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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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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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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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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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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나르시시즘의 시대.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 하하. 가능하도록 해야지요.

“빅 4가 시장점유율을 낮춰서 발표하는 걸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 보스, 우린 낮춰서 발표한 적이 없습니다.

“.....?”

- 단지 통계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데이터를 알려주지 않는 것 뿐.


그게 그거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세금을 탈루했거나 법률을 위반했거나 하는 것이었다면, 사단이 나도 벌써 났을 터.

본래가 기업 간 인수합병을 승인받기 위해 서로 유리한 데이터를 꺼내들고 치열한 논리싸움을 펼치기 마련이다.

UMG의 이번 인수합병 시도는 문제될 것이 없다.

명분에서나 자금력에서나 법률적으로나.

단지 EU집행위원회로서는 UMG가 EMI를 인수·합병함으로써 유럽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획득해 시장 질서를 교란할 것을 경계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할 책임이 있다는 점.

UMG는 그런 EU집행위원회와 미국연방거래위원회(FTC)를 설득하고 승인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 전 세계 음악시장 불황 극복과 파산 일보직전의 EMI 상황을 고려했을 때, UMG의 M&A는 유럽 음악계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디지털음악 관련해서도 독립 레코드 레이블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중입니다.

“내가 도울 일은 없어요?”

- 이번 M&A 건은 맷 웰스에게 맡겨 두시면 됩니다. 보스까지 나설 일은 없습니다.

“맷이 이번 사안을 진두지휘하는 모양이군요?”

- 그렇습니다. 그의 능력은 믿으셔도 됩니다.


매트 웰스(Matt Wells)는 UMG의 글로벌 디지털음악 부문의 책임자다.

10년 넘게 UMG의 디지털음악과 뉴미디어 분야를 책임지고 있다.


“K-Pop 아티스트는.... LA본사에서 해외 프로모션을 담당합니까?”

- 일본법인과 계약해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걸 그룹이 UMG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던데....?”

- 수아 말씀이십니까?


많은 한류 가수가 해외에선 UMG와 손잡고 일하는 편이다.

주로 일본에 활동하기 위해 UMG Japan에 소속된다.

글로벌 유통사 또한 UMG 계열 레이블과 계약하고.

“소녀공감이었나....? 올해 안에 미국 프로모션을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 아, 한국 걸그룹이라면... 인터스코프 레코드와 계약을 논의 중인 걸로 들은 것 같습니다.


UMG의 수장이 세계 음악시장의 변방이랄 수 있는 한국의 걸그룹 계약까지 챙길 일은 없다.

다만 루크 그레인지가 유럽에 K-Pop이 상륙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점.

남미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도 보고 받았고.

한국 최대 음악기획사가 뉴욕 매디슨스퀘어 콘서트를 주최하는가 하면, 다솜미디어는 Playa Vista에서 한류 최대 행사를 개최하고 있기도 하고.


“루크도 K-Pop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요. 추후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겁니다.”

- 하하. 알겠습니다.


NeTube에 K-Pop 전용 카테고리가 새롭게 런칭될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글로벌 한류 돌풍의 신호탄이 쏘아지는 것이다.


“LA 헤드쿼터는 언제 옵니까?”

- 다음 달에 LA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때 EMI 관련한 사안에 대해 자세히 듣도록 하죠.”

- 그렇게 하시죠.


루크 그레인지와 통화를 마친 류지호가 스위트룸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병 꺼냈다.

산호세가 한 눈에 들어오는 창가로 걸어갔다.


“......”


호텔 창밖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게임 <심시티>의 스크린샷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시내 중심가 일부를 제외하고는 고층빌딩이 없다.

알록달록한 건물 사이로 녹지가 상당히 많다.


벌컥벌컥.


류지호는 맥주를 마시며 전형적인 미국 대도시 풍경을 눈에 담았다.

UMG가 세계 음악시장의 40%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일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행위를 한다든가, 새로운 레코드 레이블의 출현을 가로막는다든가, 전 세계 음악 시장의 역동성을 저해한다든가....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 나쁜 거다.

만약 EMI 인수가 성공하게 된다면.

UMG의 독주체제에 대한 경쟁업체들의 저항이 거셀 것은 불문가지.

법적인 분쟁은 물론이고 메이저 음반사들의 EU 집행위 로비전과 언론플레이가 매우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영국이란 말이지.”


JHO Company Group의 오너는 영국 축구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단주다.

영국 자동차의 자랑이던 재규어-로버스를 사들인 것도 류지호다.

이젠 영국 록 음악과 클래식의 자존심 EMI까지 노리고 있다.

사실상 영국위성시장의 독점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bSKYb도 탐을 내고 있고.

영국인들은 모르고 있지만, 몇 년 후 브렉시트의 불확실성으로 발생하는 경기 침체로 전통의 영국기업들이 매물로 쏟아지게 된다.

그때 알짜 기업을 다수 사들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영국 현지에서 ‘류지호의 영국기업 쇼핑‘이란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JHO Company Group은 다국적기업이자 오너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영국의 축구팬과 영화팬 중에 류지호가 한국 출신인 것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세상과 담 쌓고 사는 시골의 노인들 빼고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류지호의 출신국가를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영국은 일본기업과 자본이 휩쓸었다.

이젠 중국자본이 영국에 상륙했다.

영국의 소도시 펍에서 일과 후에 술과 축구중계로 시름을 달래는 노동자의 모습을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소도시 펍들이 이슬람 사원으로 변모하고 있다.

최고의 프리미어 리그팀이 아시아계에 팔려나가고, 위성방송과 음반사업까지 팔려나가고 있는 영국의 현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모습이 영국인들에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다양한 문화가 결합되어 다양성이 자연스러운 사회라고 믿어 왔으니까.

그것은 대영제국 후예로서의 자존심이자 긍지였기에.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부터다.

그 같은 긍지는 분노로 변하고 있다.

영국인의 삶이 너무 팍팍해지고 있다.

공공서비스 및 사회 복지에 대한 지출이 대폭 깎여나갔다.

반면에 세금은 늘어났다.

눈에 보이는 고용 지표는 좋아졌는데, 버는 돈은 그대로다.

올해부터 거의 모든 기업에서 임금이 동결되기 시작한다.

높은 물가상승으로 인해 중산층이 붕괴될 위기에 빠졌다.

다양성을 자랑으로 여겼던 대영제국의 국민들이었다.

이젠 내 삶의 팍팍함으로 인해 다른 인종의 일상을 파괴하려는 시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뜩이나 생활이 힘든데, 이슬람과격분자들의 테러와 난민까지 스트레스다.

상당수 영국인들은 자신의 불행에 대한 분노를 해소할 대상이 필요했다.

내재되어 있었지만 결코 밖으로 꺼내 보이지 않던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이 노골적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표출되기 시작했다.

신사의 나라라는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뿌리 깊은 백인우월적 태도가 노골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몇 년 후, 세계는 영국이란 국가의 백인들이 영국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영국에서 살아도 되는지에 대한 논쟁(브렉시트)을 지켜보게 되고, 결국 인종차별적인 주장이 이기는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인종 이슈가 영국의 EU 탈퇴의 전부는 아니다.

더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브렉시트다.

그럼에도 브렉시트 논쟁이 들춰낸 인종혐오는 영국인들이 그간 보였던 다양성 존중에 가려진 스스로의 모순과 위선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그 모든 걸 부추기고 이용하는 이들이 정치인과 지식인이다.

비백인들이 오해하는 사실이 있다.

흑인만이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항상 백인인 것도 아니란 사실이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차별이 존재하지.’


유럽은 혐오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전 삶에 이어 두 번째로 류지호는 혐오의 시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화를 내는 걸 포기했다.

뭘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글로벌 복합미디어기업의 이사회는 유대계이거나 백인 꼰대 일색이다.

그들 상당수가 백인우월주의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

그런 주제에 ‘정치적 올바름‘ 콘텐츠로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된다.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류지호로서는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체념하고 방관만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자신 역시 명색이 지식인 나부랭이니까.

많은 이들에게 영화라는 대중예술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예술가이니까.

그래서 두 편의 시나리오를 꺼냈다.

<스타크래프트>를 준비하면서 부담 없이 제작할 프로젝트다.

하나는 <Christmas Cargo>와 함께 기획된 전쟁 삼부작 중 한 편이다.

임진왜란을 시대배경으로 가장 참혹하고 가장 치열했으며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를 소재로 하는 프로젝트다.

<Christmas Cargo>가 사실상 연합군이 패배한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했듯이 임진왜란에서도 손에 꼽히는 참혹하게 패배한 전투를 다룰 예정이다.

다른 한 편의 시나리오를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다.


tsogang!


츠와나어로 깨어나라(awake)라는 의미다.

남아프리카의 민주공화국 보츠와나의 국가(Fatshe leno la rona)의 후렴구에서 따왔다.

아프리카 투어 중 썼던 시나리오 초고 중 한 편이다.

아프리카 최초로 민주공화국의 뿌리를 내린 보츠와나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의 삶.

그리고 그가 인종차별의 벽을 허물고 영국인 백인여성과 결혼을 하는 과정 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다.

이전 삶에서는 영국영화협회가 지원해서 제작한 <A United Kingdom>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한국에서 <오직 사랑뿐>이란 제목으로 개봉됐다.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개봉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아는 이도 거의 없다.

영화는 인종차별의 높은 벽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한 남녀의 러브스토리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에 류지호는 아프리카 최빈곤 국가의 왕위 계승자가 1966년 독립 민주주의 국가 보츠와나 공화국을 설립해 나가는 투쟁의 스토리에 집중할 생각이다.

상업적으로는 러브스토리 실화가 감동 포인트다.

인종차별이 엄연히 존재했던 시대의 흑인남자와 백인여성의 사랑과 결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니까.

사실 류지호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조국인 한국만큼이나 복잡하고 험난한 독립의 역사를 가진 아프리카에서, 그것도 최빈국에서 어떻게 민주주의 정착시킬 수 있었는지가 관심을 끌었다.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인종분리)이 막 시행되려는 공포의 시절이었다.

백인 아내와의 사랑, 가족을 지켜야하는 가장의 무게 그리고 왕위 계승자로서 의무까지 짊어진 세레체 카마의 고민과 용기, 투쟁의 행보를 담담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곁가지로 제국주의 영국의 위선을 양념처럼 곁들여서.


“영국에서 훈장 받긴 글렀네....”


류지호가 노트북을 켜며 중얼거렸다.

영화 속에서 영국과 왕실이 그 다지 긍정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역사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밈 ‘혐성국’을 영화 곳곳에 심을 생각이다.

‘혐성국 밈’은 확증편향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류지호도 조심히 다뤄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암튼 류지호가 아프리카 정서와 그들의 정신을 완벽하게 대변할 순 없다.

그럼에도 남의 나라 역사를 그것도 근현대사를 다루려고 하는 것은 류지호가 제3자적 입장이기 때문이다.

세레체 카마를 영웅시 할 이유도 없고, 영국을 지나치게 악마화할 의도도 없기에.

자로 잰 듯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일 순 없을 터.

보츠와나와 딱히 엮인 것이 없는 류지호로서는 영화를 통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질문)를 관객에게 던지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사실 류지호와 보츠와나가 인연이 없진 않다.

김정 박사가 인술을 펼쳤던 쥬빌리 병원을 지원하고 있으니까.

보츠와나 제2의 도시 프랜시스타운의 앙가베 병원(구 쥬빌리) 응급센터는 Ji Ho Emergency Center로 불린다.

프랜시스타운에서는 ‘지호‘라는 이름이 매일 불리고 있다.

그들의 부름에 화답할 겸, 보츠와나의 민주주의가 더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딸각!


류지호는 완성된 스크립트를 이메일로 발송했다.

수신자는 ParaMax Entertainment의 CEO 애덤 베이커다.

<스타크래프트> 실사화의 길고 지루한 프리프로덕션 동안 짧게 치고 빠질 영화다.

적은 예산으로 재빨리 해치울 계획이다.

또 한 편의 한글로 작성된 시나리오는 한국의 WaW Entertainment로 보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서 준비과정이 조금 험난할 것으로 예상됐다.

<스타크래프트> 실사화를 마치고 곧바로 작업할 수 있도록 준비를 당부했다.

반 년 넘게 차기작을 놓고 고민한 것치곤 허무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뭐 어때, 찍고 싶은 영화 찍는 거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원 없이 찍고 싶어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거다.

내키는 대로 한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 ✻ ✻


산 마테오(San Mateo) 카운티의 한 허름한 건물 앞에 류지호가 나타났다.

실리콘밸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멘로파크와 떨어져 있어 비교적 외진 편에 속하는 동네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작은 유리문에 'AVOS'라고 새겨진 표시가 보였다.

류지호는 표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


200여 평의 사무실은 류지호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초라했다.

책상, 컴퓨터, 소형 캐비닛.

썰렁한 사무실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만 달랑 있었다.

유일한 사치라고는 사무실 입구의 당구대 하나가 전부다.

근무하는 직원도 몇 명 안 되는 것 같고.

정돈되지 않고 덥수룩한 헤어스타일의 스티버 챈이 웃는 얼굴로 류지호를 맞이했다.


“헤이. 보스!”


류지호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GMG를 뛰쳐나와서 지내는 꼴이 겨우 이런 거야?”


스티버 챈은 사람 좋은 웃음을 실실 흘리며 반문했다.


“뭐가 어때서?”

“찰스는?”

“외근 중.”


이 허름하고 휑한 사무실은 스티버 챈과 찰스 헐리가 NeTube를 처음 시작했던 곳이다.

사무실 명패에 걸린 ‘AVOS'는 두 사람이 NeTube를 박차고 나와서 만든 스타트업의 상호명이고.


“길 건너에 카페가 있는데, 거기로 갈까?”

“가만 있어봐. 사무실 좀 둘러보고.”

“스타트업 사무실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창업자인 스티버와 찰스의 집무실은 따로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휑한 공간에 책상을 놓고 직원들과 함께 업무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실리콘밸리 곳곳에 JHO VC 소유 빌딩이 많은데, 왜 하필 이런 변두리로 왔어?”

“이곳에 돌아오니까 동네 사람들이 다 환영하더라고.”

“돈도 많은 놈들이.... 궁상맞게....”


두 사람이 NeTube을 과감하게 떠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경제적 여유도 있다.

퇴사하기 전까지 받았던 연봉은 물론이고, 보유하고 있는 NeTube 주식을 처분하게 되면 단숨에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일리노이 대학을 중퇴하고 200달러 달랑 들고 이 동네로 와서 처음 내 아이디어로 창업했던 뜻 깊은 곳이라구.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은 아니지만, NeTube를 탄생시킨 곳이잖아. 코딩으로 밤을 새우고 그랬던.... 그 시절의 설렘과 열정을 되찾으려고.”

“서른 한 살 밖에 안 된 녀석이 초심은.....”

“안내해 줄게.”

“안내가 필요할 것 같진 않지만... 직원들 소개나 해봐.”


류지호가 보잘 것 없는 사무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책상에서 곁눈질로 류지호를 훔쳐보던 직원들이 류지호가 다가오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직원들도 움찔움찔했다.


“사진 찍자고 하고 싶지?”


많아봐야 20대 중반의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저러다 목이 부러지지나 않을지 걱정이 들 정도로 격렬한 반응이었다.


“예, 옛!”

“폰 꺼내 봐.”


류지호는 열 명 남짓한 AVOS 직원들과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줬다.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미스터 할리우드!”

“나도 반가웠다. 나중에 또 보자.”


류지호가 스티버 챈과 사무실을 떠난 후, 직원들이 너도나도 자신의 SNS에 류지호의 방문소식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느라 난리법석을 떨었다.

직원들은 평소에는 체감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보스 즉 스티버 챈과 찰스 헐리가 저 유명한 NeTube의 창업자이자 PayMate Mafia의 멤버란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솔직히 숨 막히고 답답했어.”


카페테리아에 자리를 잡은 스티버 챈이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GMG는 MacIntosh, PS, Googol보다 작은 회사거든.”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또래들도 페이스노트 같은 유니콘 기업을 잘만 경영하고 있다.


“회사 규모가 중압감으로 오진 않았어. 난 엔지니어야. 그런데 NeTube에서 하는 일이 언젠가부터 조직을 관리하고 회의를 하고 변호사를 만나고 서류를 보는 일로 바뀌더라고. 정말 재미없고 따분한 일이었어.”


스티버 챈과 찰스 헐리는 방해하지 말라며 회의실에 문을 걸어 잠그고 몇 시간을 아이디어 회의를 하곤 했었다.

그걸 뭐라고 하는 이도 아무도 없었고.

그런 주제에 따분하고 재미없었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로 들렸다.


“주어진 일을 하는데 지쳤어. 그래서 떠나기로 한 거지. 더 새롭고 더 신기한 뭔가를 하고 싶어서.”

“후회가 없다니 다행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고. 내가 NeTube를 나가서 후회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뭘까. 아무리 자문해 봐도 잘 모르겠더라. 근데 뭔가 하고 싶었어.”


날 찾아오지 그랬냐는 말은 두 사람에게 의미가 없다.

류지호는 이들의 멘토가 아니기에.

흉허물을 터놓고 대화를 나룰 수 있는 죽마고우는 더더욱 아니고.

사실 스티버 챈이 NeTube를 떠난 것에는 건강문제도 있었다.

지난 2007년이었다.

동부의 컨퍼런스에 출장을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졸도를 한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막 NeTube가 본궤도에 올라 성공으로 치고 나아가는 시점에서 떨어진 청천벽력이었다.


"발작이란 것이 꼭 밤에만 일어나더라고. 아침에 눈을 뜨면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했는데... 둘러보면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응급실인 거야. 정말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라‘라는 말이 그렇게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었어.“

“원래 죽다 살아나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게 되는 법이야.”

“Jay는 그 기분 절대 모를 걸?”


모를 리가.

죽다 살아나는 기분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이가 류지호인 것을.


“수술을 하고 난 후에 방황을 좀 했어. 요리와 사진 촬영에 빠졌었지. 골프도 쳤어. 가장 비싼 골프채를 사고 가장 비싼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보고, 카메라도 정말 비싼 명품 카메... 아, 어지간한 명품 클래식 카메라는 보스가 다 사갔더라. 암튼 그랬어. 한동안은.... 근데 재미를 못 느끼니깐 실력이 늘지 않는 거야. 그러다 보니 더 흥미를 잃게 되고. 난 깨달았어. 이런 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래서 결정한 삶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거였어?”

“스타트업일지 뭐가 될지는.... 솔직히 모르겠어. 나와 찰스는 그저 남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찾고 그걸 해결하려고.”


스티버 챈의 횡설수설을 류지호는 알 듯 말 듯 했다.

다 떠나서, 말의 요지는 자신이 간절히 하고 싶은 것, 재미를 느끼는 걸 하면서 살겠다는 거다.

류지호가 과거로 돌아와서 그랬던 것처럼.

두 사람이 최근 창업한 스타트업은 일종의 창업 인큐베이터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하고 있는 기업형 엔젤투자의 한 형태다.

PayMate 출신 성공한 이들과의 인맥도 탄탄하고, NeTube를 성장시키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도 있고.

본인들의 재력만으로 어지간한 스타트업에 초기투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2차 투자는 류지호가 소유한 벤처캐피탈도 있고, PayMate Mafia라 불리는 친구들의 펀드도 있다.


“해봐, 뭐든. 내가 응원할게.”

“그럴 줄 알았어. 나의 보스는....하하.”

“내 울타리를 떠난 녀석이 보스라고 부르기는.... 자금은 안 모자라?”

“잊었어? 나도 억만 장자야.”


미국 기업에는 퇴직금이란 것이 없다.

잘 가라고 꽃다발 정도?

퇴직연금을 주는 곳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극히 드물다.

따라서 NeTube를 퇴사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지분을 팔수밖에 없었다.

비상장기업인 NeTube는 지분을 가진 모든 이들이 주식을 팔게 될 때 무조건 모그룹인 GMG Technologies에게만 팔도록 약정이 되어 있다.

고로 스티버 챈과 찰스 헐리는 NeTube를 떠나며 일부 지분을 모그룹에 팔아 목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류지호가 넉넉하게 챙겨주라고 당부를 했는데, 이전 삶에서 Googol이 NeTube를 인수할 때 매긴 가치보다 훨씬 많이 쳐주었다.

GMG Technologies의 주식과도 일부 바꿔주기도 했고.

그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두 사람은 외부의 도움 일절 없이 인튜베이팅 회사를 창업할 수 있었다.

초창기 멤버 중에서 학업을 위해 스탠퍼드로 돌아간 이들 중에 5,000만 달러를 챙긴 이도 있을 정도로 류지호는 NeTube 창업 멤버들을 아꼈다.

NeTube는 GMG Technologies의 사업 시너지는 물론이고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녀석들에게 10억 달러를 챙겨주어도 전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

“과거의 애송이가 아니거든. 나도 유명 인사야.”

“그래 유명인씨, 뭘 하려는 건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봐.”

“숙제 검사 받는 기분은 별론데....”


투덜거리면서도 류지호에게 사업 계획과 목표를 술술 털어놓았다.

류지호는 언제든지 도와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스티버 챈과 헤어졌다.

모든 투자가 이익을 돌아오진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선행은 반드시 하나의 선행으로 다시 돌아온다.

일만 개의 선행이 고스란히 그만큼으로 돌아오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선행이 다시 돌아온다는 걸 류지호는 두 번의 삶을 살면서 경험하고 있다.

남을 돕는 것을 투자라고 말하는 류지호다.

모르는 사람을 돕지 못한 것 때문에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에 그친다면.

아는 사람 혹은 인연이 있는 이를 돕지 못해 그로인해 시간이 흘러 나쁜 소식이라도 듣게 된다면.

단순히 안타까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후회라는 감정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류지호는 후회라는 감정이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을 열심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작가의말

평온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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