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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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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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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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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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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이 사건에서 국가는 책임이 없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는 닷새 간 실리콘밸리에 머물렀다.

그 기간 동안 매일 네트워킹 파티를 열었다.

먹고 놀고 마시는, 놀자판 파티가 아니다.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한 사교파티다.

스타트업 종사자들의 친목도모는 벤처 네트워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실리콘밸리 사교파티가 매우 빈번하게 열리고 있다.

대부분의 파티는 거창하진 않다.

동네 작은 레스토랑이나 각 회사 사무실에서도 열린다.

스타트업을 준비하거나 창업했거나 근무하는 이들은 가능한 많은 사교파티에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일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가면서.

사업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연 대부분이 사교파티에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류지호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주요 엔젤투자자와 슈퍼스타들도 네트워킹 파티를 자주 연다.

크든 작든 규모는 중요치 않다.

현역 스타트업 종사자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다.

그런 파티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 투자를 하기도 한다.

그런 투자가 먼 훗날 대박을 안겨주기도 한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사교파티는 정장차림이 드레스코드다.

반드시 타이를 착용해야 하는 격식 있는 분위기다.

반면에 실리콘밸리 파티는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다.

일하던 복장 그대로 오는 이들이 많다.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한 손에 맥주를 들고는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분위기다.

너나없이 편하게 파티를 즐기다가도 갑자기 특정 의제를 놓고 즉석 토론이 벌어질 때도 많다.

때문에 관련 지식이 없거나 주제에 공감을 못하면 파티가 지루할 수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사업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본인과 맞는 분야의 그룹이 아니라면 대화에 끼어들기도 힘들다.

성격이 적극적이고 사교적이지 않으면 겉돌 수도 있고.

일반인들에게는 재미도 없고 얻는 것 하나 없는 그저 그런 사교파티다.

그럼에도 파티에 참석한 실리콘밸리 종사자들의 열기는 제법 뜨겁다.

JHO Ventures Capitals의 CEO 로널드 윌리엄스는 대학을 갓 졸업한 것처럼 보이는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런 이들을 향해 진심으로 충고했다.


“정장차림은 투자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사기꾼일수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도록 해.”


제아무리 실리콘밸리에서 닳고 닳았다고 해도.

사교파티에서 사기꾼을 구별해내기란 쉽지 않다.


“사람을 만나고 친목을 쌓는다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면 괜찮겠지만, 큰 기대를 가지고 사교파티에 간다면 시간낭비일 가능성도 높아. 하지만 너희들처럼 실리콘밸리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는 이들에게 인맥 혹은 사교라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자 중요한 비즈니스 수단임을 잊어선 안 돼.”


로널드 윌리엄스의 말을 듣고 있는 청년들은 JHO VC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속해 있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다.

청년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실리콘밸리의 주요 행사 대부분이 참가자들의 네트워킹 파티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매주 그런 곳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맞아. 자네들은 앞으로 바쁜 시간을 쪼개 그런 파티나 행사에 자주 참석을 해야 돼. 모임이나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여 그 행사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서로가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거나 필요한 사람을 소개해 주기도 하니까. 운이 좋으면 뛰어난 엔지니어를 만날 수도 있고, 더 운이 좋으면 저기 미스터 할리우드 같은 실리콘밸리 엔젤과 인연을 맺을 수도 있지.”

“미스터 할리우드가 개최한 파티라서 그런지 거물들이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류지호가 호스트인 네트워킹 파티는 그 규모가 실리콘밸리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대형 이벤트다.


“그렇지 않아. 실리콘밸리 슈퍼스타들도 소규모 파티에 격식 없이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야. 너희 같은 애송이들과도 격식 없이 토론도 벌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업계 동향을 파악하지. 너희들도 성공한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들처럼 하게 될 거야.”


이제 막 실리콘밸리에 입성한 젊은 창업자들은 그 역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풍경에 감동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리콘밸리는 광활한 초원이 아니다.

일종의 동물원 같은 곳이다.

외부에서 실리콘밸리의 수평적 조직체계에 열광한다.

막상 그 안에서 5년만 생활해 보면 숨이 턱 막혀 질식할 것 같은 공포가 찾아올 것이다.

말이 좋아 스타트업이고 벤처다.

실상은 남의 돈으로 해보는 사업 실험이다.

성공하면,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한 모든 죄가 용서가 된다.

그렇기에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다 벌어진다.

내가 살기 위해 경쟁자가 될 만한 기업을 집어삼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GARAM Ventures는 JHO VC와 Sequa Capital에 훨씬 앞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투자생태계의 초석을 닦았다.

류지호가 실리콘밸리에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나 지금이나.

20대의 건강과 열정만 넘치는 애송이들이 아이디어 하나로 투자를 받는 기적을 일으킨 후에 쓰레기 더미 같은 사무실에서 하루 스무 시간 이상 코드를 프로그래밍한다.

1%도 안 되는 성공사례의 주인공이 자신이 될 것이라 믿으며.

대부분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생활은 처참하기만 하다.

JHO와 Sequa 인튜베이팅에 들어간 이들은 그나마 낫다.

실리콘밸리 3대 VC에서 인큐베이팅을 받는 스타트업은 벤처업계의 성골 취급받고 있다.

이 시기 증권거래소 상장에 성공하거나 대기업에 매각되는 스타트업의 80%가 JHO, Sequa, KPC&B 3대 벤처캐피탈과 인맥으로 엮여 있다고 보면 된다.

실리콘밸리의 숨겨진 왕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는 류지호.

수많은 창업자들이 그의 은총을 학수고대한다.

그런데 류지호의 도움을 받는다고 끝이 아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겨우 자리를 잡는 순간... 그때부터 진정한 고난이 닥친다.


절망의 골짜기!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투자자와 벤처캐피탈의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며 그들과 줄타기 하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곳곳에서 수십 번의 투자설명(Pitch)을 하고, SNS에서 노이즈마케팅을 일으켜 홍보를 하고, 때론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등 갖가지 고난을 겪는 시기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 시기를 거쳐 살아남게 되면 천국이 기다리고 있을까.

천만에 말씀.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것이 대기업이나 투자자에게 회사를 파는 과정이다.

그런 행복한 결말은 그리 많지 않다.

동업자와 지분, 권한 또 누가 더한 권력을 행사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이 불거진다.

그리고 창업 파트너들을 모두 쫒아내면 비로소 독재가 시작된다.

제 2의 잡스가 되는 것이다.

절대 권력자가 되어 직원들을 착취하고 독선적인 경영을 한다.

각종 미디어와 SNS에서 슈퍼스타로 포장된 젊은 실리콘밸리 영웅들은 20대에 천만장자가 되고, 30대에 억만 장자가 되며, 40대에는 조용히 언론에서 사라진다.

사람들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고 찬양한다.

천만에 말씀이다.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폰’조차 이전에 없던 것이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기존의 있던 것을 영리하게 융합한 것이다.

그 영리함을 혁신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겠지만.

류지호가 보기에 할리우드 슈퍼스타와 실리콘밸리 슈퍼스타들은 서로 닮았다.

스타트업 스타들은 기술적 문제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문제가 아니라 리더를 어떻게 세우고 지분과 권한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등의 인간적 문제로 더욱 많은 고민과 시간을 쓴다.

동업자들과 암투를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두게 되면 하나 같이 잡스병에 걸리는 것도 공통점이다.

남의 성과를 자신의 것 인양 내세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직원을 착취하면서 마치 그런 것이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인 실리콘밸리 문화라고 포장한다.


“그런데 윌리엄스씨....”

“무엇이 궁금한가, 병사.”

“미스터 할리우드는 왜 JHO를 증권거래소에 상장하지 않는 겁니까?”

“할 필요가 없으니까.”

“지배력 감소를 우려하기 때문입니까?”

“나의 보스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단지 기업공개로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동성자산이 매우 풍부하다는 것, 지금에 와서는 JHO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 마지막으로 나의 보스는 JHO와 가온이 없더라도 이미 세계 최고 부자라는 것. 돈을 버는 것보다 JHO와 가온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분이시지.”


젊은 창업자들이 휘파람을 불며 놀람을 대신했다.


휘이익~


권력은 원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권력은 이미 약화된 권력이다.

그런 면에서 류지호의 금력(金力)은 무시무시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재산이 훨씬 많기에.

오죽하면 그 지독한 미국의 국세청도 류지호의 재산을 한눈에 다 파악하지 못한다고 할까.

류지호 재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의 기업은 비상장회사다.

기관마다 기업가치 평가가 제각각이다.

류지호도 자신의 재산을 일일이 따지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변동성이 매우 크다.

중요한 사실은 두 비상장 그룹의 가치평가액을 뺀 각종 금융자산 및 부동산과 저작권 수입만으로도 류지호는 능히 세계 최고 부자라는 사실.


“물론 영국 왕실, 중동의 왕가, 북한의 독재자, 러시아의 짜르 같이 국가단위 재산을 보유한 이들을 제외했을 경우에.”

“Financial Times에서 미스터 할리우드의 재산을 1,500억 달러(약 180조)라고 추정하던데... 자산관리사로서 윌리엄씨도 모릅니까?”

“난 보스의 재산의 일부만 관리하고 있을 뿐이라네.”


로널드 윌리엄스는 자신의 보스가 진짜 권력자라고 믿었다.

진짜 강한 권력은 타인의 미래를 봉쇄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억압하고 강제하는 것은 가짜 권력이지.’


그가 생각하는 권력은 복종하려는 사람 스스로 권력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하고, 권력자의 의지를 마치 자신의 의지처럼 여기고 알아서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권력은 사회적으로나 관계자들 사이에서 인정될 때 그 힘이 구체적으로 발휘된다.

류지호가 가진 권력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스스로 권위에 복종하도록 한 사례 중에 하나가 한국의 여가부가 ‘강제적 게임 셧다운’ 입법을 포기하도록 한 일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다시 한 번 류지호가 가진 힘과 권위를 실감할 수 있게 됐다.


❉ ❉ ❉


[출산 전후의 임산부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원인 미상 폐손상 증후군’이 ‘가습기 살균제’(세정제)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건당국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4~5월 출산 전후의 산모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난 원인 불명의 폐손상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병실용 가습기의 살균제가 유력한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국은 국민에게 가습기용 살균제에 대한 사용 자제를, 제조업체에는 살균제 출시 자제를 권고했다. 때문에 문제의 폐질환이 사람을 통해 전파된다는 항간의 소문은 불식되게 됐으나 소비자들의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YNTV 뉴스라이브.


이전 삶에서 여러 사회적 참사 가운데 최악 중 하나로 꼽힌 중대 사건.

바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었다.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류지호는 궁상맞게 살던 시기였다.

따라서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이 사건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사가 진행되었던 것은 2016년.

IPTV 에로영화판을 전전하며 죽지 못해 살고 있던 류지호로서는 내 가족도 아니고 남이 당한 불행에 함께 분노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사실 류지호 부부가 가습기를 사용할 일은 없다.

다만, 한인교포 일부가 가습기를 사용하긴 한다.

그러던 차에 미국에서 발행되는 한국신문을 통해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 결과를 접하면서 류지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자녀를 둔 아빠이기에 민감하게 다가왔다.

올해 4월이었다.

대한민국이 가습기 살균제 파문으로 들끓었다.

지난 1994년 11월부터 선경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를 최초로 판매를 시작한 이래로 많은 기업들이 앞 다퉈 가습기 살균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가습기가 생활필수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올해까지 약 20종의 가습기 살균제가 연간 60만 개 이상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언론에서는 별 의심 없이 제품을 홍보하고 광고를 해주었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소비자들이 원인 모를 폐병으로 죽어갔다.

폐가 점점 굳어 가는데 약을 먹어도 회복되지 않았다.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어 버리더니 이른바 ‘소리 없는 죽음’이 이어졌다.

결국 질병관리본부가 원인 불명의 폐질환에 대한 역학조사를 벌였다.

중간발표를 통해서 사건의 실체 일부가 드러났다.

원인불명 폐질환으로 사망자가 처음 발생한 후 무려 9년 만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밝혀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미 2003년 호주 수출을 위한 물질안전통보에서 인체 흡입에서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보고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보고가 묵살됨으로써 피해를 더욱 키우고 말았다.

언론의 직무유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초기부터 피해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시민단체도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럼에도 공론화가 되지 못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파는 대기업 광고주들의 눈치를 본 언론사의 외면 때문이다.


“이래서 내가 언론을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최초로 질병관리본부 발표가 있을 후부터 문제의식을 가졌어야 했다.

비록 늦었더라도 취재역량을 집중했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은 이슈 따라가기 보도만 했다.

보도의 양은 많았다.

그저 진행상황만 보도하는 양태를 띠었다.

심층취재나 탐사보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류지호로서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어쨌든 가습기 살균제 6종의 제품을 수거조치 했다.

국무총리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사건의 실체에 대한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생산 업체들에게 허위 광고로 과징금 5,000만원이 부과됐을 뿐.

피해자들은 개별적인 소송과 시위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개별적인 소송에 들어갔다.

돌아온 법원의 대답은 슬프면서 분노를 유발했다.


[이 사건에서 국가는 책임이 없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연관된 대기업들이 전사적으로 로비를 펼친 덕분이다.

심지어 대학실험 결과까지 조작했다.

국내 대기업들은 영국계 생활용품기업 레킷벤키저의 뒤에 숨었다.

외국기업을 앞세워 처벌과 비난에서 비껴나갔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는 선경케미컬과 AG산업에 두 차례 면죄부를 줬다.

검찰고발에서 두 기업을 제외시킨 것이다.

2016년에 시민단체 등이 두 기업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공정위에서 재조사를 진행했지만.

마찬가지로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는 그 같이 유아무야 넘어가게 둘 수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생명과 관련한 문제다.

특히나 두 아이의 아빠로서 남의 일이라 치부하고 넘길 수 없는 문제다.


“한국의 AG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가요?


워낙에 주식 포트폴리오가 방대해서 류지호도 일일이 기억을 하지 못한다.

수석 보좌관 데이빗 브레이텐바크가 여러 개의 파일 중에서 하나를 꺼내 확인했다.


“한국의 화장품 관련 주를 상당량 확보하고 계십니다.”


중국 유커 증가에 따라서 한국 화장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갈 것을 예상해서 한국의 화장품 기업들의 주식이 저렴할 때 확보해 놓았다.

한한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잊고 있을 뻔했다.


“경영권을 넘볼 순 없지만, 꽤나 의미 있는 지분이네.....”


화장품과 샴푸, 비누 등 유지제품을 제조·판매하는 AG산업은 가족경영 형태의 기업이다.

오너이자 최고경영자와 그 가족들이 4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어서 경영권 방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시간을 걸리겠지만 적대적 인수합병이 영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경일그룹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걸요?”


류지호의 농담에 데이빗 브레이텐바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대한민국의 500대 기업들끼리 서로 혼맥으로 연결된 것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AG그룹은 경일그룹과 사돈관계다.


“강력한 경고를 보낼 필요가 있으니, 작업을 좀 해두긴 해야겠어요.”

“시장매집에 나서라고 할까요?”

“오성, 광성, 선경, 금성은 지난 2008년에 지분을 바짝 끌어올려두기도 했으니까 내버려두고... AG산업을 포함해 이번 사건과 연루된 기업들 주식을 조용히 사들이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적대적 M&A는 사실 별 것 없다.

먼저 적당한 대상 기업을 물색해 주식시장에서 몰래 주식을 사 모으는 방법이 있다.

이를 '시장매집'이라고 한다.

이때 소문이 퍼지면 주가는 급등하게 된다.

공격자와 방어자가 서로 주식을 사 모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다음이 '위임장 대결'이다.

자기편을 들어줄 주주를 확보해 이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주총에서 표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공개매수'라는 방법도 있다.

공격하는 쪽이 주식시장에서 목표하는 주식 수를 특정 기간에 특정 가격으로 매입하겠다고 아예 공표해버리는 방법이다.

대체로 세 가지 방식을 동시에 동원한다.

그래야 방어자가 경영권 방어를 할 시간을 주지 않고 전격적으로 일을 벌일 수 있으니까.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연관된 기업은 스무 곳이 넘는다.

그중 옥시와 더불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주요 책임제조사는 선경과 AG로 좁혀질 수가 있다.

더 문제는 재계 4위의 재벌그룹 계열사 선경케미컬이 이 사태의 원흉이라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재계서열 4위 대기업을 절대 이길 수 없다.


드르륵.


류지호가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서 십 여 통의 편지를 꺼냈다.


“오른쪽의 서신은 영국 총리 관저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유해물질 특별보고관에게 각각 전달하고. 왼쪽의 서신은 한국의 청와대, 집권여당 대표, 광성, 오성, 선경, AG산업, 금성건강생활 이사회에 전달하도록 하세요.”


가습기 살균제 원료 공급과 제조업체만 수십 곳이다.

살균제를 판매한 곳 또한 수십 군데고.

중소기업까지는 몰라도 대기업들에게는 이번 사태에서 외국기업 뒤에 숨지 말고 사과할 건 하고 보상할 건 하는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도록 촉구할 생각이다.

이전 삶에서 이 사건에 연루된 한국의 대기업들은 영국계 기업의 뒤에 숨어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성공했었다.

특히 선경케미컬은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일단 언론플레이를 대대적으로 해야 하겠군요?”

“내가 공개서한을 해당 기업에 보냈다는 보여주기 퍼포먼스를 하고 나면, 이슈를 한국 밖으로까지 확장해서 키워봐야겠어요.”

“영국에서 싫어할 겁니다. 보스.”

“데이빗이 직접 전달하도록 하세요.”


수석참모 데이빗 브레이텐바크는 류지호의 복심이자 두뇌로 알려진 인물.

그가 직접 해당 기업의 이사회에 류지호의 친서를 전달하는 것은 사안이 절대 가볍지 않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전 세계 매스컴이 주목할 수밖에 없도록 기자들을 대동하고 기업을 찾아가 떠들썩한 퍼포먼스를 벌일 계획이다.


“따로 전달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서신의 내용으로 충분합니다. 아, 데이빗이 기자들에게 ‘사회책임투자’를 한 번 더 강조해 주는 것도 좋겠네요.”

“영국을 방문한 김에 노르웨이와 프랑스까지 경유한 후에 한국으로 들어갈까요?”

“연기금 관계자와 면담이라도 하려고요?”

“노르웨이 연기금 윤리위원회와 이번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태와 관련해 아주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노르웨이 연기금과 미팅할 거라면 론과 동행하도록 하세요. 필요하다면 R&GP의 사회책임투자펀드 총괄사장을 데리고 가도 좋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 날, JHO Company 이사회의장 수석참모, 법률과 투자 비서들, GARAM Ventures 글로벌 투자담당자, Rehman & GP 사회책임투자펀드 총괄사장이 전용기를 타고 유럽으로 날아갔다.

영국의 총리관저를 방문해 류지호의 친서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캐머론 총리는 이 당시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지방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폭동 때문이다.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 청년이 사망한 사건으로 촉발된 이 폭동은 시위가 시작된 이래 런던 중심가 등 20여 곳에서 폭동과 약탈이 동시 다발로 벌어지고 제2도시인 버밍엄, 항구도시 리버풀과 브리스틀 등 다른 도시로까지 확대되었다.

게다가 로버트 폭스의 ‘뉴스 오브 더 월드’ 도청 스캔들로 정치공세에 시달리고 있었고, 유럽연합이 그리스 디폴트 위기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면서 그 연쇄효과로 유럽 주요 국가가 피해를 입고 있었다.

일명 ‘유로존 위기‘로 영국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다.

그런 안팎의 골치 아픈 상황에서 류지호의 친서 전달은 시기가 절묘했다.


“사회책임투자라.....”


친서에도 류지호를 대리한 데이빗 브레이텐바크의 말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된 단어다.

옥시레킷벤키저의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길 바란다.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동석한 로널드 윌리엄스는 영국의 조치에 따라서 류지호의 영국 투자를 철회할 수 있다는 암시를 줬다.


“영국이 일개 기업에 휘둘리는 게 말이나 됩니까?”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과 대책회의를 하며 캐머런 총리가 매우 불쾌하다는 듯 심복들에게 푸념했다.

그러나 어쩌랴 자신들은 사면초가에 몰려 있는 것을. 영국 정부로써는 닥친 여러 악재들을 타개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


“로버트 폭스에게 휘둘리는 건 괜찮고 미스터 할리우드의 정중하고 격식을 갖춘 서한에는 자존심이 상합니까?”

“뭐요? 무슨 말을 그 따위로 하는 거요?”


측근 모두가 아첨꾼은 아니었다.


“로버트 폭스가 대단한 인물인 건 맞습니다. 그의 힘은 적어도 영국에서 만큼은 대단하지요. 하지만 로버트 폭스의 힘은 언론을 통한 즉 가상의 권력이지만, 미스터 할리우드의 힘은 실제적인 권력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실제적이다?”

“만약 미스터 할리우드가 영국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을 프랑스나 독일로 옮긴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또 투자금을 일시에 빼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전체 규모가 70~100억 달러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Rehman & Global Park가 사실상 미스터 할리우드의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레킷벤키저는 19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10위에도 자주 뽑힌단 말입니다. 그런 영국 기업이 한국에서 발생한 불미스런 사건에 대해 책임이라도 저야 한다는 말입니까?”


매출 14조 원이 넘는 영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레킷벤키저는 1823년 설립되었다.

전 세계 60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고, 200여 국가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번 일이 영국 본사까지 확대되는 걸 막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레빗벤키저가 한국과의 관련을 완전히 단절해야 합니다.”

“그러다 미스터 할리우드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한다면 어쩔 겁니까?”


그것이 무슨 대수냐고 차마 따질 수 없었다.

류지호는 영국 정가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어도 경제 분야에는 충분히 힘을 쓸 수 있다.

축구 명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구단주이면서 선한 영향력으로 영국에서 이미지 메이킹도 잘 해 놨다.

캐머런 내각의 인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서 영국인들이 류지호의 편을 들 수도 있다.


“내가 우려하는 건, 레킷벤키저를 지키려다 더 큰 걸 내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더 큰 것?”

“EMI, bSKYb가 걸려 있고.... 만약 JHO가 레킷벤키저까지 적대적 인수합병하려고 시도하면 또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반독점 때문에 성사되기 어려울 겁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시국도 문제입니다.”


그리스 디폴트 선언 및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등으로 유럽연합 전체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번지고 있는데, 그 다음은 순서로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이 거론되고 있다.

만약 류지호의 입김이 닿는 금융사에서 위험자산을 처분한다는 명분으로 영국국채라도 처분한다면, 세계 금융계는 영국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거나 진입을 유보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자이기도 한 류지호가 영국을 콕 짚어 투자 유보 의견이라도 낸다면.... 가뜩이나 침체일로의 영국경제로서는 좋지 못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혹시 미스터 할리우드 인척 중에서 해당 사건과 연루된 사람이라도 있답니까?”

“선한 영향력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이지 않겠습니까?”


정치인들 입장에서 류지호 같은 세계적인 거물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니까.

도움이 될 때는 친구지만.

방해가 될 때는 원수도 그런 원수가 따로 없다.


“미스터 할리우드는 LA에서 머물고 있습니까?”

“예.”

“혹시 우리 사람이 면담할 수 있겠습니까?”

“뉴멕시코 사유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대신 무엇을 들고 갈지가 문제겠지요.”

“구체적으로 영국 정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합시다.”


총리 주재 대책회의가 있고 정확히 열흘 만에 영국 대사가 류지호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영국 총리가 파견한 영국 대사에게 류지호는 자칫 민감할 수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레킷벤키저 또한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에 적극 협조해야 하며, 사회적 기업으로 진상규명과 배상에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추후 책임소재를 회피하지 않고 잘못이 있으면 사과도 해야겠죠.”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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