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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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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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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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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933,002

작성
21.12.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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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Goodfellas.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는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비비며 이불에서 빠져나왔다.

머리도 지끈거렸고, 몸도 천근만근 무거웠다.

고등학생이 숙취라니.


후우.


어젯밤을 떠올리며 자신과 친구들이 참 대책이 없는 놈들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집에서 쫓겨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류지호는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이부자리를 잘 걔서 장롱에 넣었다.


‘작심삼일이 되면 안 돼.’


며칠 전 류지호는 신문보급소에 들러 소장에게 배달 일을 허락받았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곧바로 신문배달을 시작하기로 했다.

오늘이 그 첫 날이다.

보급소에서 1구역치 신문을 받았다.

100부가 조금 넘어 보였다.


“학생은 자전거 없어? 뛰면서 돌리려면 힘들 텐데.....?”

“제가 돌릴 구역 먼저 익힐 생각입니다.”


미심쩍어 하는 소장의 말에 류지호가 대충 둘러댔다.


“하루 이틀 하다가 그만 두면 안 된다.”

“고3이 되기 전까지는 해볼 생각입니다.”


류지호가 소장에게 꾸벅 인사하고 보급소를 나왔다.

88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전임이 연신 귀찮다고 투덜거렸다.

류지호는 못들은 척 무시했다.


부아아앙!


전임이 말도 없이 오토바이를 몰고 달렸다.

류지호는 오토바이 꽁무니를 쫒아 열심히 달렸다.

전임자의 오토바이를 따라가며 류지호의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참아야만 했다.

더러워도 비위를 맞춰야 했다.

연신 투덜거리는 전임자에게 한 가지라도 더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다.


“헉헉!”


류지호는 전임자의 오토바이를 따라 배달 구역을 달리고 또 달렸다.

사전에 메모한 주소와 명패를 일일이 확인하며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그렇게 겨우 첫날을 뛰면서 신문배달을 마쳤다.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심영숙이 걱정스레 말했다.


“건강하려고 운동하는 거지 몸을 망치려고 운동을 하는 거라니?”

“시험도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에 좀 무리했나 봐요.”

“네 나이에는 잠도 많이 자야 키가 큰다는데, 좀 더 자.”

“괜찮아요.”


류지호는 삼 일간 전임자와 함께 하며 담당할 배달 구역을 숙지했다.


“일주일 동안 해준다고 하고선....”


전임자는 류지호와 약속을 매몰차게 깨버렸다.

정확히 삼일만 같이 돌아주고 나타나지 않았다.


“참 인정머리 없네.”


류지호는 투덜거리며 신문 한 부를 따로 챙겼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좋은 점이 매일 신문 한부씩 꼬박꼬박 챙길 수 있단 거다.

챙긴 신문은 아침자습 시간에 꼼꼼히 읽었다.

신문을 읽다보면 불현 듯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따로 메모를 했다가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에 기록 해 두었다.

그리고 칼럼이나 경제 기사는 따로 스크랩을 했다.

미래의 일을 예측했을 때를 대비해서다.

어릴 적부터 이렇듯 준비를 해왔다는 논리를 만들어놓기 위함이다.


며칠이 지났다.

친구들은 중간고사가 끝나면, 다시 예전 류지호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류지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 기상시간이 1시간 당겨졌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 보급소로 달려갔다.

1시간 30분 정도 신문을 돌리고, 수봉공원에 올라 태권도 품새로 몸을 풀었다.


“고려나 금강도 배워둘걸.”


매일 태극1장부터 8장까지만 반복하다 보니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발차기 수련을 죽어라 해봐도 올바른 자세인지 지적해 줄 사람이 없다보니 성과를 확인할 수도 없다.

신문배달과 태권도 수련을 병행하기도 쉽지 않았다.

류지호는 첫 월급을 타면 자전거부터 사기로 결정했다.

자전거로 배달하면 3구역까지는 무리여도 2구역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태권도는 언제 하지? 주말에만 도장에 나간다면 취미생활이지 운동이라고 할 수 없어.’


학교생활만으로도 시간이 빡빡했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무슨 고등학생이 대기업 직원도 아니고 시간이 모자라서 고민을 하냐고.’


학생 신분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 ❉ ❉


딩동댕~


수업이 끝나자 류지호는 교실 뒤로 나가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50분 내내 긴장하며 부동자세로 앉아 있었더니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았다.

지겹고 힘들고 답답하고 짜증만 났던 수업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는 것 같았다.


우르르.


급우들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교무실 앞에 1등부터 꼴찌까지 적혀있는 학년 전체 성적표가 걸렸다.

성격 급한 이들이 자신의 성적이 궁금해 달려갔던 것.

그러거나 말거나.

류지호는 다음 시간 과목을 점검했다.


“성적 안 궁금해?”


무신경한 류지호를 향해 강용석이 물었다.


“별로.”

“내가 네 성적 보고 올까?”

“어차피 성적표 나눠줄텐데 뭐 하러 힘 빼.”

“그래도 너는 열심히 공부했잖아. 빨리 알고 싶지 않냐?”


입학 초창기까지만 해도 나태하던 류지호가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용석은 류지호의 성적이 어떻게 나왔는지 무척 궁금했다.


“기다려봐. 내가 가서 보고 올게.”


강용석은 교무실로 달려가 길게 붙어있는 성적표를 빠르게 훑었다.

학생 이름 옆으로 과목별 점수, 총점, 평균 점수, 학급 등수, 전체 등수가 일목요연하게 나열되어 있다.

1학년 14반, 한 반에 60명, 1학년 전체 학생 수는 840명이다.

평균 90점이 넘어야 반에서 10등 전체 150등 언저리에 위치할 수 있다.

전체 석차 120등 근처에서 류지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깝게 10등 안에 못 들었더라.”


교실로 돌아온 강용석이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수학을 망쳐서 그렇지, 나름 선방 했네”

“1학년 1등이 김석민이던데, 걔 방송부지?”

“응.”

“방송부는 공부 잘하는 얘들만 뽑는다더니 전교 1등까지 뽑았나봐?”

“석민이도 2학기부터는 어떻게 될지 몰라.”

“왜?”

“방송부가 얼마나 바쁜데.”

“매일 선배들한테 빠따 맞는다며?”

“매일은 아니고... 군기가 좀 쎄.”

“그래도 난 부럽다. 너희는 운동장 조회도 안 나고, 가끔 수업도 빠지잖아.”


방송부를 부러워하거나 특별 취급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질시하거나 싫어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학생도 있다.

학교 측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들을 알게 되면 생각이 바뀔걸.”

“점심 방송하는 거 말고 뭘 하는데?”


고등학교 방송부 업무가 생각보다 많다.

방송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 수업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타종이다.

전교생 조회 때 마이크와 앰프 설치가 다음 주 임무다.

학교 연례행사인 입학식, 졸업식, 축제, 체육대회에서 음향장비를 책임지는 것 또한 방송부다.

그리고 보이스카우트나 동문체육대회, 야구응원 같은 대규모 행사에도 항상 방송부가 동원된다.

교직원 행사도 있다.

매주 토요일 방과 후에는 학교 곳곳으로 뻗어나간 방송 케이블의 단선을 점검하고, 교실에 달려있는 스피커의 고장유무를 점검한다.

류지호는 엔지니어 파트다.

전기기술자처럼 음향케이블과 전기선을 만져야 하고, 스피커와 장비 고장 시 기본적인 조치는 취할 줄 알아야 했으며 때때로 납땜질을 해야 했다.


“단선?”

“교실마다 스피커가 달려 있잖아. 방송실에서 뻗어 나온 선들이 학교 곳곳에 있는 스피커와 연결되게 깔려 있어. 낡거나 쥐나 고양이가 쓸어서 끊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찾아서 다시 연결하거나 선을 교체해야 돼.”

“그런 건 언제 하냐? 난 본적이 없는데.”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학생들 다 빠져나가면 그때 방송부들끼리 해.”

“방송부는 잔업까지 하는구나.”

“크크크. 잔업이래.”


류지호를 둘러싸고 있는 급우들이 웃었다.


“우리 형이 그러는데, 인천에서 비디오카메라 있는 학교는 우리 밖에 없을 거래. 진짜야?”

“글쎄, 나중에 방송부 연합회 나가면 진짜 그런가 한번 알아볼게.”


신포고 방송부는 학교 행사가 있을 경우 때때로 비디오촬영을 했다.

동문회에서 방송부에 70만원 상당의 금성사 VHS 비디오카메라를 기증했다.

대학교 평균 등록금이 55만원에서 60만원이다.

70만원이나 한다는 것으로 비디오카메라이 얼마나 고가의 물건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마 교육감이 오거나 교생실습 때 비디오 촬영을 할 거야.”

“방송부는 언제 공부 하냐?”

“듣고 보니 공짜로 엄청 부려먹는 거네?”

“방송부 부러워했는데 완전 노예야.”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도 있었고, 반신반의하는 얼굴의 녀석도 있었다.

방송부가 학업 이외에 나름 과중한 일을 하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었지만, 그렇다고 학생인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종 칠 때 다됐다. 다들 자리로 돌아가.”


류지호는 급우들을 자리로 돌려보내고, 수업을 준비했다.

중간고사 성적으로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었다.

류지호처럼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듯 대범하게 구는 학생도 있고, 1학년 초임에도 학업을 포기한 학생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희비가 엇갈리는 오후가 지나가고, 종례시간이 돌아왔다.

담임이 학생 한명씩 호명해 성적표를 나누어 주었다.


“성적표는 부모님 도장 받아서 내일 제출해,”

“예에에~”


반 아이들의 대답에 기운이 없었다.


“내일 지각하지 말고. 야자 땡땡이 치고 딴 데로 새지 말고, 집에 가서 공부하고 자라. 괜히 엉뚱한 곳에서 학생지도 선생님하고 마주치지 말고.”

“예,”

“종례 끝!”


류지호는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서 복도로 나왔다.

방송실로 향하다가 교감과 마주쳤다.


“방송부!”


교감이 류지호에게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아씨, 미친개......”


류지호는 구시렁거리며 교감에게 걸어갔다.


“성적표 내놔봐.”

“왜요?”


류지호가 불퉁하게 물었다.

교감의 미간에 내천 자가 그려지며 류지호의 귀를 사정없이 잡아 당겼다.


“악!”

“잔말 말고 내놔 자식아!”


류지호는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주섬주섬 뒤져 성적표를 꺼냈다.

성적표를 낚아채듯 빼앗아 훑어보던 교감이 비아냥거렸다.


“100등 안에도 못 들어?”

“입학 때 성적하고 같습니다. 현상 유지입니다.”

“같은 방송부 김석민이 보면서 느끼는 거 없어? 걔를 본받으란 말이야.”


교감은 김석민을 들먹이며 류지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석민이는 석민이고, 저는 접니다.”

“이 자식이 커서 뭐가 되려고 꼬박꼬박 말대꾸야?”


교감이 류지호의 볼을 꼬집으며 계속해서 이죽거렸다.

류지호는 겉으로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속으로만 이를 갈았다.


“쯧. 방송부에 어쩌다가 이런 꼴통이 들어와서는.”


교감이 성적표를 돌려주며 혀를 찼다.

류지호는 삐져나오려는 반항심을 애써 억눌렀다.


“가봐.”


교감이 돌아서서 교무실로 향했다.

류지호는 그의 등으로 고구마를 먹이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 ❉ ❉


1,2학년 방송부 전원이 야자를 빼먹고, 방송부실에 모두 모였다.

방송국장 한수호가 1학년들의 성적표를 확인했다.


‘내가 정신연령이 몇 살인데 십대인 선배에게 빠따를 맞아야 하다니.... 양아치한테 삥 뜯기고 선생한테 맞고, 선배한테 맞고, 이때 나는 정말 많이 맞았었구나.’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때는 그랬었지.

술안주 삼아 추억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일들이다.


“김석민!”

“네!”

“방송부 일에서 열외 시켜줄까?”


김석민이 당황해서 2학년들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석민이가 전교 5등 밑으로 내려가는 건 생각하기도 싫어.”

“네 성적 떨어지면 우리 방송부는 그 날로 다 죽는 거야.”

“방송부에서 탈퇴만 하지마라.”

“그러게. 선생들은 좋아하겠지만, 네가 나가면 우리는 3학년 형들한테 맞아 죽어.”

“너희들은 석민이 때문에 덜 맞는다는 걸 알아둬라.”


김석민이 멋쩍어 뒷머리를 긁었다.

한수호의 시선이 류지호에게 향했다.


“저도 크게 변동은 없습니다.”

“기말고사에서 분발해봐.”


류지호가 방송부 선배로부터 빠따를 맞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철웅이야 농구하랴 볼 차랴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해서 공부하고 담쌓게 되는 건 알고 있지만, 원석이 저놈은 외모 꾸미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아도 은근히 공부 좀 한단 말이야. 상은이는 석민이하고 공부는 제일 많이 하는데 이상하게 성적이 안 나오고.‘


방송부 선배들의 성적 체벌이 끝이 났다.

방송부 전원이 야자에서 빠져 당당하게 교문을 통과해 학교를 빠져나갔다.

교감은 이 같은 방송부의 성적 체벌을 눈감아 줬다.

이유 없는 선배의 후배 체벌은 단호히 규제하지만, 성적을 가지고 하는 체벌은 은근히 방조했다.

학생들이 교사의 체벌에는 반감을 가져도 선배의 체벌은 수긍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서클은 성적으로 선배가 후배를 체벌하지 않는다.

방송부나 도서부 같은 몇몇 엘리트 서클만 선배들이 후배 성적을 관리했다.

성적 체벌이 엘리트 대접이라면 사양해야 옳다.

그런데 누구도 그 부분을 따지지 않았다.


‘2학년 올라가면 방송부 체벌을 없애야겠어.’


신포동에는 역사가 오래된 중화루, 신성루, 진흥각 등 중국음식점이 많았다.

고등학생에게 인기 있는 곳은 따로 있었다.

신포고 방송부가 찾아간 중국집은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다만 2층 다락방은 인근 고등학생 단체손님들의 아지트 같은 역할을 했다.

선배가 군기를 잡으면, 매번 후배들을 중국집으로 데려가 짜장면을 사줬다.

체벌이 있은 후에 최소한 과자와 초코파이는 사 먹여야 했다.

사회전반에 은연중 깔려있는 군대문화의 잔재였다.

3학년 선배들도 중국집에 합류했다.

15명의 대인원이 중국집 2층 다락방에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학교 안에서는 선후배 관계가 엄격했다.

그런데 회식 자리에서는 호칭도 편해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간혹 졸업한 선배의 뒷담화도 서슴없이 벌어졌다.

그때 김석민이 손을 번쩍 들고 3학년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배님, 저는 더 이상 올라가거나 떨어질 등수가 없는데... 다음 시험에서 1등을 못해도 맞아야 합니까?”


다락방에 모인 방송부원들의 시선이 모두 김석민에게 모아졌다.

잘난 척 하려는 것이 아니다.

매 맞는 것이 무서워서다.

김석민 때문에 썰렁했던 분위기는 탕수육이 나오면서 다시 왁자지껄 소란스러워졌다.

최원석은 공부를 안했는데 찍은 것들이 운 좋게 다 맞았다고 으스댔고, 찍는 것도 머리 굴려 찍는 놈보다 아무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찍어야 맞는 모양이라며 이철웅이 되받아쳤다.

김석민은 이런 자리가 어색한 지 짬뽕 면발만 깨작거렸다.


“불편하냐?”


김석민이 류지호를 돌아보았다.

매일 보는 류지호의 얼굴이다.

그런데 가끔 나이 먹은 선배처럼 보일 때가 있다.

자신처럼 깔보는 말투는 아니지만, 류지호가 거북할 때가 있다.


“모난 놈이 정 맞는 게 세상이더라.”

“.....?”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천재는 오히려 사회에서 낙오되기 십상이야. 어떤 무리에도 섞이지 못하고 홀로 고립되기 쉬워. 그러다가 결국에 외로이 도태되어 가는 거야. 성공하는 사람이 천재가 아니라 성공한 사람 중에 천재가 일부 끼어 있다는 게 맞는 것 같더라고.”

“난 천재 아냐.”


김석민이 심통이 난 듯 불퉁하게 말했다.


“석민이 너. 방송부하고 같은 반 짝 말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 있어?”

“공부하고 방송부 병행하기도 바쁜데 친구를 언제 사귀....”


류지호가 말을 잘랐다.


“너나 나나 아웃사이더잖아. 이 사회는 사람들 간의 교류를 중시해. 제 잘난 맛에 사는 독불장군은 경원시 당하더라고. 넌 분명 서울대에 갈 테고 대기업에 취직할 거야. 근데 네가 지금처럼 인간관계에 소홀하다가는 그런 사회 풍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졸업하면 어차피 남남이 될 관계 아냐? 졸업하고 연락하고 지낼 놈이 몇이나 되겠냐?”

“얀마, 인간관계가 곧 사회생활의 척도라고.”

“너랑 나랑 동갑이야. 네가 사회에 대해 뭘 알아? 내가 너한테 그런 충고 들을 이유 없어.”


류지호는 기억 속의 김석민의 미래를 떠올려보았다.

녀석도 류지호처럼 고교 동창들과 연락하고 지내지 않았다.

서울대에 입학해 그곳에서도 두각을 나타냈고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공부를 좋아하고 전공만 파던 스타일이라 대인관계도 서툴렀다.

사회생활에 젬병인 김석민은 기대만큼의 성공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오지랖이야. 내 주제에 무슨 남의 인생에 충고 질이냐....’


회식이 점점 무르익었다.

오철규가 자신의 공부 비법을 전수한다며 침을 튀겼다.

오철규의 성적이 그저 그랬다면 한 귀로 흘렸겠지만, 나름 전교에서 노는 선배라 류지호는 수학에 대한 고충을 털어놨다.


“무식하게 수학 정석만 판다고 실력이 쑥쑥 느는 것이 아냐. 기본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중학교 수준의 수학 문제집을 다시 푸는 것부터 해봐.”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중학교 수학 보려니까 쪽팔려?”

“제가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는 아닙니다.”

“영어는 좀 하냐?”

“문법은 약한데 독해는 그럭저럭 합니다.”

“근데 너 말투가 원래 그랬냐?”

“제가 어른스럽다는 말을 듣는 편입니다.”

“그래도 거북한데? 그냥 편하게 대해.”


류지호는 평상시에는 철없는 십대 같다가도 오늘 김석민에게 충고하던 것처럼 어른인양 하는 태도가 불현 듯 튀어나올 때가 있다.

조심한다고 해도 정신연령의 간극에서 오는 혼란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다.


‘이런 광경을 잊고 살았었는데......’


류지호는 다락방에서 왁자지껄 먹고 떠드는 방송부원들을 눈에 담았다.

이들은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도 세상의 풍파를 헤쳐 나가며 연륜을 쌓아갈 것이다.

류지호는 서로에게 든든한 동반자가 되길 내심 기원했다.

저녁식사 시간이 끝나면 남은 시간은 고학년들의 시간이다.

이쯤에서 1학년이 눈치껏 빠져주는 것이 좋다.

류지호는 신포동 유흥가를 가로질러 버스정류장까지 방송부 친구들과 걸었다.


“석민아, 삐졌냐?”


류지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경 안 써.”


김석민이 까칠하게 대답했다.


“짜식~ 삐졌으면서...... 우리 졸업하고도 자주 보자.”

“쳇, 3년 내내 볼 건데 벌써부터 난리야.”


김석민이 낯이 뜨거워져 코밑을 검지로 슥슥 훑으며 말했다.


“고등학교 동기나 친구가 제일 오래 마지막까지 가더라.”

“또 그러네. 넌 가끔 노인처럼 말하더라.”

“하하하”

“웃지 마. 정들어! 내일 봐.”


김석민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는 버스에 올라탔다.

정류장 쪽 창가에 앉은 김석민이 류지호에게 손을 흔들었다.

방송부 동기들이 하나 둘 버스를 타고 떠났다.

류지호는 버스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서 중얼거렸다.


“Goodfellas....”


좋은 친구들.

실제로는 갱, 폭력단원이라는 뜻의 속어다.

마피아 단원들끼리 부르는 은어이자 다른 조직원에게 ‘애는 우리 편이다’ 라는 것을 나타낼 때는 쓰는 말이다.

그리고 프랭크 코폴라 감독의 명작 <갓파더>에 버금가는, 마르틴 스코체제 감독이 1990년 선보이게 되는 또 한 편의 갱스터 무비 수작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주인공들의 우정이란 오랜 시간 사귀며 친하게 지내는 벗들의 의리가 아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이득을 주는 사람.

그런 자들이 친구다.

수십 년을 친구로 동고동락 했다 해도 예외가 없다.

친구에게 간과 쓸개까지 내줄 것처럼 친하게 굴다가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한순간에 배신이란 뒤통수를 후려친다.


“fella...”


친구란 말이다.

류지호는 방송부 친구들이 갱단원의 은어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친구이기를 바랐다.

우정은 사랑과 다르다.

우정에는 짝사랑처럼 일방적인 우정이 없다.


‘lifelong friend.....!’


평생친구.

류지호는 사인방과 방송부 친구들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작가의말

친구들과 소주 한 잔 기울이기도 힘든 시국입니다. 망할 코시국이 종식이 되어야 할 텐데...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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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3) +11 22.01.01 11,517 246 22쪽
23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2) +8 21.12.31 11,793 233 16쪽
22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1) +8 21.12.31 12,563 242 24쪽
21 우리는 가족입니다! (3) +13 21.12.30 12,455 258 24쪽
20 우리는 가족입니다! (2) +12 21.12.30 12,490 260 20쪽
19 우리는 가족입니다! (1) +11 21.12.29 13,253 238 21쪽
18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4) +10 21.12.29 13,232 262 23쪽
17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3) +13 21.12.28 13,198 265 16쪽
16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2) +8 21.12.28 13,596 244 18쪽
15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1) +6 21.12.27 14,133 273 20쪽
14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3) +7 21.12.27 14,338 280 22쪽
13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2) +11 21.12.26 14,606 277 21쪽
12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1) +12 21.12.25 15,156 266 22쪽
11 돈을 왕창 벌자! +13 21.12.25 15,593 272 20쪽
10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2) +9 21.12.24 15,291 275 20쪽
9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1) +8 21.12.24 15,896 260 21쪽
» Goodfellas. (4) +10 21.12.23 16,164 279 20쪽
7 Goodfellas. (3) +13 21.12.23 16,684 262 20쪽
6 Goodfellas. (2) +12 21.12.22 17,278 292 19쪽
5 Goodfellas. (1) +20 21.12.22 18,521 295 21쪽
4 Again 1987. (3) +25 21.12.21 19,280 328 20쪽
3 Again 1987. (2) +11 21.12.21 22,069 337 20쪽
2 Again 1987. (1) +20 21.12.20 27,799 398 21쪽
1 프롤로그. +49 21.12.20 40,656 46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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