대형투자은행을 우리나라 은행이 M&A 하는 일은 쉽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니까요.”

“듣기로 기업 실사를 스탠리모웬에 맡겼다고 들었습니다. 최종 협상 전에는 골드만대거스에도 의뢰하고.”

“그랬다고 보고 받았지요.”

“월스트리트 혹은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은 ‘이면계약‘ 비슷한 조약들을 통해 복잡하게 잠재적 위험 요인을 숨겨놓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합법과 불법을 교묘하게 줄타기 하는 회계기법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지요. 그런 짓을 아주 자연스럽게 펼치는 엘리트들이 널리고 널린 세계가 월스트리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투자은행 기초가 전혀 없는 한국의 금융권에서는 Rehman Bros 같은 고도의 사기꾼 집단을 제대로 실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은 종종 한통속처럼 움직인다.

지분 3.5% 이상을 서로가 나눠 보유하고 있어 한통속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고.

Rehman Bros 처리를 놓고 모인 20여 개 금융사들이 주주이거나 채권자였던 것에서 알 수 있다.


“잘 포기 하신 겁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미국발 금융위기와 함께 Rehman 뒤치다꺼리 하다가 제2의 IMF가 왔을지도 모릅니다.”

“......음.”

“한국인인데 월가 출신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 죄다 허당들입니다. 믿지 마세요. 진짜 월스트리트를 경험한 사람들은 한국에 안 옵니다. 월가 커리어 내세우는 작자들 대부분이 수박 겉핥다가 온 것 뿐. 한국의 경제관료들 중에 똑똑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한가지 우려되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요 낡은 경제이론에 너무 매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 신년사에서 대통령께서 정부 2년 차에 검증받은 성적표는 결국 경제성적이라고 하셨습니다. 틀린 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정부의 치부를 까발리거나 혹은 정적에 대한 보복의 짜릿함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지나보면 ‘서민 배불리 먹고 걱정 없게 해달라‘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 아니겠습니까? 그거 해결하면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실 겁니다.”


대통령이 화제를 돌렸다.


“GD증권이 본격적으로 투자은행 체제로 전환했다고 알고 있어요. 정부의 기대가 무척 큽니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경쟁력 있는 글로벌 사업 조직의 기틀을 확고히 한 것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미국의 월가를 중심으로 기존 5개국 6개 거점에서 10개국 13개 거점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GD금융투자의 전신인 가온GP투자는 90년대 이미 미국과 홍콩, 일본에 진출해 현지 지점에 260명이 근무 중이고, 해외 법인 자본규모가 대략 1조 5,000억 원에 달하고 있다.

이번에 금융부문 사업에서 기업명 교체부터 조직 개편까지 대대적인 혁신작업을 통해 IB사업 강화와 함께 유럽권 해외 거점 진출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모쪼록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뻗어나가길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의국 대통령은 헨리 게이츠와 류지호에게 대통령 국제자문위원 위촉을 제의했다.

두 사람 다 흔쾌히 수락했다.

헨리 게이츠는 자문위원으로써 ‘자기혁신’을 강조했다.

은근슬쩍 정의국의 ‘친 기업가’ 성향을 칭송하며 한국의 미래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냈다.

류지호는 주로 한국경제에 대해 고언을 전했다.

특히 작년부터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저축은행 부실문제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했다.

류지호가 기억하기로 저축은행 사태는 2011년에 삼화저축은행 부실기관 지정을 시작으로 여러 저축은행들이 연속적으로 영업정지를 받는 사건이었다.

2011년 한 해에만 15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다.

그로 인해 뱅크런(대규모 현금 인출)이 일어나기도 했다.

예금자보호 한도액 5,000만 원 이상 예금을 보유했던 예금자들과 후순위채권을 매입한 고객들도 피해를 봤는데, 추산 피해자만 10만 명에 이르렀었다.


“아시다시피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시장 구조가 재편되면서 저축은행들이 부동산 PF 같은 고위험 자산투자를 확대하지 않았습니까? 정부에서 낸 자료를 보니까 저축은행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 45%를 넘어섰고 PF 대출에도 17%를 웃돌아 내년에는 20%에 육박할 것이라고 보고 받았습니다. 어디라고 특정해서 말씀드릴 순 없지만, 지방의 모 저축은행의 PF대출 비중이 곧 70%에 도달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축은행의 주수익원으로 자리 잡은 PF여신이 때마침 불어 닥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대규모 리스크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는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 그리고 PF 대출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전 삶에서 예금보험공사는 31개 부실저축은행에 대해 파산절차를 진행했다.

이를 위해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대한 대규모 자금 투입을 위해 상호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을 설치했는데, 저축은행 부실 사태 수습을 위해 특별계정으로 27조2000억 원이 투입됐다.

류지호가 얼어 죽는 시점까지도 2011년 풀린 공적자금의 회수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경제관료들과 금융계에서 저를 두고 욕을 하겠지만. 감히 청원 드립니다. 금융감독원을 통해 80개가 넘는 저축은행에 대한 전수조사를 조속히 시행하십시오. 한꺼번에 부실 저축은행이 터지는 것보다 시간을 두고 하나씩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실사태가 본격적으로 터졌던 2011년 이후 5년간 파산한 부실 저축은행만 30곳에 달했다.

폭탄이 터지기 전에 미리부터 가장 부실이 큰 저축은행부터 순차적으로 처리해 나간다면 이전 삶의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을 터.


“마지막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것이 단순히 한반도 지정학적 위치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아실 겁니다.”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정의국은 재벌들과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하다가도 종종 각을 세울 때가 있다.

보수 대통령임에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추진할 정도로 경제 분야에서 개혁적인 성향을 유감없이 드러내서 재벌과 보수언론을 당황시켰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으로, 주주들의 적극적 의결권 활동을 뜻한다.

즉 주요 기관투자자가 주식을 단순히 보유하는 데서 벗어나, 기업의 경영활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결권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한국의 상법은 재벌대기업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법에서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여야 한다’라는 충실의무 조항이 있는데, 그 것에 ‘그리고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이라는 문구만 하나 더 넣으면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즉 대표이사를 포함해 사외이사까지도 회사(혹은 재벌)를 위해 일하는 동시에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재벌 위주의 의사결정에 반할 수가 있게 된다.

만약 그런 성실의무를 반했다면 주주들이 소송을 통해 판례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 입법부터가 일반주주 권리를 보장해주는 시작이다.

그렇게 재벌 거수기 노릇하는 이사들의 행동을 제어하고, 주주이익에 심대한 침해인 한국 대기업의 악질적인 물적분할 상장도 줄일 수 있다.

암튼 이전 삶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8년 7월 국민연금이 도입한 이래 약 146개의 기관투자자들이 참여했다.

국내 4대 연기금으로 불리는 국민연금기금(약 800조), 공무원연금(약 11조), 사학연기금(약 19조), 우정사업본부(약 137조)에 모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가 사실상 불가능해 질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정의국 대통령이 재벌들에게 스튜어드십 코드와 자사주 의무 소각 중에 택일하라는 협박을 했다는 이야기가 증권가 찌라시로 돌기도 했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흐지부지 되었는지 류지호도 알지 못했다.

딱히 관심도 두지 않았고.

가온경제연구소에서는 한국에서 자사주 의무 소각이 시행된다면 주가가 15~3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재벌들이 수용할 리가 없다고 확신하면서.

재벌들은 자사주를 통해 다른 재벌과 주식교환 형태로 우호지분을 늘리는데 활용하고 있다.

당장은 실현될 리가 없다.


“개인적으로 대통령님의 경제정책을 전부는 아니지만 일정 부분 지지합니다. 특히 일반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추진이 감명 깊습니다. 그 길이 부동산에 올인하는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이란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런 면에서 가온이 주식시장에 들어온다면 국민주가 될 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하하. 예....”


함부로 대답할 사안이 아니기에 류지호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어떤 정부든 나라 경제를 박살내려고 정책을 펴지 않는다.

반재벌 정서로 똘똘 뭉친 진보정부라고 해서 공산주의적 국가주도 경제를 시행하는 것도 아니다.

재벌의 지배를 민주적으로 바꾸기 위해 정책을 펼 순 있어도 그들이 소유한 기업을 해체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

진보정부도 어느 정도 재벌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한다.

재벌의 협조 없이 한국경제의 문제를 논할 수가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가 함께 맞물린다는 걸 알고 정책을 펴야 하는데.

따로 분리해서 운영할 수 있다고 정치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 보니 대외적인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고 국내 정치적 관점에서만 경제문제를 다루다 보니 국익 우선이 아니라 권력 우선이 되어버리고 만다.


‘정의국 대통령은 한반도 운하사업 같은 뻘짓은 안 해서 다행이야.’


치수사업은 왕조시대부터 국가를 통치하는 모든 권력자들이 행해오던 국가 중요 시책이다.

치수와 관련해서 애민에 그 의의를 두었지, 그 어떤 통치자도 치적으로 삼으려고 한 예가 없었다.

따라서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정치인 정의국으로서는 치수 관련 예산을 조금 더 신경은 쓸지언정 한반도 곳곳을 운하로 연결하겠다는 무모한 정책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한국의 대통령들이 잘했건 못했던, 임기 말기에 무조건 욕을 먹는 것은 먹고살기 힘들어서다.

이전 삶에서 보수 집권기에 강을 파헤치고, 말로만 ‘창조경제’라며 뻘짓만 일삼느라 허송세월하며 한국의 미래가 저당 잡혔다.

그 사이 선진국과 주요 경쟁국들은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시스템 반도체, 신재생에너지 같은 4차 산업혁명을 향해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주택자산은 전재산이자 자녀교육 문제까지 얽히고설켜 있다.

한 가정의 온갖 명운이 걸린 게 대한민국의 주택이다.

이런 주택의 거품을 빼겠다고, 투기를 끝내겠다고, 모든 정부가 호언장담하며 칼을 빼든다.

현실은 그리 호락하지 않다.

정부의 의지와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경제 구조적인 문제와 허점들이 난맥상처럼 얽혀 있다.

특히 60대 이상 유권자의 자산비중이 주택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한은 그 어떤 정치인도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치권 스스로는 절대 주택문제 해결할 수가 없다.

제2의 IMF가 오지 않는 한은.


‘대통령이 레임덕 때문에 저축은행 사태를 차기 정부로 떠넘기지 않아야 할 텐데.....’


주가지수 3000, 3050클럽 가입 공약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야 했다.

그보다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안정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정의국 정부의 선결과제이다.

헨리 게이츠와 류지호라는 거물을 청와대로 초청한 것은 한국경제는 문제없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연출이다.

정식 계약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양해각서 하나 체결하고, 겨우 몇 백 억짜리 게임산업 관련 투자하고.

사실 그리 대수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일부 국내 IT산업 관계자들은 청와대와 PS 그리고 가온그룹측이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차량IT 및 게임 산업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기대했다.

특히 PS는 지난 2007년에 국내 온라인 게임산업에 3,400만 달러 투자계획을 언급한 적이 있어서, 그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가온그룹은 새만금에 조성중인 혁신도시에 차세대 게임기(VR) 개발을 비롯한 게임산업벤처타운을 구상 중이라고 밝혀 업계를 술렁이게 했다.

PS 코리아가 2004년부터 투자해 왔던 교육정보화지원프로그램에 가온그룹이 향후 5년 간 1,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어쨌든 헨리 게이츠는 대통령과 면담 후, PS 코리아의 '코리아 이노베이션 데이 2009' 행사에 참석해 약 30분간 연설을 했다.

연설 이후 고객 및 파트너와의 간단한 면담 시간을 가진 뒤 모처로 이동해 류지호를 따로 만났다.

한국 대통령과의 만남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해 류지호와 의견을 나눴다.

주로 논의된 것은 류지호가 구상하고 있는 전염병 전문연구시설 건립과 헨리 게이츠가 추진하고 있는 기부 서약(Giving Pledge) 이슈였다.

Rehman 사태 이후 미국의 부도덕한 금융권과 부자들이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당초 기부서약에 미온적이었던 신흥부자들이 참여 의사를 속속 밝히고 있다.

그런데 비공식 세계 최고 부자로 알려진 류지호는 그 문제에 있어서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기부서약을 추진하고 있는 헨리 게이츠와 에드워드 버펫의 애를 태우고 있다.


“살아생전에 버는 만큼 다 쓰고 죽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자식들 적당히 나눠주고. 생전에 번 돈 다 쓰고 죽을 거야.”


류지호가 친구들에게 한 말이었다.

올해 3월이었다.

신흥부자의 리더격인 헨리 게이츠가 상속가문의 맏형격인 로커펠러를 만났다.

11월에 열리는 뉴욕 공공도서관 만찬 행사에서 사회를 부탁했는데, 로커펠러가 흔쾌히 동의했다.

당연히 류지호도 초청을 받았다.

세계 최고 부자 3인 방은 물론이고 전통의 상속가문 대표, 뉴욕 시장과 월가 헤지펀드의 전설, 방송미디어업계의 권력자, 오피니언 리더 등.

만찬 행사에는 단 40명 만 초청되었고, 돌아가며 15분 연설이 주어졌다.

헨리 게이츠는 류지호에게 ‘휴머니즘’에 대한 연설을 콕 집어 부탁했다.

류지호는 사스와 신종플루 등 일련의 전염병 팬데믹에 관한 자신의 견해와 함께 민간전문 전염병연구소와 백신개발회사 설립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할 생각이다.

사실 이 모임은 헨리 게이츠와 에드워드 버펫이 추진하고 있는 기부 서약(Giving Pledge)의 사전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즉, 그 날 참석하는 주요 인사들을 설득해 기부 서약의 멤버로 만들 속셈이다.

참고로 2010년 5월에 가서야 기부서약 계획이 공식적으로 발표된다.

그때까지도 류지호만 기부 서약 참여를 약속하지 않는다.

류지호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다만 대부분의 참여자들의 검은 속내까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 ❉ ❉


헨리 게이츠가 떠나고, 일주일이 흐른 어느 화창한 일요일.

여주와 이천 지역 화원들이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가남읍 가온타운 류자 민상씨 댁이요?”

“보내시는 분이 이연수 국회의원실이라고요?”

“이천시장님과 시의회요?”


때 아닌 화환 주문으로 단 하루 주문양만으로 1년 치 매출을 달성했다.

고희연 축하화환이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류민상이었다.

미스터 할리우드라고 불리는 한국이 배출한 불세출의 억만장자의 부친 고희연에 축하화환 주문이 폭주했다.

화환은 여주·이천 지역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한국유네스코요?”

“홀트아동복지재단이라고 적으면 됩니까?”

“어디요? 오성그룹 회장실이요?”

“무슨 그룹이요?”


류지호와의 인맥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이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화환을 보냈다.

다울재단에 신세를 지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아버지의 칠순잔치에 빠질 수는 노릇.

미국에서 머물고 있던 류순호는 예비신부와 함께 만사 제쳐두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사실 올해는 류지호 집안에서 여러 경사가 있을 뻔했다.

부친인 류민상의 칠순잔치.

순호·아라 남매의 결혼식이 봄과 가을에 각각 잡혀있었다.

아쉽지만, 결혼식은 내년으로 연기되었다.

신종플루 때문이다.


“엄마. 저희 왔어요!”

“어서 와라. 아들! 며느리!”

“예. 어머니, 잘 지내셨어요?”


심영숙이 둘째 예비부부를 반갑게 맞이했다.

류순호와 신예림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함께 살고 있다.

혼례를 올리지 않았지만, 사실상 며느리 대우를 받고 있다.


“오빠, 일찍 좀 오면 안 돼?”

“공항에서 곧바로 온 거야. 나도 형만큼 바빠.”

“아빠 칠순잔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단 말이야?”

“웬 시비냐?”

“그냥... 우리 남매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아. 아빠엄마한테 너무 무심한 거 같아서.”

“어쭈? 낼 모레 서른이라고... 어디서 효녀인 척 해. 안 어울려.”

“벌써 칠순이라잖아. 우리 아빠가!”

“헛소리 말고 빨랑 비켜. 문 막고 있지 말고.”

“새언니도 얼른 들어와요.”

“조촐하게 한다면서 잔치를 집에서 해도 되겠구만, 뭘 호텔에서 한 대?”


칠순잔치를 여주 가온호텔 컨벤션홀에서 하기 했다.

처음 계획은 친한 지인들만 초청해 여주 부모님집 마당에서 조촐하게 치루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울재단 직원들을 통해 알음알음 칠순잔치 사실이 알려졌다.

사방에서 칠순잔치에 참석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다.

누구는 초청하고 누구는 초청하지 않으면 오히려 실례가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 지인들만 초청한다고 했음에도 200여 명이 참석하게 됐다.

하는 수 없이 호텔 대연회장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점심 먹자!”


명절도 아닌데 실로 오랜만에 전 가족이 모였다.

여느 때처럼 식구들이 상차림에 손을 보탰다.

자식들이 번거로우니 외식을 하자고 해도 굳이 집에서 집밥을 챙겨줘야 하는 심영숙이다.

집안 살림을 돕는 도우미가 세 명이나 있지만, 자식들 식사는 언제나 손수 준비했다.

심지어 고희연 상차림에 올라가는 음식 일부까지 손수 장만할 정도다.


“일하는 여사님들한테 다 맡기셔도 되겠구만.”

“너희들도 부모 돼봐. 엄마처럼 안 하나.”


이전 삶부터 심영숙은 자식들 먹는 것에서 만큼은 유난스러웠다.

세상 안 그런 부모가 어디 있겠냐마는.

어쩌면 심영숙은 자식들이 어린 시절 못 먹이고 못 입혔던 시절의 한을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사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휴. 오빠가 세계 최고 부자유. 어디 가서 굶을까.”

“이것아, 그래도 그런 게 아니야. 너도 자식 낳아봐. 행여나 자식이 밖에 돌아다니면서 끼니 거르지 않을지 걱정이 되나 안 되나.”

“오빠는 식탐은 없지만 아침까지 꼬박꼬박 챙겨서 먹을 걸? 안 그래 오빠?”


류지호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암튼 며느리가 둘이나 식구로 들어왔음에도 언제나 주방은 심영숙의 공간이다.


“잘 먹겠습니다!”


류순호 부부는 설 명절에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둘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식사 내내 이것저것 질문이 쏟아졌다.


“오랜만에 집밥 자알 먹었어요, 엄마.”


점심 식사를 마치고 후식을 즐기는 사이 외가 식구들이 하나둘 저택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사돈.”

“축하드립니다. 민상. 하하.”


류지호의 장인장모까지 전용기편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60세 이후로 10년 주기로 생일파티를 성대하게 치룬다며?”


장인 제임스 파커의 물음에 류지호가 대답했다.


“예부터 한국에서는 60이란 나이가 육십갑자가 돌아오는 나이라고 해서 살아있음을 기념하는 생일잔치를 크게 열었대요. 70살도 마찬가지구요. 갑자라는 개념을 쓰는 동아시아에만 있는 생의 최대 이벤트죠.”


미국에서는 장수를 기념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 60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 기념일이란 것이 있다.

서구권에서는 예부터 결혼기념일에 기념할 만한 선물을 주는 관습이 있었는데, 은혼식(25주년), 금혼식(50주년)이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고, 60년과 75년을 기념할 때는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당연히 해당 기념일에 성대한 파티를 연다.


“저희 부부가 두 분께 다이아몬드 선물할 수 있게 백년해로 하세요.”

“그래야겠지....”


칠순잔치 시간이 다가오면서, 초대된 손님들이 하나둘 호텔 연회장 자리를 채웠다.

예비사돈 가족들과 사인방 가족들도 찾아오고, 많은 이들이 류민상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왔다.


“의원님이 어떻게....?”

“이사장님 칠순이시라는데 어떻게 참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


축하를 건네는 인사는 포천연천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야당의 최고위원이이자 유력한 당대표 후보이기도 하고.

한때는 대선주자 물망에도 올랐던 인물이다.

그 외에도 여주·이천 지역구 여야의원과 중앙당 정치인 및 고위공직자들의 방문도 잇따랐다.


“신종플루 때문에 모두가 조심하는 시국에...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한국은 나름 신종플루 초동 대처를 잘했다.

워낙 대처를 잘 해서 언론에서는 감기보다 약한 질병이라 크게 위험한 전염병이 아닌 것으로 판정되었다고 했을 정도다.

마침 류민상의 칠순잔치가 열리는 이즈음은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늘 참석한 하객 중에서 신종플루에 걸린 사람이 한명이라도 나온다면 큰일인데 말이다....”

“보세요. 다들 마스크도 잘 쓰고 있잖아요. 아버지는 걱정 마시고. 잔치 즐기세요.”


더운 날씨임에도 방문객들 모두가 덴탈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곳곳에 비치된 손세정세로 수시로 손을 닦는 모습도 보이고.

또한 방문객에 대한 체열검사와 방문록 작성을 철저하게 시행했다.

한국정부는 류지호가 기부한 타미플루를 북여주 보건소에 우선 배정하는 성의를 보였다.

신종플루는 일종의 독감이다.

감염 환자가 기침과 재채기를 하면 다른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고 고열과 근육통, 구토와 설사 등의 증세를 보인다.

치사율은 0.07% 정도.

사스가 10%, 메르스가 40%. 에볼라가 25~90%의 치사율을 보이는 것과 달리 신종플루의 치사율은 낮은 편이다.

다만 전파력이 무시무시한 것이 문제일 뿐.

신종플루만 아니었다면 성대하게 칠순잔치를 치렀겠지만.

그 또한 팔자려니 했다.

동생 류순호가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간 진짜 빨리 간다. 벌써 아버지가 칠순이라니....”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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