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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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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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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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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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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매뉴얼이 다가 아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2011년 3월 9일 오전 11시 45분.

일본 산리쿠 해역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했다.


- 강력한 지진이 왔지만 다행히 피해가 없었습니다.

- 여진이 몇 번 더 올 것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내륙이 아닌 바다에서 일어난 지진이었다.

때문에 일본 기상청은 평소와 다름없이 쓰나미 주의보를 내릴 뿐이었다.

그러나 이 지진은 곧 있을 대지진의 전조에 불과했다.

최초로 지진 속보가 떴을 때만 해도 일본의 국회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잠시 뒤 지진파가 도쿄에 도달하면서 국회에 설치된 방송카메라가 흔들렸다. 당연히 의원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방송 스튜디오로 카메라가 넘어간 이후부터 급박하게 돌아가는 지진 상황에 아나운서와 방송 스태프들도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생중계 되었다.

Playa Vista의 집무실에서 CNN 속보를 보던 류지호가 중얼거렸다.


“뭔 짓을 해도 자연을 이길 순 없지. 인간이 감히 지구를 어떻게 이기겠어.”


결국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일본의 도호쿠 지방에서 규모 9.0의 역사상 최악의 초대형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이 지진으로 인해 일본 전역의 통신망이 마비되었다.

지하철·항만·공항·철도 등이 죄다 폐쇄되었다.

비상사태까지 선포되었다.

일본 전역에 대해일경보가 발령되었다.

문제의 3월 12일.

기어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류지호는 삼붕백화점 붕괴사고를 경고하는 영화를 제작한 적이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해 일본인들이 경각심을 가지길 기대하며 <Fukushima Tsunami>를 도쿄다카라와 공동제작했다.

작년 연말 개봉했다.

일본영화의 컴퓨터 그래픽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스펙터클을 선보이며 흥행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으로 스가 나오토 내각에 리포트도 전달했다.

미국의 저명한 지질학자들 명의로 작성된 보고서였다.


- 경고를 보내준 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에게는 완벽한 지진 대응 매뉴얼이 준비되어 있고, 일본 국민들은 재해시 정부의 통솔을 잘 따른다. 전대미문의 지진이 발생한다고 해도 일본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일본에서 보내온 이메일 회신 내용이었다.

류지호가 다양한 채널로 보낸 경고를 일본은 등한시 했다.

일본 국민들도 똑같았다.

경고하기 위해 열심히 제작했건만, <Fukushima Tsunami>에서 사실적으로 묘사된 영상에 열광할 뿐.

원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은커녕 일본이 드디어 할리우드 기술을 가지게 됐다며 좋아만 했다.

류지호가 제작한 <Collapse>가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논란이 크게 붉어지며 정부가 나서 전국의 대형집객건물에 대해 전수 조사를 벌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성수대교 붕괴 같은 초대형 사건사고가 이전에 많았기도 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감이 없진 않았지만.

영화가 일본에서 영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일본의 진보 신문에서 일본 특유의 관료주의, 원전 낙하산 인사, 재난 매뉴얼의 허점 등에 대해 기사를 쏟아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본 지상파 방송사들은 류지호가 몇 년 주기로 꽤나 정확한 예측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류지호가 예측한 재난과 경제위기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예지에 가까운 류지호의 신기(?)만을 선정적으로 보도할 뿐.

류지호 딴에는 일본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류지호는 일본을 전혀 몰랐다.


‘이래서는 반관료주의자로 유명한 스가 나오토를 적극 지원한 것도 소용이 없어진 거잖아.’


류지호는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스가 나오토 총리는 역대 총리 가운데서 최소 재산세 신고로 인해 청렴성이나 도덕성 면에서 높이 평가 받았다.

재일교포에게 정치헌금을 받았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익들의 거센 공격을 시달렸다.

자민당계열 언론들의 집중 포화에 시달리고 있다.

사실 액수 자체도 크지 않았고 정치헌금 자체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다.

재일교포만 아니라면,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수준이다.

다만 일본에서 외국인의 정치헌금은 불법이란 사실.

재일교포 중에서 조선국적을 유지 중인 이들은 외국인으로 분류된다.

그들의 정치헌금이 법을 어긴 셈이긴 했다.

대재앙이 닥칠 텐데.

총리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리더가 정치공세에 시달렸다.

세습정치의 자민당 출신이 아닌 군소정당 출신의 입지전적인 인물이 일본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꼴을 도저히 볼 수 없었을까.

보수우익 계열 언론들은 대지진과 쓰나미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앞 다투어 재일동포 정치헌금 문제를 연일 대서특필했다.

스가 나오토 내각이 곤란한 상황에서 대지진이 발행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쓰나미가 발생해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다.

그렇게 쓰나미가 후쿠시마를 휩쓸 시기.

류지호가 주요 보좌진들을 급히 호출했다.

CNN으로 시시각각 전해지는 상황이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전 삶에서는 지진과 해일의 습격을 받고 4시간여 만에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냉각수 공급이 되지 않아 반응로의 물이 증발해 줄어들었고 연료봉이 녹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도쿄전력 사장은 책임회피하기 급급했다.

심지어 연락을 끊고 숨어버리기까지 했다.

최종 명령권자가 자리에 없으니 초동 대처할 시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1호기가 첫 폭발을 일으키며 골든타임을 놓쳤다.

스가 나오토 총리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 바닷물을 주입하기로 결정했다.

도쿄전력 측은 발전소 폐기가 우려된다며 정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공공성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민간기업의 한계다.

일본 특유의 문화이기도 하고.


“나와 JHO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미국 정부에 청원을 넣어보세요. 당장 일본을 움직여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처하라고 압력을 넣으라고!”


비서들에게 지시를 내린 후, 류지호도 가만있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에 연이 닿는 권력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난 수습에 정신이 없는 스가 나오토 총리와 도쿄전력에도 압력을 가했다.

얼마 안 가서 미국정부가 일본의 대처가 미온적이라며 강한 유감을 전했다.

빠른 해결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류지호와 미국의 고위인사들의 독촉을 받은 스가 나오토 총리가 결단을 내렸다.

직접 도쿄전력 본사로 쳐들어갔다.

도쿄전력 회장이 도피 아닌 도피를 한 상황에서 총리 본인이 팔을 걷어붙이고 사태를 지휘했다.

자위대의 헬기와 고압 소방차, 경찰의 특수 살수차 등을 총 동원했다.

안타깝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결국 1호기에 이어 이후 3, 4호기 순으로 폭발이 이어지면서 그로인해 휘발성 방사성물질인 요오드, 세슘 등이 방출됐다.

일본 전체는 그야말로 대혼란과 심각한 패닉에 빠져버렸다.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였다.

류지호가 직접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가족과 가온그룹 임직원들을 다독였다.


“한국정부와 함께 일본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세요.”


한국정부에 일본의 재난상황에 한손을 보탤 준비가 가온그룹에 되어 있다는 것을 알렸다.

한국정부 역시 일본에 진출해 있는 기업과 자국민 보호 때문이라도 비상대책팀을 가동해야 했다.

일본 주재 대사관보다 가온그룹에서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관련 정보가 청와대로 전달됐다.


후우.


왜 이번에는 영화와 로비가 먹히지 않았을까.

류지호 내면에 자리한 반일감정의 영향으로?

삼붕백화점 사건이나 LA폭동 때보다 너무 바빠서 신경을 덜 썼기에?

그 당시와 비교하면 류지호의 부와 권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다.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많은 걸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안 통했다.


‘사실 이리저리 재는 것도 많았고, 절박하지 않았기도 했고.’


뭘 잘 모를 때.

어설픈 힘을 가지고 있을 때.

그때는 나름 정의감과 패기로 적극적으로 세상사에 개입했다.

이젠 그럴 수가 없다.

온 세상에 다 알려진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뭐만 했다하면 세상의 이목이 모아지는 위치다.

이미 한 번 남북문제에 관여하려다가 주요 국가의 정보팀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말 한마디로 인해 미국 주식시장의 주가를 요동치게 만들기도 했고.

따라서 작은 행동, 언행도 조심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힘이 커질수록 동원할 수 있는 수단도 늘어났다.

다만 백주대낮에 떳떳하게 동원할 수 있는 수단보다 다소 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수단이 많아지는 것이 딜레마다.

주로 돈이 문제해결 수단이 되기 때문에.

20대만 해도 진정성으로 무장한 채 직접 땀과 열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제는 돈으로 사람을 부린다.

그 사람들 중에는 탈법,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명백한 인재(人災)다.

류지호가 이를 막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 했다면?

끔찍한 일을 막았을 수도 있었을까.


“JHO는 일본의 뿌리 깊은 관료주의를 다소 얕봤습니다. 사실 잘 몰랐다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저희가 오만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JHO Security Service 최고경영자 도널드 제이콥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우리 사람들과 재산에는 피해가 없다면서요? Don은 할 만큼 했어요.”


류지호의 위로에도 도널드 제이콥의 표정을 풀릴 줄 몰랐다.

데이빗 브레이텐바크가 입을 열었다.


“일본 정부와 집권 여당에 도쿄전력이 보유한 비상발전기 중 단 두 대라도 지상에 설치할 것을 줄기차게 건의했습니다. 이후 실제 조치가 취해졌는지 확인했어야 했는데.... 당연히 조치가 이루어져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실수였습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 초대형 비상발전기를 14대나 설치했다.

문제는 모두 지하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

JHO Company와 미국측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단 한 대라도 지상에 설치해놓았더라면, 어쩌면 쓰나미가 물러간 후에 곧바로 수리해서 전기를 쓸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후쿠시마 발전소 지하실에 찬 물을 빼내려면 양수기를 돌려야 했다.

쓰나미가 물러 간 후에 양수기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전기가 없었다.

발전소가 폭발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전 세계 원전이 다 그렇습니까?”

“일반적으로 원전마다 비상용 디젤 발전기를 반드시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점검을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도쿄전력은 아니 일본의 원전관리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원전마피아라도 있대요?”

“예?”

“한국에서는 원자력발전소와 관련한 민관의 카르텔을 원전마피아라고 불러요.”

“그와 유사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통산성 낙하산 인사라고 부릅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철저한 안전점검을 실시한다.

비상발전기 성능점검 역시 매월 한 차례씩 검사한다.

18개월 주기로 예방정기보수를 한다.

원전을 정지한 상태에서 실시하는 예방정기보수는 더 철저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비상발전기를 분해해서 보수하기도 하고, 24시간 발전기를 돌리며 정해진 출력이 나오는지 확인해야 한다.

원전 직원뿐만 아니라 원자력검사협회 등 관련 기관 사람들이 참여한다.

점검을 끝낸 후 원전을 재가동하려면 그에 따른 절차도 철저하게 밟아야 한다.

질서와 매뉴얼의 국가 일본에서 이런 엄격한 과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검사 항목이 수백 개에 이르다 보니, 현장에서 부실검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더 문제는 일본 원전에는 현지 원전을 담당하는 전문관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주로 도쿄전력 본사에서 낙하산으로 꽂아준 비전문가가 대부분이란 사실입니다.“

“내가 알던 일본이 아닌 것 같네요.”


참고로 류지호가 이전 삶에서 코로나19 당시 일본의 대처를 봤다면, 이번 원전사고도 완전히 납득했을 수도 있다.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국가들의 시스템이 생각보다 허술하다는 것이 코로나19를 통해 낱낱이 드러났었으니까.


‘어쩌면 도쿄전력이란 회사의 문제일 수도 있지.’


원전마피아라는 카르텔은 원자력발전소가 많이 지어진 국가 어디에든 있다.

원자력발전소는 한 번 지어놓고 끝이 아니다.

안전점검을 비롯해 예방보수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외주업체들의 일감이 꾸준하고 안정적으로 만들어진다.

당연히 이권으로 엮인 네트워크 즉 카르텔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1989년에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2원전에서 재순환 펌프가 산산조각 난 사고가 있었다.

이런 유형의 원전사고는 후쿠시마 제2원전이 세계 최초였다.

또한 문제의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긴급원자로냉각장치(ECCS)가 가동되었던 대형사고가 발생했던 일도 이미 있었다.

당시에 현지전문관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원전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한 것을 다음 날 신문을 보고나서야 알았다.

왜 현지전문관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을까.

후쿠시마 원전의 직원들은 전문관이란 사람이 원자력 분야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낙하산이기 때문에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시 학생 가르치듯 하나하나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정부나 본사가 내려 보낸 사람들을 현장에 부르지 않고, 자신들끼리 처리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없었다.

누구도 그 같은 사실을 밝히지 않았으니까.

모두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고 난 후 알려지게 된 사실이다.


“일본의 원전산업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원자력검사협회입니다.”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왠지 알 것 같네요.”


일본의 경제관료는 힘이 상당히 세다.

특히 통산산업성(현 경제산업성) 출신은 패전 이후 일본경제를 오늘날로 이끈 공로로 큰 예우를 받는다.

바로 그 통산성을 정년퇴임한 사람들이 명예직으로 가는 곳 중 하나가 원자력검사협회다.

원자력검사협회가 원전공사의 거의 모든 권한을 갖고 있어서 그들이 승인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다.

대부분 비전문가들이라 검사라고 해도 그저 눈으로 확인하거나 서류 검사로 퉁치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히 업무 내외적으로 로비로 돌아가고 있고.


“아무도 그 문제를 지적하지 않습니까?“

“통산성 출신들이 모여 있는데다가 원전 분야에서 막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보니 누구도 쉽게 문제 제기를 못합니다. 이 협회 산하에 전력회사가 있고, 그 밑에 원자로 제작사인 전통의 대기업들이 있습니다. 또 그들 대기업 산하에 건설 회사가 있지요.”


한국의 원전마피아와 거의 유사한 구조다.

차이점은 전력회사가 민간회사라는 점이 다를 뿐.


“일본의 관료주의에 대한 악명은 들었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모양이군요?”

“저희들도 일본의 폐쇄성에 대해 이번에 그 속살을 제대로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일본사회의 집단주의의 특성상 자기가 속한 회사의 이익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거나 검사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망가 <시마과장>을 보면 일본사회의 관료주의 행태를 엿볼 수 있다.

암튼 이번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도 원자로 내부 구조물의 균열을 장기간 은폐한 사실이 밝혀지거나 데이터 조작 사실이 확인되는 등 도쿄전력은 문제가 많았던 기업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영진 교체와 사과가 잇따랐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사회 특유의 유착문화와 관료주의 때문이다.


“일본의 관료주의는 원자력안전기반기구(JNES) 같은 전문가 조직보다는 전문성이 부족한 관료조직 원자력안전·보안원이 규제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원전사고에 대한 정확한 기술적 판단이 어려워 현장 대응이 엉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진과 화산폭발이 일상인 일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후진국적인 행태다.


“일본이 자랑하는 매뉴얼은 어디다 팔아먹었답니까?”

“말도 마십시오. 보스.”


도널드 제이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 지진에 대해... 다소 낙관적이었던 것은 일본의 국민성과 철두철미한 준비성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그간 일본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산산이 깨진 것 같습니다.”

“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가온과 JHO가 대재난을 당한 일본에 식료품과 비상물자들을 보냈습니다. 일본 정부가 관련 매뉴얼이 없다며 비상물자를 쌓아놓고만 있지 뭐겠습니까?”

“그래서요?”

“주일 미군사령부에 연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군이 직접 물자를 전달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TV뉴스로까지 나갔다.

누군가 NeTube에 올렸는데, 빠른 시간에 3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일본정부의 행동을 비웃는 수많은 댓글이 다양한 언어로 달렸다.


“설마요?”

“미군이 직접 구호물자를 전달하자 일본 국토교통성이 구호물자 부족에 한파가 몰아친 동북지방 지원을 위해 미야기현 센다이시와 이와테현의 가마이시, 미야고시의 항구를 긴급복구하고 17~18척의 수송선박도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구호물자 보급이 자꾸만 늦어지는 겁니다. 알아보니 어떤 물자를 어디로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긴급재해대책본부의 결정이 늦어졌다고 합니다.”


그 놈에 서류에 일일이 도장을 받아야 하는 문화와 팩스 회신 시스템도 한몫했다.


“JHO와 가온의 일본 지사가 긴급 지원한 물품은?”


류지호는 짜증이 치솟았다.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까칠했다.


“그것들도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겁니까?”

“일본정부나 행정력을 믿을 수 없어 방사능 피폭 보호장구를 갖춘 요원들을 긴급 파견하려 했지만.... 민간차량이 고속도로 통행허가증을 받으려면 해당 경찰서에 직접 가서 수속을 밟아야 한다고 해서 시간 지체가 있었습니다. 이 절차도 1주일 가까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전 삶에서 이 정도까지 자세하게 일본 현지 상황을 알지 못했던 류지호다.

관심이 없었기에 결과만 대충 확인했을 뿐.

일본은 알면 알수록 신기한 나라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어느 나라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실종자 수색을 위해 구조견 5마리를 긴급 파견하려는 곳이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광견병 청정지역’이라며 난색을 해서 1마리만 겨우 보낼 수 있었답니다.”


허.

류지호의 입에서 기어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쓰나미와 원전 사고로 인해 몇 만 명이 행방불명되었을지도 모를 나라에서 절차니 매뉴얼이나 따지고 앉아 있다.


“저희 쪽 구호팀에 의사 면허가 있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외국인의 의료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그 친구의 일본 입국절차가 하루 지연된 일도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자국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돌볼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네요.”


일본은 일찍부터 전자제품 강국답게 정밀회로처럼 촘촘하게 짜인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며 자랑했다.

설계자 격인 관료들은 수십 년 동안 복잡한 작동 매뉴얼들을 만들어냈다.

이를 지키면 별 문제 없이 작동되는 체제가 구축되었다고 굳게 믿었다.

일각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지만, 일본인 특유의 근면성을 통해 그 같은 비판을 잠재워왔다.

그런데 일본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지금까지의 매뉴얼에 나와 있지 않은 초유의 대재난을 마주했다.

그런데도 일본의 관료들은 과거의 매뉴얼에 집착하고 있다.

왜 그럴까.


- 매뉴얼대로 했습니다!


그 같은 변명과 책임 회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키는 일만 했다.

관행대로 했을 뿐이다.

그러니 난 잘못이 없다.

그것이 바로 일본 관료주의의 핵심이다.


“우리 직원과 가족들의 현 상황은 어떻습니까?”

“비교적 안전한 효고현으로 긴급피난 조치했습니다.”

“그건 잘했네요.”


류지호는 SANYO 인수합병 후, 도쿄를 비롯해 니카타 지역에 산재한 사업체들부터 정리했다.

SANYO의 배터리 및 태양광 관련 사업이 몰려 있는 서쪽 지역의 오사카, 효고현 지역으로 대부분의 공장을 이전시켰다.


“도쿄까지 방사능이 미치진 않아야 할 텐데.....”

“.....”


도널드와 데이빗 두 사람은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당장 내놓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Fukushima Tsunami>의 일본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랭크되었다는 보고가 전해졌다.

대략 37억 엔(410억 원)!

작년 12월 말 <Fukushima Tsunami>보다 2주 앞서 개봉한 <스페이스 배틀쉽 야마토>에 이어 2011년 일본 박스오피스 9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이걸 좋다고 웃을 수도 없고....’


지구적 재난상황이나, 경제위기 속에서 세계 100대 부자는 돈이 늘어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99%의 평범한 인류의 위기가 1% 인류의 기회라니.

본래가 억만 장자는 숨만 쉬고 있어도 저절로 돈이 불어난다.

남들이 쉬고 있을 때, 억만장자가 고용한 이들이 알아서 쉬지 않고 일하며 돈을 벌어다 주기 때문이다.

류지호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 그에 따른 원전사고까지 예견한 영화 <Fukushima Tsunami>가 세계 132개 국가 바이어들로부터 구매문의가 쏟아진단다.

일본의 원전사고를 예견했다며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고.

영화의 기획자이자 제작자이며 총괄프로듀서에 이름을 올린 류지호에게 돌아갈 몫이 그 만큼 늘어나게 됐다.

뿐만 아니다.


“대지진 전에는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에 미온적이었던 소프트인프라의 손 회장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합작을 제안했습니다.”


일본 데이터센터의 70%가 상대적으로 피해가 경미했던 도쿄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데이터센터들은 엄격한 국가 건축 법규를 초과해 지어졌기 때문에 이번 지진에서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일본 기업들은 대지진 일주일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지진과 쓰나미에서 비교적 안전한 서부로 데이터센터를 이전할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전력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대지진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이 불능이 되고, 각종 전력 인프라가 망가졌기 때문에 재난복구 작업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본이 그 정도로 허술해요?”

“가동 중지했던 화력발전소를 긴급 가동하기 시작했지만, 냉방장치 사용이 늘어나는 여름이 되면 전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질 전망입니다. 심할 경우 정전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일본 국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당장 일본기업들의 발등이 불이 떨어질 수밖에.


“Big-Daddy도 상황이 녹록치 않겠군요?”

“일본에 진출한 모든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 시기에는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들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 데이터센터 리전을 일본 도쿄에 거점을 두고 있다.


“소프트인프라와 일본기업 몇 곳에서 가온그룹에 긴급 데이터 백업을 문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Big-Daddy는 한국에 백업용 서버를 갖추고 있기에 설사 일본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별 타격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우리 인력과 자산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겠죠.”

“아참. 일본에 진출한 메신저 서비스가 이번 사태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바나나토끄....?”

“일본의 통신망이 폭증한 전화통화량으로 인해 먹통이 됐지만, 상대적으로 접속량이 여유가 있었던 인터넷망은 멀쩡했습니다. 접속자가 몰려서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연결 자체가 유지됨으로써 일본국민들이 전화나 문자메시지 대신해서 인터넷망을 활용하는 인스턴트 메신저와 소셜 네트워크로 안부를 확인했습니다. 대지진부터 일주일 동안 무려 1,900만 명의 신규 가입자가 폭증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후쿠시마현의 공무원들도 많다고 합니다.”


도후쿠대지진에 도움이 될까 싶어 일찍 진출시켰던 메신저 서비스였다.

다행히 나름 역할을 한 모양이다.


삐이-


인터폰이 울렸다.


- 제임스 라저스씨가 오셨습니다.


류지호과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보좌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더 할 말이 남았어요?”

“......”

“변동된 사항은 내일 오전에 다시 모여서 논의하는 것으로 합시다.”


보좌진이 집무실을 떠나고, 뒤 이어 나비넥타이에 정장을 차려입은 곱게 늙은 노인이 한 명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짐.”


작가의말

활기찬 한 주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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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4.06.03 09:41
    No. 1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4.06.03 09:50
    No. 2

    일본은 국제협약에 가입했기 때문에 피해사실과 정부과실만 입증하면 같은 협약국끼리는 손해청구를 할 수 있죠. 문제는 미국, 러시아, 중국, 우리나라 다 그 협약에 가입이 안되어 있다는 사실. 협약국인 뉴질랜드와 호주는 예전에 프랑스가 태평양에서 핵실험할 때 소송을 건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혹시 그렇게 안할까 기대했었는데 안했었음.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7 lo******
    작성일
    24.06.03 10:44
    No. 3

    통신만 > 통신망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트뤼포
    작성일
    24.06.06 13:39
    No. 4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4.06.03 22:05
    No. 5

    일본 원전만 그럴까요.
    한국 원전의 구멍난 철문을 보면 한숨만 나오던데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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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 노욕(老慾)과 노추(老醜). (2) +2 24.06.17 1,108 63 27쪽
884 노욕(老慾)과 노추(老醜). (1) +4 24.06.15 1,154 67 23쪽
883 Think The Unthinkable! (4) +3 24.06.14 1,108 64 25쪽
882 Think The Unthinkable! (3) +6 24.06.13 1,135 58 24쪽
881 Think The Unthinkable! (2) +6 24.06.12 1,139 61 28쪽
880 Think The Unthinkable! (1) +8 24.06.11 1,161 67 25쪽
879 우리 보스께서 조금 유별나긴 합니다. (4) +3 24.06.10 1,176 70 23쪽
878 우리 보스께서 조금 유별나긴 합니다. (3) +2 24.06.08 1,183 76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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